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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라이어티에서 살아남으려면 고정출연자만의 캐릭터를 키워라. 최근 TV 예능프로그램에서 다수의 고정출연자들을 앞세운 ‘리얼 버라이어티’ 장르가 강세를 보이면서 출연자간의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MBC <무한도전>, KBS <해피선데이>의 ‘1박2일’과 ‘하이파이브’, SBS <라인업> 등은 모두 게스트보다는 몇몇 고정출연자들에 의하여 이끌어나가는 프로그램들이다.

 

몇 년전만 하더라도 <서세원의 토크박스>나 <강호동의 천생연분> <유재석의 동거동락> <엑스맨을 찾아라>처럼 MC와 한두 명의 고정 패널이 진행을 맡고 다수의 출연자들이 매번 교대로 출연하여 노래와 게임, 입담 등을 겨루는 운동회 스타일의 프로그램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개봉영화나 새 음반을 홍보하려는 영화배우-가수들의 홍보무대로서 자주 이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의 리얼 버라이어티는 하나의 일정한 콘셉트과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는 다큐 형식의 리얼리즘을 표방한다.  단발성 이벤트로 끝나는 게스트 프로그램들과 달리, 고정출연자들이 이끌어가는 프로그램은 매주 같은 멤버가 출연하여 회를 거듭할수록 축적되는 출연자간의 스토리와 이해관계, 연속성으로 이어지는 일종의 ‘드라마타이즈’ 구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출연자들의 캐릭터다. 매주 고정출연자들이 일정한 콘셉트과 각자의 역할에 맞추어 미션과 상황극을 소화하다보니 자연히 반복적으로 하나의 캐릭터가 성립될수밖에 없다. 리얼 버라이어티를 표방한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상상플러스> <황금어장-무릎팍도사> <놀러와> <기적의 승부사> <미녀들의 수다> 등 토크쇼에서 퀴즈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모든 예능 프로그램은 사실상 고정출연자의 ‘캐릭터’로 이끌어가는 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한도전>이나 <1박2일>은 이러한 캐릭터쇼의 전형을 여실히 보여줬다. 이 프로그램이 배출해낸 ‘돌+아이’(노홍철), ‘식신’(정준하), 은초딩(은지원), 허당(이승기) 같은 캐릭터들은 출연자 개인을 넘어 프로그램을 상징하는 고유의 캐릭터로 소비된다.  이들은 각자에게 부여받는 캐릭터를 통해 해당 프로그램에서 각자의 이미지와 자연스러운 모습을 부각시키며 친근감을 높였다.

 

이들은 단발성으로 사라지는 예능 프로그램의 게스트와 달리, <무한도전>이나 <1박2일>이라는 코너명을 통해. ‘하나의 팀’으로서 어필하며 이제는 아이돌 가수와도 같이 예능계의 ‘프로젝트 그룹’으로 자리잡았다.

 

또한 잘 구축된 캐릭터들은 이제 특정 프로그램이 아니라 각 방송사와 다양한 코너들을 넘나들며 끊임없이 소비된다. 유재석과 박명수의 콤비는 <무한도전>이 아닌, <해피투게더>에서 비슷한 캐릭터로 소비된다. <1박2일>의 은지원이나 <무한도전>의 노홍철은, <놀러와>에서 변함없이 은초딩, 돌아이라는 닉네임으로 불리운다.

 

지난 2007 MBC 연예대상시상식에서 예상을 깨고 <무한도전> 멤버 전원이 대상을 수상했던 것은 오늘날 예능 프로그램이 과거처럼 스타 개인보다는 고정출연자의 캐릭터 파워에 의하여 주도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당시에 애매한 수상기준과 공동 수상 남발의 공정성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방송사상 전무후무하게 특정 프로그램 출연자 전체에게 상을 부여한 것은, 리얼 버라이어티가 한 개인이 아닌 ‘팀의 조화’에서 이루어지는 산물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반면 캐릭터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프로그램들은 오래가지 못한다. 리얼 버라이어티와 토크쇼를 막론하고 고정출연자의 자리가 제한되다보니 자신만의 캐릭터로 어필하지 못한 인물들은 퇴출당할 수밖에 없다. <무한도전>이 ‘무모한 도전’과 ‘무리한 도전’ 시절을 거치며 김성수, 이켠, 표영호, 이윤석, 윤정수, 조혜련 등 수많은 출연자들이 과도기를 거쳐갔던 것이나, <라인업> 초창기에 솔비, 이동엽 등이 잦은 멤버교체가 있었던 것이 좋은 예다.

 

한편으로 인기를 끌었던 캐릭터들이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반복없이 비슷한 이미지로 소비되다보니 예능 프로그램들의 획일화 현상을 가져오는 것도 우려할만한 부분이다. 예능프로그램의 ‘캐릭터화’는 고정이냐, 아니냐에 따라 예능 프로그램의 인재풀에 대하여  또다른 변화도 가져왔다.

 

과거 같았으면 새앨범을 출시하는 가수나 영화개봉을 앞둔 배우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익숙하지 않더라도 홍보나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 단발성 출연이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통로가 상당히 축소되었다. 고정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잡아서 확실한 캐릭터로 어필하지 않는 한은, 살벌한 버라이어티의 생존 경쟁에서 비집고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또한 방송가에 리얼 버라이어티가 상종가를 기록하면서 비슷한 포맷을 표방한 유사 장르와 캐릭터의 범람도 우려할만한 부분이다. <무한도전>이 인기를 끌자 그와 비슷한 아류 형태의 작품들이 우후죽순처럼 넘쳐나고, 각 프로그램의 캐릭터나 상황극 구도에서 기존 프로그램의 아류 혹은 모방에 가까운 설정들도 빈번하게 넘쳐난다. 

 

인기있는 출연자들이 방송사를 넘나들며 매주 4~5개 이상의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심지어는 비슷한 시간대에 코너만 다른 두 개의 프로그램을 넘나들며 똑같은 캐릭터를 소화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드문 일이 아니다.

 

이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한정된 예능 시장에서 스타 출연자나 기획사,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한 인맥-라인의 중요성이 부각되게 되고, 소수의 스타 출연자들이 예능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는 현상이 일어나게 되기도 한다.  당장의 흥행과 인기몰이에만 안주하여 변화의 가능성을 포기한 예능가의 독과점과 획일화는 언제든 대중으로부터 식상함으로 외면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말아야할 것이다. 


태그:#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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