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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안 아주머니의 눈물과 호소 기름범벅으로 생태계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통곡했다는 아주머니의 눈물과 호소,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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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개들이 모두 죽어가고 있어요. 여러분 도와주세요."
"온통 기름투성인데 벌써 끝낸다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
"이제 시작입니다. 기름이 모두 제거될 때까지 계속해야 합니다."


충남 태안 바닷가 현지 주민들의 목소리는 한결 같았다. 삶이 어려워진 주민들의 눈물겨운 호소가 차가운 겨울 바닷바람에 목이 메었다.

유조선 기름유출이 빚은 재앙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고 참혹했다. 기름으로 뒤덮인 바닷가의 자갈밭은 그야말로 생물들이 살 수 없는 죽음의 땅으로 변해 있었다. 지난 17일, 교회에서 지원한 자원봉사대원 20여명과 함께 찾은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십리포 해수욕장 옆의 오목한 산자락아래 바닷가 자갈밭 풍경이었다.

기름으로 뒤범벅이 된 바닷가 풍경
 기름으로 뒤범벅이 된 바닷가 풍경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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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전국에서 찾아온 50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기름범벅이 되어 시커멓게 뒤덮인 기름을 제거하고 있었다. 일행들은 전날 밤부터 준비한 300인분의 밥과 육개장, 기름제거 작업용 장비를 버스에 싣고 현장으로 달렸다. 현지에 도착하자 2차선의 비좁은 입구 도로는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몰려든 차량들로 매우 혼잡한 모습이었다.

참혹한 풍경과 아름다운 모습

비좁은 도로에서 어렵게 현장 통제소를 찾아 들었다. 자원봉사자들에게 점심 식사를 나누어 주고, 기름제거 작업을 해야 할 장소를 배정 받아 투입된 곳이 십리포해수욕장 근처의 작은 해변 자갈밭이었다.

우선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음식물을 내려놓았다. 배식준비를 해놓고 준비해가지고 간 비닐 옷과 장화, 그리고 고구장갑을 착용하고 바닷가로 내려갔다. 바닷가는 온통 자갈밭과 제법 커다란 바위들이 흩어져 있는 반달형의 오목한 곳이었다. 그곳에서는 먼저 도착한 봉사자들이 기름범벅이 되어 기름제거작업을 하고 있었다.

해변의 자갈과 바위들은 온통 기름범벅이 되어 시커멓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우선 자갈을 들추고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기름을 퍼내어 바가지에 담는 작업을 했다. 그렇게 퍼낸 기름은 다시 플라스틱 양동이에 모았다. 양동이에 가득한 기름은 다시 훨씬 커다란 플라스틱 용기에 옮겨 담았다.

바닷가 맨 위쪽 산자락 밑에는 그렇게 기름을 가득 담은 통들이 놓여 있었다. 어른 두 사람이 한꺼번에 들어갈 만큼 커다란 플라스틱 통은 기름으로 가득한 채 100여 개나 놓여 있었다. 일단의 봉사자들은 그 커다란 기름통에서 기름을 양동이에 퍼 담아 산 중턱까지 옮기는 작업을 했다.

세 줄로 늘어선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기름그릇을 건네받아 산 중턱의 플라스틱 통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옮겨진 기름들은 도로에 있는 해양수산부 산하 '한국 해양오염방제조합' 소속의 폐기물 수집 운반차량으로 연결된 기다란 호스를 통하여 기름 탱크로 뽑아 올라가고 있었다.

기름제거작업을 하는 봉사자들
 기름제거작업을 하는 봉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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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여수에서 온 자원봉사 아주머니
 멀리 여수에서 온 자원봉사 아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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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이 유조선에서 유출될 때 곧바로 수거하는 장비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장비를 갖춘 배가 소형이어서 높은 파도 때문에 작업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해양오염방제조합에서 폐기물기름수집탱크 차량을 몰고 온 김훈(41)씨의 말이었다.

정유사들, 초기 유출 기름 제거할 수 있는 대형선박 구입 배치하라

지난 태안 앞바다의 사고당시 이 바다는 파고가 4~5m로 매우 높았다고 한다. 그래서 조합에서 보유하고 있는 겨우 수백 톤 급의 기름수거장비를 갖춘 선박들이 접근하여 작업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 정도 높은 파도에서도 작업을 할 수 있는 선박은 수천 톤급 선박이라야 가능한데 우리나라에는 아직 그런 선박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니 우리나라에 아직 그런 선박조차 없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당연히 내로라하는 정유사들이 한 척씩 구입하여 동, 서, 남해에 적어도 한척씩은 배치해 놓아야지요."

자원봉사를 나왔던 사람들이 분통을 터뜨린다. 장비를 갖춘 선박이 없어 초기방제를 하지 못해 이렇게 엄청난 재앙을 몰고 왔다니 분통이 터지는 것이다. 기름장사로 엄청난 수입을 올리고 있는 정유사들이 그만한 책임감도 없어서야 되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이번 사고의 책임도 엄격하게 물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중론이었다.

