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기차 여행을 다니며 많이 찾았던 남원. 고풍스러웠던 옛 역사가 그립다.
ⓒ 한나영
"웬 청승이야. 아줌마가 혼자서 기차를 타고 여행을 간다고? 그것도 밤 기차를 타고?"

오래 전의 일이다. 11시 30분에 청량리를 출발하는 밤 기차를 타고 '혼자' 정동진에 간다고 했다. 그러자 아는 사람들의 입이 가만 있질 않았다. 그들의 터진 입에서 험한(?) 말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는데….

"혹시 부부관계에 이상이? 그렇지 않고서야 남편이랑 자식 둔 여자가 한밤중에 야반도주하듯 혼자 기차를 타고 가?"
"주책 아니면 청승."
"꼭두새벽에 정동진에 가서 떠오르는 해를 혼자 보면 무슨 재민겨?"
"웬 방황? 혹시 사추기(思秋期)?"


청년시절에 혼자 떠난 기차 여행은 멋이고 낭만이고 용기였다. 적어도 내가 아는 사람들의 평가는 그랬다. 물론 나의 어머니는 "다 큰 처녀애가 겁도 없이 무슨 역마살이 끼었다고 그렇게 빨빨거리고 혼자 다니는 거냐"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나랑 한 치 건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멋있다고, 용기 있다고 격려해주던 행동이었다.

혼자만의 기차여행을 부추기는 것들

젊은 처녀의 나홀로 기차 여행은 대단히 로맨틱했다. 씽씽 달리는 승용차나 버스로 떠나는 여행과는 사뭇 달랐다. 느리게 달리는 기차 여행을 유독 즐겼던 나는 차창 밖의 소박한 시골 풍경을 보면서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가슴이 설레기도 했고, 철따라 달라지는 자연을 감상하면서 레일이 끝나는 그곳까지 달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했다.

이런 센티멘털한 감성은 기차 여행이 주는 선물이었다. 그런데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날씨 역시 여행이 주는 또 다른 덤이었다. 하늘에서 내리는 모든 자연의 섭리는 축복이라고 여겼던 나는 날씨 때문에 생각 많은 철학자가 되곤 했다.

바람이 심하게 불던 날, 기차 안에서 차창을 때리는 바람을 보면서 이렇게 되뇌곤 했다. '그래, 나도 폴 발레리처럼 살아봐야겠다. 바람이 부니까.' 햇살이 가득 쏟아지는 날이면 눈을 찡그리며 <이방인>의 뫼르소를 떠올리기도 했다. '뫼르소의 살인을 충동했던 햇살도 아마 이렇게 강렬했을 거야.'

폭설이 퍼붓던 날, 의기양양하게 떠났던 기차 여행은 그야말로 '백설공주'의 행차였다. 온 세상이 느릿느릿 거북이 걸음을 걷고 있을 때 공주가 탄 기차만 씽씽 달리는 특권을 누릴 수 있었으니까.

안개와 비로 촉촉이 젖은 하늘은 기차 여행에 가장 매력적인 날이었다. 뿌연 안개와 육감적인 냄새를 풍기는 비. 가슴을 시리게 했던 영화 <애수>의 워털루 브리지를 감쌌던 안개나 주인공들의 암울한 운명을 말 대신 전달했던 <무기여 잘 있거라>에 나오는 비는 기차 여행을 환상적으로 만들어준 중요한 소품이기도 했다.

누가 뭐래도 떠난다

하여간 사색에 빠져들고 추억에 잠길 수 있는 기차 여행은 누가 뭐래도 포기할 수 없는 삶의 일부분이었다. 아니, 좀 더 거창하게 말하자면 무덤덤한 존재를 빛나게 해주는 윤활유였다. 그러니 나이가 들어 청년에서 중년으로 신분이 바뀌었다고 해서 이런 기차 여행을 포기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왜 하필 혼자만의 여행이냐고? 릴케의 말이었던가. "인간은 고독, 그것입니다." 물론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떠나는 여행도 즐겁고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내면에 대한 깊은 성찰을 가능하게 해주는 진정한 여행은 홀로 떠나는 여행이었다.

물론 이런 여행은 가족들의 이해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요리를 잘 하는 남편이나 독립적인 아이들은 내 여행을 적극 후원해 주는 서포터즈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내가 아는 사람들, 아니 나를 모르는 사람들의 '나홀로 아줌마 여행'에 대한 반응은 대단히 삐딱했다. 그들은 대개 독설을 퍼붓거나 핀잔을 주기 일쑤였다.

