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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비아 나미브사막의 소수스플라이 모래언덕을 오르며 나와의 대화시간
 나미비아 나미브사막의 소수스플라이 모래언덕을 오르며 나와의 대화시간
ⓒ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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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평온을 가져다준 아프리카 배낭여행

아프리카 여행을 다녀와서 나는 몸무게를 잃었다. 동네 목욕탕에 가서 몸무게를 재보니, 여행 가기 전의 내 몸에서 정확히 10kg이 빠져 있었다. 마치 기름기가 쏙 빠진 훈제된 오리고기처럼 내 몸은 날씬해져 있었다. 내 마음도 가벼워졌다. 살아오면서 그렇게 마음이 편한 적이 없었다. 아프리카 배낭여행이 나에게 평온을 가져다 준 것이다.

물질적 풍요는 결코 인간을 위로해주지 못한다. 우리가 지금 편리한 아파트에 살지만, 고독과 소외가 더욱 커져가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문명은 인간에게 편리함을 가져다주었지만, 인간에게 평온을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인간을 다독여주고, 따뜻하게 안아줄 자연을 잃어가기 때문이다. 자연과의 깊은 교감이 이뤄지지 않으면, 인간의 미래는 공허함만 남을 뿐이다.

아프리카는 구속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다. 자연으로부터의 침묵을 배우러 가는 곳이다. 아프리카는 자유이고 해방이고, 평화이기 때문이다. 어릴 적 나의 꿈이 아프리카로 배낭을 메고 달려가게 만들었지만, 여행을 가기 전과 갔다 온 뒤의 나는 무엇이 변했을까. 가장 큰 변화는 마음이 편안해졌다는 것이다. 살아오면서 나를 짓눌렀던 무엇인가로부터의 벗어남과 함께 뭉클한 해방감을 느꼈다. 그 해방의 대상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던 그 어떤 마음의 종양이 빠져 나간 것만은 분명하다. 종교적 수행에서 말하는 득도인가. 여행은 나에게 있어 사색이자 종교이다.

여행을 마치고 마다가스카르에서 귀국하면서 짐으로 부친 배낭 속에 들어 있던 김광석 노래 시디(CD)와 케냐 나이로비에서 샀던 시디플레이어가 사라졌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배낭이 열려 있어 들여다보니 없어졌다. 마다가스카르 공항의 짐 수속하는 누군가가 배낭을 열고 가져간 것이다. 그러나 이미 김광석 노래와 시디플레이어는 아프리카 여행 중 나의 고독감과 외로움을 달래주는 친구로서 자신의 임무를 모두 마친 뒤였다. 이상하게 물건을 잃어버리고도 그렇게 아깝지가 않았다. 그 역할을 수행한 물건의 도난이어서 일까, 아니면 내 마음의 평온 때문일까.

마운틴고릴라가 있는 비룽가 산악지대의 콩고민주공화국의 천진난만한 어린이들
 마운틴고릴라가 있는 비룽가 산악지대의 콩고민주공화국의 천진난만한 어린이들
ⓒ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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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인생을 되돌아보게 하는 거울

76일간의 아프리카 배낭여행은 지금도 나의 삶 속에 커다란 힘으로 남아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배낭 하나만을 달랑 메고 떠난, 말 그대로의 홀로 떠난 자유배낭여행이었다. 내전과 빈곤의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보면서 많은 감명을 받았다. 인생의 진로를 걱정하는 아프리카 젊은이들을 통해 우리 젊은이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을 보기도 하고, 킬리만자로 정상의 녹아버린 눈을 통해 지구온난화의 세계화 현장을 목격하기도 했다.

동부아프리카에서부터 남부 아프리카까지 종단하고, 마지막에 마다가스카르까지 여행하는 긴 여정이었다. 에티오피아에서 시작해 케냐와 우간다, 콩고민주공화국, 르완다, 탄자니아, 말라위, 모잠비크, 짐바브웨, 잠비아, 보츠와나, 남아공, 나미비아에 이어 마다가스카르를 포함해 모두 14개국을 다녔다. 오토바이와 고물 트럭, '닭장차'라 불리는 현지 버스, 기차를 타거나 걸어서 이동하는 멀고도 힘든 여행이었다.

길게는 30시간 이상 버스나 기차를 타야했으며, 보통 하루에 12시간 정도 버스를 타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서울과 부산이 버스로 4시간 반 정도인 것을 비교하면, 아프리카에서는 하루에 서울과 부산을 몇 번씩 왔다 갔다 해야 한다. 비포장도로에다 울퉁불퉁 패인 길과 먼지가 날리는 길을 2박3일 동안 꼬박 달리기도 했다. 혼자 다니다 보니 육체적으로 힘들고, 정신적으로 고독감이 몰려온 적도 있었지만, 마음은 늘 행복했다.

아프리카의 아름다운 자연과 사람들의 순박한 마음, 그리고 문자 없는 아프리카의 역사가 나를 늘 반겼다. 에티오피아와 탄자니아의 잔지바르는 중동과 아프리카의 결합이었고, 남아공은 백인과 흑인의 공존이었으며, 마다가스카르는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만남이었다. 이처럼 같은 아프리카 국가이면서도 14개국이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프리카의 다양성이다.