이날 바닷가 자갈밭과 이곳에서 작업하는 자원봉사자들만 500여 명, 인근 십리포 해수욕장과 대목항지역에서 일하고 있는 봉사자들은 3000~4000명에 이른다고 했다. 기름을 탱크로 퍼 올리는 작업이나, 미끄러운 자갈과 바위 사이에서 쪼그리고 앉아 기름을 퍼내는 작업이나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일부의 자원봉사자들은 헌 옷이나 천으로 기름범벅이 된 바위와 자갈을 닦아내기도 하고 모래바닥에 밴 기름을 제거하는 작업을 했다. 그렇게 한 시간여를 쪼그리고 앉아 작업을 하자 다리도 아프고 허리와 어깨도 결린다. 잠깐 허리를 펴고 쉬면서 인근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봉사자들은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었다. 나이어린 학생들도 있었고, 나이가 70세가 가까운 노인들도 있었다. 어느 회사에서 집단으로 온 사람들을 제외하면 여성들이 훨씬 많았다. 기름으로 뒤덮인 안타까운 모습을 보면서 혀를 끌끌 차는 봉사자들 중에는 멀리 전남 여수에서 버스를 빌려 타고 4시간을 달려왔다는 40여명의 아주머니들도 있었다.

점심을 먹고 있는 자원봉사자들
 점심을 먹고 있는 자원봉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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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탱크 차량과 도로를 메운 자원봉사 차량들
 기름탱크 차량과 도로를 메운 자원봉사 차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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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유출이 이렇게 심각한 환경재앙을 불러올 줄은 몰랐네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데요, 우리나라 사람들 모두 한 번씩은 이곳에 와서 기름제거 작업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여수문화원에서 문화해설사로도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는 50대 초반의 아주머니는 바위들이며 자갈들이 온통 시커먼 모습이 끔찍하다고 혀를 끌끌 차고 있었다. 대부분의 자원봉사자들이 너무나 끔찍한 모습에 모두들 웃음을 잃고 작업에만 열중하는 모습이어서 바닷가 자갈밭에는 숙연한 분위기마저 감돌고 있었다.

오전 작업을 마치고 도로 밑 좁은 공터로 올라갔다. 도로 밑 좁은 공터에는 일행들이 가져온 따뜻한 밥과 따끈한 육개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300인분의 밥과 육개장은 음식을 준비해오지 않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간단한 도시락을 가져온 사람들에게도 제공되었다. 육개장을 먹으며 맛이 좋다고 고마워하는 기름범벅이 된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을 보며 배식을 담당한 일행 아주머니들이 오히려 쑥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정말 고맙구먼유. 저희 주민들은 이렇게 라면과 빵밖에 준비하지 못했는데… 여기 커피도 있고 빵과 우유도 있으니 맘껏 드세유."

작은 천막을 쳐놓고 음료수와 음식을 대접하는 아주머니들은 태안읍에 사는 현지 주민들이었다. 대접하는 음식들은 주민들이 자비로 준비한 것들이라고 했다.

봉사자들이 보여주는 희망찬 모습

그 아주머니들 중에서 태안읍 남문리에 산다는 강유분(54) 아주머니는 말을 꺼내며 벌써 눈물을 글썽인다. 처음에 바닷가에 내려가 기름이 뒤덮인 모래밭을 파보았는데 조개들이 숨을 못 쉬어 혀를 내밀고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한참을 울었다면서 다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이 아주머니는 벌써 열흘째 이곳에 나와 자원봉사자들을 돌보고 있었다.

점심을 먹은 후 계속된 기름제거작업도 모두들 열심이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었다. 기름범벅이 되어 일하는 모습이 그냥 작업이 아니고 숭고해보이기까지 한다. 모두가 자연환경과 이곳 바닷가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을 생각하며 스스로 자원하여 봉사하는 마음이 짙게 배어나오는 모습이었다.

오후 작업은 밀물이 몰려드는 시간까지 계속되었다. 오후가 되자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매우 차가웠다. 그렇지만 모두들 옷깃을 여미고 추위를 견디며 일하는 모습들이 참으로 아름답고 정답기만 했다.

조개를 잡고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이어가던 사람들이 일터와 생계수단을 잃고 울먹이는 모습은 정말 안타까운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날마다 몇 만 명 씩 이나 되는 사람들이 바닷가를 찾아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니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이렇게 자원봉사로 기름제거 작업을 하는 우리 국민들의 아름다운 모습에서 내일을 향한 희망이 피어나고 있었다.

해양오염방제조합 소속의 김훈(41)씨
 해양오염방제조합 소속의 김훈(41)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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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자들의 손으로 퍼 담아 놓은 기름통들
 자원봉사자들의 손으로 퍼 담아 놓은 기름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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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기관에서 기름제거 작업을 마칠 것이라는 말을 하여 주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이 반발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기름유출사고로 몰아닥친 재앙은 며칠 동안의 작업으로 말끔하게 회복되고 마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한다.

어쩌면 몇 개월, 아니면 그보다 훨씬 긴 기간 동안 자연 생태계가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우리국민들이 관심을 갖고 참여하고 함께 해야할 일인 것이다. 태안 아주머니는 모든 국민들이 하루 쯤 이 바닷가를 찾아 한 바가지의 기름, 한 조각의 기름 덩어리라도 제거하는 작업에 동참해 주기를 눈물로 호소하고 있었다.


태그:#이승철, #태안 , #자원봉사자, #강유분, #기름제거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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