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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들어가기 전에] 학력 콤플렉스, 그 상처 그대로 두면 결국 곪으나

학력 콤플렉스. 사회 각계 유명 인사들이 학력 위조로 톡톡히 창피를 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두들 그들을 손가락질합니다. 이 와중에 학벌 위주의 사회를 비판하는 소리도 나오고 있지만, 워낙 많은 유명 인사들이 학력 위조를 한 사실이 드러나자 그런 비판은 목소리를 제대로 드러내고 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배신감을 느끼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자신보다 나을 것도 없는 사람들이 학력을 위조해 부당하게 인기와 명예, 부 등을 얻었다고 생각해 분노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비판을 들어야 할 것이 유명 인사들뿐일까요. 실제로 평범한 사람들도 학력에 관해 위조는 아닐지라도 숨기거나 애써 답변을 피하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요.

이번에 오마이뉴스에서 학력 콤플렉스에 관한 응모글을 모집한다고 해서 많이 망설였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혹시라도 누가 볼까 싶어 차마 쉽게 글을 쓰겠다는 결심을 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습니다. 제가 학력 콤플렉스를 겪었다는 이야기보다 그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문제점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꼭 말하고 싶었습니다. 학력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는 것 자체부터 그 사람은 상처를 갖고 있는 것이며, 그 상처를 제대로 치료해주지 않으며 곪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제 1막(상처)] ○○대학교 갈 거면 기술이나 배워서 빨리 취직해!

"야 이놈아! 이런 대학교 갈 거면 가서 기술이나 배워서 빨리 취직해!"

대입 원서를 넣으려고 할 때였습니다. 아버지께서 어느 대학교에 원서를 넣었느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좋은 대학교는 아니었지만 사실대로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는 불같이 화를 내셨습니다. 저는 아무 말도 못하고 아버지 옆에 앉아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습니다.

아버지께 혼나서가 아니었습니다. 가슴 속에서 알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기 때문입니다. 매일 차로 저를 등하교시켜주시던 아버지께서는 저에 대한 희망이 크셨겠지요. 아니 그래도 형보다는 작았을 것입니다. 장남이었기에 거는 기대가 더 크셨을 것이고 형도 느끼는 부담감이 더 컸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부담감을 느끼면서 고등학교에 다니지는 않았습니다. 두 번째여서 그랬는지 아니면 곧잘 공부를 잘하던 형도 'SKY'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대학교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인지 마음 편하게 고등학교에 다녔습니다. 그러나 결국 대학교를 선택하는 순간 제 마음은 3년간 겪어야 할 고생을 한꺼번에 겪고 말았습니다.

'공부를 더 열심히 할 걸.'

대학교를 선택할 그 무렵 하루에도 수십 번도 더 들었던 생각입니다. 그리고 차라리 아버지처럼 화를 내면 그래도 마음이라도 더 편했을 것을, 돌아가신 어머니께서는 제 수능 점수를 보고 별다른 말없이 이곳저곳에 전화해 정보를 얻어내는데 여념이 없으셔서 제 마음을 더 아프게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서울에 있지만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은 대학교를 찾아내 그곳에 원서를 넣게 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가려고 했던 대학교 명단에는 있지도 않은 대학교였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지방으로 가기는 싫었기에 원서를 써서 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도와는 주셨지만 어머니께서도 아버지처럼 속이 부글부글 끓기는 하셨나 봅니다. 어느 날인가 어머니와 말다툼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차피 내가 좋은 대학교 들어가도 그거 다 엄마가 자랑하려고 하는 거잖아. 그게 나를 위해서인 거야?"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철없던 말이었습니다. 아직 서른도 안 된 저도 아이를 낳으면 아이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교에 가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당시 어머니야 오죽하셨겠습니까.

대학교 선택을 두고 화를 내시던 아버지와 노심초사하시던 어머니 모두 제가 ○○대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확정되자 더는 아무 말씀 안 하시고 '가서 열심히 공부하라'는 격려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졸업식날 다 같이 점심 식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전 평생 잊지 못할 말을 아버지께 들었습니다. 그날 아버지는 술이 약간 취하신 상태였습니다.