"아줌마 혼자 왔수?"

▲ 파도가 밀려오는 정동진에서
ⓒ 최정순
심야에 청량리를 출발한 나른한 기차가 정동진을 코앞에 두고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강산에가 부르는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이 기차 안에 울려 퍼졌기 때문이었다.

한 몸이 되듯 포개져 잤던 청춘들은 게슴츠레한 눈을 억지로 뜨며 가방을 챙겼다. 그런데 나만의 피해의식일까, 눈이 마주친 청춘들의 시선이 왜 마뜩찮게 느껴지는 걸까. '아줌마도 정동진에 해 보러 온 거야?'

어둔 새벽, 힘차게 밀려오는 파도가 먼 길을 달려온 객들을 환영해줬다. 하지만 하늘은 이미 물기를 머금고 있어 일출을 기대할 수 없었다. 그냥 모래밭을 거닐며 상념에 잠겨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혼자 왔수?"

지팡이를 짚고 해변을 산책하는 할아버지였다. 일흔 여덟이라는 할아버지는 몇 년 전에 풍을 맞고 쓰러져 한 쪽을 못 쓴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해를 보러 왔다는 내 말에 비웃듯 이렇게 말했다.

"정동진은 해 보러 오는 곳이 아니요. 그냥 사람 보러 오는 거지. 그런데 이 꼭두새벽에 아줌마 혼자 기차 타고 왔다고? 식구들은 다 어쩌고?"

버스기사로부터 호된 질책을 당하다

정동진을 이곳저곳 둘러본 뒤 대합실로 돌아왔다. 표를 팔던 역무원의 권유로 다시 기차를 타고 동해를 갔다. 처음 가보는 동해였다. 친절한 동해역 역무원은 천곡동굴과 무릉계곡을 추천했다. 그런데 천곡동굴 가는 시내버스에 올라탔을 때 민망한 꼴을 당했다.

길을 잘 모르는지라 버스기사 뒤에 앉아 작은 목소리로 기사에게 부탁을 했다. "천곡 동굴엘 가려고 하니 내릴 곳을 말씀해 주세요."

"아줌마 혼자 왔어요?"

예상치 못했던 도발적인 기사의 질문이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렇다고 했다. 그랬더니 아까보다 더 큰 목소리로 나를 꾸짖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아니, 왜 혼자 다녀요? 앞집 아줌마, 옆집, 뒷집 아줌마들이랑 같이 다녀야지."

아저씨의 큰 목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내게 집중되었다.
"... (윽, 민망하여라)"

버스 기사의 질책은 목적지에 내릴 때까지 계속되었다.

제발 좀 내버려둬요

▲ 강원도 인제의 한 계곡
ⓒ 한나영
처녀 시절부터 시작되었던 나홀로 기차 여행은 중년 아줌마가 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철마다 치러지던 행사였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오래된 광고 문구는 습관처럼 떠나곤 했던 내가 즐겨 인용하던 문구였다.

그런데 아줌마가 되어 혼자 떠난 기차 여행은 청년시절의 나홀로 여행에서 종종 들었던 호연지기나 용기 있는 행동이라는 평가와는 아주 다른 개념이었다. 순전히 나이 때문에?

아줌마도 여행을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때로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기도 하련만 왜 사람들은 이중 잣대로 아줌마의 나홀로 여행을 못마땅해 하고 비난하는 것일까.

끈적거리는 사람들의 관계, 정(情)이라는 우리만의 독특한 정서는 분명 서로의 마음을 온돌처럼 덥히는 미덕이다. 그래서 멀리 외국에 나가 있는 사람들은 우리의 이런 포근한 정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 때로 거추장스러운 간섭이 되어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기도 한다.

사람들은 여전히 '나홀로 아줌마 기차 여행'에 대해 입을 툴툴거린다. 하지만 나는 결코 포기하지 않으련다. 용기를 잃지 않으련다. 용기란 '압력에도 굴하지 않는 품위'라고 하던가. 바로 그 품위를 지키면서 나이 들어 초라해지려고 하는 내 존재를 더욱 빛나게 하고 싶다.

아, 그나저나 우리나라 사람들 인정도 많지. 아줌마 혼자 다닌다고 그렇게 걱정도 많이 해주고…. 그냥 좀 내버려두어도 좋으련만.

덧붙이는 글 | <철도와 함께 떠나는 여행> 공모 기사


태그:#기차여행, #정동진, #아줌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