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일성(현 KBO 사무총장) KBS 해설위원과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 선수들 못지않은 '숙명의 라이벌'이었다.

날카로운 통찰력을 자랑하던 하일성과 철저한 분석이 돋보이던 허구연의 개성있는 해설은 야구팬들을 '하일성파'와 '허구연파'로 양분시켰고, 자연스럽게 두 해설위원과 호흡을 맞추는 캐스터들도 야구팬들의 관심 대상이었다.

KBS에는 정도영, 표영준, 유수호 아나운서 등이 하일성과 함께 맛깔 나는 중계로 야구팬들을 끌어들였고, MBC에는 양진수, 임주완, 고창근, 송인득 아나운서 등이 허구연의 '단짝'으로 활약했다.

이들 중 가장 나이가 적었던 송인득 아나운서가 23일 간경화로 인한 위정맥류 파열로 야속하게도 가장 먼저 세상을 떠났다. 향년 49세였다.

'스포츠 전도사' 송인득, 23일 간경화로 세상 떠나

 송인득 아나운서는 이제 더이상 '생중계'를 할 수 없다.
ⓒ iMBC.com
고 송인득 아나운서는 1982년 MBC에 입사해 25년 동안 스포츠 전문 캐스터로 활약했다. 스포츠 중계를 즐겨 보는 사람이라면 '송인득'이라는 이름은 잘 몰라도 송인득 캐스터의 목소리는 분명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캐스터와 해설자의 영역을 유연하게 넘나드는 중계가 자연스러워졌지만 송인득 아나운서가 활발하게 활동하던 90년대만 하더라도 캐스터와 해설자의 경계는 명확했다.

캐스터는 눈에 보이는 경기의 진행 상황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역할에 주력하고, 해설자는 말 그대로 상황을 해설해 주고 전문적인 보충 설명을 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송인득 아나운서는 당시에도 해설자 못지않은 해박한 지식을 뽐냈고, 그러면서도 해설자의 고유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노련함을 갖춘 캐스터였다. 시청자들이 경기에 집중하게 만드는 정확한 발음과 차분한 말투는 기본이었다.

송인득 아나운서는 중계를 하면서 유난히 '분위기'라는 표현을 많이 썼다. "오늘 박찬호 선수 1회부터 안 좋은 '분위기'로 흐르고 있습니다", "선동열 선수, 오늘 '분위기' 좋은데요?", "김인식 감독, 강공으로 가는 '분위기'입니다"라는 식이다.

'느낌', '조짐' 등의 다른 표현을 모를 리 없지만 송인득 아나운서는 언제나 '분위기'라는 표현을 썼다.

나 역시 스포츠 기사를 쓰면서 '분위기'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 편이다. 단지 어디에나 써도 크게 어색하지 않은 '만능 단어'이기 때문에 자주 쓰는 거라 생각했지만, 어쩌면 송인득 아나운서의 중계를 20년 넘게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생겨난 버릇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송인득 아나운서는 더는 스포츠의 감동을 '생중계'로 전할 수 없다. 스포츠 팬들은 그저 '○○○, 그 감동의 순간'이라는 식의 프로그램에서 스쳐 지나가는 목소리로 그를 추억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계속될 스포츠의 감동은 지금 남아 있는, 또 앞으로 등장하게 될 다른 캐스터들에 의해 안방에 생생하게 전달될 것이다.

그러나 한국 축구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좋은 '분위기'로 16강에 올라갈 때,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야구 대표팀이 안 좋은 '분위기'로 흘러갈 때, '분위기'를 좋아했던 캐스터 송인득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그리워질 것 같다.

비록 스포츠 팬들에게는 안 좋은 '분위기'를 남기고 떠났지만, 어딘지 모를 다음 세상에서는 언제나 좋은 '분위기'가 송인득 아나운서와 함께 하길 기원해 본다.

송인득 아나운서 스포츠캐스터 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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