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통합민주당은 대구경북에서 출마할 후보를 구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지역주의 극복을 일생의 정치적 과제로 삼았던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이 지역에 쏟은 눈물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지역에서는 통합민주당의 깃발을 들고 싸울 전사를 찾기 어렵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0년간 대구경북에서 지지기반을 만들기 위해 추진했던 이른바 ‘동진정책’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두 대통령이 추진한 ‘동진정책’에는 성과도 있었지만 중대한 오류가 있었다.

1. 기득권 세력과 제휴하려던 전략적 오류

첫 번째 오류는 이 지역 기득권 세력과 제휴를 통해 지지기반을 구축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 개혁적 지지 세력이 크게 실망하였다. 

두 대통령이 추진한 ‘동진정책’의 핵심은 지지기반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대구경북에 강력한 인센티브를 거는 것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돈’을, 노무현 대통령은 ‘자리’를 인센티브로 걸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수 천 억 원 규모의 ‘밀라노 프로젝트’를 이 지역에 던졌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띄웠다.

어떻게 해서든 지역주의를 넘어서려는 의도의 진정성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아주 나빴다.  김대중 대통령의 밀라노프로젝트와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은 지역주의의 벽에 구멍을 낸 것이 아니라 거꾸로 이 지역에서 지역주의와 대치하고 있는 개혁전선에 구멍을 내고 말았다.

밀라노프로젝트의 일차적 수혜자는 이 지역에서 오래 동안 한나라당의 강고한 지지기반을 이루고 있던 섬유업계였다. 기술고도화 보다는 국가의 특별지원으로 연명하는데 익숙해져 있던 이 지역 섬유업계는 밀라노프로젝트를 반겼지만 경제사회의 기득권을 혁신하고 새로운 산업기반을 만들고자 하는 개혁세력들은 크게 실망했다. 개혁세력들은 허탈했다.

대연정의 경우는 더 큰 절망이었다. 한나라당 세력에게 자리를 내어줄테니 대구경북 지역에서 적당히 섞여 잘 지낼 수 있는 틀을 만들자는 것이 대연정의 요체였다. 한나라당과 싸우는 최전방이라 할 대구경북의 개혁세력들은 망치로 뒤통수를 크게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에피소드로 끝나고 말았지만 이 일로 적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이 떠나버렸다.

김대중 대통령의 밀라노프로젝트,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으로 대표되는 동진정책의 공통점은 대통령이 돈과 자리를 인센티브로 이 지역 상층 기득권 세력과 제휴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이 지역의 개혁세력들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조금씩 지지를 철회하였다. 기득권 세력과의 제휴 전략은 이 지역에서 개혁적 지지기반을 약화시키는데 기여했다.

 2. 민원해결사적 방식의 한계

두 번째 오류는 민원해결사적 방식으로 지지기반을 확대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지역발전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그것을 위한 프로그램을 세워 체계적으로 과제를 추진한 것이 아니었다.

민원해결사적 방식이란 지역사회의 일반적, 공적 이해가 아니라 지역민들의 분절적이고 특수한 이해를 들어주는 대가로 지지를 호소하는 방식을 말한다. 특혜와 지지를 교환하는, 일종의 페트론-클라이언트 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말한다. 민원이라는 형식으로 제기되는 특수이해란 이를테면 행정규제를 완화해 달라거나 지역 출신 고급공무원의 후견인 노릇을 해 달라는 것을 비롯해서 크고 작은 특별예산을 확보하는 일, 공적 결정에 특별한 대접을 받게 해 달라는 청원 등 다양했다.

다 들어줄 수도 없는 일이었지만 들어줄 수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이런 일들은 한계가 분명했다. 민원해결사적 방식으로 특혜와 지지를 교환하는 관계에는 우선 여기에 참여하는 수혜자의 숫자나 범위가 제한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페트론-클라인먼트 관계는 이 수혜 네트워크에 들어오지 못하는 다수의 비 수혜 집단으로부터 힐난을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여기에 참여하지 못하는 쪽은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것은 정치적 공감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지의 충성도가 약하고 한시적이다. 특수이해 실현과 지지의 교환관계가 성립하는 동안에만 유효한 지지기반이다.

