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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하는 아버지 태종 이방원. 드라마 <대왕세종>에서.
 고뇌하는 아버지 태종 이방원. 드라마 <대왕세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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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나타내는 '안'(安)과 '녕'(寧)

<대왕세종>에서 '고뇌하는 아버지'로 묘사되고 있는 태종 이방원. 그와 그의 아버지 태조 이성계 사이에는 독특한 공통점이 있다. 아들들의 대군호(大君號) 혹은 군호(君號)에다가 일률적으로 돌림자(항렬자)를 넣었다는 점이다. 

제19대 숙종 임금의 경우에도 세자(훗날 경종)를 제외한 두 아들의 군호를 각각 연잉군(훗날 영조)과 연령군으로 명명하긴 했지만, 이성계-이방원은 그와 달리 좀 독특한 측면이 있다. 그 독특함이란 것은, 아들들의 대군호·군호에 한결같이 '평화'를 상징하는 안(安)이나 녕(寧)을 붙였다는 점이다.

이성계는 아들들을 진안·영안·익안·회안·정안·덕안·무안·의안대군으로 명명했고, 태종은 양녕·효녕·충녕·성녕대군 및 경녕·성녕·온녕·근녕·혜녕·희녕·후녕·익녕군으로 명명했다. 논의의 편의상, 이하의 글에서는 '대군호 혹은 군호'라는 표현을 '군호'로 통일하기로 한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도(세종)나 이산(정조)처럼 왕족의 이름은 외자로 만들어졌으므로 이름에는 위와 같은 돌림자가 들어갈 수 없다. 돌림자를 넣는다면 그 대상은 군호가 될 수밖에 없다. 역시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성계나 이방원은 왕족 신분으로 태어난 게 아니기 때문에 후손들과는 달리 이름이 두 글자로 되어 있다.

아들의 군호에 안(安)과 녕(寧)을 넣은 이성계와 이방원. 그들은 왜 그렇게 한 걸까? 아들이 많아서 기억하기 좋으라고 그런 걸까? 그건 아니다. 제2대 정종은 태조나 태종보다 더 많은 15명의 아들을 두었지만 이들의 군호에 돌림자를 넣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아들이 많아서 군호에 돌림자를 넣었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럼, 왜 그렇게 한 걸까? 이 글에서는 논의를 이방원에게만 국한시켜서, 녕(寧)의 의미와 그것을 붙인 의도를 생각해보기로 한다.

이방원이 아들의 군호에 '녕'을 붙인 이유는?

이방원이 아들들의 군호에 똑같이 '녕'을 붙인 것은 아들들이 왕위를 놓고 서로 싸우지 말라는 뜻에서 그런 게 아닌가? 맞다. 그것이 한 가지 측면이다. 그러나 또 한 가지 측면도 있다. 이 글에서는 두 가지 측면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옥편에서는 '녕'을 '편안하다'로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편안하다'만으로는 '녕'의 의미를 온전히 살리기 힘들다. 동아시아 문화에 큰 영향을 준 고전들에서는 '녕'의 의미를 어떻게 풀고 있을까?

먼저, <시경>에서는 '부모를 뵈러 가다'(歸寧父母)라는 표현에서 '녕'을 사용했다. 시집 간 딸처럼 멀리 떨어져 사는 자식이 부모를 뵈러 가는 것을 '녕'이라 한 것이다. 이와 동일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좌전>에 대한 두예(杜預)의 주석이다. 그는 '녕(寧)이란 부모의 안부를 묻는 것이다'(寧問父母安否)라고 풀이했다.

한편, 유명한 학자인 안사고(顔師古)는 <한서> '애제기'에 대한 주석에서 '녕'을 '자식이 돌아가신 부모를 위해 집에서 거상(居喪)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녕(寧)이란 집에서 상복을 입는 것을 말한다'(寧謂處家持喪服)라고 하였다.

'녕'이 부사로 쓰일 경우에는 또 다른 의미가 생기지만, 위와 같이 형용사로 쓰일 경우에는 '자식이 살아 계신 부모를 뵈러 집으로 가는 것' 혹은 '자식이 돌아가신 부모를 위해 집에서 거상하는 것' 등의 의미를 띠고 있다.

