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우터의 길은 멀고 험하다! 멱살 잡히는 스카우터 임창정, 영화 <스카우트>의 한 장면.

▲ 스카우터의 길은 멀고 험하다! 멱살 잡히는 스카우터 임창정, 영화 <스카우트>의 한 장면. ⓒ 두루미 필름


프로야구에 '괴물 신인'이 등장하면, 언론들은 순식간에 그 선수의 기량과 성장 가능성, 가족 관계, 취미, 좋아하는 연예인까지 알아낸다. 그 다음엔 그 선수를 키워 낸 감독과 코칭 스태프의 능력을 치하(?)한다.

그러나, '괴물 신인'을 구단으로 데려 오는 사람은 감독도 코치도 아닌 '스카우터'다. 그들은 텅빈 학원 야구 경기장을 밥먹듯이 드나들며 하루에 10시간이 넘도록 경기를 보고 가능성 있는 선수들을 발굴해 내지만, 좀처럼 주목받지 못한다.

이렇게 '음지'에서 일하는 '스카우터'들의 삶을 다룬 영화 <스카우트>가 만들어졌다. 14일 영화 개봉을 앞두고 <스카우트>를 만든 김현석(35) 감독과 현직 스카우터인 현대 유니콘스의 김진철(50) 부장, 삼성 라이온즈의 이성근(45) 차장이 지난 3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위치한 '벤티지 홀딩스'에서 대담을 나눴다. 

'괴물 투수' 선동열의 영입 전쟁을 다룬 영화 <스카우트>

 '스카우터'의 삶을 다룬 임창정 주연의 영화 <스카우트>

'스카우터'의 삶을 다룬 임창정 주연의 영화 <스카우트> ⓒ 두루미 필름


1980년 광주에서 세상을 뒤흔들 '괴물 투수' 선동열이 등장했다. 라이벌 K대에게 3연패의 치욕을 당한 Y대는 체육부 직원 이호창(임창정 분)에게 '선동열 스카우트'를 명한다.

'스카우터'라는 직업조차 없던 그 시절, 호창은 선동열을 영입하기 위해 '혈혈단신'으로 광주에 뛰어 든다. 

김현석 감독은 영화계에서 소문난 '야구광'이다. 시나리오를 썼던 <사랑하기 좋은 날>과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에도 야구가 등장하고, 감독 데뷔작 역시 조선 최초의 야구팀을 다룬 <YMCA 야구단>이었다(김현석 감독은 대담이 있던 날에도 사회인 야구 경기를 했다고 한다). 

광주 출신의 김현석 감독은 "광주일고 3학년 선동열이 '1980년 광주'에 있었다는 점에서 출발했다"며 "이 이야기에 스포츠 신문 구석에서 읽었던 '스카우트 비화'를 섞으면 흥미롭겠다고 생각했다"고 시나리오를 쓰게 된 계기를 소개했다.  

'스카우터'라는 낯선 직업을 다루기가 부담스럽지 않았냐는 질문에 김현석 감독은 "굳이 스포츠가 아니더라도 스카우트 경쟁은 어느 분야에나 있다"며 "이번 영화에서도 주연 배우 임창정씨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무척 고생을 했다"고 말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박진만 영입 작전'

 <스카우트>를 만든 김현석 감독은 소문 난 야구광이다.

<스카우트>를 만든 김현석 감독은 소문 난 야구광이다. ⓒ 양형석


영화 속에서 호창은 선동열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부모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심지어 전직 조직폭력배 서태곤(박철민 분)을 동원해 '납치 감금'까지 강행한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생각하면 일개 선수 한 명을 데려 오기 위해 그렇게까지 무리수를 뒀을까 싶다.

그러나 '프로야구 선수 출신 스카우터 1호' 김진철 부장(1982년 삼미 슈퍼스타스에서 데뷔)은 오히려 영화에 등장하는 스카우트 사례가 무척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김진철 부장은 "스카우터는 영입하고자 하는 선수의 도장을 받아 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며 박진만(삼성)의 스카우트 비화를 소개했다.

1995년,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한 현대는 인천고 졸업반 박진만을 '프랜차이즈 스타'로 키우기 위해 스카우트 팀에게 '무조건 영입'을 지시했다. 그러나 박진만은 이미 진학을 결심한 K대 합숙소에서 훈련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계약은커녕 아예 박진만과 접촉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애만 태우던 현대 스카우트 팀에게 기회가 찾아 왔다. 고교 시절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으로 1년 유급을 했던 박진만이 병역 신체검사를 받기 위해 인천 병무청으로 온다는 정보가 입수된 것. 고등학생이었지만 나이는 신체검사를 받을 나이가 됐기 때문이다.

병무청에 온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현대 스카우트 팀은 사전에 병무청 건물의 구조를 파악하고, '첩보 영화'를 방불케 하는 작전을 펼치며 신체검사를 마치고 나오는 박진만을 '납치'하는데 성공했다.