여행하는 내내 현지에서 만난 아프리카인들과 세계의 배낭여행객들, 그리고 한국인 여행객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일하는 시간에도 불구하고 플라밍고 떼가 있는 웰비스만까지 나를 차로 태워다주었던 나미비아의 할아버지와, 콩고의 비룽가 국립공원까지 마운틴고릴라를 같이 보러갔던 뉴질랜드 젊은이, 케냐에서 김광석의 노래 모음 시디를 복사해준 한국의 젊은 의사 배낭여행객, 여행책자 등을 빌려준 인터넷 여행카페 동호회원 등이 나의 이번 여행을 가능케 했다. 여행을 떠날 때는 나 혼자이지만, 여행을 가능케 하는 것은 바로 이런 현지인과 다른 여행객들의 도움이다.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참으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왔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동안 도움을 받은 사람들을 헤아려 보니, 아프리카 밤하늘의 별만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얼굴이 떠올랐다. 나의 삶은 마음속에 늘 빚을 지고 사는 '빚진 인생'이었다. 남은 인생동안 도저히 다 갚지 못할 만큼 사람들로부터 너무 많은 것을 받아왔다. 먼 여행을 다녀오면, 우리가 살아오면서 가까운 이웃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고 사는 가를 깨닫게 된다. 여행은 이웃을 더 가깝게 만든다. 여행은 살아오면서 내가 보지 못했거나, 애써 보지 않으려고 했던 빚진 부분을 비춰주는 인생의 거울이다.

탄자니아 킬리만자로 정상인 우후루에서 찍은 만년설을 배경으로 한 해돋이
 탄자니아 킬리만자로 정상인 우후루에서 찍은 만년설을 배경으로 한 해돋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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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배낭여행의 추억이 나를 밀어간다

무엇보다도 여행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나 자신과의 대화를 많이 가졌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차창 밖의 초원을 보면서도 이야기를 나눴고, 아프리카 밤하늘의 하얀 은하수를 올려 보면서도 대화를 나눴다. 그때마다 기분이 좋아졌다. 늘 앞만 보며 바쁘게 살아오면서 자신과의 대화시간이 많이 부족했던 것이다. 인생에서 가끔은 뒤를 돌아보는 시간과 여유도 필요하다는 것을 여행을 통해 알게 된다. 이번 여행은 '나를 행복하게 한 나와의 대화시간'이었다.

대학 4학년 여름방학 때 텐트를 짊어지고 훌쩍 떠난 여행 이후 오랜 시간이 흘러 또다시 '홀로 여행병'이 도졌다. 대학 때는 지리산과 해인사, 덕유산, 동학사 등 우리나라의 서부 쪽을 종단하는 텐트여행이었다면, 이번은 아프리카 동부와 남부를 종단하는 배낭여행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은 여행에서 돌아올 때 늘 마음의 행복을 안고 온다는 것이다.

행복은 마음을 비우는 데서 시작한다. 마음을 비우니, 여행의 길도 보이고 인생의 길도 보인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길이라도 옳은 길이라면 꼭 가야 하는 것이 여행이고, 인생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넓은 길이거나 잘 뚫린 아스팔트 포장도로라 하더라도, 옳지 않은 길이라면 결코 가서는 안 되는 것이 역시 여행이고, 삶이다. 이처럼 마음을 비우고 나니, 행복감이 밀려들고 가야할 길이 보였다. 이번 여행에서는 바로 마음의 행복과 함께 ‘인생의 길’을 덤으로 얻었다.

나는 언젠가 다시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꿈을 꾸고 있다. 그 때는 중고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고 체 게바라와 김광석과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아프리카 초원의 길을 달리고 싶다. 나의 어릴 적 꿈이 이번 배낭여행으로 이뤄졌듯이, 나의 오토바이 아프리카 여행 꿈도 반드시 이뤄지리라 믿는다.

젊은이에게는 청춘의 진로를 묻기 위해, 중년에게는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노년에게는 행복한 삶을 정리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자. 여행은 자신이 살아온 삶을 온전히 안고 떠나고 그 삶으로 보고, 또 그 삶으로 느낀다. 여행에는 결코 우리를 짓누르는 속박과 구속, 사회적 편견과 차별, 정리해고나 비정규직, 정년이 없다. 인생에서 적절한 방랑은 삶을 더욱 윤택하게 한다. ‘바람도 쉬어가는’ 추풍령 고개에서 꾸었던 어릴 적 꿈이 나를 아프리카로 이끌었듯이, 아프리카 배낭여행의 추억이 오늘도 나를 밀어간다.

마다가스카르 모론다바 바오밥 거리의 해넘이
 마다가스카르 모론다바 바오밥 거리의 해넘이
ⓒ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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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지난 1년여간 아프리카 배낭여행 연재기에 관심을 보여준 누리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태그:#아프리카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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