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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부쩍 DMZ(비무장지대) 관련 이용 계획이 정치권과 자치단체에서 발표되고 있지만, 아직 DMZ는 미지의 땅, 금단의 땅으로 한반도를 가로지르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이에 "아름다운 통일로 가는 길, DMZ-개발이냐 평화냐, 지속 가능한 미래를 구상하자"를 주제로 총 4회에 걸쳐 DMZ 기획을 연재합니다. 대선주자의 DMZ 개발 공약, 지자체의 DMZ 개발 계획에 이어 마지막으로 '지금 우리에게 DMZ는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평화운동가 이시우를 만났습니다. 최근 DMZ 논의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말]
역사가 빚어낸 DMZ 특유의 공간. DMZ의 평화지대화는 분명한 목표이지만,  실효성 있는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당면한 과제가 적지 않다.
 역사가 빚어낸 DMZ 특유의 공간. DMZ의 평화지대화는 분명한 목표이지만, 실효성 있는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당면한 과제가 적지 않다.
ⓒ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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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늦은 밤, 한 포털 사이트는 "남북정상회담 의제로 DMZ와 NLL 평화지대화 방안 제안"이라는 제목을 머릿기사로 뽑았다. 난데없는 속보인가 싶어 자세히 읽어 보았다.

잇따라 나오는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는데, '청와대 어떤 관계자' 얘기를 인용하고 있었다. <문화일보>는 한 술 더 떠 "남-남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며 싸움을 부추겼고, 한나라당에서도 "정부가 갖가지 화려한 이벤트를 마련한" 것 같다며 냉소적인 비판으로 바통을 넘겨 받았다.

하지만 청와대는 브리핑 자료에서 "지금보다 평화체제를 논의하고 평화를 더 안정화시키기 위한 여러 가지 제안과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여러 가지 제안들을 저희는 귀기울여서 듣고 있다, 또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이 검토되고 있는" 과정에서 나오고 있는 이야기라고 밝히고 있다.

아무튼 이름없는 '어떤 관계자'가 고민하고 있는 '어떤 아이디어'를 인용하고 있는 것치고는 파급력이 적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바야흐로 DMZ 전성시대의 서막이 열리고 있는 것일까?

DMZ 평화지대화, 1970년대부터 논의


DMZ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제의는 1971년으로 거슬러 간다. 제317차 군사정전위원회에서 연합국 측 수석대표 로저스는 "군사인원의 철수, 민간 작업원의 농토 복구 허용" 등의 내용을 담은 평화적 이용안을 제안했으나, 북한은 "기만적 행위"라고 일축했다.

이에 대응하여 북한 측도 '평화유지를 위한 7개항'이라는 비슷한 제의를 던졌다. 이후 몇 번 비슷한 제의가 오갔으며, 1988년 유엔총회 연설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은 DMZ 내에 '평화시'를 건설하자는 깜짝 제안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1992년에 발표된 '남북 기본합의서'에서 DMZ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원칙이 천명되기에 이른다. 12조는 "DMZ의 평화적 이용 문제를 합의서 발표 후 남북 군사공동위원회에서 합의하며 추진"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이후 실천적 수준으로 발전시키지는 못했다.

<민통선 평화기행>의 저자 이시우씨는 최근 정치권 일각에서 회자되고 있는 "DMZ 평화지대화" 관련 내용들이 "남북기본합의서에 담긴 평화적 의제"의 연장이라는 느낌을 받는다고 평했다. '평화지대화'로 거론되는 내용들이 주로 남북 기본합의서를 작성하면서 아이디어로 오갔던 주제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내용적으로 후퇴된 부분이 있다"고 우려했다.  

"육지는 DMZ, 서해상은 NLL이 평화 의제로 떠오르지만 정작 남북 간에 합의되었던 내용들이 잠잠한 것은 의외입니다. 논의 과정을 통해 발전시킬 부분은 키우고, 다듬을 부분은 거르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한강하구가 관심에서 밀려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오히려 준비 안 된 의제가 아닌가 하는 판단이 듭니다."

"평화지대선언 실효 거두려면 유엔사 넘어야"

그렇다. 여전히 DMZ 문제의 핵심은 빠져 있다. "평화지대 선언을 실효성 있게 하려면 DMZ 관할권을 계속 주장하고 있는 유엔사를 넘어서지 않으면 안된다"고 이시우씨는 강조한다. DMZ 철책선을 따라 연일 탐사 사업을 진행중인 녹색연합 서재철 국장도 비슷한 생각이다.

"평화지대 제안은 참신하면서도 어떻게 보면 당위적인 이야기다. 그러나 북미 간에 해결 없이 단 한 발도 나갈 수 없는 문제다"라고 그는 단언한다. 평화지대의 개념과 실체가 뭔지를 따져 보자는 것이다.