민원해결사적 방식이 아니라 지역에 살고 있는 다수의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대구경북지역의 발전 비전을 제시하는 방식이었더라면 보다 지속적이고 폭넓은 지지기반을 형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3. 발전주의 아젠다를 맹목적으로 추구한 문제

세 번째 오류는 나름대로의 지역발전에 대한 비전을 분명히 제시하지 못하는 가운데 지역성장연합이 제시하는 ‘발전주의’ 아젠다를 아무 생각 없이 뒤따랐다는 것이다. 지역토호, 언론, 관료들로 이루어진 지역성장연합이 원하는 바에 부응함으로써 이 지역에서 지지기반을 확대하려고 했다.

이를테면 대규모 토목건설 프로젝트가 중심이 된 발전계획에 따라 이에 필요한 예산을 마련해 주는 것과 같은 일을 부지기수로 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일 역시 지지기반 확대에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런 일로 이득을 보는 이는 지역성장연합인데 이들은 한나라당의 확실한 지지기반이었다. 일반 시민들은 혜택을 보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 일을 누가 했는지도 몰랐다. 땀 흘려 지역을 위해 일 해도 빛이 나지 않았다. 어떤 토목공사에 필요한 예산을 얻어주고도 그 공사의 기공식에 초청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발전주의 아젠다를 버리고 서민과 중산층의 생활에 직접적 이익을 가져다주는 생활정치 아젠다를 추구했더라면 지지기반이 지금처럼 허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서민과 중산층의 교육, 주거, 일자리, 복지, 노후, 보건의료 등과 같은 절실한 생활상의 과제를 찾는 것이 더 중요하고 그것이 지지기반 확대에 실효성이 있었을 것이다. 생활정치 아젠다, 민생정치 아젠다를 중시해야 했다.

4. '정당'을 육성하지 않은 잘못

네 번째 오류는 동진정책이 ‘정당’이라는 정치적 기제를 중심으로 추진되지 않았던 것이었다.

지난 10년간의 동진정책은 대통령과 청와대가 중심이 되어 힘으로 밀어붙이는 모습이었다. ‘힘’으로 미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공감’을 바탕으로 지역 내부에서 정당의 역량이 조직적으로 성장하도록 했어야 했다.

정당이라는 정치적 기제의 조직적 역량을 강화하고 정당의 리더를 조직적으로 길러 놓았다면 지금과 같은 어려움을 겪지 않아도 될 것이다. 2004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대구 12곳, 경북 15곳에서 출마한 후보들이 지금까지 정당 활동에 조직적으로 참가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고 이번 선거에 다시 도전하려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명망성만을 활용한 결과이다.

정체성도 맞지 않고 조직적 문제의식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을 명망가라고 해서 땜질용으로 활용하고만 결과의 하나이다. 이렇게 되면 당 조직의 발전은 어느 세월에 이루어질 것인가? 그것이 문제다. 명망가 활용 전략을 버리고 젊은 차세대 리더를 조직적으로 길러 당의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5. 무엇을 할 것인가?

이제 야당이 된 통합민주당이 대구경북에서 지지기반을 공고히 할 제대로 된 동진정책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그간의 오류를 반성하면서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대구경북에 통합민주당의 미래를 만들 수 있다.

첫째, 지역 기득권 세력과의 제휴로부터 지역 기득권 세력을 재편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둘째, 특수이해를 추구하는 민원해결사적 방법으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비전 제시 방법으로 변화해야 한다. 셋째, 지역성장연합을 위한 발전주의 아젠다로부터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생활정치 아젠다를 추구해야 한다. 넷째, 당이라는 조직을 항상 중심에 놓고, 이제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 입증된 명망가 활용 전략을 버리고 미래를 준비하는 차세대 리더 육성 전략으로 나아가야 한다. 당과 함께 할 조직적 문제의식을 가진 젊은 지도자를 발굴하여 대구경북의 미래를 맡겨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김태일 기자는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입니다. 이 글은 자신이 쓴 <74학번 정치학교수의 정치실험> 213-217쪽 내용을 일부 재구성한 것입니다.



태그:#동진정책, #통합민주당, #대구경북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