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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고롱고로 분화구에 있는 마가디 호수에서 물을 마시고 있는 못생긴 누. 소의 뿔과 염소의 수염, 말의 꼬리를 조합한 것 같은 외모 때문에 동물계의 프랑케슈타인으로 불린다.
ⓒ 조수영
여행 8일째인 오늘(1월 9일)은 새벽같이 응고롱고로 분화구 안으로 들어가는 날이다. 심바 캠프장의 입구에는 사파리 차량들이 벌떼처럼 모여 천장의 뚜껑을 열고 사파리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응고롱고로는 현지의 말로 '거대한 구멍'을 의미한다. 수백만 년 전 이곳의 화산이 폭발할 때 용암은 흘러내리고, 화산재는 세렝게티를 덮었다. 용암이 빠져나간 산의 윗부분은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내려앉고 말았다.

내려앉은 타원형의 분화구는 동서 19㎞, 남북 16㎞나 된다. 분화구 속을 사파리 하는 데도 3~4시간 걸린다. 참으로 넓다. 분화구의 바닥은 해발 1700m이고, 분화구를 감싸고 있는 화구의 높이는 2200~2300m나 된다.

▲ 분화구를 내려다본 모습. 응고롱고로 분화구는 동서로 19km, 남북으로 16㎞인 거대한 구역에 자리잡은 동물의 왕국이다. 맹수들이 우글대는 들판에서도 마사이족을 가축을 몰고 다닌다.
ⓒ 조수영
함몰 전 화산의 높이는 4500m 가까이 되었으리라고 한다. 킬리만자로 높이의 화산이 절반 정도 날아가 버린 대분화라 생각하면 된다.

응고롱고로 자연보호구역은 대표적인 응고롱고로를 비롯해 몇 개의 다른 분화구를 포함하는 지역이다. 북동쪽에는 아직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활화산이 있다지만 대부분의 화산은 활동을 끝내고 야생 동물을 기르는 요람이 되었다.

박달나무로 맹수에게 몸 지키는 마사이족

▲ 분화구로 들어가는 내리막길. 600m에 이르는 급경사는 스릴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 조수영
산비탈을 따라 600m 깊이의 분화구로 들어간다. 내려가는 길은 급경사라 스릴이 있다. 동물들은 인근 세렝게티 초원에서 병풍같이 둘러쳐진 이 '벽'을 수시로 넘나드는 것이다. 또 이 비탈길은 마사이족과 그들의 가축이 다니는 길이다.

아침 햇살 속의 응고롱고로는 신비감과 장엄함이 느껴진다. 응고롱고로 분화구는 자체 기후 패턴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넓다. 한쪽에는 눈부신 햇살이 내리쬐는데 반대편에는 구름이 잔뜩 끼거나 비가 내리기 일쑤이다. 때로는 구름이 움푹한 분화구 전체를 가득 메울 만큼 진하게 깔리기도 한다.

분화구 속 평지에는 이미 도착한 마사이족의 가축들이 풀을 뜯고 있다. 그들의 망토 색이 붉은 것은 야수들이 싫어하는 색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그들이 들고 다니는 박달나무 지팡이는 가축을 몰 때나 맹수로부터 몸을 지킬 때 쓴다. 어릴 때부터 야생동물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맹수가 우글대는 들판에서도 마사이족은 거리낌 없이 가축을 몰고 다닌다.

이른 아침이라 생각했는데 동물들은 벌써부터 활동을 시작한 모습이다. 누렇게 펼쳐진 초원에는 누와 얼룩말이 풀을 뜯어 먹고 있고, 호수에는 하마가 몸을 담그고 있다.

▲ 어디론가 향하고 있는 사자 가족. 북동쪽에는 아직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활화산이 있다지만 대부분의 화산은 활동을 끝내고 야생 동물을 기르는 요람이 되었다.
ⓒ 조수영
신이 만든 동물원에 기린이 없다?

