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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선 참 이상하다. 공직후보들에 대한 도덕적 기준에 대하여 이상하게도 관대하다. 경제라는 틀 속에 진실과 정의는 꼼작 못하고 갇혀버렸다. 우리보다 앞선 민주주의 국가의 경우 지도자가 갖춰야 할 최우선 덕목으로 도덕성을 꼽는다.

국민의 정서가 이상하다.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이 민주주의를 내팽게쳐야 할 만큼 먹고 사는 게 힘들단 말인가? 과연 노무현 대통령이 먹고 살지도 못할 만큼 경제를 망쳐 놓았는가?

유심히 살펴보자. 산업자원부 통계에 따르면 원유상승 등 대외적인 각종 악재에도 불구하고 56개월 연속 무역 흑자 행진이 이어지고 있으며, 지난 11월 한 달 동안 359억 달러로 월간 사상 최대의 흑자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래도 경제가 잘못 되었는가?

올해 국민소득은 우리 모두가 그토록 갈망해왔던 2만불대로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한다. 이래도 경제를 망쳐 놓았는가?

필자가 기억하기로 지난 70년대, 80년대 한국경제가 연 10% 이상 고성장세를 지속할 때도 불경기라고 난리를 떨었고, 장사 안 된다고 난리를 쳤다. 동대문, 남대문 시장에 가서 아무 때나 물어봐라. 장사하는 사람 장사 잘 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누가 물어도 힘들다고 말한다.

그런데 경제가 잘 되기 위해서는 일단 정치가 잘 되어야 한다. 정치의 영역은 현대 국가에서 모든 제도를 포괄한다. 우리가 정치 지도자를 제대로 세워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일반 인민대중이 제대로 된 정보에 의존해서 정치지도자의 모든 됨됨이를 판단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정치는 이미 고도의 권위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권위의 영역, 헤게모니라고 하는 개념은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우리의 생활 속에 현실화 되어 나타난다. 정치는 일반 민중이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에 스스로 권위가 되어 우리를 지배하게 되고, 또한 역설적이게도 민중은 그 권위에 순순히 복종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권위는 일반 민중의 광범위한 동의를 전제로 한다. 동의를 전제로 성립한 권위의 영역은 민중을 통제하고 새로운 가치와 신념을 창출해낸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민중의 신념체계를 바꾸고 행동과 태도체계를 조작하게 된다. 이것은 필자 개인의 소견이 아니라 선대의 사상가 그람시 이론의 일부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의 현실. 민중은 철저히 농락당하고 있으며, 우롱당하고 있다. 권위의 영역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시민사회의 태도와 행동체계를 조작하고 창출하는 기작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도구가 바로 언론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특히 보수적인 종이언론사가 이에 해당된다고 본다.

보편적인 인간이 사는 사회의 근간은 진실과 정의가 무제한으로 통용되어야 하고 또한 수용 될 수 있어야 한다. 권위의 영역을 극복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바로 민중 속에 꿈틀 대고 있는 진실과 정의감이다. 거짓과 권모술수에 가려진 진실과 정의감은 아무리 억눌러도 들풀처럼 다시 돋아나게 되어있다. 이는 역사의 필연이다.

저 유럽, 프랑스대혁명으로 유명한, 인류사에 있어서 인간의 자유와 평등의 민주주의 이상을 추구했던 프랑스에서 한 유대인의 장교가 스파이의 누명으로 결국 종신형을 선고 받고, 아프리카 기아나의 적도 해안의 외딴 섬 감옥으로 수감되어 자신의 결백과 진실 그리고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확신이 없었다면 아마도 그는 그곳에서  자살하고 말았을 것이다.

혹자는 말한다. 그래도 지금의 현실에서 경제가 우선이라고. 무능한 지도자 보다 도덕성에 문제는 있지만 유능한 지도자가 더 낮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능함이라고 하는 그 능력의 문제가 얼마만큼 사회적으로 수치적으로 검증되었는지는 단순히 판단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경제라는 것은 수치해석적 개념도 중요하지만 가치해석적 개념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전근대적인 경제체제하에서는 수치해석적 경제가 더 중요할 수 있지만, 오늘 날과 같이 경제의 제 구조가 복잡하고 다양, 다변하고, 창의생성 소멸의 자생적 경제비중이 큰 현실임을 감안할 때 가치해석적 개념의 경제가 우리에게 더 큰 행복과 만족감을 줄 수 있다. 가치라는 것은 때로는 돈으로 환산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보라! 거짓을 진실로 포장할 수 없다. 그래서 감히 말한다. 지도자의 덕목 가운데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은 바로 도덕성이며, 누구에게나 정직해야 한다.

필자의 소박한 소망이 있다면 진실과 정의가 들풀처럼 살아 숨쉬는 지극히 상식적인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때로는 일시적으로 거짓이 진실을 이기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이번 대선이 바로 이러한 선거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지울 수 없지만, 어찌하랴! 민중은 하늘이거늘. 

다만, 대선 이후에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이 걱정될 뿐이다.


태그:#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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