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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공사 입구
ⓒ 최종명

5월 2일이 밝았다. 창문을 여니 또 덥다. 도심 복판에 우짖는 비둘기들. 왜 그리 많은지…. 잠을 깨워 주기도 하고 짜증도 내뱉는 비둘기들. 예전에 어떤 사람이 홍콩에서 숙식을 하는데 아침마다 비둘기 때문에 시끄러워 괴로워하다가 직원에게 해결방안이 없을까 물었다 한다.

'츠바(吃吧)' 중국에서는 요리로 해서 먹는다. 몇 번 먹어봤는데 맛있다. 물론 처음에는 모르고 먹었지. 혹시 비위가 약하신 분은 조류라는 느낌이 오고 다리가 얇고 긴 게 나오면 주의해야 한다.

아침을 주는 곳이 호텔이면 먹고, 아니면 안 먹는다. 단, 당일 일정이 힘들다 싶으면 전날 미리 바나나나 석류, 귤과 같은 싸고 신선한 과일을 준비한다는 게 여행수칙이다. 어느새 규칙에 따라 움직인다. 작은 일에 고민하지 않고 오로지 취재에 집중하려고 스스로 세운 규칙인데 의외로 혼자 여행하면 더 잘 지켜진다.

비록 위미(玉米, 옥수수) 죽 한 그릇에 만두 몇 개, 달걀 하나, 커피 한잔 정도지만 호텔 아침 식당은 조용해서 좋다.

오전 10시에 호텔을 나섰다. 오늘도 걱정은 사람들이다. 먼저 은행을 찾았다. 예상 외로 허난(河南)성에 공상은행이 많다. 내 계좌가 있는 은행에서 돈을 찾아야 수수료가 없다. 보통 1000위엔 정도 찾으면 은행마다 좀 다른 거 같은데 보통 수수료로 10위엔을 가져간다.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면 '내 은행'을 찾는다. 길거리 지나는 가난한 이에게 그냥 주는 것은 가능해도 은행에 주는 것은 죽어도 싫다. 왠지 모르겠지만 그냥 싫다. 요새 흔한 말로 '아무 이유 없어'. 돈이 나와 집어드는 순간 '찰칵'한다. 그래 좋은 시스템이야. 계속 발전 좀 해라.

시내 중심지에서 30여 분 걸으니 빠오공츠(包公祠)에 도착한다. 어제 카이펑푸에도 빠오쩡(包拯)이 등장하지만 엄연히 다르다. 카이펑푸는 관청이라면 빠오공츠는 사당이다. 그 당시로 돌아가면 빠오쩡이 빠오공츠에 거주하면서 카이펑푸에 근무했던 것이다. 빠오공츠는 빠오쩡이 살던 집을 개조해 다시 만든 사당인 것이다.

▲ 포청천이 직접 쓴 글씨 제산(齐山) 비석
ⓒ 최종명
문과 건물, 정자와 벽, 복도와 다리, 분수와 폭포, 석상과 괴석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아담한 사당이다. 냉철하게 공과 사를 구분하고 견지한 빠오칭티엔(包青天)이 호수를 바라보고 있던 모습이 떠오른다.

오토바이(3위엔)를 탔다. 카이펑에 놀이공원이 아주 멋진 게 있다고 해서 가는 길이다. 카이펑 시 중심에서 북쪽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20분 정도 가면 호수를 둘러싸고 잘 꾸며진 관광지가 보인다.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 다른 관광지로 이동할 수도 있다.



칭밍상허위엔(清明上河园)은 종합오락시설이다. 처음에는 80위엔이나 하는 입장료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의아했다. 30분 기다리다 3초만에 산 표를 들고 칭위엔(줄여서 이렇게 부른다)에 들어서자마자 입장료가 전혀 아깝지 않게 느껴졌다.

칭위엔의 이름은 북송시대 장택단(张择端)이라는 화가가 개봉을 배경으로 그린 청명상하도(清明上河图)에서 따왔다. 그래서 그의 기념관이 있기도 하다.

