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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13일자 석간 1면에 '신정아 누드사진 발견'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부제목은 "'원로, 고위층에 성로비' 가능성 관심"이다. 3면에는 신정아씨의 누드 사진 두 장이 모자이크 처리된 채 게재됐다. 심지어 법률가에게 '성로비 처벌 가능한가'를 묻고 있다. 이미 '성로비'가 기정사실화된 듯이 쓰고 있다.

 

여성 누드 공개가 국민의 알권리?

 

다른 일간지 기사들도 앞다투어 '특종'을 전파하며 누드사진 대공개를 콜럼버스 아메리카 대륙 발견처럼 보도하고 있다. 수사 과정에서 한 여성의 사생활이 철저히 폭로되는 것을 넘어서, 이제는 한 여성의 벗은 몸을 공개해놓은 셈이다.

 

여성에게 성적인 측면은, 대단히 민감하고 취약한 부분이다. 여성에게 성적 순결을 강요하는 이중 잣대는 사회에서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다. 성적 사생활이 공개된 여성은 사회에서 쉽게 '매장'당하며, 상대 남성이 있을 경우 그에 비해 부당하게 손가락질당한다.

 

함께 성관계를 가지고 누구는 직업생활을 완전히 접고 모든 사회적 관계를 떠나 파탄에 이르러야하는 반면에, 누구는 심지어 이를 팔아 '이윤'을 남기기까지 한다.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켰던 여성 연기자, 가수들의 OO비디오 사건을 떠올려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유명인이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이 법칙은 똑같이 작동한다.

 

대학가 화장실에는 몰카족들이 때때로 등장하며,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팔아 한몫 챙기고자 하는 '성매매 알선업자'들이 도처에 있다. 여대생들이 자주 감직한 화장실에는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매개로 한 대출광고가 흔히 붙어있기도 하다. 사회에 거대하게 깔려있는 '여성의 섹슈얼리티 팔아 한몫 벌기'는 네티즌이나 언론조차 다를 바가 없다. 이들은 여성이 사회적으로 취약하다는 사실을 알며 사생활, 특히 '여성'으로서 사생활이 폭로될 경우, 결코 대응하지 못할 만큼 취약하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OO녀' 사건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한 여성이 나이트에 가서 술에 취했다. 때마침 이를 포착한 한 남성이 이 여성을 숙소로 데려가 신분증을 얼굴에 대고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유포했다. 이럴 경우 설령 처벌을 받더라도, 상대 여성이 만신창이로 매장당하는 것에 비해 그 처벌이 훨씬 경하다는 것을 가해자는 이미 알고 있다.

 

미디어는 이러한 뉴스가 '조회수'되고 '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때문에 이런 사건이 터지면 발 빠르게 이를 취재해 확산하는 역할을 도맡아 한다. 기저에 작동하고 있는 '진정한 가해자'와 '가해의 매커니즘'에 차분히 분석하는 경우가 얼마나 되던가. 국민에게 알 권리가 있다고? 국민에게 알 권리가 물론 있다. 제대로 된 정보를 알 권리가 있다는 뜻이다.

 

"신정아 보도에 여성혐오 시각 깔려있어"

 

만약에 개인의 누드를 유포하거나 공개할 경우 어떤 처벌을 받게 될까. 한국성폭력상담소 김민혜정 활동가는 말한다.

 

"성폭력 특별법 제14조에 따르면 통신매체이용음란죄가 있습니다. 성적으로 취약한 여성의 누드 사진을 찍어서 가해자 지인이나 피해자 지인에게 보내거나, 이 사진을 이용해 유포하는 경우를 규정합니다. 이는 엄연한 범죄로 2년 이하 징역,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상담은 성폭력상담소에도 비일비재하게 접수된다. 고소하기 힘든 경우가 많은데, 데이트 폭력의 경우 나체를 이용해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거나 사회생활을 못하도록 직장에 유포하겠다고 협박하는 경우다. 맺고 있던 관계망이 순식간에 차단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협박은 '정말로 먹힌다.'

 

"기본적으로 물의가 있을 때, 특히 돈과 권력과 관계있는 여성일 경우 분명히 성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거라고 추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유명인의 경우 이런 의심을 받을 때면, 모든 국민이 '기본적인 인권' 개념을 놓아버린 채 이 여성의 사생활을 까발려도 되고, 논평을 해도 되는 경우로 만들어버립니다."

 

여성주의 온라인 공동체 언니네트워크의 유여원 활동가도 <문화일보>의 사진 게재에 "정말 황당한 소식이다"라고 말한다.

 

"신정아씨 보도가 있을 때, 학력 위조, 낙하산을 떠나서 계속해서 '섹슈얼리티'를 이용해서 보도를 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수많은 문제들 가운데 그 중에서 '섹슈얼리티'를 찍어서,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성로비'를 때려대는 것은 기본적으로 여성혐오가 깔려있는 시각입니다. 최근 성폭력 가해자의 인권 문제까지 나오는 마당에 여성의 누드사진을 게재한다는 건 (기본적인) 인권 측면에서도 말이 안 됩니다."

 

한국 미술계의 또다른 젊은 작가 정은영씨 또한 난감한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신정아씨는 우리 세대와 직접 연결되어서 전시했던 경우가 별로 없었습니다. 중견이나 원로 작가 혹은 기업갤러리 위주로 전시를 했기 때문에 젊은 작가들과는 관계가 소원한 부분이 있었죠. 어떻게 되면 활동분야가 다르기도 하고,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하기 이전에는 오히려 내부에 의견이 별로 없었던 편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이번 누드 사건이 터지기 이전부터, 언론 보도가 이상한 방향으로 풀리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섹슈얼한 측면을 부추기기 위해서(선정적인 보도를 하기 위해서) 신씨를 더 화려하게 조명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신데렐라는 명칭도 그렇고요. 미술계의 대표적인 인물처럼 치장해서 내세우는 데에는 언론의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여성단체, <문화일보> 사과 촉구 성명

 

여성단체는 이와 같은 보도 사태가, 단발적인 사태가 아닌 '한국 사회의 총체적 여성인권 부재'의 일환으로 보고 관련 대응을 준비중이다. 한국여성의전화연합,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서울여성의전화, 언니네트워크는 연합하여 공동 성명서를 발표하고, <문화일보> 편집팀의 사과문 게재 및 책임자 사퇴 등을 촉구할 방침이다. 언니네트워크는 14일 오전까지 사이버 성폭력과 언론의 관음증 관련 성명서를 게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태그:#신정아,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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