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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문화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많은 10대, 특히 여중고생들이 촛불문화제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10대들의 유쾌한 반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자발적인 10대들의 집회 참여에도 교육청에서는 그들을 '단속 대상'으로만 묶어두려 합니다. 10대들이 우리 사회 가장 뜨거운 이슈의 주도권을 쥔 것만큼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이들 중고생들의 글을 받아 연속으로 보도합니다. 이번엔 고교 1학년 박하연(가명) 학생의 글을 싣습니다. [편집자말]
17일 오후 서울 덕수궁앞에서 열린 '미친소, 미친교육, 청소년이 바꾼다! 5.17 청소년 행동의날' 행사에서 가면을 쓴 한 학생이 '청소년은 정치적 동물이다'는 글이 적힌 종이를 들고 있다.
 17일 오후 서울 덕수궁앞에서 열린 '미친소, 미친교육, 청소년이 바꾼다! 5.17 청소년 행동의날' 행사에서 가면을 쓴 한 학생이 '청소년은 정치적 동물이다'는 글이 적힌 종이를 들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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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1학년 학생입니다. 지난 15일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 참석했고, 발언대에 올랐습니다. 발언대에 오르기까지, 수없이 고민을 거듭하고 많은 용기가 필요했지만 그 곳에 계셨던 다른 참가자 분들의 함성과 뜨거운 열정이 저로 하여금 용기를 내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발언대에 올라서도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다 전하지 못했기에 글로나마 남은 생각들을 적어보려 합니다.

지금 곳곳에서는 학생들의 촛불문화제 참여를 반대하고 심지어 모 학교에서는 문화제 참여시 '퇴학조치'라는 협박까지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의 인격체이자 대한민국의 국민입니다. '10대' '학생'이라고 마냥 어리게만 보시는데 저희는 그렇게 어리지만은 않습니다. 그 분들께 묻고 싶습니다. 과연 그 분들께서도 10대에 마냥 어리기만 하셨는지.

저희들이 광우병이나 FTA 등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그런 거 신경쓸 시간에 공부나 하라"고 말씀하시는 어른들이 많이 계십니다. 하지만 공부하라는 말씀을 하시려면 공부할 환경 정도는 만들어 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어린 것들이 뭘 안다고' 하는 생각부터 하시기 전에, '오죽하면 저 어린애들이 직접 촛불을 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주시면 안 되나요?

문제의 원인은 포퓰리즘이 아니라 파시즘

한 토론 프로그램에 나오신 시민 논객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학생들의 정부에 대한 불신이 언론에 대한 불신으로 번지고, 언론에 대한 불신이 어른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번지고 있다."

맞는 말씀입니다. 저희는 지금 누구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광우병 위험이 있는 쇠고기를 팔려 하고, 정부는 미국과 손을 잡고 우릴 대상으로 대규모 생체실험을 하려합니다.

언론은 그런 정부가 무서워 국민들 상대로 말장난이나 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뒤로는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를 들여오면서 앞으로는 "국민의 건강보다 중요한 건 없다"며 여론 가라앉히기에 급급합니다. 이 상황에서 도대체 누구를 믿어야 하고 어떤 말을 믿어야 합니까?

17일 오후 서울 덕수궁앞에서 열린 '미친소, 미친교육, 청소년이 바꾼다! 5.17 청소년 행동의날' 행사에서 한 학생이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17일 오후 서울 덕수궁앞에서 열린 '미친소, 미친교육, 청소년이 바꾼다! 5.17 청소년 행동의날' 행사에서 한 학생이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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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투표권도 없었습니다. 지금의 대통령은 어른들 선택으로 당선됐고, 그로 인해 어린 학생들까지 희생당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뽑아놓고, 그 때문에 이렇게도 큰 문제가 일어나고 있는데 이에 대해 관심도 가지지 않고 저희들을 나무라는 건 부당하다고 봅니다. 

또한 수입되는 미국산 쇠고기가 군대와 학교 급식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당장 광우병 위험에 노출되는 저희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리다는 이유로, 공부해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하루하루 내 입에 무엇이 들어가는지도 모른 채 광우병 쇠고기를 먹어야 하나요?

벌써 급식에서 쇠고기가 나오면 두려운 생각부터 듭니다. 쇠고기가 들어간 모든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듭니다. 한우마저 믿지 못하겠고, 쇠고기 자체에 대한 불신이 너무 커버렸습니다. 도대체 저희들이 무엇을 그리 잘못했기에 이토록 공포에 떨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부에서는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고, 광우병의 발병률이 지극히 낮으니 안심하고 먹으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안전성이 100% 보장될 수 없다면, 단 한 명의 국민이라도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있다면 수입하지 않는 게 맞는 것 아닌가요?

