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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나흘째 아침, 월포 앞바다. 파도가 있는 바다는 훨씬 더 역동적이고 아름답다.
▲ 내 자전거 여행 나흘째 아침, 월포 앞바다. 파도가 있는 바다는 훨씬 더 역동적이고 아름답다.
ⓒ 장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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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코스

대구에서 출발해서 영천, 경주를 거쳐 감포, 양포를 지나 구룡포에서 31번 도로를 버리고 929번 도로로 갈아탔다. 이어 호미곶, 포항을 거쳐 다시 20번 도로를 타고 북상, 칠포, 월포, 강구, 대진, 울진을 넘어 삼척, 동해, 강릉, 속초, 간성을 지나 민통선 안 통일전망대를 다녀왔다. 도로번호에 헷갈릴 필요는 없다. 요약하자면, 감포에서부터는 어떻게 하든 해안도로로만 가려고 무지 노력하면서 휴전선까지 다녀왔다는 말이다.

출발 이튿날, 감포항 일출
▲ 일출 출발 이튿날, 감포항 일출
ⓒ 장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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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2008년 2월 21일)은 예상보다 진격 속도가 빨라서 이러다가는 해도 떨어지기 전에 휴전선에 닿아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이 들 정도였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시작 첫날에 보이는 의욕 과잉에다가 바닷가에 닿아야 한다는 마음이 사무쳤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열흘이 걸렸다. 돌아올 때는 간성에서 버스를 탔다. 화물칸에 자전거를 실은 버스는 일곱시간 반 만에 나를 원위치시켰다. 버스요금은 이만팔천오백원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열흘 동안 기를 쓰며 올라간 것에 대한 경제적 가치는 이만팔천오백원이라는 말이다. 하긴 좀 억울한 생각도 들었다.

구룡포항 을지나며
▲ 구룡포 구룡포항 을지나며
ⓒ 장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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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대구에서 감포까지 170km 정도를 주파했다. 바깥 날씨는 추워서 장갑을 낀 손도 감각이 마비 될 정도였고 방한용 오토바이 마스크를 썼는데도 볼따구니도 얼어오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덕동댐을 지나고 경주국립공원 산을 탈 때는 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올랐다. 속옷은 땀에 폭삭 젖어서 기분 나쁘게 몸에 척척 감겼고, 바깥 날씨는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 종일 땀을 몇 번이나 솟았다. 여정 내내 이를 반복했다.

첫날 제일 괴로웠던 것은 다리가 아니라 안장에 닿는 엉덩이 부분이었다. 나중에는 하도 불편해서 자전거를 끌고 가는 것이 오히려 편할 지경이었다. 저녁에 모텔에서 살펴보니 살갖이 조금 벗겨진 듯했다. 기저귀라도 차야 하나?

2. 준비

대보의 동해안 일몰
▲ 대보 일몰 대보의 동해안 일몰
ⓒ 장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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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전거 여행을 떠나기 전 일 년 동안을 하루 약 15km 정도를 걸었다. 물론 자전거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 걸은 것은 아니었다. 아침에 반을 걷고 저녁에는 그 길을 돌아오는 것이다. 그리고 여행을 떠나기 전 한달 동안은 아침저녁으로 걷던 그 길을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자전거에 문제점은 없는가? 점검도 하고 자전거에 익숙해지기 위해서였다.

걷기와 다른 점이 있었다. 쓰는 근육이 달랐다. 오르막을 만나면 나는 헉헉 거렸고 내게 맞는 안장의 높이나 핸들을 맞추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그 과정을 거치고 여행에 올랐으나 걱정은 있었다.

여행 첫날은 점심 때 밥을 먹는 시간 삼십분 외에는 꼬박 열 세간을 자전거위에 있었다. 감포항 옆 전촌리의 한 모텔에서 잠자리에 들면서 행여나 다리에 알이 박히거나 경직이 올까 겁을 먹었으나 내 다리는 여행이 끝나는 날까지 튼튼하게 나를 지켜줬다. 이는 순전히 그간의 걷기와 자전거 타기 덕분이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다.

3. 도로

파도치는 바다는 언제 봐도 멋있다. 대진 가는길
▲ 바다. 파도치는 바다는 언제 봐도 멋있다. 대진 가는길
ⓒ 장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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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국립공원에 들어서자 날이 완전히 저물었다. 도로 폭이 좁아 차선 바깥은 한 뼘의 여유도 없이 아스팔트가 끝나 있었다. 뒤 깜빡이 등을 켜고 헤드라이트로 자그만 전등을 켜서 자전거를 끌며 밀며 산마루에 올라섰다.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차를 멈추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앉아 다른 차들의 헤드라이트불 빛에 의지해 빵을 뜯었다.

산등성이에는 추령터널이 앞을 가로 막고 있었다. 터널우측으로 구도로가 산 위로 뻗어있었지만 나는 그 길을 모른다. 더 이상 산을 탈 수 있는 힘도 없었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차들이 핑핑 날아다닌다. 자전거 길은 터널이고 터널 밖이고 없다. 이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된다? 나라고 운이 매번 좋으라는 법은 없다.

