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극장가 공포영화의 개봉 수는 예년보다 2배 이상 많은 수치다. 충무로는 왜 공포 영화에 올인 하는 것일까? 요즘 한국 영화계가 어렵다. 공포영화가 나름대로 틈새시장과 고정 관객이 있다. 관객층이 일정한 저예산 공포 영화가 할리우드 대형영화에 대항해 한국영화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고 보는 것이다.

공포 영화의 제작비는 대략 20억 원이다. 손익분기점은 대략 60만∼70만 명이다. 다른 영화에 비해 제작비가 적기 때문에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여기에 스타 의존도도 낮다. 짧은 시간 안에 만들고 한철 바짝 수익을 올릴 수도 있다.

할리우드 영화가 강세인 올해는 더욱 한국영화계가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는 터이다. 이런 점 때문에 다른 영화 장르는 제외시키고 공포영화 제작에 올인 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작품은 새로운 감각과 독특한 소재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공포 영화에는 귀신이나 괴물이 나오고는 하는데, 올해 개봉 영화는 귀신이 없다. 귀신이나 괴물이 있어야 무섭다는 생각은 이젠 버리라며 문제는 사람이라고 한다. 영화 <검은집>은 사이코패스라는 생소한 소재로 사람이 더 무섭다는 것을 보여준다.

<두 사람이다>도 사람이 무섭다는 것이 기본 콘셉트이다. 영화 <리턴>은 수술 중 각성의 고통을 겪은 아이가 25년 후 돌아와 벌이는 복수극이다. 역시 사람이 무섭다. 해부용 시체를 소재로 한 <해부학 교실>, 퓨전 시대극 <기담> 등도 귀신이 없다.

우리나라 공포영화의 핵심은 억울한 자의 한을 풀어주는 것인데, 이는 약자에 대한 배려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러한 귀신들이 갈수록 사라지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약자의 해원의 모티브 무차별적인 살인자가 등장하는 서구 공포 영화와는 다른 점이다.

올 극장가에는 원한의 귀신이 없어졌다. 올해 공포영화로 첫 개봉되었던 <전설의 고향>은 혹평을 받고 말았다. 두 가지 지적이 있을 수 있다. 해원은 이제 식상하다거나 혹은 관객의 기호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어쨌든 원한을 풀어주는 모티브의 공포영화가 다시금 변화를 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좋은 모티브라고 해도 시대적 코드와 감각에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무조건 잔혹한 인체 훼손의 '슬래셔 무비'(Slasher Movies)만 지향하고, 약자적 한을 배려하는 영화들이 사라지는 것은 바람직하지만은 않다.

다른 해보다 의학을 소재로 다룬 공포영화가 많아졌는데 그 이유는 아무래도 <하우스>나 <그레이 아나토미>, < CSI > 등 미드에서 메디컬 스릴러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해부학 교실>, <기담>, <리턴>이 모두 병원, 의학을 소재로 한 영화다.

과거 <닥터K>, <종합병원> 등의 작품이 있었지만 완성도가 부족해 외면 당했다. 올해 드라마 <하얀거탑>, <외과의사 봉달희>가 좋은 반응을 보이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무엇보다 <리턴>에서는 <하얀거탑>의 장준혁 카리스마를 김명민이 다시 이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소재 자체가 다양화 된 면도 있다. 싸이코패스(검은 집), 수술 중 각성(리턴), 의대생 해부학(해부학 교실)이 다루어졌고 <기담>에서는 일제시대 경성의 한 병원에 얽힌 여러 에피소드와 원혼 이야기가 중심이다.

올해는 어느 때보다 많은 영화들이 심의에서 반려되었는데 심의가 엄격한 것인가, 아니면 영화가 문제인 것인가 생각해볼 수 있다. <검은집>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는데 메인 예고편 역시 재심의 판정을 받고 다시 편집했다.

<두 사람이다>, <리턴> 등이 18세 판정을 받은 가운데 제작사 측은 심의 분류 등급대로 개봉하기로 했다. 영화 <므이>도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는데 자진 삭제해서 15등급으로 낮추었다. <기담>도 재심에서 가까스로 15세 등급을 받았다.

이렇게 심의에서 반려되는 이유는 공포 영화들이 리얼리티를 강조하면서 잔인한 장면을 많이 등장시키기 때문이다. 또한 경쟁이 치열하고 고정 팬들이 생기다보니 새로운 것을 보여주기 위해 점점 자극적인 장면 구성에 치중한다. 한편 다른 장르에 비해 공포영화에 대한 심의 기준이 더 모호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보기도 한다. 이 때문에 명확한 심의 기준의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여하튼 잔인성만 추구하는 공포물은 결국 관객의 외면을 받겠다. 깜짝 놀래주기와 대책 없는 잔인함만 있는 장르는 아니다. <극락도 살인사건>과 같이 색다른 소재나 이야기로 흥행에 성공을 거두는 것보다 스토리보다는 '깜짝 효과'와 '묻지마 폭력'이 난무하는 영화들도 많아지고 있는데 이는 오히려 관객에게 불쾌감만 준다.

흥행 실패다. 잔혹성만 강조하는 영화는 우리나라 정서와 맞지 않는다. 한국에는 정적인 요소가 강하고 이는 해원의 코드가 오랫동안 한국공포물을 주름 잡아온 이유이기도 하다. 잔혹한 묘사보다는, 탄탄한 구성과 다양한 소재, 볼거리가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가볍게 잔혹성만 추구하는 한국영화의 문제는 결국 제작 시스템의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여름 한철 장사에 이용하는 장르라고 여기며 과거 성공한 영화를 답습하는 일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또한 대형 제작비를 통해 수익만을 겨냥한다면 저예산을 통해 새로운 기획과 창작성을 시험하지 못하고 만다.

오히려 공포물은 자본을 많이 투입할수록 오히려 마이너스 효과가 강할 수 있다. 시장적 안정성보다는 실험적 창조성과 완성도가 더 중요하다. 한국 영화계가 어렵다 보니 모두 다 공포영화에 올인 하면서 자본의 경합이 벌어지는 레드 오션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데일리안에 보낸 글입니다.

2007-07-26 09:58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데일리안에 보낸 글입니다.
공포영화 한국영화 검은집 리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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