DMZ 평화는 선포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는가의 문제라는 것이다. 서 국장은 "(정전협정상 규정을 위반하고) DMZ 안에 들여 놓은 중무장 화기와 100여개의 GP를 우리가 과연 뺄 수 있"는 상황인지가 의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우리는 앞으로 DMZ라는, 유래를 찾기 힘든 독특한 지대에 관한 다양한 논의와 계속 대면하게 되리라. 그러면서 DMZ가 던지는 우리 시대의 '역설성'을  계속 고민하게 될 것이다.

현직 대통령, 주요 대선주자들 할 것 없이 DMZ에 관한 상상력을 맘껏 펼쳐내는 요즘이지만, 여전히 한쪽에서는 DMZ의 당면한 과제를 파고드는 사진작가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문제시하고 있는 역설의 사건은 그래서 상징적이다.

지난 4월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됐다 14일 보석으로 풀려난 평화운동가 이시우씨를 지난 21일 강화도 작업실에서 만나 그 역설의 의미를 물었다.

평화운동가 이시우씨.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가 최근 보석으로 석방되었다. DMZ 평화지대화로 가기 위해서는 유엔사 문제를 우선 다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평화운동가 이시우씨.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가 최근 보석으로 석방되었다. DMZ 평화지대화로 가기 위해서는 유엔사 문제를 우선 다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 김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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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의 희망, 한강하구를 국제하천으로"

-요즘 한창 책을 쓰느라 바쁘다고 들었다. 어떤 내용인가?

"이전에 썼던 내용을 다시 정리하고 있다. 한강하구 습지의 역사, 갯벌과 간척의 역사, 항행의 역사·군사사(軍司史)·정전협정사를 '유라시아적 관점'에서 풀어보려고 한다. '한강하구'를 놓고 열린 재판 과정에서 기소되었는데, 아예 책을 내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최근 한강하구 개발이 대선후보의 주요 공약, 남북회담 의제로 거론되고 있다. 어떻게 보는지?
"이명박 후보의 '나들섬 구상'은 전제부터 문제가 있다. 한강하구가 DMZ라는 인식부터가 틀렸다. 한강하구는 정전 협정상 DMZ가 아니다. '배 띄우기 행사'도 이를 알리는 것이었다.

나들섬은 사구를 이용하자는 것인데, 국제해양법상 무인도는 영토로 간주하지 않지만, 조수 간만의 차로 가라앉기도 하고 뜨기도 하는 '간출지'는 영토로 본다. 지금 남북 사이에 형성된 '간출지'는 오히려 영토 분쟁의 소지가 있는 곳이다. 가능한 한 정치적 합의가 필요한 지대다. 극단적으로 생각하면 간조가 돼도 뭍이 드러나지 않을 정도가 될 수 있는데, 거기다 오히려 섬을 세워 버리면 갈등의 소지가 더 커질 수 있다.

정상회담 의제로도 제시된 모래채취 사업은 한강하구를 경제적으로만 바라보는 발상이다. 백번 양보해서 합의점을 만든다 해도 지역주민의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쉽지 않고, 간조 때 물에 잠기는 부분까지 해야지, 바닥까지 파내는 것은 비상식적이다.

역사적으로 한강하구 뱃길이 끊긴 것은 전쟁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조선후기부터 뱃길이 끊겼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조선시대부터 숲이 파괴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일제시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숲이 파괴되고, 짧은 시간 동안에 퇴적과정이 집약적으로 진행된 결과다. 전쟁과 분단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생태 차원에서 이미 고장이 나있던 곳이다. 한강하구는 더욱 근원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단편적인 계획만 가지고 접근하다가는 큰 재앙을 일으킬 수 있다. 환경·평화체제·군사 문제를 총체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한강 하구가 우리 민족에게 큰 가능성이 있는 곳인데, 그 가능성을 진작에 차단시키고 재앙으로 만들 수 있는 것들을 막아야 한다."

- '유라시아적 관점'이 무엇인지 자세히 설명해 달라.
"유라시아적 가능성을 보는 것이다. 한강하구에 대해 보는 관점은 이렇다. 한민족은 역사적으로 4번째 시기를 거치면서 유라시아로 편입될 가능성이 있었다.

고인돌로 상징되는 평화적 교류의 시기, 즉 해양 실크로드 시기. 두 번째가 최초의 유라시아 제국인 몽골의 침략이다. 강화도로 천도하려고 한강하구를 넘는데, 피난이라는 단순한 사건이라기보다는 유라시아 몽골 제국에 어떻게 대응하는가 하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다.  세 번째가 병인양요, 신미양요로 이어지는 시기다. 프랑스의 침략을 우리는 그저 이겼다 졌다는 시각으로 정리한다. 세계가 하나로 묶여가는 정세인식이 부족했다. 그리고 한국전쟁이다. 이로써 우리는 일방적으로 세계체제에 편입되었다.

