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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6일, 우루무치(乌鲁木齐) 공항으로 가는 길에 중국 친구에게 단문메시지를 보냈다. 4월 칭다오(青岛)에서 만난 씨안(西安)이 고향인 짜오저(赵哲)를 7월 10일경 만나기로 했던 것이다.

 

조금 일찍이긴 해도 설마 모른 척하지는 않겠지. 곧 답신이 왔다. 아니 벌써 오는 거냐. 일자를 맞추느라 일정을 당겨 출장으로 우한(武汉)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그의 여자친구도 메시지가 왔다. 자기는 하얼빈(哈尔滨)에 있는데, 남자친구가 너무 안타까워한다는 것. 나와의 약속을 잊지 않고 기다려줬는데 미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 따지고 보면 일정을 맞추기가 쉽지 않은 여행길이 아닌가.

 

씨안 씨엔양(咸阳) 공항에 도착했다. 빠른 기차인 터콰이(特快)로도 30시간이 걸리는 길을 비행기를 타니 3시간 만에 확 날라왔다. 2006년에 처음 씨안에 왔을 때 정말 황홀했던 씨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처럼 지창따바(机场大巴), 공항버스를 탔다. 시내로 들어서자 정말 예전 그대로, 옛 중원의 수도답게 고풍스러운 도시미관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당시 묵었던 씨샤오먼(西梢门) 근처 민박집으로 다시 갔다. 1년 만에 다시 갔는데 아파트 단지 내에서 이사했다. 주인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아준다. 6개월 일정으로 여행 중이라니 놀라워한다. 짐을 풀고 다시 시내 야경 구경을 나섰다.

 

 

쭝러우(钟楼)와 구러우(鼓楼)가 나란히 있는 시내 광장에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간다. 아이들이 야광팽이를 돌리며 놀고 있고 한쪽에서는 한밤중인데도 하늘을 향해 연을 날리고 있다.

 

주변 건물들은 모두 화려한 조명을 밝히고 있다. 시내 중심거리를 모두 휘황찬란한 불야성으로 꾸민 것은 씨안이 중국 서부대개발의 거점도시로 육성하면서 번창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흥 도시로 부상하고 있는 모습은 시내에 수많은 세계적 명품 브랜드들이 다 이곳에 진출해 있는 것을 보면 느낄 수 있다. 중국의 발전 속도는 무서울 정도다. 명품을 구매할 정도로 소비 수준이 높아진 것은 그만큼 돈을 많이 벌고 있다는 것이다.

 

구러우(鼓樓) 북쪽으로 베이위엔먼(北院门) 거리에는 이슬람문화의 영향을 받은 사찰인 청진사(淸眞寺)가 있고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회족(回族) 시장골목이 있다.

 

이곳은 관광객들로 북적대는 곳으로 패키지로 여행을 오는 한국 관광객들이 한 번쯤을 왔을 먹자 골목이다.

 

온갖 공예품이나 생활용품들을 팔기도 하고 산씨(陕西)성 특산품들을 팔기도 한다. 마라탕(麻辣烫)이나 쟈오즈(饺子)는 물론이고 양뤄촬(羊肉串) 등 먹음직스러운 것들이 많다. 머리에 흰 모자를 쓴 회족들이 서툰 영어로 서양 사람들과 어울려 장사하는 모습들이 인상적이다.

 

두루 오랜만에 씨안 골목을 돌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같은 방을 쓰게 된 한국 학생도 돌아와 있다. 라싸로 가려고 이곳 민박집에 묵고 있는데 기차표를 아직 예매하지 못해 걱정하더니 이내 잠이 든다. 배탈이 나서 이틀 동안 꽤 고생을 한 모양인지 핼쑥해 보인다.

 

인사동 거리보다 훨씬 한가롭고 조용한 곳

 

7월 7일 아침 눈을 떴다. 간밤에 늦게 돌아온 주인아저씨랑 반갑게 해후했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조선족 동포다. 예전에 왔을 때 밤마다 둘이서 맥주잔을 기울이며 친해졌는데 다시 찾았으니 서로 얼마나 반가웠으랴.

 

아침을 먹을 때서야 한국 학생의 정체를 파악했다. 현수는 배를 타고 톈진(天津)으로 들어와 베이징(北京)과 상하이(上海)를 거쳐 라싸로 가는 길이다. 게다가 네팔, 인도를 거쳐 6개월 이상 여행할 계획이라니 혼자서 참 대단하다. 그래서, 오늘 일정을 물으니 특별한 것이 없다고 하고 배탈도 좀 나은 듯하니 같이 돌아다니기로 했다. 우선, 캠코더 수리점으로 갔다. 우루무치 보다 더 수준이 떨어지는 느낌. 그래서 예약했다가 이미 베이징 가는 티켓을 구한지라 그냥 나왔다.

 

서안 시내 중심에서 동쪽으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슈위엔먼(书院门) 거리에 갔다. 비석들의 박물관인 베이린(碑林)과 잇닿아 있는 풍물거리로 말 그대로 '문물천지'다. 이모저모, 구석구석 살피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길 좌우로 건물마다 상가가 있고, 길 한가운데는 노점상들이 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마치 서울 종로의 인사동 거리를 걷는 기분이 들어 한결 마음이 들뜬다.

