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정책선거는 없었다."

 

대선이 끝난 뒤 대부분의 언론들이 제목으로 한번 뽑아보았음직 한 글귀다. 하지만 누가 정책선거를 외면했는가. 

 

친한나라당 매체인 조중동이 공약 검증기간이었던 대선 기간 내내 조용히 있다가 경부운하 공약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라는 내용의 사설을 잇달아 내놓았다. 소위 '면피용 사설'이라고 할 수 있다. 한나라당 경선 기간 내내 최대 쟁점이었던 이명박 당선자의 경부운하 공약에 대해 침묵하다가, 경선이 끝난 뒤에 일제히 '재검토' 목소리를 냈던 것과 똑같은 행태다.

 

[동아일보] "값비싼 시행착오 겪을 수 밖에..."

 

경선 뒤에도 "경부운하 재검토" 한 목소리

 

"간판 공약인 '한반도대운하'부터 손댈 각오를 해야 한다."

 

<조선>이 지난 8월 22일 사설에서 밝힌 말이다. 한나라당 당내 경선에서 경부운하 논쟁이 한참 진행될 때에는 입을 닫고 있다가 이 당선자가 한나라당 후보로 낙점된 뒤에 말문을 연 것이다. 

 

<중앙>은 그 전날 경부운하의 문제점을 제대로 짚었다. 이들은 이날 사설에서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잘못을 알면서도 머뭇거리면 기회를 놓치게 된다. 명분에 얽매여 국민을 곤경에 몰아넣는 것은 지도자로서 성실한 자세가 아니다.(중략) 단지 표에만 관심 있다면 수도 이전을 득표 전략으로 내세웠던 현 정부의 행태와 다를 바 없게 된다."

 

<동아>도 일주일이 지난 29일자 사설에서 박근혜 전 대표의 입을 빌려 경부운하 공약 포기를 다음과 같이 종용했다.

 

"박씨는 경선 내내 대운하 공약에 문제가 많다고 주장했다. '나라를 생각한다면 철회해야 한다'는 말까지 했다. 이 후보는 박씨의 비판을 경청해 수용할 것은 수용하겠다는 자세를 보여야만 국민의 공감대를 확산시킬 수 있다."

 

<동아>는 작심하고 직격탄을 날렸다. 지난 24일 '대운하, 국민 설득과 대합의 과정 없었다' 제하의 사설에서 "여론조사에서도 반대가 많았던 대형 국책사업을 국민 설득이나 합의 과정 없이 강행하려 든다면 값비싼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동아>는 이어 "핵심 문제는 사업 타당성"이라면서 경부운하를 재검토해야할 좀 더 구체적인 근거를 다음과 같이 적었다.

 

"운하가 발달한 유럽과 달리 한국은 계절별 강수량 차가 커 갈수기에는 배를 띄우기 힘들다. 자연히 물을 저장하는 많은 댐과 보가 필요하다. 국토의 70%가 산이라는 지형적 특성 때문에 상하류 표고차가 100m나 돼 서울∼부산에 19개 갑문을 만들어야 한다. 교량 개축도 필수적이다. 이런 물길에 축구장 길이의 배를 띄우려면 천문학적인 건설비가 소요된다. 건설비 16조 원(이 당선자 측 주장)을 모두 민자로 조달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운영 손실 발생 시 재정으로 보전’해 주는 조건을 달아야만 민자 유치가 가능하다."

 

이렇게 알고 있는 <동아>가 왜 그간 경부운하 정책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았는지 의아스러울 정도이다.

 

<동아>는 또 "대통령 선거에서 공약으로 내걸고 승리했으니 국민 합의를 얻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라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수도이전 대선 공약도 유권자들이 그 공약에 동의해 투표한 것은 아니었다"고 일갈했다.

 

[중앙일보] "당선자 혼자 옳다고 밀어붙이면 독선"

 

<동아>는 "청계천 복원 성공신화에 사로잡히면 실패할 수 있다, 도시의 하천 복원과 국토를 종단하는 대역사는 다르다"면서 "2012년까지 경부운하 건설 과정에서만 40만 개의 일자리가 생긴다, 자칫 건설경기는 이명박 정부 때 즐기고 비용은 다음 정부가 치르는 구조가 될까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마지막으로 <동아>는 "이 당선자는 대선 전 '집권하면 세계적인 기술로 검증하고 국내외 환경전문가들로 하여금 재검토하게 하겠다'고 약속했다"면서 "그 약속대로 선입견을 버리고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것이 당선자의 실용주의 국가경영 철학과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중앙>도 지난 21일자 '국민의 머슴이 되라' 제하의 사설에서 다음과 같이 강력 경고한 바 있다.

 

"대운하 공약은 대선 내내 격렬한 선거 쟁점이었다. 그것은 당선자의 주장처럼 국가 발전의 동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임기 중 당선자를 끊임없이 괴롭힐 만성적 논쟁거리가 될 수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초 '수도 이전' 공약을 강행하려다 급격히 지지를 상실했던 경험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당선자는 '청계천 복원 사업시 주변 상인과 노점상을 설득하기 위해 수천 번 만났다'고 했다. 대운하 문제도 그렇게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선결과제다. 국민이 원하지 않는데 당선자 혼자서 옳다고 밀어붙이면 독선이 된다."

 

[조선일보] "국민 동의를 구해라"

 

<조선>은 톤이 약했지만, 24일자 '당선자 공약 타당성 재검토 기구 둘 만 하다' 제하의 사설에서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면서 "사업 타당성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국민 동의를 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선 기간 내내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당선된 뒤에 일제히 '경부운하 재검토' 목소리를 내는 조중동. 한나라당 당내 경선이 끝난 뒤 사설 한 개 쓰고 꿋꿋이 버티다가 이제와서 '정책선거 실종'이라고 점잖게 외치는 그들의 모습이 뻔뻔스럽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이제 와서 '뒷북 사설'을 실은 것일까? '이명박 특검법'에 대해서는 이 당선자의 압도적 승리를 내세워 특검 무용론을 펼쳤던 이들이 왜 지금에 와서 경부운하는 안된다고 한목소리를 내는 것일까?

 

이유는 둘 중 하나다. 국가의 장래를 위한 충정이든가, 아니면 이 당선자만을 위한 '정략적 충정'이든가. 전자이기를 바라고 있지만, 후자여도 이 당선자의 임기 중에 계속 그런 충정을 발휘한다면 그리 나쁘지 않다.   

 

하지만 난 두렵다. 대통령직 인수위에 대운하 특별팀이 구성되고, 특별법도 만든다고 한다. 일사천리다. 앞만 보고 질주하는 불도저와 같다. 다시 말해 이들의 충정이 대한민국의 산하가 다 파헤쳐진 뒤, 5년 내내 침묵하다가 이 당선자가 퇴임한 뒤에 또다시 '면피용 사설'을 쓰는 것으로 언론의 역할을 다했다고 우길지도 모르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말이다.


태그:#경부운하, #이명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환경과 사람에 관심이 많은 오마이뉴스 기자입니다. 10만인클럽에 가입해서 응원해주세요^^ http://omn.kr/acj7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