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권은 지켜져야… 김형완 국가인권위원회 침해구제총괄팀 팀장은 투수 혹사 문제가 헌법 12조에 명시된 신체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기본권은 지켜져야… 김형완 국가인권위원회 침해구제총괄팀 팀장은 투수 혹사 문제가 헌법 12조에 명시된 신체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이호영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구속·압수·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하며,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 - 헌법 제12조 1항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3월 26일 '고교투수 혹사는 신체의 자유 침해'라는 보도자료를 냈다. 고교야구에서 나타나는 투수 혹사가 현행 헌법 12조에 명시된 신체의 자유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27일 오후 서울 중구 무교동 인권위 사무실에서 김형완 침해구제총괄팀 팀장을 만나 구체적인 내용을 들어봤다.

문제의식, 공감대 형성에서 출발

지난 2006년 6월 당시 민주노동당 소속 노회찬 의원(현 진보신당)은 인권위를 상대로 진정서를 제출했다. 노 의원은 진정서를 통해 "무리한 투구를 해야 하는 선수들이 인권침해를 당할 소지가 있다"고 전했다.

진정서를 받아든 인권위는 즉각 실태조사에 착수하고 권고안을 마련했다. 그리고 올해 대한야구협회장에게 정식으로 대책 마련을 권고했다.

김형완 팀장은 "투수 혹사 문제로 권고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며 "인권위의 권고 수용률이 약 97%에 달하는 점을 감안할 때 대한야구협회가 보다 신중하게 대책을 마련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사실 인권위의 권고가 미봉책이 되거나 일부분만 건드리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며 우려하면서도 "선수 보호를 위해 노력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무시할 수 없는 현실

오늘도 진행되는 고교야구 현재 목동구장은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가 한창 진행중이다. 이번 대회도 어떤 선수가 어깨나 팔꿈치에 부상을 입을지 모른다.

▲ 오늘도 진행되는 고교야구 현재 목동구장은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가 한창 진행중이다. 이번 대회도 어떤 선수가 어깨나 팔꿈치에 부상을 입을지 모른다. ⓒ 이호영


인권위가 기본권 침해를 지적했지만 현실은 조금 심각하다. 선수층이 얇은 중·고교야구에서는 우수한 투수 1, 2명이 대회를 책임지는 것이 현실이다. 성적은 단순히 경기 결과가 아니라 상급학교 진학을 결정하고 나아가 미래를 결정한다.

인권위도 이런 현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김형완 팀장은 한국 스포츠계의 고질적인 문제인 엘리트 체육의 영향이 큰 것으로 내다봤다.

"근본적인 이유를 찾자면 엘리트 체육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학교·선수·지도자까지 성적에 자유로운 경우는 없다. 이렇게 성적 지상주의가 만연하다 보니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혹사를 포함해 최근 문제가 되는 성폭력이나 폭력도 여기서 발생한다. 협회·당국·대학교·학부모 등 사회 전반에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번에 인권위 권고를 받은 대한야구협회는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상현 대한야구협회 사무국장은 27일 오후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현실적인 어려움을 털어놨다. 이 국장은 "선수 혹사 문제는 협회에서도 수년간 고민해왔다. 하지만 선수층이 얇고 성적에 따라 진학이 결정되는 게 현실이다"면서 "심지어 학교, 지도자들마저도 성적에 자유롭지 않은 점을 무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협회는 가급적 선수들이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후배들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지도자들의 선수 육성 자세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본다"며 "선수들도 이제 아프면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겠다. 인권위의 권고는 적극적으로 반영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한편, 대한야구협회는 28일 오전 이사회의에서 투수 혹사 방지를 안건 중 하나로 놓고 논의할 계획이다.

해결에 많은 시일 걸릴 듯

"공론화로 시작합니다." 김형완 팀장은 투수 혹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적절한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 "공론화로 시작합니다." 김형완 팀장은 투수 혹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적절한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 이호영

인권위와 대한야구협회 모두 투수 혹사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 인권위는 공공기관이 아닌 경우 직권조사를 할 수 없는 입장이다. 입시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대한야구협회의 대책 마련에도 한계가 있다.

김형완 팀장은 인권위가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육부)에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었지만 큰 소득이 없었다고 말했다.

"교육부에 문제 제기를 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운동선수들의 대학 진학은 교육부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대학들이 학생 선발에 있어 자율권을 보장받는 추세라는 점도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

구경백 대한야구협회 홍보이사도 일전에 입시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당시 구 이사는 "대학 진학을 위해서는 특정 대회에서 8강이나 4강 이상의 성적을 올려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협회에서 대회를 줄이는 등 노력을 하고 있으나 쉽지 않은 문제다"라고 말했다.

인권위는 대한야구협회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면 이닝, 투구수 제한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아울러 교육부와 각 대학들의 변화도 바라고 있다.

김형완 팀장은 "투수들의 많은 투구, 무리한 출장이 어깨나 팔꿈치에 무리를 주고 선수 생명을 단축하게 만드는 것은 이미 증명된 사실"이라며 "선수 혹사에 대해 기준을 잡기 어려운 점은 있지만 조사와 연구를 병행해 최대한 객관적인 기준을 만들어 적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투수 혹사 방지를 위한 첫 걸음은 미약하고 보잘 것 없으나 이번 일을 계기로 차츰 문제가 개선되길 기대한다"면서 "인권위는 이 부분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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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사 인권위 대한야구협회 노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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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동작구위원장. 전 스포츠2.0 프로야구 담당기자. 잡다한 것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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