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포스터

▲ 포스터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포스터 ⓒ CJ엔터테인먼트

영화 제목때문이었을까? 아니, 25일 발표된 아카데미상 4개 부문 수상 소식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평일 낮 시간, 극장 안에는 다른 때와 달리 어르신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모자 밑으로 나온 하얀 머리카락은 내 아버지의 뒷모습 같았고, 부부가 나란히 앉은 모습은 역시 보기 좋았다. 그러나 영화가 시작하기도 전에 내 가슴은 걱정스러움으로 약간 두근거렸다.

온갖 종류의 영화를 늘 챙겨 보시거나 총 쏘고 사람 죽이는 영화를 특별히 좋아하는 취향을 가진 어르신이라면 모를까, "제목에 '노인'이란 말도 들어가 있고 그 유명한 아카데미상도 탔다고 하니, 오랜만에 영화나 한 편 볼까?" 하고 걸음을 하신 분들에게는 불편할 것 같아서였다.

괜한 걱정이었던 모양이다. 영화를 보면서 혀를 차시거나 자리에서 일어나 극장을 나가는 분은 한 분도 안 계셨다. 뻑하면 총을 쏘고, 사람이 죽고, 피가 흐르는 것을 보며 속이 메슥거려 고생한 것은 나 하나였던가 보다.

영화 속에서 노년은 자기 목소리를 가지고 있고, 세월에서 얻은 무게감으로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기도 하고 그러면서 동시에 뒤를 돌아보며 자기 있어야 할 곳에 대한 깊은 고민도 보여준다.

그래도 나는 복지관 어르신들이 '노인 영화'라고 생각해 단체 관람이라도 하겠다고 나서시면 일단은 말릴 생각이다. 작은 일에도 가슴 덜컥 내려앉고, 조금만 심각한 생각을 하면 밤에 잠을 못 잔다는 어르신들에게는 그 총과 피와 시신들이 좀 힘들 것 같아서이다.

사막에서 사냥을 하던 '모스'는 총싸움이 벌어져 많은 사람이 죽어 있는 현장을 우연히 발견하고, 그 자리에서 거액이 든 돈가방을 손에 넣는다. 그 후로 모스는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누군가에게 쫓기게 되고, 또 그 뒤를 보안관 '벨'이 뒤쫓는다.

'모스'를 쫓는 살인청부업자는 한 마디로 사이코패스, 마음이 없는 살인자다. 그러니 가져간 돈을 찾기 위해서뿐만이 아니라, 아무 상관 없는 선량한 사람들에게도 마구 총을 쏘아댄다. 추적을 피하기 위해 차를 바꿔 타려면 누군가의 차를 억지로 빼앗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차 주인을 협박하는 게 아니라 아무 거리낌없이 총을 쏴 그 자리에서 그냥 죽인다.

나이 든 보안관 '벨'은 도망자와 살인청부업자 둘을 뒤쫓으며 그들의 앞날을 빤히 내다보는 듯, 서두르는 법도 없고 당황하는 법도 없다. 그들의 앞날 아닌 맨 마지막에 맞닥뜨릴 진짜 끝을 아는 까닭일 것이다.

다른 나이든 보안관은 '벨'에게 마약과 돈과 총의 세상,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젊은 아이들의 요즘 풍조를 개탄한다. 눈이 핑핑 돌게 변하는 젊은이들의 세상은 그 어디서나 나이 든 사람들이 끌끌 혀를 차게 하고 걱정하게 만드는가 싶다.

사실 노인을 위한 나라가 그 어디에 있겠는가. 별세계가 아닌 이상 세상은 너도 나도 다같이 섞여 사는 곳. 영화 속에서도 알 수 있다. 노인도 젊은이도, 도망자도 살인자도 보안관도, 다 같은 하늘 아래서 살고 있지 않은가.

비록 넘치는 죽음과 끝없이 쏟아지는 피로 인해 속은 엄청 부글거렸지만, 한 장면 정도만 나오는 사람들까지 모두 합쳐 영화 속 노년들이 세상을 살아온 경험과 지혜를 잠깐씩이라도 보여주어 다행이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따로 없지만 그들에게서 우리가 그걸 배우려 한다면 거기가 바로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닐지. 그건 바로 여유롭게 보이기까지 하는 정확한 현실 인식, 끝을 알고 있음, 멀리 바라봄 같은 미덕이다.

덧붙이는 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No Country for Old Men, 미국 2007>(감독 조엘 코엔, 에단 코엔 / 출연 토미 리 존스, 하비에르 바르뎀, 조쉬 브롤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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