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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탐방 마지막날 한강변을 달리는 이재오 의원.
 자전거 탐방 마지막날 한강변을 달리는 이재오 의원.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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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3㎞. 이재오 최고위원 일행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헤멘 것을 포함하면 거의 600㎞ 정도 달린 것 같습니다. 지난 22일부터 4박5일동안 매일 11시간여에 걸쳐 120㎞의 국도변을 자전거로 달렸습니다.

이명박 후보의 좌장 격인 이재오 최고위원이 이끄는 '한반도 큰 물결 자전거 탐방' 동행취재. 어슴프레한 새벽에 출발해 해질녘 여장을 풀었고, <오마이뉴스>-환경운동연합팀은 기사를 쓰느라 하루 평균 1~2시간밖에 눈을 붙이지 못하고 페달을 밟은 강행군 일정이었습니다.

추석연휴 내내 하루 1~2시간 눈붙이는 600㎞ 강행군

"조·중·동은 휴업중, 오마이뉴스는 취재 중."

이 최고위원 일행으로부터 들은 얘기입니다. 함께 휴일을 반납하고 동행 취재를 하고 있는 우리 일행에 대한 평가입니다.

자신들은 자전거를 타면 그만이지만, 자전거 위에서 휴대폰으로 시시각각의 상황과 느낌을 문자로 날리고 사진까지 찍어 현장 송고하는 <오마이뉴스>의 모습이 그들의 눈에서는 신기해 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성주군수·문경시장·여주군수 등 이 최고위원을 '알현'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길거리로 나온 인사들의 입에서 "<오마이뉴스>가 올리는 기사를 보면서 이 최고위원의 위치를 파악해 여기에 나왔다"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그들도 보통은 넘었습니다. 대부분이 50·60대인 그들에게는 힘겨운 레이스. 잠자리라도 편하게 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하루를 제외하고 3일동안 마을회관에서 묶으면서 주민들과 대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중간에 되돌아가거나 중간에 합류한 사람들도 일부 있었지만, 10여명 이상이 부산 을숙도에서 서울 여의도까지 두 바퀴에 몸을 실은 채 완주했습니다. 특히 63세인 이재오 의원은 맨 선두에 서서 노익장을 과시했습니다.

그들에게서 신념을 보았다, 하지만...

이재오 의원과 함께 이화령 터널 안을 질주하는 김병기 기자.
 이재오 의원과 함께 이화령 터널 안을 질주하는 김병기 기자.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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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군데군데에서 기념사진을 찍을 때마다 두 주먹을 불끈 움켜쥐고 "힘"을 외쳤습니다. 경부운하 공약을 밀고 나갈 힘, 그 여세를 몰아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정권을 접수할 힘을 갈망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명박 후보는 벌써부터 국민 50%이상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이는 정권을 접수하고도 남을 힘입니다. 그 힘을 갖고 있는 집단이 10%대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경부운하를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닫혀있기 때문입니다. 정책적 논리가 아니라, 표를 얻기 위한 정략적 논리로 귀가 멀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페달을 밟으며 '국토개조론'을 신념처럼 주장했습니다. 아니 신념이었습니다. 수십개의 고개를 쉼없이 넘었던 것도 바로 이 신념 때문입니다.

이 최고위원은 힘겹게 오른 고개 마루의 정상에 서서 "저기, 경부운하를 타고 물길을 거슬러 올라오는 바지선이 보인다"고 거듭 외쳤습니다. 이번 탐방길에 그들이 흘린 땀방울을 보면서, 전 그 신념을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문제는 그 신념이 과학성과 구체성이 결여된 채 막연한 환상만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막연한 정치적 신념이 현실화된다면 국가개조를 통한 국운융성이 아니라 '국가 재앙'의 길로 가는 게 자명한 상황입니다. 그것이 저의 신념입니다.