"야, 이놈아! 아빠는 공부가 너무 하고 싶었는데 돈이 없어서 대학교에 못 갔어! 대학교에 갈 수 있는데도 못 갔다고! 그런데 너는 돈을 내 줄 수 있는 아빠가 있잖아. 좋은 대학교만 들어가면 얼마든지 돈을 내 줄 수 있는 아빠가 있는데 왜 그걸 못하냐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어머니께서 중간에 말을 끊기는 했지만, 알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나 왜 내게 좋은 대학교를 그토록 권유했는지를. 그것은 고졸자보다 대졸자가, 대졸자 중에서 명문대학교를 나온 이들이 사회에서 더 잘 살 가능성이 높고 대접을 잘 받는다는 것을 몸 속 깊이 느끼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아직 30도 안 된 저도 그런 감정을 종종 느끼는데 50을 넘게 사셨던 부모님이야 오죽하셨겠습니까. 그렇게 마음고생을 하고 대학교에 들어왔습니다.

[제 2막(희망 속에 핀 절망)] 패기로 콤플렉스를 극복하리

저는 그리고 대학교 1학년 때 결심을 했습니다.

'학교가 나를 못 키우면 내가 학교를 키운다.'

이런 결심으로 '○○대 인지도를 높이는 모임' 등을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새내기 때는 패기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얼마 못 가 저는 현실의 벽을 인식했습니다. 어른들과 만나면 종종 제가 다니는 학교를 묻곤 했습니다. 조금 창피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자신감 있게 대답하는 것이 한 명이라도 더 우리 학교를 알게 하는 길이라고 생각해 애써 태연한 척 다니는 학교를 말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예상하기는 했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저를 실망하게 하였습니다.

"그게 어디 있는 거야?"
"그런 대학교도 있었어?"
"서울에 있나? 몇 호선?"

그러다 가끔 반갑게 아는 척하는 어른을 만날 때도 있지만, 그때도 역시 실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 거기, 경호학과로 유명한 데 아냐?"

제가 다니던 대학교에 있지도 않은 학과가 제일 유명하다면서 아는 척하시는 어른을 보니 제가 무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저는 점차 학교 이름 말하는 것을 피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충격적인 한 마디를 듣고 나서부터였습니다.

"○○대? 거기 나와서 뭐 하려고? 딴따라 하려고?"

언젠가 명절에 한 친척분이 어느 대학교에 다니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내가 다니는 대학교 이름을 듣고 저렇게 말을 한 것이었습니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으나 명절에 말다툼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저 '그래, 내가 공부를 열심히 안 해서 더 좋은 대학교 못 간 게 잘못이다'라고 생각하며 속으로 화를 가라앉히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학교 이름을 말하는 것은 점점 두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비겁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경우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D대는 합격자 발표를 이렇게 하는 거 있지. 그래서 나는 내가 안 된 줄 알았다니까."

3년 전 제가 중국에서 어학연수를 할 때였습니다. 원래부터 일찍 자는 편이었던 저는 그날도 일찌감치 침대에 누웠습니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옆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같이 방을 쓰는 형이 친하게 지내던 다른 유학생을 데려온 모양이었습니다.

"K대도 그러냐?"

목소리를 들어보니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동갑내기 친구 한 명과 동생 한 명이 와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아는 척을 하려고 이불을 걷고 일어나려는 순간 들려오는 이야기가 저를 멈칫거리게 했습니다. 세 명이 자기가 다니고 있는 대학교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어나면 저 역시 그 대화에 동참해야 할 것이고, 그러면 분명히 제가 다니는 대학교도 밝혀야 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차마 이불을 떨쳐내고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어쩐지 그들 앞에서 제 입으로 직접 제가 다니고 있는 대학교를 입 밖으로 낸다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 방에 있던 나를 포함한 4명 중 3명은 그래도 이름을 들으면 알 만한 대학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 중 둘은 이름만 들으면 다 알 K대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 앞에서 내가 다니는 대학교 이야기를 하면 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습니다. 저를 무시하지 않을까. 지금껏 나를 바라보던 잣대와 다르게 나를 보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학력 콤플렉스의 가장 무서운 점은 바로 이런 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평소에 좋게 보던 이들도 어느 학교를 나왔느냐에 따라 그 평가 급격하게 변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그 때문에 스스로 자꾸 감추고 보지 않게 하려고 변해가는 모습을 인식하면서도 감추기에만 급급한 모습! 그리고 그러다 보니 '수치심'이라는 감정은 종종 대상을 찾아 '분노'라는 감정으로 변해가기도 합니다.