박진만의 인천고 선배이기도 한 김진철 부장은 박진만을 차에 태우고 무작정 강원도 원주로 달렸고, 원주에서 1박을 하며 박진만을 회유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3억원을 베팅했고, 유급생으로서 대학 진학 시 겪을 어려움도 설명했다.

결국 박진만은 대학 진학을 포기하며 현대 유니폼을 입었고, 오늘날 6개의 챔피언 반지를 보유한 프로야구 최고의 유격수로 성장했다. 김진철 부장은 "박진만의 부모가 '왜 내 아들 앞길을 막냐'며 집에까지 전화해 아내에게 항의를 할 때는 무척 난감했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어렵게 데려온 박진만은 2005년 FA 자격을 얻어 삼성으로 이적했다. 서운하지 않았을까? 김 부장은 "그래도 내가 힘들게 데려온 선수가 프로에서 성공했으니 보람을 느낀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지명한 선수가 부진하면 가시 방석 따로 없어"

 김진철 부장(왼쪽)과 이성근 차장(오른쪽)은 '라이벌'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친근한 선후배 사이 같았다.

김진철 부장(왼쪽)과 이성근 차장(오른쪽)은 '라이벌'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친근한 선후배 사이 같았다. ⓒ 양형석


영화 속에서는 두 대학(Y대와 K대)의 스카우터가 선동열을 영입하기 위해 불꽃 튀는 경쟁을 하지만, 지역 연고제와 드래프트 제도가 있는 프로야구에서는 무엇보다 가능성 있는 선수를 '알아보는 눈'이 무척 중요하다.

지난 2004년 드래프트 2차 지명에서 '돌부처' 오승환을 지명한 삼성의 이성근 차장은 "구위는 뛰어났지만, 팔꿈치 수술 경력이 마음에 걸린 것은 사실"이라며 "솔직히 이 정도로 잘 던질 줄은 몰랐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특히 연고 지역에 뛰어난 선수가 여러 명 등장할 때는 더욱 고민에 빠진다. 이성근 차장은 권혁(삼성)과 윤길현(SK 와이번스)을 두고 고민했던 2001년 1차 지명을 기억에 남는 스카우트 사례로 꼽았다.

포철공고의 권혁은 187cm 85kg의 당당한 체구를 가진 좌완 투수였고, 대구고의 윤길현은 2학년 때 전국체전 우승을 이끌었던 우완 투수. 이성근 차장은 장고 끝에 성장 가능성이 풍부한 권혁을 지명했지만, 프로에서 먼저 이름이 알려진 쪽은 '즉시 전력감' 윤길현이었다.

이 차장은 "입단 초기 권혁은 프로에 적응 못하고 있는데, 윤길현은 SK에서 '홀드'(불펜 투수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록) 수를 점점 쌓아가고 있었다"며 "당시엔 가시 방석에 앉은 기분이었지만, 지금은 두 선수 모두 잘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좋은 스카우터가 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역시 '선수를 알아보는 눈'일까? 김진철 부장과 이성근 차장은 모두 고개를 가로 저었다.

김진철 부장은 "선수를 보는 눈은 하루아침에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다"라며 "무엇보다 '성실함'이 우선이다. 기술적인 부분은 그 다음"이라고 말했다.

이성근 차장은 의외로 "'입조심'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많은 변수들로 인해 관심을 가진 선수를 지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에, 섣불리 지명하겠다고 말했다가는 자칫 선수와 부모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이야기다.

화려한 프로야구의 '음지'를 지키는 스카우터

"선동열을 주십시오" 극중 선동열 아버지(백일섭 분)에게 무릎 꿇고 설득하는 스카우터 임창정.

▲ "선동열을 주십시오" 극중 선동열 아버지(백일섭 분)에게 무릎 꿇고 설득하는 스카우터 임창정. ⓒ 두루미 필름


김진철 부장이 처음 스카우트 일을 시작했던 1980년대 후반에는 '스카우터'라는 직업의 개념조차 없었지만, 지금은 각 구단마다 2~4명의 스카우터를 보유하며 철저한 역할 분담을 하고 있다. 수첩 한 권과 볼펜 한 자루로 시작했던 자료 수집도 이제는 노트북, 초시계, 스피드건, 캠코더 등 첨단 장비들이 총동원된다.

그럼에도 스카우터는 여전히 외로운 직업이다. 선수들의 수많은 기록과 코칭스태프의 이력까지 달달 외우고 다니는 마니아들도 스카우터가 어떤 일을 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김진철 부장과 이성근 차장은 "스카우터를 소재로 삼은 영화가 만들어져 마음이 찡하다"며 "영화를 통해 우리가 하는 일이 알려질 수 있게 돼 무척 기쁘다"고 입을 모았다. 

내년에도 프로야구가 개막하고, 많은 신인 선수들이 팬들을 즐겁게 해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활약 뒤에는 최고의 옥석을 골라 낸 '스카우터'가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스카우트 김진철 이성근 김현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