나는 자문했다. 죽어도 좋은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죽는다고 별로 억울할 것은 없었다. 나는 터널 속으로 달려들었다. 터널 밖은 고가교가 놓여있고 급경사가 길게 이어져있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다이빙을 위해 수도 없이 다닌 길이지만 자전거로는 처음이었다. 그러나 두 번 다시 자전거로는 지나고 싶지 않은 길이었다.

길엔 당연히 오르막이 있다. 오르막에도 종류가 있다. 경사가 급한 오르막과 은근한 오르막이다. 이중 내 경험에 의하면 경사가 급한 오르막은 별 문제가 안 된다. 곧 밑천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은근한 오르막이 사람을 반 죽인다. 은근한 오르막이란 오르막 같이 보이지도 않는 오르막이 이제 끝인가 싶어 오르고 나면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휘어져 다시 그만한 길이로 나타나는 고약한 오르막을 말한다.

이때는 별 수가 없다. 배달 겨레의 특성을 살리는 것이다. '은근과 끈기'다. '은근'한 오르막을 만나면 '끈기'로 헤쳐 나갈 수밖에 없다. 길이 굽어들면서 오르막이 또 있으면 서두르지 않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아니다. 하하 칠포해수욕장 화장실이다.
▲ 영화, 바그다드 카페? 아니다. 하하 칠포해수욕장 화장실이다.
ⓒ 장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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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윽고 정상에 서면 길은 반드시 아래로 향한다. 이때 자전거에 오르면 자전거는 구름을 탄 듯이 미끄러져 내려간다. 걸어 오른 시간이 길면 길수록 내려가는 즐거움이 더 큰 것은 물론이다.

해안도로는 오르막과 내리막의 반복이다. 바다로 향해 달리던 산맥의 자락이 바다 속으로 숨어들어가기 때문이다. 내가 탄 코스 중에 경주국립공원과 감포에서 대보를 거쳐 포항으로 빠지는 길과 울진에서 삼척, 삼척에서 강릉으로 넘어가는 길이 지옥의 코스였다. 반은 자전거를 끌고 걸었고 반은 그 반대였다. 그러나 그런 길일수록 그 수고로움을 상쇄시키고도 남을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국도를 타고 가다보면 수시로 그 길이 끊긴다. 국도가 산업도로나 자동차전용도로로 바뀌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잘 트인 국도로 가야 할 때는 바깥쪽 라인을 넘지 않아야 한다. 이는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차들은 거의 살인적인 속도로 달린다. 자동차의 위협을 노상 받을 수밖에 없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차선을 넘지 않고 자동차의 질주소리에 신경을 끄는 수밖에 없다. 작금의 도로에 자전거를 위한 길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4. 가격

둘째날 저녁, 포항에 못 미쳐 입암리의 한 모텔에 들었을 때 내가 여행을 떠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부산의 한 후배가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확인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형, 어딘데요?"

내가 위치를 설명했다. 녀석이 콧방귀를 뀌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그는 내가 대구에서 포항으로 곧바로 내려온 줄 안 모양이었다. 내가 지나온  코스를 이야기하자 그의 목소리가 대번에 진지하게 바뀌었다.

"형, 얼마짜리 자전건데요?"

동해안 절경중에서도 아주 손꼽히는 곳이다.
▲ 갈남리 동해안 절경중에서도 아주 손꼽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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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질문을 나는 몇 번 더 들었다. 울진에서 삼척으로 넘어가는 도 경계선에서였다. 이정표를 아무래도 이해할 수 없어 마침 길가에 있는 슈퍼에 들어가 길을 물었을 때였다. 슈퍼 안에는 동네사람으로 보이는 중년의 사내들 몇 명이 앉아있었다. 내가 길을 확인하고 나와서 자전거에 올라탔을 때 문을 열고 나온 한 사내가 나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 다짜고짜 물었다.

"아저씨, 그거 얼마짜리 자전거에요?"

나는 단박에 사태를 짐작했다 내가 웃으며 말했다.

"13만원 짜린데요."

사내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뒤돌아서 슈퍼 안의 사내들에게 소리쳤다.

"봐라, 내가 머라카더노. 그렇다 안 카더나."

내 판단으로 내 자전거는 이 나라 삼천리를 돌아다니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전거다. M.T.B, 몇 백만 원짜리에서 인터넷에서 파는 육만 원짜리까지 있다. 싸다고 질이 나쁜 것은 아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가? 아무리 비싼 자전거라도 페달을 밟아야 한다는 것을 간과하고 사람들은 돈으로 판단하려는 것 같았다.

5. 수

고개마루에서 본 용화. 절경중에 절경이었다.
▲ 용화해수욕장 고개마루에서 본 용화. 절경중에 절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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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사람들이 내게 물었다. 혼자서 어떻게 다니느냐고? 외로워서 어떻게 다니느냐고?
휴전선 아래 간성의 한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던 사내들이 내가 주인과 주고받는 수작을 듣고 있다가 물었다.