[제 3막(분노)] 거짓말쟁이들!

잠에서 깨고도 일어날 수 없었던 그날도 그랬습니다. 그날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는 척하면서 더 화가 났던 것은 같은 방을 쓰던 형 때문이었습니다. 그 형과 저는 방을 같이 쓰는 첫날 어렵게 각자 자신이 다니던 대학교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그때 그 형은 분명히 지방에 있는 대학교에 다니다가 D대로 편입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얘기를 할 때는 마치 자신이 1학년 때부터 거기에 다닌 것처럼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괜히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습니다. 그 형이 정말 미웠습니다.

'거짓말쟁이!'

그 형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밥을 먹다 어머니께서 사촌형이 ○○대학교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어, 그 형 원래 전문대 다니지 않았어?"
"편입했다고 하네."

편입. 편입을 통해 학력을 높이고자 하는 사람들도 많기에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편입하는 것도 공부를 싫어하는 이에게는 분명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형이 편입을 하다니 잘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 그 형 그래도 영어 같은 거는 잘했나 보네."
"분교래."

또 다시 속이 끓어오르기 시작합니다. 정리를 해봅니다. 무엇이 저를 이렇게 끓어오르게 만든 것인지.

첫째, 수능이라는 기준으로 보면 분명 제가 훨씬 더 잘 봤습니다.

둘째, ○○대학교 분교라면 제가 다니는 학교보다 적어도 커트라인 점수로 따지자면 훨씬 낮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 화가 나는 것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셋째, ○○대학교 분교면서 ○○대학교 다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저보다 공부를 못했으나 오히려 사람들이 보기에 저보다 더 똑똑한 사람으로 보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던 것입니다. 우스운 일인가요?

[제 4막(?)] 언젠가는...

여기까지가 제가 겪었던 학력 콤플렉스에 관해 들려드릴 수 있는 이야기 전부입니다. 아, 마지막으로 솔직히 말씀드려야 할 것이 있는 거 같군요. 제 학교요. 궁금하시죠? 그래서 제가 나름대로 답변을 준비해두었습니다.

'저는 학교를 밝히고 싶으나 밝히는 순간 여러 가지 악플이 달릴 수도 있고, 자칫 포털 사이트에 송고되기라도 하면 모교를 욕되게 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으며, 다른 동문들에게 본의 아닌 피해를 끼칠 수도 있으니 학교 이름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솔직히 말해두면 이것은 제가 생각해둔 맺음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왕 솔직히 쓰겠다고 결심한 거 좀 더 솔직히 끝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아직 자신이 없습니다. 제가 어느 대학교를 나왔는지 말하는 것이 여전히 두렵습니다. 그래서 제 학력 콤플렉스는 '겪었던' 것이 아닌 여전히 '겪고 있는' 진행 중인 상태입니다. 극복하지 못하면 '겪고 있는'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겠지요.

그래서 저는 이 오마이뉴스를 통해 독자들에게 약속드리고자 합니다. 언젠가 대학교 새내기 시절처럼 '학교가 나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학교를 키울 수 있는' 그런 인재가 되는 날이 온다면 반드시 학교 이름을 밝히겠다고. 그때는 정말 거짓말하지 않겠다고. 그때 제가 거짓말을 하지 않도록 여러분이 지금 이 순간 증인이 되어주셨으면 합니다.

왜 그런 약속을 하느냐고요? 저보다 한참 위의 선배 중에는 정부 주요 기관에서 주요한 위치에 계신 분들도 있고,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 만한 선배님들도 있습니다. 그분들 학력을 보았습니다. 물론 학력 위조 안했습니다. 다만 대학교 이름을 아예 빼버리더군요. 그것도 역시 자신을 속이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약속드립니다.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말하겠다고. 이 지긋지긋한 학력 콤플렉스 극복하겠다고!

그때까지 저 극복할 수 있겠지요?

덧붙이는 글 | <내가 겪은 학력 콤플렉스> 응모글


태그:#학력콤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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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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