▲ 잘 만든 청원심승도 지도
ⓒ 최종명
입구에서 나눠주는 일종의 소개책자 2권. 다양한 공연 스케줄을 알려주는 여우위엔미지(游园秘笈)와 상세 지도인 칭위엔쉰셩투(清远寻胜图)를 보면 칭위엔의 규모와 내용에 감탄하게 된다. 이 많은 공연을 다 보려면 하루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오늘 발품 진하게 팔 듯하다.

게다가 민수지에(民俗街)마다 각종 토속 먹을거리도 입맛을 당긴다. 또 전국의 민간 공예를 다 모은 듯한 볼거리 역시 눈길을 사로 잡기에 충분하다. 마침 연휴이니 총출동한 셈이다.

종이부채와 가면, 인형, 유리공예품들이 인상적이라 계속 만지고 하니 하나 사라고 성화다. 재미난 것은 설탕을 녹여 만든 조총을 입으로 불어 동물을 만들어내는 추이탕(吹糖)과 판 위에 흘리면서 그림 그리듯 동물을 만들어내는 탕화(糖画)가 인상적이다. 사람들의 호응이 좋은 편이다. 10위엔을 내면 즉석에서 만들어준다.

조금 더 가면 추이삥(吹饼)도 있다. 삥은 과자라는 말인데 아마도 불어서 만두만한 크기로 빵을 만든 것이겠다. 그런데 큰 소리로 "추이~삥"을 외치며 팔고 있다. 호객으로는 정말 재미있는 발상이다.

이 추이삥은 우따랑(武大郎)이 처음 만든 것이라 한다. 우따랑은 바로 <수호지>의 주인공 중 하나인 우얼랑(武二郎) 무송(武松)의 친 형인 무식(武植)이며 <금병매>의 주인공 반금련(潘金莲)의 남편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당시 우따랑과 반금련으로 변장해서 추이삥을 팔고 있는데 그 동작들이 흥미롭다.

▲ 무대랑과 반금련으로 분장한 취병 가게
ⓒ 최종명
카이펑은 똥징(东京)이라 불리기도 했지만 북송시대의 삐엔징(汴京)으로 더 알려져 있다. 바로 삐엔허(汴河)가 이 칭위엔에 있는 것이다. 이 지방 맥주 이름도 삐엔징피지여우(汴京啤酒)다. 삐엔허가 한눈에 보이는 무지개 다리인 홍치아오(虹桥)를 넘으니 곳곳에 공연이 벌어지는 광장이 나타난다.

서커스는 기본이고 마술, 불 쇼 등 다양하다. 마차도 등장하고 낙타와 손오공도 아이들을 즐겁게 한다. 손오공과 삼장법사가 이끄는 염소가 재미있다.

▲ 손오공이 이끄는 염소 마차
ⓒ 최종명
온통 전통 복장을 입고, 물론 돈을 내고 사진을 찍는다. 더운 날임에도 이왕 놀러 나왔으니 기념 그 자체로 좋은 가보다.

대나무 뗏목을 타고 호수를 떠내려가는 모습도 보기 좋다. 호숫가를 따라 천천히 걸어가면서 지도책을 다시 보니 겨우 반 정도 왔다. 정말 크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운동장이 보이고 사람들이 꽉 들어 앉아있다. 경마장이다.

▲ 말 기예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관중들
ⓒ 최종명
각도가 좋은 곳을 찾아 빨리 자리를 잡고 기다리니 서서히 말을 탄 용사들이 나타난다. 여성용사들도 보인다. 그렇다. 이곳은 북송시대 여자들이 즐기던 마치여우(马球) 공연장인 것이다. 먼저 기마 묘기를 선보인다. 경쾌한 진군나팔 소리에 맞춰 말 위에서 올랐다 내렸다 또는 깃발도 들고 현란한 대행진이 벌어진다.

사람들 박수소리가 이어지고 곧이어 말을 타고 골을 넣는 마치여우 시합이다. 북송 시대에 격국(击鞠)이라 불리던 경기로 지금의 티벳인 토번(吐蕃)으로부터 전해져 당나라와 송나라 시대에 유행하던 것이라 한다. 경기장 부근 광장에 축국(蹴鞠)이라 쓰여있는 동상이 하나 있다. 축구 경기가 중국에서 가장 먼저 발생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기도 하다.