"어디서 오시는 길인데요?"

대답을 하자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면서 그들이 말했다.

외로워서 어떻게 혼자서 다니느냐고, 자기도 이런 여행을 한 번 하고 싶다면서 그런데 자기는 자전거로 여행을 할 자신은 있으나 혼자서는 심심할 것 같아서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말인즉, 육체적 고통은 감수할 수 있으나 정신적인 고통은 견디지는 못하겠다는 말이었다. 그럴까?

마음이 맞는 사람과 여행을 같이하면  기쁨은 배가 된다. 그러나 이는 또 서로를 조금씩 구속한다는 말이다. 더구나 서로의 일정을 맞추기는 더욱 힘이 든다. 둘을 고집할 때는 영원히 출발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혼자 하는 여행이 자유로운 이유다.

그렇다고 혼자 하는 여행이 정말로 혼자는 아니다. 돌아보면 하늘이 있고 바다가 있고, 바람과, 돌, 나무, 새들이 있다. 그 누구에게 말을 걸어도 좋다. 그리고 어디에 가나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또 내가 있다. 내 속에 또 내가 있는 것이다. 심심하거나 외롭기는커녕 나는 땀을 닦아 내기에도 바빴다. 하나라는 것은 곧 자유를 말한다.

6. 밥

망상 해수욕장을 지나면서.
▲ 동해안철도 망상 해수욕장을 지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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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여행에서 곤혹스러웠던 일은 식사였다. 코스를 점검해보고 어디쯤 가서 밥을 해결하겠다고 작전을 짜지만 이걸 제대로 맞출 수가 없었다. 변수가 있는 것이다. 시속 20~30km는 평지일 때에 국한한 속도고 여러 가지 변수가 있다.

그 중에서도 맞바람은 아주 괴로웠다. 맞바람을 맞으면 내리막에서도 바람이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 평지에서도 걸어야 하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그리고 오르막과 타이어 펑크다. 다행히 나는 펑크 한 번으로 여정을 마무리했지만 식사시간을 맞출 수가 없었다.

제시간에 맞춤한 식당이 나와 주기를 기대하진 못한다. 그렇다고 아침에 점심까지 먹어 둘 수는 없다. 허기가 져서 쓰러지지 않으려면 식성에 맞춰 음식을 준비하는 수밖에는 없다. 장거리 여행은 격렬하게 체력을 소모한다. 이때는 돈도, 사랑도, 의지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한 덩이 빵만이 해결할 수가 있는 것이다. 나는 이를 음료수와 빵, 김밥 등으로 해결했다. 쓰러지지 않으려면 새참까지 준비를 해야 한다.

7. 교통수단으로서의 자전거

삼일절날 도착
▲ 통일전망대 대불과 성모마리아 상 삼일절날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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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평소에 걷던 길은 편도에 걸어서 약 팔십 분이 걸렸다. 자전거는 이를 반으로 줄여줬다. 도심에서 자전거의 속도는 거의 버스와 맞먹는다. 집에서 출발해서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까지 합치면 그 시간에 자전거는 달려 목적지에 거의 같은 시간대에 도착한다는 말이다.

물론 이는 장거리에서는 그 차이가 많이 벌어진다. 자전거는 수시로 그 코스를 간단하게 바꿀 수가 있다. 번잡한 도회지의 중심가로, 시장으로, 산책길로, 그날, 그날의 기분에 따라 코스를 변경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때까지만 해도 나는 자전거를 교통수단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며칠 전 나는 자전거로 고향을 다녀왔다. 약 70km를 달렸다. 가다 놀다를 반복했는데도 불구하고 아침 여섯시 반에 출발해서 오후 두시 반엔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새삼 신기했다. 건강수단으로만 생각했던 자전거가 아주 훌륭한 교통수단이라는 것을 느낀 것이다. 더구나 도시에선 사이사이 아무렇게나 흘러버리는 자투리 시간을 자전거에 투자하면 시간에 쫒기지 않고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이번 여행에 나는 천오백장의 사진을 찍었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자전거였다. 시도 때도 없이 멈추어도 교통흐름에 방해되지 않고 아무 데나 멈추어도 누구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가다가 고단하면 길가 아무데나 자전거를 멈추어놓고 나는 바람을 즐겼다. 눈 내리는 바다, 안개 낀 골짜기, 어느 것 하나 그냥 지나칠 일이 없었던 것이다. 자전거가 가지 못할 길은 없다.

자전거는 우리에게 새로운 눈과 새로운 환경을 제공해준다. 그런 자전거의 눈높이가 마음에 들어 나는 답답한 차를 버리고 오늘도 자전거를 탄다.

2008. 4.10. 장호준

덧붙이는 글 | 자전거 시승기 응모글



태그:#자전거여행, #장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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