그러므로 '녕'은 부모가 살아 계시든 돌아가셨든 간에 자식(들)이 그 곁으로 모이는 것을 의미한다. 부모와 자식이 어떤 형태로든 함께 있는 것을 '녕'이라고 했던 것이다. 살아서 함께 있든 죽어서(부모가) 정신이 함께 있든 간에 부모와 자식이 함께 있는 것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살아서든, 죽어서든 부모와 자식이 함께 있음을 뜻하는 말 '녕'

이에 따르면, '녕'의 의미를 이루는 세 가지 요소는 부모+자식+집이다. 부모자식이 집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행복을 누리는 것을 '녕'이라고 본 것이다.

이것은 녕(寧)이라는 글자의 유래와도 부합한다. 그릇(皿)이 집(宀) 안에 있으니 마음(心)이 편안하다는 '녕'자의 유래처럼 부모와 자식이 집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함께 사는 행복, 그것이 바로 '녕'의 함의인 것이다.

이 같은 '녕'의 고전의 의미를 고려해볼 때, 우리는 태종 이방원이 아들들의 군호에 일률적으로 '녕'을 집어넣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단순히 아들들이 왕위를 놓고 서로 싸우지 않기만을 바란 게 아니라, 자신과 아들들이 한 울타리 속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희망한 것이다.

이방원이 첫 아들을 낳은 시점이 조선 건국 이후인 1394년이고 제1차 왕자의 난이 벌어진 이후에도 계속해서 아들을 낳았다는 점을 볼 때 이방원이 형제들과 대립하던 시기와 형제들과의 대립을 끝낸 이후에 그의 아들들이 태어났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왕실의 분란과 그 후유증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방원이 아들들의 군호에 '녕'자를 넣어준 것이다.

아버지와 형제 몰아낸 이방원, '너희들만은 그러지 않기를…'

이는 이방원 자신의 불행한 경험과도 관련있다. 그는 왕이 되기 위해 형제들만 살육한 게 아니라 아버지마저 몰아낸 사람이다. 그는 형제들과 한 울타리 속에서 평화롭게 살지 못했고 아버지와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방원은 아버지와 형제들과 누리지 못한 행복을, 자신과 아들들 사이에서만이라도 꼭 이루고 싶었던 것이다.

그 같은 이방원의 간절한 소망이 아들들의 군호를 통해 어느 정도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아버지로부터 "양녕아!" "효녕아!" "충녕아!"라고 불릴 때마다 그 아들들이 '녕'의 의미를 무의식적으로나마 되새기면서 형제간 우애, 가족간 우애의 중요성을 생각해볼 수 있기를 그는 간절히 희망했는지도 모른다.

이 말이 이방원이 딸들을 무시했을 것이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딸들은 유혈 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거의 없으므로, 아들들만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 그것이 곧 이방원 집안의 행복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방원이 아들들간의 우애를 강조한 것은, 딸들을 포함한 집안 전체를 위한 것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 같은 이방원의 간절한 소망이 드라마 <대왕세종>에서 잘 나타난다. 3월 29일에 방송된 제25회에서는 충녕대군 암살 미수범으로 몰린 세자(양녕대군)가 홧김에 충녕을 향해 총통을 겨누는 장면과 "너를 해한 무기가 네 형의 손에 있다"며 아버지 이방원이 아들 충녕대군을 애타는 심정으로 바라보는 장면이 묘사되었다.

"너를 해한 무기가 네 형의 손에 있다"는 이방원의 말은 '충녕아! 네 형을 용서해줄 수 있느냐?'는 간절한 바람이 담긴 말이었다고 볼 수 있다.

아버지를 몰아내고 또 형제들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태종 이방원. 안 그래도 거기에 한이 맺힌 상태에서, 큰아들마저 중심을 잡지 못해 아들들 간의 분란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태종 이방원. 비록 악독한 일은 많이 했지만, '아버지' 이방원에 대해 조금은 연민의 정을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태그:#대왕세종, #대왕 세종, #태종, #이방원, #대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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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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