저들도 이젠 저의 신념을 '반대를 위한 반대'니, '무조건적 반대'정도로 치부하지 말았으면 하는데, 이번 기회에 그 다양성을 인정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서로의 신념을 인정한 채 이번 자전거 탐방처럼 함께 레이스를 하면서 차근차근 토론과 검증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쓸쓸한 보름달, 그 아래서 '침상 인터뷰'

4박5일간의 자전거 탐방 마지막 날인 25일 밤, 이 최고위원 일행과 우리는 여주 한 마을회관 앞마당에 둘러앉아 그간 쌓인 회포를 풀었습니다. 마을회관 앞 불빛은 하지만 객지에서 보내는 추석날 쓸쓸하게 밤하늘을 훤히 밝히는 보름달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한참 대화를 나눈 뒤 저희 일행은 이 최고위원을 간신히 설득해 그의 잠자리인 마을회관 2층에서 40여분간 인터뷰를 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420여㎞를 쫓아 온 우리가 어렵사리 얻은 토론의 시간입니다. 우선 전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명박 후보 측이 주장하는 물동량 예측치를 계산해보면 경부운하에 하루 6척 또는 12척의 바지선만 띄우면 됩니다. 수십조원을 들여 건설한 운하에 고작 이 정도의 바지선이 떠다닌다면 국운융성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에 이 최고위원은 "토목적이고 경제적인 이야기는 전문가들이 잘 알아서 할 일이다"면서도 "하지만 나는 관광이나 레저, 지역개발 효과가 분명히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답변했습니다.

물류혁명을 주장하면서 들고 나온 경부운하 공약에서 그 알맹이인 물류 문제가 오류인 것으로 판명나자 이젠 관광이나 지역개발 문제를 들고 나오고 있는데, 사실 그 수준이 '…일 것이다'라는 정도의 추측성 답변입니다.  

전 또 수질 문제와 관련해서는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이 최고위원께서는 낙동강은 버려진 강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강에 배를 띄우는 등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겉으로 보기엔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강은 현재도 엄청난 생산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민 2/3가 한강과 낙동강의 물을 직접 취수해 먹습니다. 이곳에 배를 띄우기 위해 보나 댐으로 막는다면 강물을 직접 취수해 먹을 수 있을까요? 배 6~12척 띄우는 일과 국민의 젖줄을 유지하는 일. 무엇이 중요합니까. 국민의 젖줄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면 그 대안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이에 이 최고위원은 "강변여과수 등 간접취수 방식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이 그 대안을 내놨고, 그렇게 하면 식수 문제는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강변여과수 문제는 이미 이명박 후보가 서울시장으로 재임할 당시 서울시 상수도 사업본부장에게 지시해 타당성 검토를 한 결과 경제성과 취수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사업불가 판정을 내린 상태"라며 객관적 사실을 말했지만, 곧이곧대로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어보였습니다. 객관적 사실, 이 후보가 직접 지시해 작성한 보고서조차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닫혀있는 셈입니다.

한반도 큰 물결? 제발 그 물길 막지 말라

이명박 후보의 경부운하 공약에 따르면 맑고 수심이 얕은 이런 달천에도 배를 띄워야 한다.
 이명박 후보의 경부운하 공약에 따르면 맑고 수심이 얕은 이런 달천에도 배를 띄워야 한다.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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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쟁점이 있지만, 제가 보는 경부운하 논쟁의 핵심은 바로 이 두 가지입니다. 경제성도 없는 사업에 수십조원을 쏟아붓고, 국민의 먹는 물조차 심각하게 위협한다면 그 것을 강행할 필요가 있는가에 대한 의문입니다.

이 두가지 쟁점에 대해 이명박 후보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학자, 전문가들 역시 이 최고위원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정치인 이 최고위원은 그나마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휴일조차 반납하면서 정치행보를 했지만, 경부운하 연구자들은 대형 토목공사에 필요한 측량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골방에서 상상의 나래를 펴면서 '누더기 공약' 수리에 골몰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최고위원 자전거 행렬의 후미에 따라붙어 페달을 밟으며 가장 많이 보았던 것은 '한반도 큰 물결'이란 글자였습니다. 이 최고위원 일행이 입었던 하늘색 티셔츠 뒷면에 흰색 글씨로 박힌 글자입니다. 최근 경부운하 명칭을 고치자는 주장이 한나라당 일각에서 터져나오고 있는 데 아마도 '국운융성의 길, 경부운하'의 홍보 카피를 대체할 구호인 듯 합니다.    

