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침 출근시간이다. 요즘은 방학이라 여유가 좀 있다. 늑장을 부려서일까? 밖이 훤하다. 해가 노루꼬리만큼씩 길어진다더니 동지 지나고부터는 어느새 낮이 길어진 느낌이다. 현관문을 나서는데 바깥 공기가 싸하다.

 

산자락을 타고 내려오는 바람이 차갑다. 엊그제 내린 눈으로 산과 들은 하얀 세상이다. 오랜만에 보는 겨울의 아름다운 풍광이 참 보기 좋다. 아내가 마당까지 배웅하러 나왔다. 끌고 갈 내 차를 보더니만 "여보, 잠깐만!" 하고 부산을 떤다.

 

"아무리 급해도 차 좀 훔쳐야겠네요!"
"퇴근하고 내가 닦을 테니 그냥 놔두지?"

 

그러고 보니 차 꼴이 말이 아니다. 너무 더러워졌다. 눈길을 끌고 다녀서 그런지 흙탕물을 뒤집어썼다. 아내가 더운 물을 대야 가득 날랐다. 고무장갑을 끼고 팔을 걷어붙인다. 손에는 걸레가 들려있다. 나더러는 옷 버린다고 멀리 가라한다.

 

 

아내의 차 닦는 실력이 시작된다. 늘 하던 솜씨라 능숙하다. 더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걸레로 지붕부터 닦아낸다. 요리저리 구석구석 쓱싹쓱싹! 걸레가 더러워지면 다시 빨아 문지른다. 잽싸게 안팎을 닦아낸다. 물걸레질이 끝나자 마른 걸레로 물기를 걷어낸다. 대충한 것 같지만 차가 반짝반짝 거린다. 출근길에 이렇게 차를 닦아준 아내가 너무 고맙다.

 

차가 깨끗하면 운전하는 마음도 달라지지!

 

지금 타는 차가 우리 식구 발이 된 지도 10년이 넘었다. 큰 고장 없이 잘 굴러가는 게 신통하다. 비록 낡은 소형차이지만 아내는 우리 차를 오래된 친구처럼 소중히 여긴다. 그동안 아내한테는 애틋한 정이 들기도 했다.

 

늦게 시작한 공부를 하느라 이곳 강화에서 서울로 통학을 할 때 수년 동안 아내의 든든한 발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처음이나 지금이나 손수 차를 닦는다. 정갈하게 타야 차에 대한 애착이 간다는 것이다. 구정물을 버리면서 아내가 기분이 좋은 표정을 짓는다.

 

"차가 깨끗하니까 좋죠?"
"그럼, 말이라고 해!"
"늘 새 차처럼 타야 운전도 조심해지는 거예요."
"그런가? 안전은 걱정하지 말라구! 난 조심 또 조심이니까!"

 

차 운전에 관한 한 나는 초보이다. 면허증을 따놓고 거의 운전을 하지 않았다. 이른바 장롱면허이다. 복잡한 도회지길이나 처음 가는 길을 나설 때는 두려움이 많다. 차를 끌고 가느니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내가 차를 끌 때 아내는 어린애 물가에 내보내듯 걱정을 많이 한다. 차가 집에 돌아와야 마음이 놓인다고 한다. 그간 근무하는 학교가 집 가까이 있어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자전거로 통학하였다. 굳이 차를 이용할 필요가 없었다. 멀리 이동할 때 운전은 항상 아내 몫이었다.

 

그런데 사정이 달라졌다. 학교를 옮기고부터 통학거리가 길어져 어쩔 수 없이 운전대를 잡게 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싶지만 배차시간이 길어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반 년 가까이 차를 운전하다보니 어느 정도 자신이 붙었다. 아직도 복잡한 시내 주행이나 주차에는 자신이 없지만.

 

아직 탈 만한데 왜들 그러실까?

 

 

시동을 걸어본다. 출근길 기분이 좋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도 오늘따라 경쾌하다. 편안한 마음으로 운전을 한다. 한참을 가다 주유소에 들렸다. 낯이 익은 주인아저씨가 나를 보고 반긴다. 주유구가 잘 열리지 않자 내게 엉뚱한 말을 꺼낸다.

 

"선생님, 이제 좋은 차로 하나 뽑으시죠?"
"글쎄요. 아직 탈 만한 걸요."

 

차를 바꾸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아마 오래된 소형차를 끌고 다니는 게 내 나이로 보나 격에 맞지 않다는 생각에서 일 것이다. 며칠 전, 사업을 하는 친구가 큰 차를 타고 집에 왔다. 내 차를 보더니만 사설을 늘어놓았다.

 

"이제 궁상 좀 그만 떨라구! 너 지금 몰고 있는 차가 몇 년째야? 무엇보다도 큰 차를 몰아야 안전한 거야. 기름값? 요즘 차 몰고 다니는 사람들 기름값 걱정하는 줄 아니? 별 차이 나지 않아!"

 

녀석의 말을 웃어넘겼다. 나는 아직 차를 바꿀 생각이 없다. 세상 사람들 중에는 좋은 차를 타야 격이 달라지고, 부를 과시하는 것쯤으로 아는 이가 더러 있다. 내 친구처럼 말이다. 그렇지만 나는 아니다. 멀쩡하게 잘 굴러가고, 요즘 같은 고유가시대에 큰 차로 기름을 길바닥에 흘리고 다닐 필요는 없지 않은가?

 

오늘도 무사히!

 

나는 오늘도 조심스레 차를 몰고 퇴근을 한다. 아내가 차 들어오는 소리에 현관문을 열고 나온다. 반가움이 묻어 있다.

 

"당신, 운전 실력 많이 늘었어요."
"그래 보여?"
"그런데 운전은 늘 조심해야 해요. 향상 초보처럼 말예요"
"그럼, 난 재주부릴 줄 모르니까 안심하라고!"
"그런 마음으로 운전하면 돼요. 과속하지 않고, 신호 잘 지키고."
"알았어!"

 

아내가 아침부터 차를 깨끗이 닦아주는 마음이 읽어진다. 정이 든 우리 차를 소중히 여기고, 안전운전을 당부하는 것일 게다. 결국, 안전운전은 우리 가족의 행복을 지켜주는 것이지 않는가?


태그:#소형차, #고유가시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