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모심기
 모심기
ⓒ 이민선

관련사진보기



"얘 어떻게 한다니. 내일 모심으로면 오늘 모판 날라야 하는데?"

다음 말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모판을 논으로 날라야 하는데 일손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얼마나 다급했는지 어머니는 새벽 6시에 전화를 하셨다. 난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를 않아 "상황 보고 전화할 게" 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고민에 또 고민을 거듭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도저히 미룰 수 없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은 종이 신문 <월간 안양뉴스>가 나오는 날이었다. 난 지역신문 인터넷 <안양뉴스>와 <월간 안양뉴스> 편집인이다. 신문 나오는 날 편집인이 현장을 떠날 수는 없는 법. 결국 미안한 마음을 뒤로하고 "내일 모 심을 때 갈게"라고 어머니에게 전화했다.

21일 새벽 6시,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부모님이 계신 고향집까지는 1시간 20분 정도 걸린다. 팔순 노인 둘이서 일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급했다. 어머니, 아버지는 올해 팔순이다. 고향집은 텅 비어 있었다. 문 앞을 지키고 있는 '누렁이' 녀석만 사납게 짖다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다소곳하게 꼬리를 친다. 아버지의 자전거를 타고 부리나케 논으로 향했다.

팔순 어머니는 '라이더'
 팔순 어머니는 '라이더'
ⓒ 이민선

관련사진보기


모도 사람처럼 춥게 키워야 강하다

어머니, 아버지는 이미 논에서 모 심을 준비를 하고 계셨다. 이앙기라는 기계로 모를 심기 전에 소소하게 준비해야 할 일이 많다. 우선 전날 논에 담가놓은 모판을 건져서 논둑에 가지런히 늘어놓아야 한다. 그 다음, 논바닥을 정리해야 한다. 논바닥에는 지푸라기 찌꺼기(어머니는 이것을 '넝검지기'라고 했다. 국어사전에는 없는 말)가 서로 뒤엉켜 있다.

'넝검지기'를 건져내지 않으면 모가 흙속에 박히지 않아 '뜬모'가 생긴다. '뜬모'는 글자 그대로 물에 둥둥 떠 있는 모다. 모판은 이미 두 분이 모두 건져서 논둑에 가지런히 정리해 놓은 상태였다. 아마 동이 트자마자 논으로 달려왔을 것이다.

내가 도착하자 어머니는 일손을 넘기고 밥을 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갔다. 자전거 타는 어머니 모습에서는 팔순 노인이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어머니는 칠순 넘어 자전거를 배웠다. 150cm가 갓 넘는 작달막한 키의 어머니가 숙녀용 자전거(여성용 클래식)를 타고 질주하는 모습은 그림처럼 아름답다. 이 자전거를 타고 어머니는 논에서 일하는 아버지를 위해 새참도 나르고 일요일이면 성당도 간다.

모판 건져내기
 모판 건져내기
ⓒ 이민선

관련사진보기



'넝검지기' 는 모심기 전에 건져내야 한다.
 '넝검지기' 는 모심기 전에 건져내야 한다.
ⓒ 이민선

관련사진보기


'넝검지기'는 갈퀴로 끊임없이 건져내도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젠 없겠지' 하고 논바닥을 살펴보면 또 눈에 띄었다. 갈퀴질에 지칠 때쯤 기정(53세)이 형이 부인과 함께 이앙기를 몰고 논에 도착했다.

기정이 형은 '젊은 피'다. 머리 하얀 노인들만 있는 농촌 마을에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다. 값비싼 농기계를 몰고 다니며 모 심어 주는 사람도 기정이 형이고, 가을에 추수해 주는 사람도 기정이 형이다.

"넌 해보지 안해서 못혀 '뜬모'나 혀!"

아버지 말을 듣고 비닐봉지에 모를 담아 논으로 들어갔다. 말인즉, 모판에서 모를 잘 떼어내 이앙기에 실어주는 일을 경험이 없어서 하지 못한다는 것. 역시 무늬만 농촌 출신이라는 것이 여실히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아버지는 막내아들이 농사일에 젬병이란 것을 잘 알고 있다.

"덥게 키웠나 보네 모가 약허여 뜨거워서 탄 모도 있고, 좀 차게 키워야 좋은디."

기정이 형은 모가 약하다며 걱정한다. 모가 약하면 다루기가 힘들다. 쉽게 부스러져서 모판에서 떼기도 힘들고 이앙기에 옮겨 싣기도 힘들다. 약 20일 전 못자리를 낼 때 보온을 해 준답시고 비닐과 보온덮개를 모판 위에 층층이 덮은 것이 화근이었다. 모도 사람처럼 좀 춥게 키워야 강해진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모판에 있는 모를 이앙기로 옮기는 모습
 모판에 있는 모를 이앙기로 옮기는 모습
ⓒ 이민선

관련사진보기



왕초보 농사꾼도 할 수 있는 '뜬모작업' 하지만?

