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cm가 넘는 훤칠한 키를 이용해 내리 꽂는 강속구에 상대 타자들의 방망이는 허공을 가르기 일쑤였고, 타석에 들어서면 구부정한 타격자세로도 곧잘 장타를 만들어 냈다. 게다가 얼굴까지 잘생겼다. 마치 야구 만화에서 튀어나온 주인공 같았다.

1991년 신일고를 전국대회 2관왕으로 이끌었던 조성민(한화 이글스)의 첫인상이었다. 그 해에는 임선동(현대 유니콘스), 손경수(전 OB 베어스), 박찬호(뉴욕 메츠), 정민철(한화), 염종석(롯데 자이언츠), 차명주(전 한화) 등 뛰어난 3학년생 투수들이 유난히 많았지만 조성민의 '스타성'은 단연 돋보였다.

그러나 조성민은 고교 졸업 후 프로 대신 대학(고려대)을 선택했다. 팬들이 대학 야구를 쉽게 접할 수 없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팬들은 그저 대학과 국가대표를 오가며 뛰어난 활약을 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으며 조성민이 대학을 졸업할 1996년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1995년 어느 여름날, 드디어 다음 해에 활약하게 될 신인 선수를 뽑는 드래프트가 열렸지만 아무도 조성민을 지명하지 않았다. 조성민은 이미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이른 은퇴와 최진실과의 이혼... '일그러진 영웅' 조성민

조성민은 일본에서도 '스타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신인, 게다가 외국인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조성민은 입단 초기부터 많은 여성팬을 몰고 다녔고, 3년째이던 1998년에는 올스타전에 선발되며 일본 야구 적응에 성공했다.

그 해 전반기에 조성민이 거둔 7승 중 6승이 완투승이었고, 그 중 완봉도 세 번이나 포함돼 있을 정도로 위력적인 구위를 자랑했다. 무대가 한국이 아닌 것이 다소 아쉬웠지만 열혈 고교야구 만화의 '프로야구편'으로 나쁘지 않은 활약이었다.

그러나 조성민의 '봄날'은 길지 못했다. 올스타전에서 팔꿈치 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당하며 두 번이나 수술을 받았고, 결국 통산 11승10패 10세이브 평균자책점 2.84의 성적을 남기고 지난 2002년 은퇴를 선언하며 7년간의 일본 생활을 마감했다.

조성민은 은퇴 후에도 팬들의 관심 한 가운데 있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이 나온 곳은 '스포츠 뉴스'가 아니라 '연예 정보 프로그램'이었다. 지난 2000년 '세기의 결혼'으로 화제를 모은 탤런트 최진실과의 이혼 소송과 법정 공방 때문이었다.

특히 조성민은 만삭이었던 최진실을 폭행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동안 지켜온 '매너 좋은 운동 선수' 이미지에 커다란 타격을 입었고, 이혼 후 2005년 MBC-ESPN의 해설자로 야구판에 복귀했지만 '일그러진 영웅'에 대한 팬들의 반응은 썩 좋지 못했다.

'혹시나' 부활의 기대... '역시나' 2년 동안 2승 부진

▲ 작년까지 조성민의 국내 복귀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 한화 이글스
동기나 선배들이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을 때 중계석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던 조성민에게 '재기의 기회'를 마련해 준 사람은 한화 이글스의 '재활 공장장' 김인식 감독.

김인식 감독의 추천으로 한화는 2005년 시즌 중 연봉 5천만원에 조성민과 전격 계약을 체결했고, 1991년 고교야구를 지배했던 주인공은 신일고를 졸업한지 13년 만에 프로야구 무대에 데뷔할 수 있었다.

조성민은 그동안 실추된 이미지와 명예를 처음으로 자신을 세상에 알렸던 야구를 통해 회복하려 했지만, 한국 프로야구는 2년이 넘는 공백기를 가진 30대 투수가 몇 개월의 훈련만으로 통할 수 있을 만큼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2005년 8월 15일 현대전에 데뷔해 1.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서 구원승을 챙겼지만 2승 2패 평균자책점 6.52의 초라한 성적으로 첫 해를 보냈고, 작년에는 어깨 수술까지 받으며 7경기에서 6.2이닝 밖에 던지지 못했다.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조성민의 부활을 기대했던 팬들도 '역시나' 하는 마음으로 돌아섰고, 조성민의 재기 가능성을 믿고 1억110만원까지 연봉을 올려줬던 한화 구단 역시 조성민의 연봉을 7600만원으로 삭감(25%)했다.

변화구 투수로 변신 성공 중...'풍운아' 수식어 뗄까?

▲ 조성민은 최근 세 경기에서 눈부신 호투로 선발 자리를 굳혔다.
ⓒ 한화 이글스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것 같았던 조성민의 '한국 프로야구 인생'은 올 시즌 대반전을 맞고 있다. '회장님' 송진우의 부상으로 5선발 후보로 떠오른 조성민은 최근 세 번의 선발 등판 경기에서 17.1이닝 동안 5점만을 내주며 국내 복귀 후 가장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지난 5월 22일 현대전에서는 5이닝 2실점으로 첫 선발승을 따냈고, 5월 27일 두산 베어스전과 2일 삼성 라이온즈전에서는 불펜 투수의 난조로 승리를 기록하진 못했지만 승리 투수 요건을 만들고 마운드를 내려 왔다.

같은 기간 동안 평균자책점은 2.60, 피안타율은 .173에 불과하고, 투수의 구위를 나타내는 척도로 쓰이고 있는 이닝당 출루 허용률(WHIP)도 1.10 밖에 되지 않는다. 비록 세 경기 밖에 안되는 통계지만 이 정도면 정상급 선발 투수의 성적이다.

올해 조성민의 구위가 특별히 좋아진 것은 아니다. 전성기때 시속 150km를 가볍게 넘겼던 패스트볼의 구속은 여전히 140km를 넘기기 힘들다. 그럼에도 조성민이 올 시즌 위력적인 투구를 할 수 있는 것은 타자들을 상대하는 요령을 익혔기 때문이다.

슬라이더, 체인지업, 포크볼 등 변화구를 던지는 비율이 부쩍 늘었고, 패스트볼도 속도에 신경쓰기보다는 코스를 공략하고 있다. 타자들이 언제든 칠 수 있을 것 같은 공을 던지지만 좀처럼 배트 중심에 맞지 않는 '얄미운 투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 시즌은 절반도 채 지나지 않았고,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면 30대 중반의 적지 않은 나이에 팔꿈치와 어깨 수술 경력까지 있는 조성민에게 다시 위기가 찾아올지 모른다.

그러나 모두가 끝났다고 말하던 자신의 야구 인생에서 아직 더 보여 줄게 남았다는 걸 몸소 증명하고 있는 조성민의 투혼은 충분히 대단하다. 오랜 시간 동안 조성민의 이름 앞에 따라 다녔던 '풍운아'라는 지겨운 수식어는 이제 지워도 되지 않을까 싶다.
2007-06-03 16:19 ⓒ 2007 OhmyNews
조성민 한화 최진실 풍운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