여당에서는 저희 학생들과 국민들이 촛불문화제에 참석하는 것이 야당의 포퓰리즘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국민들은 모두 자의로 그 자리에 참석한 것이고, 누군가에게 사주를 받거나 배후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희는 누군가에게 사주를 받고 나선 게 아닙니다. 단지 스스로를 지키려는 것뿐입니다.

저는 이 문제의 원인이 포퓰리즘이 아니라 파시즘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가 민주국가가 맞긴 한 건지, 국민 뜻대로 되는 게 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국민의 목소리를 철저히 차단하고 촛불문화제 주도자를 사법처리하며 문화제 참여 학생들을 탄압하는 이런 정부가 과연 민주정부입니까? 지금 정부의 자세는 일종의 파시즘 아닙니까?

"대통령 의무, 이명박 대통령은 얼마나 지켰나요?"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17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5.17 미친소, 미친교육, 촛불문화제'에서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정책 철회를 촉구하며 촛불을 들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17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5.17 미친소, 미친교육, 촛불문화제'에서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정책 철회를 촉구하며 촛불을 들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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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의무라는 게 있습니다. 대통령은 국가의 독립과 영토 보전 의무, 국가의 계속성과 헌법 수호의 책무,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노력 의무, 취임 선서문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의무를 가진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이명박 대통령이 지키신 게 몇이나 될까요?

우리나라는 지금 미국에게 아무 반론조차 제기하지 못한 채 졸속계약을 맺었으며 그 협상의 구멍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미국에선 SRM(광우병 특정위험물질)으로 지정된 부위가 우리나라에 버젓이 수입되고, 정부는 동물성사료에 관한 미국 관보를 오역하고도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니 괜찮다며 오히려 떳떳합니다.

게다가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4월 일본을 방문해 "과거를 묻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정부에서는 이게 부풀려진 이야기고 소문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불리하기만한 계약을 불만도 없이 체결하고 우리의 역사가 오롯이 과거 문제를 거론하지 않겠다는 것. 이걸 어떤 식으로 해석해야 하나요. 

우리는 지금 미친소를 먹어야 할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국소 수입 중단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이를 철저히 무시하고 있습니다.

헌법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지금 국민들의 목소리는 철저히 무시한 채 독단으로 모든 일을 처리하고 있습니다. 즉, 모든 권력의 시작인 국민들을 섬기지 않고 있단 말입니다.

또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쾌적한 환경에서 행복하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 또한 가졌습니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미친소를 수입함으로써 이 모든 권리들을 침해하고 있습니다.

또한 국가는 환경보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헌법을 어기고 대운하 건설을 추진해 환경을 파괴하려 합니다.

미국산 쇠고기, 대운하, 조공 외교... 누가 헌법을 어겼나요?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 성실히 노력할 의무는 정부의 대북정책에서부터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이미 미국에서 시도했다가 실패로 끝난 북한 선핵포기를 언급함으로써 다시 한반도를 긴장으로 몰아넣으며 평화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촛불문화제를 열었지만, 정부는 그것을 불법시위라 단정 지었습니다. 헌법에 모든 국민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이것을 허용치 않고 있습니다. 국민들에게 허락되는 건 도대체 무엇입니까? 평화적인 시위마저 불허하면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통해서 우리의 의견과 바람을 정부에 전달해야 합니까?

어린이가 17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5.17 미친소, 미친교육, 촛불문화제'에서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정책 철회를 촉구하며 협상무효의 손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어린이가 17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5.17 미친소, 미친교육, 촛불문화제'에서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정책 철회를 촉구하며 협상무효의 손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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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책임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 합니다."

바로 이명박 대통령님께서 직접 읽었던 취임 선서문입니다. 지금 이게 제대로 지켜지고 있습니까? 과연 대통령님께서 제대로 일을 하셨다면, 지금 우리나라가 이렇게 됐을까요? 서민들이, 어린 학생들이, 온 국민이 촛불을 치켜들고 목청을 높였을까요?

우리나라는 민주국가입니다. 자본주의 국가 이전에 민주주의 국가란 말입니다. 경제를 살린다는 명목 하에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빅딜을 하고 한반도의 역사를 이용해 조공외교를 펼치는, 국민이 주인이 되어야 할, 서민이 살기 좋아야 할 대한민국을 부자들만의 대한민국으로 이끌어가는 이 아이러니컬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건 오직 국민들의 뜨거운 열정과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촛불입니다.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그저 남의 일로만 생각하지 마시고, 보다 많은 분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저를 비롯한 학생들은 아직 꿈이 많고 하고 싶은 것들, 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살고 싶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 그리고 모든 국민분들이 현 정부의 문제를 알고 거리에 나와 촛불을 들어주셨으면 좋겠고 저 역시도 그 촛불을 끄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포기할 거였다면 시작조차 하지 않았을 겁니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우리입니다. 우리의 힘을 보여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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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미국산 쇠고기, #중고생, #촛불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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