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강동주 기자는 충남대학교에 재학중입니다.

A : 근데 혹시 벌레들의 음악이란 곳을 아시나요?
B : 아 그런 곳도 있나요?
A : 거기선 음악도 공짜로 들을 수 있답니다. 뭐 하러 그딴 음악에 귀한 돈을 씁니까?
C : 아~ 당신 참 개○○네.

 

힙합그룹 '에픽하이' 2집 앨범에 수록된 '신사들의 절약정신'이라는 내레이션 형식의 트랙이다. 짧고 강한 문구들이 가수의 냉담한 말투와 잘 어울린다. 이 트랙은 불법음원을 다운 받아 듣는 이에게 일침을 가하는 한편 음반을 구입한 이에게는 떳떳함을 준다. 후자에 속하는 사람들도 다른 음악은 불법으로 내려받아 듣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가수들은 자신의 노래가 타인에 의해 무료로 유포되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지만은 않았다. 그들은 기회가 생길 때마다 각종 캠페인이나 콘서트를 통해 음반을 직접 구매해 들어줄 것을 당부했다. 그러나 대중들은 '돈도 잘 벌면서 괜히 엄살을 부린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또 '음반을 사면 들을만한 곡이 한정되어 있다', '안 좋을까봐 미리 들어보는 것이다'라고 하며 음반의 질을 문제 삼기도 한다.

 

이와 같은 대중들의 문제제기에 가수들은 음반 소장가치를 높이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음악의 질을 높이는 것 외에도 음반 전곡을 테마로 한 영화나 만화책을 자체 제작한다든지, 한 장 값의 음반에 두 배의 음악을 수록하는 등 여러 방법으로 음반의 질을 높이려 한다.

    


하지만 가수들과 음반 제작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CD와 테이프를 비롯한 오프라인 음반 매출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6년 전인 2001년에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음반이 3장이나 있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울 정도로 올해의 최고 음반 판매량은 20만장을 밑돈다. 6년 전의 1/5로 축소된 것이다.

 
음반시장 불황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은 가수나 음반 제작자뿐만 아니다. 하루에 한 장도 못 파는 음반 소매점들 또한 날로 근심이 쌓여간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전체 음반 판매량이 줄어들면서 직접적으로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것이 소매상들이다. 대전광역시 유성구 대학가에서 10년 동안 음반 판매점을 운영해 온 ㄱ씨는 하루에 음반을 사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냐는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손사래를 치며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유동인구가 많은 대학가 매장인데도 일주일에 한 번 들르는 사람도 한 손에 꼽을 정도라고 한다.

 

지난해에도 이 대학가에서 음반 소매점 하나가 문을 닫았다. 그곳에서 두 장의 음반을 구입한 적이 있던 나에게 음반 시장의 불황을 피부로 느낄 수 있게 해준 일이었다. ㄱ씨는 "불법으로 음악을 내려받는 사람들도 원망스럽지만 확실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는 나라가 더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법이 과학이나 컴퓨터 기술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나랏일 하는 사람들이 문화 콘텐츠에 대한 대우가 부족하고 관련법도 부실하다. 정치인들이 원하는 건 정권이지 문화 발전 같은 건 안중에도 없다. 자기 잇속 챙기기에 바쁘지 정치인들이 문화에 투자하겠나?”

 

      


 

ㄱ씨는 인터뷰 말미에 귀가 솔깃해지는 말을 했다. 그나마 팔리는 음반도 인터넷 쇼핑몰이나 대형 할인 마트에서 더 싸게 판다는 것이다.

 

"많이 가져다 팔겠다고 싸게 떼어 가는데 법에 위배되는 것도 아니고 누굴 탓해."

 

인터넷 쇼핑몰이나 대형 할인 마트는 일반 소매점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음반을 판매하고 있다. 마우스 클릭 한 번으로 집까지 배달되니 편리하기도 하고 할인된 가격으로 제공받으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하지만 소량매입 할 수밖에 없는 소매점은 정가로 판매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장사가 안 된다고 한다. 더욱 어려워지는 생활에 웃음이 사라진 지는 오래되었다.

 

10대 학창시절, 좋아하던 가수의 음반 발매일을 손꼽아 기다리던 날이 생각난다. 그 날이 오면 친구들과 함께 자주 가던 음반 판매점 앞에 줄을 서서 내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었다. 그렇게 손에 얻은 음반을 조심스레 뜯어보던 설렘이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태그:#음반시장, #불법음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