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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는 어떤 곳일까?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커피와 차를 마시는 곳. 사랑하는 이 아니면, 매우 귀중한 사람을 만나는 곳. 카페는 조금은 고상한 곳이다. 요즘 들어 이런 고상함을 넘어 '북카페'가 등장하여 글 읽기는 좋아하는 이들의 발걸음을 유혹하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시대가 되었다. 책을 읽는 이유가 무엇이든 읽는 것 자체가 나쁠 것은 없다.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독후감을 쓰기 위해서, 부모님이 억지로 읽으라고 하니까, 문학과 철학이 만날 수도 있고, 문학과 정치가 만날 수도 있다. 이 만날 수도 있는 것을 실제로 만나게 하는 일을 시도한 책은 별로 없다. 그런데 문학과 철학의 만남을 주선하고 나선 이가 있으니 '김용규'다.

김용규는 <철학카페에서 문학 읽기>를 통하여 우리에게 문학 작품으로 남아 있는 괴테의 <파우스트>, 헤세의 <데미안>,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 셰익스피어의 <오셀로>, 카프카의 <변신>, 사르트르의 <구토>,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카뮈의 <페스트>, 최인훈의 <광장>,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조지 오웰의 <1984년>, 마르셀 프루트스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통하여 철학적 사고로 인도한다.

우리는 다양한 서평을 만난다. 하지만 서평의 대부분이 책 자체에 대한 느낌을 담은 독후감이 머물거나 조금 깊이를 더하면 자신의 환경과 접목시키는 정도이다. 이에 비하면 <철학카페에서 문학 읽기>는 매우 신선한 시도이며, 책을 읽은 후에 단순한 느낌에만 거치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 사고를 통하여 저자와 책 속의 인물이 말하고자하는 시대적 정황과 삶의 정황, 사상과 이념을 살핌으로써 책 읽기의 깊이를 더해준다.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먼저 책 내용이 '이렇다', '저렇다'라는 설명을 통하여 철학적 사고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살아가는 현재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상이나 사회와 시대의 일상을 예를 들고, 그 예가 어떤 철학적인 의미가 있는지를 설명하면서 책의 내용이 담고 있는 철학 사상을 들추어낸다. 카프카의 <변신>을 통하여 그가 어떤 철학적 문학 읽기를 시도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한낮을 마냥 달구던 태양이 산 넘어가면 나무 그늘 밑으로 새들이 집을 찾아 돌아가고, 거리의 푸른 가로등 밑으로 사람들이 부산하게 가정으로 돌아가지요. 그런데 가정이란 무엇일까요? 도대체 그것이 무엇이기에 우리 모두가 밤이 오면, 몸이 피곤하면, 마음이 무거우면 그곳으로 돌아갈까요?" (본문 인용 116쪽)

"예를 들어 나는 앙드레 지드는 '나는 가정을 증오한다'라고 외쳤고, 헤겔도 그의 <법철학 강요>에서 '가정이 안식처이자 곧 감옥'임을 강조했습니다."(본문 117쪽 인용)


김용규는 지금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있다. 그가 가정을 예로 든 이유는 카프카의 <변신>을 말하기 위함이다. 그레고리가 곤충으로 변신했을 때 가족들은 아파했다. 절망했다. 이유는 그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흉측하게 변한 그레고리를 가족들은 사랑할 수 없었고 결국 그를 죽인다.

카프카는 <변신>을 통하여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가족의 모든 것을 떠안은 그레고리는 감당할 수 없었다. 변신할 수밖에 없었다. 흉측한 모습으로. 흉측하게 변한 그레고리를 가족들은 철저히 소외시킨다.

가장 순수한 가족조차 경제 논리에 따라 배제시키고, 소외시킨다고 말한다. 김용규는 <변신>을 통하여 바로 이 시대가 당면한 '인간소외' 문제를 다루면서 이를 자본주의 본질과 연결시키고 있다.

"인간소외란 인간이 자기의 본질을 상실하여 비인간적 상태에 놓이는 일을 말하지요. 그런데 카프카의 <변신>이 상징하고 있는 현대인의 인간소외는 자본주의의 본질과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그레고리의 가족들이 태도가 돌변한 것, 어린 자식이나 늙은 부모를 내다 버리는 것에도 알고 보면 모든 가치를 오직 하나의 가치, 곧 경제적 가치로 바꾸어 계산하게 하는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문제가 깔려 있다는 말이지요." (본문 125쪽 인용)


<변신>을 통하여 우리 시대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자본이 주인이 되는 시대이다. 재미있는 일은 기독교인들의 사상은 '신본주의'이다. 하나님이 주님이라는 신앙이다. 하지만 이들이 가장 줄기차게 주장하는 사상은 바로 '자본주의'다. 자본주의는 성경을 통하여 비유하면 '바알사상'이다. 즉, 우상숭배라는 말이다.

자본이 주인이 되어 버린 이 시대는 '사람'없다.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의 <변신>은 이것을 잘 나타내고 있다. 자본이 인간을 지배하면서 인간은 철저히 소외되었고, 자본을 주인으로 숭배하면서 자본만이 자신을 살릴 수 있다고 하지만 그 자본을 손에 쥔 순간 그 자신도 이미 소외되어 버렸다.

이 소외의 망령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없을까? 김용규는 마르셀을 등장시키고 있다.

"마르셀은 모든 인간다움은 가정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는 '가족적이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가정이란 이 세상에서 최초로 가장 순수한 의미로 '우리'라고 부를 수 있는 '공동체'입니다." (본문 129쪽 인용)

사람은 관계를 통하여 자신이 인간임을 알게 된다. 이 관계의 첫 걸음이 '가족'이다. 가족이 됨으로 인간이 된다고 그는 말한다. 그 예가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 영화 <집으로>를 예로 들었다. 이들 작품과 영화에서 우리는 가족이란 무엇이며, 관계성이 무엇인지 발견한다. 인간 소외의 문제를 가족을 통하여 해결하고자 한다.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은 <변신>을 통하여 인간소외를 다루듯이 13편의 책을 통하여 이 시대 인간이 겪고 있는 문제점이 무엇이며, 이를 해결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그리고 있다. 문학을 통하여 철학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덧붙이는 글 |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 김용규 저 | 웅진지식하우스 |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 - 에서 까지, 철학, 세기의 문학을 읽다

김용규 지음, 웅진지식하우스(2006)


태그:#철학, #문학, #김용규,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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