유라시아 정세를 염두하면서, 유라시아의 희망으로 한강하구를 새롭게 조망하고 싶었다. 구체적인 제안으로, 한강하구를 국제하천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휴전협정을 보면 한강 하구 이용의 권한을 '쌍방 선박'으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쌍방은 유엔사와 중국, 북한을 말하는 것인데, 유엔사는 참전국인 18개국을 모두 포함하고 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유엔사 참전국을 다 끌어들여 세계적인 이슈가 되게 해서, 정전협정의 정반대 모델을 만들자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적인 문제가 바로 유엔사다.

"유엔사 문제 푸는 게 DMZ 논의의 출발"

- 유엔사에 대한 이시우씨의 주장이 국가보안법 위반의 주된 기소 이유였다. 무엇이 문제인가?
"유엔사령관은 한미연합사령관이 겸직하는 자리인데, 서류상에만 존재하는 조직이라 할 수 있다. 유엔사도 유엔(UN)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 전쟁 당시 유엔은 미합참의장 권한 아래 유엔사를 두는 것으로 결의했다.

1975년 키신저 미 국무부장관은 유엔사 해체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했다. 이후 1975년 유엔총회에서 유엔사 해체 결의안이 통과되니깐 위기감이 조성되었고 공백을 메우고자 1978년 한미연합사가 창설되었다. 이때 발표된 문건을 보면 유엔사령관의 '전시작전통제권'은 한미연합사 사령관에게 이양이 아닌 위임된 사항임을 밝히고 있다. 겸직을 전제로 위임이 되었다. 이것은 한미연합사의 근본적인 한계다.

연합사 해체를 정부가 주도하는 것은 대단한 변화다. 하지만 유엔사가 해체되고 연합사가 해체되는 것이 순서적으로 맞다. 실리적으로도 한미연합사 해체는 한미갈등으로 비쳐지기 때문에, 미국하고 이야기도 하기 전에 남남갈등을 유발한다. 하지만 유엔사는 주권문제와 직결되는 문제다. 현실적으로도 유엔사는 남북교류에 있어 계속 어깃장으로 놓고 있다."

- 왜 미군은 유엔사를 고집하는가?
"유엔사령부는 주한미군에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북을 공격한다면 유엔안보리 결의 등 절차가 필요하지만, 합의 없이도 유엔사의 존재는 공격을 가능케 한다. 또한 북에 대한 점령권한이 유엔군에 이미 부여되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북쪽 지역이 유엔군의 점령 지구냐, 대한민국의 수복지구냐는 논쟁은 아직 해결되지 않는 문제다. 이 때문에 이승만과 미국이 치열한 갈등을 했다. 미국은 대한민국 헌법3조('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크고 작은 섬들로 한다')를 인정하지 않는다.

또 하나 유엔사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주한미군은 주한미군만 통제하지만, 유엔사령관으로 있으면 주일미군까지 통제 가능하기 때문이다. 유엔사의 후방기지로 주일미군의 일곱 개 기지를 사용, 전 주일미군이 통제된다. 세계 유일의 역할, 포기할 수 없는 요소다."

- DMZ를 어떻게 보는가?
"처음 DMZ에 대한 접근은 생태에 있었다. 하지만 다니면서 조금 이상한 숲이 형성되어 있다고 느꼈다. 어렵게 형성되고 있는 DMZ의 생태적 가치를 소홀히 생각하는 것은 문제지만, 논의의 우선순위를 매기는 것이 중요하다. 제도적·법적 문제를 해결하고 나머지 의제들을 해결해야 한다고 본다. 지금도 북쪽은 시계청소를 위해 불을 지르고 있다. 이 상태를 그대로 두고 보존한다는 것은 기형적인 행위이다.

DMZ를 유네스코 보존지역으로 만들자는 주장은 문제가 있다. 우선 법적으로 불가능하다. 평화조약·평화협정이 우선이다. 아이디어로 논의될 수 있지만 실제로는 불가능하다. DMZ 보존을 가능케 한 철책선도 원래는 없었던, 기껏해야 1968년 세워진 것이다. 그걸 기념해서 보존한다거나, 이를 이용해 한강하구를 지켜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군대는 전쟁을 수행할 때 가장 많은 파괴, 환경 파괴를 기본 임무로 하고 있다. 군부대가 해왔던 우연한 조치에 환경 보존을 의탁하는 것은 한계를 드러낸다.

미래지향적으로 통합적인 관리 체계와 방안을 세우되, 현실적으로 얽혀있는 유엔사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DMZ 논의의 출발이다. 유럽 '다뉴브강 위원회' 선례를 본받을 필요가 있다."


태그:#DMZ, #남북정상회담, #이시우, #유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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