분화구 속에는 기린을 제외한 거의 모든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다양하고 많은 야생동물들이 '신이 만든 동물원'에서 살고 있다.

동물들의 천국 응고롱고로이지만 기린은 없다. 기린이 좋아하는 아프리카 아카시아 나무가 없어서라고 한다. 한편으론 외곽 장벽이 너무 가팔라서 둔한 기린이 올라오지 못했기 때문이라 추측하고 있다.

동물들은 대부분 이 곳에서 태어나 이 곳에서 죽는다. 그도 그럴 것이 사방이 500~600m의 산으로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어서 동물들이 이것을 넘어가기란 힘들어 보인다.

사자 연구가들은 아프리카 전 지역을 통틀어 분화구 속의 사자들이 가장 못생겼다고 한다. 그 이유는 이 곳의 사자들은 외부로부터 고립되어 있는 환경 탓에 오랫동안 동종번식을 했기 때문이란다. 사람으로 치면 근친교배로, 넓은 지역에서 살며 다른 집단의 피가 섞이는 대신 가까운 일족들 사이에서만 교배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세렝게티의 사자보다 인물이 못 미치는 것 같다.

못생긴 사자, 못생긴 누

▲ 응고롱고로의 아기 사자. 이곳의 사자들은 외부로부터 고립된 환경 탓에 오랫동안 동종번식을 했다. 그래서 좀 못 생겼다.
ⓒ 조수영
▲ 누. 창조의 신이 동물을 만들다 창의력이 떨어지자 눈앞에 보이는 동물들을 합쳐서 만들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 조수영
'와일드비스트(wildebeest)'라 불리는 누는 동물계의 프랑케슈타인으로 유명하다. 소의 뿔과 염소의 수염, 그리고 말의 꼬리를 조합해서 만든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창조의 신이 많은 동물들을 만들다 창의력이 떨어지자 눈앞에 보이는 동물들을 합쳐서 만들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못생긴 얼굴의 누는 뛰는 모습 또한 어설프다. 다리를 쭉쭉 뻗으며 달리는 다른 동물들과 달리 구부정한 허리에 다리가 가운데로 모이는 것이 절뚝거리는 것 같다.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 같은 저 뜀박질로 일 년에 두 차례 초원을 찾아 대이동을 한다니 대단하다.

▲ 사파리차를 아랑곳하지 않고 얼룩말이 달린다.
ⓒ 조수영
초원에는 누와 얼룩말이 어우러져 풀을 뜯고 있다. 정말 많다. 누와 얼룩말은 같은 종이 아님에도 무리가 한 데 어울려 이동하고 있다. 이는 맹수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한 전략적 동거인 셈이다.

동물학자들에 따르면 색맹인 누는 20㎞ 밖의 냄새까지 맡는다. 반면 후각이 안 좋은 얼룩말은 15㎞ 밖까지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다.

또 둘 다 풀을 뜯어 먹지만 얼룩말은 긴 풀을 뜯어 먹고 누는 작은 풀을 뜯어 먹는다. 사자나 하이에나 같은 적을 방비하자면 함께 지내는 게 서로에게 보탬이 된다.

▲ 얼룩말은 검은색 몸에 흰색 줄무늬가 있다. 뒤에 보이는 것은 누의 무리
ⓒ 조수영
하마는 민감성 피부환자

작은 연못에는 스무 마리 정도의 하마가 몸을 식히고 있다. 미동도 않고 물 속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하마의 등은 마치 그 위에 앉은 물새들의 바위섬처럼 보인다.

대부분의 시간을 물속에서 보내는 하마는 알고 보면 햇빛에 약한 민감한 피부를 가진 환자이다. 물 밖으로 나와 뜨거운 햇볕 때문에 피부가 건조해지면 하마의 피부는 이내 붉은색을 띠는 끈끈한 분비물을 내어 마치 피땀을 흘리는 것처럼 보인다. 이 붉은 분비물은 끈적끈적하기 때문에 체온의 손실을 막고 피부의 건조와 자외선의 침투를 방지해주는 역할을 한다.

