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직장에 사직서를 냈다. 왜 그랬는지도 모르고 내 의도가 아니라고 물려달라고 떼를 쓰다가 그만 잠이 깬 적이 있었다. 너무도 황당하고, 안타까움이 길게 여운으로 남은 적이 있었다. 

 

태안에 자원봉사활동을 다녀오고 나서 오래 전에 꾸었던 그 꿈이 자꾸 떠올랐다. 깜깜한 어둠을 희미하게나마 안개가 밀어내는 초겨울의 을씨년스러운 새벽거리를 허둥허둥 달려서 사무실에 도착했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분주하게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무실 한켠에 차를 세워두고 버스에 올랐다. 날씨가 춥다고 아내가 어제 급히 산 쫄바지를 껴입어서 그런지 추운 줄 몰랐고, 잘 입지 않는 옷들로 골라 입어서 그런지 일행들 대부분이 모양새가 나지 않는 차림이었다.

기름유출사고가 나고 제일 먼저 본 것은 커다란 새가 새까맣게 기름을 뒤집어 쓴 채 쓸쓸히 앉아 있는, 신문에 실린 사진이었다. 더 이상 날 수 없는 새에게 희망은 없어 보였다. 어디 새뿐만이겠는가. 사람도 마찬가지겠지. 그것으로 전체를 짐작할 수 있으니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이제 그 현장을 찾아 눈으로 보아야 했다. 연일 TV나 신문에서 보도되는 소식만으로도 참상을 짐작할 수 있지만 그래도 직접 눈으로 보고 그 현장에 선다는 것이 왠지 숙연해지는 듯했다.
 

 

3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곳은 신두리 해수욕장이었다. 마을입구에서부터 저 멀리 보이는 것은 온통 여기저기 주차된 버스와 회색, 흰색 혹은 노랑색의 방제복을 입은 사람들뿐이었다. 

 
서둘러 서산소방서 현장안내소에 자원봉사활동 기록을 남기고 복장을 갖춰 해안가로 갔다.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시커먼 기름찌꺼기가 아닌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쓰레기였다. 연신 해변에서 올라오는 기름걸레로 인해 쓰레기들은 자꾸만 쌓였고, 그것들이 길을 막아서고 있었다. 그 틈을 비집고 해안에 내려서니 그제야 달큼하면서도 뒤로 띵하게 어지러운 맛을 내는 냄새가 코를 거치지도 않고 바로 머리로 쑥 파고든다.  
 
사람들이 많아서 틈도 없고, 일할 것도 많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 작은 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한없이 나왔다. 작은 모래알을 뒤집으면 그 속에서 유전처럼 솟아나는 타르덩이와 기름 찌꺼기들이 시커멓게 묻어 나왔다. 혹시나 해서 좀 큰 돌을 뒤집으면 골뱅이들이 기름범벅이 된 채 죽어있었다. 그곳에선 살아있는 생명체라곤 사람밖에 없었다. 여느 바닷가에서 흔히 보는 물고기의 유영은 흔적도 없었다.

옆에서 작업하던 직원이 꽁무니에 기름이 조금 묻어 아직 생명이 꺼지지 않은 새끼 게를 발견하곤 얼른 달려가 바닷물 속에 던져 놓아줬지만 그게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한 사람은 없었으리라. 그 바닷속도 지금 내가 딛고 선 땅보다 낫지 않기에. 다만 살았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만 있었으리라. 아니 차라리 잔인하지만 '그곳에서 죽게 두는 게 덜 고통스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화재현장에서 원인을 찾는 발굴을 하듯 돌 하나하나를 닦고, 모래를 닦아내고 있지만 그것이 당장 괜찮아지는 것은 아니며 다만 하루라도 빨리 생명이 돌아오길 바라는 바람의 몸짓일 뿐이라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었으리라.

물이 들어와 작업을 멈추고 점심을 먹었다. 우리가 싸간 도시락보다 적십자 자원봉사자들이 건네는 따뜻한 도시락을 먹고 잠시 시간을 내서 아랫마을을 돌아보았다.

굴 양식장이 있는 마을입구 비닐하우스 작업장 앞에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는 주민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환갑은 훨씬 지났을 것 같은 할머니들이 방제작업복을 입은 채로 주변사람들은 아랑곳 않고 하늘을 쳐다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 사람들의 눈에는 한번 다녀가는 사람들로 비쳐질 우리의 모습이 눈에 들어올 리 없고, 당장 내일부터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 막막할 미래를 생각하고 있으리라 생각하니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아마도 내가 직장을 그만두는 꿈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올랐던 것은 그 모습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고 언제 다시 그곳에 설 수 있을까. 가장(家長)이 제일 끔찍한 것은 아마도 가족을 위해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일 텐데 그 비참함이라는 것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잘못이 아닌 그 누군가의 실수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었는데 얼마나 억울할까. 기름을 뒤집어 쓴 어린 게의 모습과 희망을 잃어버린 주민 노파의 주름진 얼굴과 관광객들의 출입을 막던 경고판 앞에 수북하게 쌓이는 쓰레기 더미 등등 복잡한 생각들이 얽혀들었다.
 
많은 자원봉사자들을 그곳으로 달려가게 만드는 것이 바로 자동차고, 그 자동차의 연료로 쓰이는 기름을 태우고 가서 또 기름을 걷어내는 것이 현대 문명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의 고리이긴 하지만 이제 물질문명보다는 환경에 좀 더 관심을 갖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아니 벌써 늦었고 그것을 경고라도 하듯 이런 사고가 난 것이리라.

물이 빠져나가는 해안가에서 기름이 둥둥 뜨는 물을 양동이로 퍼 올려 해안가의 돌을 씻고 내려가는 기름을 흡착포로 빨아내는 작업을 하다가 이내 돌아왔다. 참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내일처럼 열심히 할 수 없었다. 그 절망의 땅에서에서 본 유일한 희망이었다. 
 
태안 시내 곳곳에는 자원봉사자을 격려하는 글과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글들이 여기저기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또 다른 삶의 시작을 예고하는 것 같았다. 막막한 삶의 터전을 진흙 저 밑바닥에서 갈아주는 지렁이처럼 소리 없는 작은 희망을 건져낼 방법이 도저히 없는 그들의 삶 때문에 흡착포처럼 피곤에 젖은 몸이 눈을 감아도 자꾸 떠올랐다.

태그:#태안반도, #기름유출, #자원봉사, #신두리해수욕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충북 제천의 소소한 이야기를 전하는 기자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