모판에서 모를 떼어내는 것도 기술이 필요하다. 또, 갓난아기를 목욕시킬 때처럼 섬세한 손길도 필요하다. 우악스럽게 떼어내면 모가 부스러져서 못쓰게 된다. 모판에서 모를 떼어내서 이앙기에 옮겨 실어주는 '기술자'는 농사일 경력 30년차 기정이형 부인이다.

기술 없는 난 '뜬모(국어사전에는 없는 말)'를 했다. '뜬모'는 글자그대로 뿌리가 땅에 박히지 못하고 물에 떠있는 모다. '뜬모'를 찾아내서 흙에 심어주는 작업을 '뜬모작업'이라 한다. 또 기계가 심지 못한 논 가장자리 부분은 일일이 손으로 모를 심어야 하는데, 이 작업도 '뜬모작업'이라 한다.

"겨우 두 뱀이 하고 허리 아프다고 하면 워쩐대유? 맨날 하는 사람도 있는디."

형수님(기정이형 부인)에게 한마디 들었다. 누가 들을 새라 나지막하게 한 혼잣말이었는데 귀 밝은 형수님은 놓치지 않고 들었던 것. 듣고 보니 미안했다. 팔십 평생 농사일만 한 아버지와 50년 동안 농촌을 지켜온 형님 부부 앞에서 감히 '허리 아프다'는 말을 한 것이. 겨우 8시간도 일하지 못한 주제에.

'두 뱀이' 넓이는 약 606m²(1000평)다. 논은 논두렁으로 경계가 표시된다. 하나의 논두렁 과 논두렁 사이가 한 뱀이 된다. 국어사전에는 없는 말이다. 충남 예산과 당진 부근에서 예전부터 사용되는 단위다.

'뜬모작업'은 모내기 이후 몇날 며칠을 더 해야 하는 일이다. 아무리 잘 살펴도 '뜬모'는 사방에 숨어있다. 이 작업은 별 수 없이 부모님이 해야 한다.
모심기
 모심기
ⓒ 이민선

관련사진보기


광우병 쇠고기 수입 문제는 농촌에서도 화제

"광우병 쇠고기 때문에 큰일이유 좀 나을 줄 알고 뽑았는디 어림도 없슈."
"그리기 말여, 큰일은 큰일이여 우리야 거진 다 살었으니께 괞찮은디 애들이 문제여 그거 걸리면 약도 없다며?"
"서울은 그거 때문에 맨날 데모 헌대유 예산 농민회에서도 뭐 좀 헌다구 허던디…."

즐거운 새참시간에 아버지와 형님이 나누는 정치 토론이다. 미국 광우병 쇠고기 수입문제는 농촌에서도 화제다. 형님은 이명박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보다 정치 잘할 줄 알고 뽑았는데, 지금 하는 것을 보니 '어림도 없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광우병'이 걱정스럽다. 앞길 창창한 아들, 손자, 며느리가 혹여 광우병에 걸려 고통 받지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다.

모 심어 놓은 논
 모 심어 놓은 논
ⓒ 이민선

관련사진보기


모내기는 오후 4시경 끝이 났다. 모내기를 하고 온지 벌써 이틀이 지났다. 아직도 허리가 쑤시고 아프다. 문득 '옛날에는 어떻게' 라는 생각이 스친다. 고작 몇 시간 일하고도 이렇게 허리 아픈데 어떻게 손으로 그 많은 모를 다 심었을까! 라는.

이앙기라는 기계가 개발되기 전에는 사람 손으로 모를 심었다. 마을 사람들이 일렬로 죽 늘어서서 모 심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새참에 막걸리 한잔씩 걸친 어른들은 흥에 겨워 일하면서 노래도 불렀다. 

모심는 날에는 학교도 가지 않았다. 부족한 일손을 조금이라도 도와야 했기에. 그것이 어린 마음에 상처가 되기도 했지만 돌이켜 보니 그저 아름답기만 한 기억이다.

6월에는 논에 비료를 뿌려야 한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다. 비료를 휘휘 뿌리기만 하면 되는 단순한 작업인 듯하다. 하지만 기술이 필요할 것이다. 농사일은 단순해 보이지만 직접 하려면 복잡하다는 특징이 있다. 무늬만 농촌출신 농사일 체험기는 6월에도 계속된다.

덧붙이는 글 | 안양뉴스 유포터 뉴스



태그:#모내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