▲ 대부분의 시간을 물속에서 보내는 하마는 알고 보면 햇빛에 약한 민감한 피부를 가진 환자이다.
ⓒ 조수영
▲ 코끼리와 마주하다.
ⓒ 조수영
멀리서 코끼리 두 마리가 다가온다. 사파리 차는 정해진 길밖에 다닐 수 없기 때문에 우리 쪽으로 나가 오기만 기다렸다. 사파리 차가 코끼리의 길을 막아선 셈이다.

코끼리가 걸음을 멈춰 섰다. 얼마간의 정적이 흘렀다. 어쩌면 화가 난 야생코끼리가 무시무시한 상아를 앞세워 우리를 공격할지도 모른다.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마음을 졸이고 있는데 이 놈들 부끄럽지도 않은지 꼬리를 약간 들고 볼일을 본다. 덩치가 크니 그 양도 대단하다.

넓은 분화구에는 초원과 호수뿐만 아니라 숲도 있다. 우거진 숲에는 코끼리의 집이 있다. 가이드의 설명으론 응고롱고로에는 18마리의 코끼리가 사는데 우리 앞에 서 있는 이 분이 65살인 가장 오래된 코끼리라고 한다.

볼일을 보신 코끼리는 큰 귀를 펄럭거렸다. 마치 우리에게 길을 비키라고 위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귀를 부채처럼 흔들어 체온을 조절하기 위함이다.

술에 취한 코끼리가 늘고 있다고?

▲ 분화구 속의 버팔로 가족
ⓒ 조수영
코끼리는 죽을 때가 되면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골짜기 같은 곳으로 들어가 홀로 죽음을 맞이한다고 알려졌다. 코끼리 무덤엔 수많은 상아가 쌓여 있어 코끼리 무덤을 발견한 사람을 벼락부자가 된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는 밀렵이 금지된 코끼리를 수십 수백 마리를 사냥해서 그 상아를 모아 가져올 때 무덤에서 가져왔다는 식으로 해서 밀렵의 변명을 하기 위하여 꾸며낸 이야기다. 지금까지 코끼리 무덤을 보았다는 사람은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신밧드, 단 한 사람뿐이다. 실제 코끼리는 죽을 때 자신의 집에서 편안히 죽는다.

얼마 전 인도의 한 마을에서 술맛을 알게 된 야생 코끼리 떼가 술을 찾기 위해 마을에 내려와 난동을 부려 마을주민 3명이 목숨을 잃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원숭이들이 따먹고 버린 무화과나무와 같은 열매는 비에 젖어 발효가 되면서 술과 같은 맛을 낸다. 코끼리들은 스트레스가 쌓이면 이것을 먹고 난동을 부리기고 하고 비틀거리기도 한다. 나중에는 기분이 좋아서 일부러 찾아서 먹기도 한다.

그들의 터전이 위협받는 코끼리도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일까, 술에 취한 코끼리가 늘고 있다. 코끼리뿐만 아니라 멧돼지와 기린 등도 자연발생적으로 고인 술을 먹고 휘청거리고 뒹구는 것이 발견된다고 한다.

응고롱고로를 마지막으로 2박3일의 사파리를 마쳤다. 숙소가 있는 모시로 돌아가는 길에 한 마사이 마을을 방문하기로 했다.

덧붙이는 글 | <생뚱맞은 과학선생의 아프리카 여행>는 30일간 동남부 아프리카를 여행한 기록이다. 케냐- 탄자니아-잠비아-짐바브웨-남아프리카공화국-나미비아를 거쳐 6개국을 2006년 1월 2일부터 1월 31일까지 여행했다.


태그:#응고롱고로, #탄자니아, #사파리, #누, #세렝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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