 

인사동에 비해서는 훨씬 한가롭고 조용하다. 여느 중국의 풍물거리라면 흥정소리에 시끄럽기 일쑤나 이곳은 아주 차분하다. 호객 행위도 별로 없고 관광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한가로이 구경하도록 해주니 마음이 편하다.

 

길거리에서 붓글씨를 쓰거나 불화(佛画)를 그려 팔기도 한다. 피잉(皮影) 등 갖가지 종류의 공예품과 민속품들도 값싸게 살 수 있다.

 

고풍스러운 거리를 배경으로 귀엽게 생긴 모델의 사진을 촬영 중이다. 바닥에 누워 카메라 초점을 맞추고 있고 옆에서는 조명 반사판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가까이 가서 사진을 찍으니 자연스럽게 웃는다. 그것은 아마도 외국인 여행객이 자신들에게 보여주는 관심에 대한 미소였을 것이다.

 

나름대로 예쁘게 얼굴 화장도 한 것을 보니 전문모델일 수도 있고 아니면 대학생인데 실습사진을 찍는 것일 수도 있겠다. 워낙 진지하게 촬영 중이라 말을 붙이진 못했다.

 

 
씨안은 진나라 이래 당나라에 이르는 12개 왕조의 수도로 무려 1100년을 지속해 온 도시다. 장안(长安)으로 유명한데 명나라 홍무(洪武) 2년인 서기 1369년에 서안부(西安府)를 설치한 이래 이름이 변경됐다.
 
가장 번성했다는 고대 도읍 당나라 때는 분명히 이렇게 화려하게 꾸미지 못했을 것이다. 밤이면 홍등과 어울린 조명이 환상적이고 낮에는 풍물거리를 돌아보는 재미가 있는 곳이다.
 
아주 강력한 도시정화 작업 중인 씨안 슈위엔먼
 
 
시 정부가 아주 강력한 도시정화 작업 중이라고 한다. 환다오(环岛) 가운데 있는 중러우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큰 길이 뚫려 있고 각각 동서남북 따제(大街)로 도로 이름이 붙여졌다. 각 따제의 끝을 따라 방형(方形)으로 성곽이 있다. 성곽 안은 번화가로 조성된 것이다.
 
적어도 시 중심은 환상적인 도시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택시 운전사에게 정말 도시가 깨끗하고 아름답다고 하니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조금만 골목으로 들어가면 상황은 아주 다르다고 한다.

 

슈위엔먼에서 난따제(南大街)를 따라 북쪽으로 걸었다. 점심시간이다. 현수에게 맛있는 음식을 사주고 싶었다. 물론 혼자 다니면 먹기 힘든 그런 요리를 말이다. 슬쩍 물었더니 하는 말이 참 돌발적이다. 여행 중 원칙이 "돈을 빌리지 않는다, 남에게 얻어 먹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기특하다 싶다.

 

결국 나눠내야 하는 것이라면 비싼 음식을 먹기 어렵다. 하루에 정해진 비용으로 어렵게 여행하는 친구라 부담을 주기 싫었다. 가까운 만두가게에 가서 쟈오즈(饺子) 두 판을 시켜서 점심을 해결했다.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한 잔씩 하며 오후 내내 시간을 보냈다. 아르바이트해서 여행경비를 마련하고 삶의 변환을 모색하러 여행을 다닌다는 야무진 친구다. 생각도 참 건전하고 사회에 대한 비판적 의식과 정직한 삶의 태도가 느껴져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내가 여행하는 목적도 설명해주고 인생 선배로서 참 많은 이야기를 했다. 현수는 나중에 라싸에서 길거리에서 우연히 다시 만났다. 그리고 티베트의 ‘싸미에의 7인’이라는 작은 모임도 만들게 된 계기가 됐다.

 

현수와 버스를 타고 따엔타(大雁塔)로 갔다. 시내 성곽인 구청(古城) 남쪽 츠언쓰(慈恩寺)에 우뚝 솟아 있는 탑으로 삼장법사(三藏法师)로 알려진 현장(玄奘)이 천축에서 가져온 불경과 불상사리를 보관하기 위해 건립된 것이다.

 

이곳에는 아주 거대한 분수 쇼가 밤마다 벌어지는데 이것을 보러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오후 6시 즈음 따엔타에 도착하니 바닥에 물기가 잔뜩 있다. 낮에도 분수 쇼가 있는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광장이다. 분수 쇼가 시작되기 전에 사원을 한 바퀴 돌기로 했다.

 

마침 쉰(埙)이라 부르는 악기를 파는 가게가 있다. 현수에게 악기에 대해 설명해주니 재미있어 한다. 쉰은 찰흙으로 도자기처럼 구워 만든 일종의 취주(吹奏) 악기로 타오쉰(陶埙)이라 부르기도 한다.