▲ 사방원 공연 모습
ⓒ 최종명
쓰팡위엔(四方院)에 들어서니 공연이 준비되고 있다. 마당에 줄을 걸더니 넘어오지 말라고 한다. 대가 집 앞마당에 간단한 시험이 치러지고 황제가 내린 상을 주기까지 코믹하고 풍자가 넘치는 공연이 있다.

칭위엔의 동쪽은 대부분 아담한 정원이 있는 집들이 많다. 다소 인공적으로 꾸민 곳이라 그 맛이 덜하긴 해도 따가운 햇살을 피하기에 좋고 분위기도 멋지다. 분수도 있고 비둘기들과 대화를 나눠도 좋다.

이럭저럭 4시간 동안 칭위엔 깊이 빠져다가 나오니 다소 지친다. 많은 공연을 다 못 본 것이 아쉬워 출구를 나갈까 말까 망설이게 된다.

호수에 있는 마터우(码头)에 가서 배를 탔다. 판지아후(潘家湖)와 양지아후(杨家湖) 호수 2개가 서로 연결돼 있어 더욱 커 보인다. 2개의 호수 주변에는 많은 관광지가 있다. 다 볼 시간이 없어 하나 고른 것이 티엔뽀양푸(天波杨府)이다.

▲ 입구 벽에 새겨진 천파양부
ⓒ 최종명
북송시대 양업(杨业)의 사택이다. 송 태종이 그의 충정을 높이 사 친히 내린 편액이 바로 티엔뽀양푸(天波杨府)인 것이다. 양업은 송 태조를 도와 북방을 도모했고 송 태종이 직접 주도한 전쟁에도 참여해 큰 공을 세우기도 한 명장으로 호(号)가 '무적(无敌)'이다.

▲ 건물 뒤편 벽에 걸린 양씨 집안 사람들 얼굴 탈
ⓒ 최종명
양지아후에 위치하니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등지고 이곳저곳을 살피니 기분도 서늘해지는 느낌이다. 사당도 있고 그 안에 동상도 있다. 중원 일대의 위엔린(园林)이라고도 하고 청소년들에게 애국주의 교육을 위한 장소로 활용된다고 한다.

티엔뽀양푸 정문 앞에 양먼뉘지앙(杨门女将) 동상이 있다. 양업 사후 100여 년 후 그의 후대 중에서 처와 딸 등이 전쟁에 출전했다는 기록이 있고 그것이 소설로 전해내려 왔다. 현대에 이르러 드라마로 제작되어 인기가 많았으니 동상이 서 있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 양문여장 동상
ⓒ 최종명
해가 지려는 모양이다. 깃발은 여전히 나부끼고 사람들도 많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역사 공부를 하니 바로 여행의 맛이라 할만하다.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 옆 한 건물에 아직도, 하루종일 결혼사진 촬영을 홍보하는 패션쇼가 벌어지고 있다. 늘씬한 모델들이 연이은 워킹에 사람들의 시선이 따라다닌다.

씻고 나니 해가 완전히 졌다. 어제 간 야시장에서 저녁을 먹자는 생각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더 많아진다. 길에서 요리할 수 있는 모든 고기나 채소, 해산물이 다 나온 듯하다. 마지아(马家)라는 간판이 보여 "말고기냐?"고 했더니 인상을 쓰면서 대답도 안 한다. 삶은 양고기를 썰어 파는데 아마 주인의 성씨가 그런가 보다.

회교도가 하는 가게에서 맥주에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다시 호텔로 들어왔다. 연일 강행군이라 좀 피곤이 쌓인다. 내일은 이동해 좀 쉬어야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http://blog.daum.net/youyue/10593090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중국, #청명상하원, #포공사, #추이탕, #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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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품취재를 통해 중국전문기자및 작가로 활동하며 중국 역사문화, 한류 및 중국대중문화 등 취재. 블로그 <13억과의 대화> 운영, 중국문화 입문서 『13억 인과의 대화』 (2014.7), 중국민중의 항쟁기록 『민,란』 (2015.11)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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