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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의 꺾기 관행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더 이상 이야기 하기가 지겨울 때도 될 만큼 오래되었다. 꺾기란 은행 등 금융회사에서 대출을 받을 때 다른 상품 가입을 강요하는 행위이다.  꺾기에 이용하는 상품도 금융환경 변화에 따라 변천해왔다.  대출 받을 때 적금가입을 은근 슬쩍 강요하는 것이 전형적인 꺾기 상품이었다면 최근에는 펀드와 보험이 적금을 대체하고 있다. 

 

최근에는 은행뿐 아니라 신협(신용협동조합)이나 수협(수산업협동조합) 등 서민금융기관들도 꺾기를 즐겨(?)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꺾기는 불법일 뿐만 아니라 가입을 하지 않아도 특별한 불이익을 받지 않는 만큼, 이에 대한 대응이 더욱 중요하다.

 

[사례] 평촌에 사는 40대 초반의 김모씨는 아파트를 담보로 2억5천만원의 대출을 받기 위해 집 근처 은행을 찾았다. 대출 담당 직원은 대출을 진행하다가 김씨에게 “요새 대출이 힘든 상황이지만 연금보험에 가입하시면 대출이 빨리 나옵니다.  이 정도 대출금액이면 연금60만원 정도 가입하시면 되겠네요”라는 말을 했다.  다소 당황했던 김씨는 연금가입이 힘들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자 대출 담당 직원은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김씨가 신청한 대출을 진행하였다. 

 

안심한 김씨였지만 그 다음 과정인 대출 상환방법을 고르는데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김씨는 “원금균등상환방식”으로 대출을 상환하고 싶었으나 은행 직원은 “원리금균등상환방식”을 권했다.  원리금균등상환방식이 매월 상환하는 금액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설명도 함께 했다. 

 

하지만 김씨는 원리금균등상환방식이 원금균등상환방식에 비해 초기에 매월 상환하는 금액은 적을 지라도 총 이자 지급액에 있어서 불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김씨가 강하게 원금균등상환방식으로 하겠다고 하자 은행직원은 매월 불입하는 금액이 부담스럽지 않느냐고 물으면서도 김씨가 원하는 데로 원금균등상환방식으로 처리해 주었다.

 

꺾기면 하고, 안 꺾이면 말고

 

은행을 포함한 금융회사들도 이익을 내야 하는 기업이다.  그래야 회사를 유지하고 직원들 월급도 주고 이익도 내서 주주들에게 배당도 한다.  하지만 상품 자체에 적정한 마진이 포함되어 있는 데도 그 이상의 부당이득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문제다. 

 

꺾기는 금융회사들이 이같이 부당이득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대출 상품 자체에도 적정한 이윤이 포함되어 있다.  수신금리(예, 적금 금리)에다 적정한 마진을 붙여서 대출금리가 산정되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민원과 금융감독원의 조치로 겉으로 보기에 꺾기 관행은 예전 보다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대출만으로는 적정 이윤이 나지 않는다며 다른 상품 가입을 권유하는 꺾기 관행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금융소비자들의 의식개선으로 예전만큼 꺾기 권유에 응하지 않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을 뿐이다.  은행들도 밑져야 본전이라는 식으로 다른 상품 가입을 권유하면서 고객들의 반응에 따라 다르게 대응한다. 고객이 꺾기에 응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인 셈이다.

 

대출 상환 방법을 고객들에게 권할 때도 마찬가지다.  은행입장에서 보면 대출기간 동안 매월 같은 금액을 상환하는 “원리금균등분할상환”이 유리하다.  원리금균등분할상환방식은 매월 같은 금액이 상환되더라도 초기에는 이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많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원금상환 비중이 커지는 구조다.  따라서 대출 만기 전 차입자가 자금에 여유가 있어서 대출금을 조기에 상환하는 경우에는 생각보다 원금이 많이 줄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원리금균등이 상환금액이 적어서 좋다고?

 

결국 은행은 대출 기간 중에 받을 이자를 상당 부분 미리 받게 되기 때문에 차입자가 조기에 대출금을 상환하더라도 이득이 많은 원리금균등분할상환 방법을 선호하고 권유하는 것이다.  반면 “원금균등분할상환”방식은 매월 원금을 균등하게 상환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이자 부담은 조금씩 줄어든다.  따라서 중도에 자금여유가 생겨서 조기 상환할 경우에도 불이익이 없다.  단지 초기에 매월 상환하는 금액이 조금 더 많을 뿐이다.

 

하지만 은행들은 고객들에게는 매월 내는 금액이 적다는 논리로 “원리금균등분할상환” 방식을 권유하는 경향이 많다.  마치 고객을 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은행 자신들을 위한다는 것도 알아두면 좋다.

 

날이 갈수록 금융소비자들의 금융지식과 의식수준은 높아지고 있다.  반면 금융회사들은 높아진 소비자들의 기대수준과 금융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과거의 구태의연한 금융관행을 고집하는 경향이 여전하다.  제조업에 있어서는 세계적인 기업들이 나오고 있는데 금융에서만은 아직도 대내외에 자랑할 만한 회사가 없는 이유다.  금융회사들도 다양한 방법으로 이익을 낼 수 있다.  여기에는 PI(Principal Investment, 자기자본투자)도 있고 앞서가는 상품개발과 차별화된 서비스로 고객을 끌어들이는 방법 등 매우 다양하다.

 

내년(2009년)이면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된다.  또한 보험사 창구에서 은행의 예, 적금을 판매하는 어슈어 뱅킹(Assure Banking)도 조만간 도입된다고 한다.  금융회사간 치열한 경쟁을 통해 고객들을 만족시키지 않으면 도태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선진금융 서비스의 첫걸음은 꺾기 관행을 없애는 것이라는 것을 금융회사 스스로가 느끼고 실천으로 옮기기를 간절히 고대해본다.


태그:#꺾기관행, #원리금균등분할상환, #원금균등분할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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