 

중국에만 있는 독특한 악기로 고대 중국에서 농경생활이 시작되던 때부터 알려졌다 하니 꽤나 오래된 악기이다.

 

동그랗게 생긴 도자기 속에 구멍이 다섯 개나 여섯 개가 있어 그걸 불면 청아한 소리가 난다. 음계도 있고 악보도 있어서 지금도 공예품 파는 곳에 가면 많이 볼 수 있다. 아이들에게 선물로 사주면 좋을 듯하다.

 

삼장법사의 석상이 있는 남쪽 광장에 많은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이 날아다니는 것을 보니 이곳에도 장사꾼들이 많은 것이다.

 

따엔타를 중심으로 빙 둘러 있는 거리에는 당나라 시대의 풍물을 보여주는 10여 개의 동상들이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다. 거리에 그냥 노출되어서인지 동상의 손이나 머리 등이 반질반질할 정도로 반짝거린다.

 

당나라 시대 걸출한 무용가이던 공손대랑(公孙大娘)이 멋진 모양으로 칼춤을 추는 모습도 있고, 민간오락인 피잉(皮影)을 연기하는 악사, 부채를 들고 앉은 제갈량(诸葛亮)도 있다. 또한, 의술로 세상을 구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현호제세(悬壶济世), 몸싸움을 하는 각력쟁웅(角力争雄), 거리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가두호락(街头胡乐) 등 재미있는 한자어로 제목을 붙인 조각 소조상들이다.

 

 

광장에는 또 재미있는 구경거리인 물로 붓글씨를 쓰는 사람들이 있다. 어른들 틈에서 한 꼬마가 예쁘게 ‘家’를 쓰고 있다. 수서(水书)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런 서예는 중국 공원마다 흔히 볼 수 있다. 어린 아이의 붓 놀림이 꽤 정갈하다. 보통 솜씨는 아니다.
 
엄청난 양의 물이 하늘로 치솟는 분수 쇼
 

저녁 8시가 넘었다. 어둠도 내리고 사람들도 하나 둘 광장으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분수 쇼가 벌어진다. 시간을 맞춰 민박집의 다른 한국학생들 4명도 합류했다. 모두 6명이 쇼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저녁 8시 30분이 되니 드디어 엄청난 양의 물이 하늘로 치솟으며 분수 쇼가 시작됐다. 따옌타에도 조명이 들어왔다. 60미터에 이르는 탑이 조명 속에서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분수가 뒤덮은 하늘은 온통 물의 나라를 만들어버렸다. 바닥의 작은 구멍을 통해 솟아오른 물의 양이 엄청나다.

 

장장 1시간가량 진행되는 분수 쇼를 찍느라 온몸이 다 젖었다. 어디서 물이 튀어나올지 모르니 깜짝깜짝 놀라기 일쑤다.

 

카메라가 젖지 않도록 온몸으로 막고 분수 속에서 한참을 놀다가 갑자기 카메라가 걱정됐다. 밖으로 나와서 보니 다행히 고장 나지는 않았다. 캠코더 고장으로 마음이 영 우울한데 카메라까지 그럴 수는 없다.

 

 

이 분수 쇼를 이곳에서는 샘이 솟는다는 뜻이겠지만 펀취엔(喷泉)이라 부른다. 이곳은 아시아 최대, 세계에서 3번째로 큰 규모라고 하는데 정말 장관이다. 이곳을 음악과 함께 물이 솟는다 하여 음악분수(音乐喷泉)라고도 한다.

 

쇼가 끝나자 수 천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빠져나가기 시작이다. 우리 일행도 택시를 잡기 위해 한참을 걸어 나왔다. 겨우 두 대에 나눠 탔다. 숙소 앞 길거리 양고기 꼬치 집에서 맥주를 한잔했다. 현수와는 주로 여행 이야기를 했고 다른 학생들과는 텐진(天津)에서의 어학연수 이야기를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우리 자리 바로 옆에 민박집에 숙박 중인 다른 한국 학생 2명이 또 있었다. 샤오씽(绍兴)에서 유학 중이었는데 알고 보니 대학생은 아니고 직장 생활을 하다가 중국어를 배우러 온 친구들이었다.

 

숙소로 돌아가니 주인아저씨가 맥주를 사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기분이 좋아 톈진에서 중국 친구에게 선물 받아 계속 보관해오던 명주인 펀쥬(汾酒)를 꺼냈다. 모두 한 잔씩 건네니 역시 명주라며 좋아한다. 새벽까지 얼큰하게 술을 마셨다. 그리고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고 잤다.

덧붙이는 글 | 중국문화기획자 - 180일 동안의 중국발품취재
blog.daum.net/youyue 게재 예정


태그:#서안, #대안탑, #분수쇼, #슈위엔먼, #청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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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품취재를 통해 중국전문기자및 작가로 활동하며 중국 역사문화, 한류 및 중국대중문화 등 취재. 블로그 <13억과의 대화> 운영, 중국문화 입문서 『13억 인과의 대화』 (2014.7), 중국민중의 항쟁기록 『민,란』 (2015.11)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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