"제발 한반도의 큰 물결인 한강과 낙동강 곳곳을 댐과 보로 막지말라!"

4박5일동안 그들의 뒤를 따라 페달을 밟으면서 안장 위에서 끊임없이 중얼거린 혼자말입니다. 배를 띄울 수 있는 수심을 유지하기 위해 한강과 낙동강 곳곳을 댐과 보로 막을 텐데, 저런 깃발을 내걸고 부산과 서울까지 홍보하러 다닌다는 것이 역설이지요. 운하의 이런 단순 개념만 알면 금방 이해할 수 있는 사실을 다른 사람도 아닌 이 나라의 유력 대권후보가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 자체가 비극적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국도를 타고 오면서 많은 주검들을 목격했습니다. 일명 '로드킬'. 고양이· 강아지 뿐만 아니라 뱀·개구리·청솔모· 새 등 수많은 생명체들의 시신이 황금 들녘을 가른 아스팔트 도로 위에 납작하게 엎드려 있었습니다. 사소하게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인간을 이롭게 할 목적으로 진행되는 개발의 이면입니다.

그 수많은 로드킬을 보면서, 전 문득 이런 생각도 해봤습니다. '갇힌 물은 썩는다. 경부운하가 건설되면 물은 당연히 썩을 것이다. 또 수심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 준설을 하면 물고기들의 집인 모래가 없어질 것이다. 모래는 물을 정화시키는 중요한 요소다. 갇힌 물인데다가 여과지끼지 없어진다면, 그 물을 먹는 인간은 어찌될까?'

"아빠,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서 운하가 필요해요?"

이화령 터널을 지나 물을 마시며 웃는 이재오 의원.
 이화령 터널을 지나 물을 마시며 웃는 이재오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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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최고위원은 추석 연휴를 이용해 자전거로 투어를 하면서 경부운하에 대한 부정적인 분위기의 반전을 노렸을 겁니다. 이 최고위원은 이 기간동안 주민들을 만나 대화하고, 실제 운하 예정지 현장을 보면서 경부운하 민심을 청취하고 한편으로는 그 현실 가능성을 따져보자는 취지를 내세웠습니다.

이 최고위원은 탐방이 끝난 뒤 "경부운하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이번 탐방은 '자전거 여행'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이른바 '자출족'인 저에게 이번 여행은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국도를 달리다가 한적한 시골길이 나오면 목청을 높여가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들꽃들과 나무들의 이름을 불러보고, 콧속으로 전해지는 수만 가지의 향기에 취해 다리 아픈 줄 모르고 달렸습니다. 이번 여행 길에 함께했던 박상규 기자와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처장, 채수민 간사, 이항진 여주환경연합 집행위원장도 흡족한 모양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했습니다. 또 가족들이 모처럼 만나는 추석날, 함께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귀경길에 휴게소서 만난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들고있는 모습을 보면서도 씁쓸한 심경을 가눌 길이 없더군요. 4박5일, 아니 부산에서 하루 묵은 일정을 감안하면 5박6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저에게 초등학교 4학년인 큰 딸이 대뜸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빠, 난 처음에는 운하라는 게 운석이 떨어진 자리인줄 알았어요. 그런데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서 운하가 왜 필요한 건데요?"

전 한바탕 크게 웃었습니다. 옆에서 여섯살인 둘째딸은 영문도 모른 채 모처럼 만난 아빠의 목을 타고 올라가면서 계속 묻습니다.

"아빠, 그런데... 운하가 뭐여요? 경부운하가 뭐냐고요?"

이 아이들에게 경부운하를 가르쳐야 할까요. 

상주 들녘을 달리는 김병기 기자.
 상주 들녘을 달리는 김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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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경부운하, #이재오, #자전거 여행, #한반도 큰 물결,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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