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LA 다저스는 1959년부터 1966년까지 8시즌 동안 네 번이나 월드시리즈에 진출했고 그 중 세 번을 우승했다. 브루클린 다저스 시절을 포함해서 다저스가 이토록 화려한 성적을 거둔 시기는 없었다. 당시 다저스의 황금기를 이끈 일등공신을 꼽으라면 선발 투수였던 샌디 쿠펙스와 돈 드라이스데일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1961년부터 1966년까지 6시즌 동안 무려 240승(쿠펙스 129승+ 드라이스데일 111승)을 합작해 냈으며 1963년에는 쿠펙스가 25승 5패 평균자책점 1.88, 드라이스데일이 19승 17패 평균자책점 2.63을 기록, 다저스를 월드시리즈 정상까지 올려놓았다.

두 투수의 성적이 가장 좋았던 시즌은 쿠펙스가 26승 8패 평균자책점 2.04, 드라이스데일이 23승 12패 평균자책점 2.77을 기록했던 1965년이다. 비록 샌디 쿠펙스가 항상 먼저 거론되기는 하지만 돈 드라이스데일 역시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던 에이스였다.

에이스 두 명이 만들어내는 강력한 원투펀치는 모든 야구 감독들의 바람이다. 한국 프로야구에도 이런 막강한 원투펀치가 있었다. 프로야구 역사에 큰 획을 그었던 원투 펀치는 선발 로테이션이 정착이 안 된 초창기에 만들어졌다.

662이닝을 합작한 장명부-임호균의 1983년

▲ 1983년 30승의 전설 장명부.
ⓒ 한국야구위원회
1983년 일본 프로야구에서 91승을 거두고 한국 프로야구 삼미 슈퍼스타즈에 입단을 한 장명부는 60게임에 등판을 해서 36경기 완투(완봉승 5번)를 해내며 30승(1위)16패 6세이브 평균자책점 2.34(2위)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당시 장명부가 던진 이닝은 427 1/3이닝(1위)이었다. 일반 선발급 투수들이 세 시즌에 걸쳐 달성할 기록들을 장명부는 단 한 시즌 만에 이뤄낸 것이다.

그러나 삼미에 투수가 장명부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장명부에 가려져 있었지만 임호균은 장명부와 짝을 이뤄 마운드를 이끌었던 투수다. 물론 35경기에 출장을 해 12승(6위)15패 2세이브 평균자책점 3.03(13위)을 기록한 임호균을 장명부와 원투펀치로 묶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임호균의 1983년을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은 당시 이 투수가 234 2/3이닝(2위)을 던졌다는 점이다.

정규 이닝만 따진다면 한 시즌 900이닝을 소화하던 당시에 장명부와 임호균은 무려 662이닝을 책임진 것이다. 팀이 소화한 이닝의 73.7%를 원투펀치가 책임진 경우는 이들이 유일하다. 비록 대부분 장명부에게 치우쳐진 기록이지만 두 투수는 1983년 95경기에 등판을 해 42승을 합작했으며 662이닝을 던졌으니 1983년을 지배했던 원투펀치라 부를만하다. (이들은 이듬해인 1984년 23승 29패를 합작했다.)

진정한 원투펀치 김시진-김일융의 1985년

1984년 35승을 합작해내며 서서히 위력을 보여주었던 삼성 라이온즈의 김시진과 김일융은 1985년 무려 50승(11패)을 합작해내며 프로야구 최강의 원투펀치에 이름을 올렸다.

당시 김시진은 47경기(2위)에 등판을 해 10번의 완투(4위)를 포함, 25승(1위)5패 10세이브(2위) 평균자책점 2.00을 기록했으며 269 2/3이닝(1위) 동안 201개의 탈삼진(1위)을 잡아내며 모든 투수부문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활약을 했다.

재일교포 투수였던 김일융의 활약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 34경기에 등판을 했던 김일융은 11번의 완투(2위)를 포함 25승(1위)6패 평균자책점 2.79(9위)를 기록했으며 226이닝(3위) 동안 107개의 삼진(4위)을 잡아냈다.

이전 장명부-임호균과는 다르게 이들은 나란히 25승씩을 기록하는 고른 활약을 하며 삼성을 전·후기 통합우승으로 이끌었다. 진정한 의미의 원투펀치였던 셈이다. 이후에도 원투펀치로 불리는 투수들은 지속적으로 나왔지만 나란히 25승을 거둔 원투펀치는 이들이 유일하다.

체계적인 선발 로테이션이 정착화 되면서 김시진-김일융과 같은 강력한 원투펀치 대신 세 명의 투수가 고른 활약을 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끈 '원투쓰리' 펀치가 탄생하기도 했다.

강력한 원투펀치를 기대하며

▲ 랜들과 함께 프로야구 최고의 원투펀치를 이루고 있는 리오스.
ⓒ 오마이뉴스 김귀현
1994년 LG 트윈스의 이상훈(18승)-김태원(16승)-정삼흠(15승)은 나란히 15승 이상을 거두며 프로야구 최초로 '원투쓰리' 펀치를 이뤄냈으며, 2000년 현대 유니콘스의 임선동-김수경-정민태는 나란히 18승으로 공동 다승1위에 오르는 놀라운 활약을 하며 현대를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최근 두산 베어스의 외국인 투수 다니엘 리오스가 '20승-1점대 평균자책점'투수에 도전하면서 맷 랜들과 함께 시즌 중반까지 강력한 원투펀치의 위력을 보였지만 최근 리오스의 상승세가 주춤하면서 그 위력이 한풀 꺾인 상태다. 리오스는 여전히 '평균자책점 1점대 다승왕'의 목표는 사정권에 두고 있다.

두산이 무서운 이유가 바로 포스트시즌에서 2승을 책임질 수 있는 강력한 원투펀치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원투펀치가 무서운 이유이기도 하다. 누구나 이런 원투펀치를 꿈꾸지만 원투펀치를 보유하기 위해서는 운이 따라줘야 한다.

프로야구 최고의 투수로 꼽히는 해태 타이거즈 선동열의 경우에는 이상윤·이강철 등과 짝을 이뤘지만 정작 이강철이 18승을 거두는 맹활약을 했던 1993년 선동열이 마무리로 돌아서면서 김시진-김일융을 넘어서는 원투펀치를 이뤄내지 못했다.

만일 이강철이나 조계현 최고의 시즌에 '선발 투수' 선동열과 만났다면 프로야구의 원투펀치 역사가 달라졌을지 모른다. 사족을 하나 달자면 기아 타이거즈의 윤석민과 한기주가 원투펀치를 이룬다면 팀의 대선배들인 선동열과 이강철도 못해냈던 강력한 원투펀치가 되지는 않을까 생각이 든다.

시대를 이끄는 강력한 원투펀치를 보는 것은 팬들에게도 더 할 나위 없는 즐거움이다. 85년의 김시진-김일융처럼 시대를 지배하는 원투펀치의 탄생을 기대해본다.
2007-08-13 11:06 ⓒ 2007 OhmyNews
김시진 김일융 장명부 임호균 원투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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