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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캄팔라 시내의 바나나를 파는 재래 시장 모습
ⓒ 김성호

빅토리아 호숫물이 흘러가는 진자를 떠나 우간다 수도 캄팔라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 30분. 케냐 나이로비에서 출발해 12시간 30분이나 밤새 달려온 셈이다.

내가 타고 온 스칸디나비안 버스터미널은 전용 터미널로 다른 차량이나 행상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철저히 통제하고 있었다. 당연히 북적거리는 아프리카 대중버스 터미널과는 사뭇 달랐다. 시내 중심 거리의 첫인상도 놀랍도록 깨끗하다.

빅토리아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7개의 언덕에 자리 잡은 캄팔라는 시원한 바람과 함께 넓은 도로와 깔끔한 주택, 높은 빌딩 등이 마치 전원도시 같은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평화로운 도시다. 엽기적인 대통령과 내전으로 인한 대학살이 결코 연상되지 않는 아름다운 수도이다.

임팔라가 뛰어놀던 평화의 도시 캄팔라

실제로 예전에 캄팔라는 임팔라 등 동물들이 빅토리아 호수를 쳐다보며 한가로이 풀을 뜯으며 뛰어놀다 목이 마르면 호수로 물을 먹으러 갔던 동물들의 낙원이었다.

애초 수많은 언덕과 무성한 나무들이 우거졌던 평화의 언덕이 바로 캄팔라이다. 영국 제국주의가 들어오기 전 이곳을 다스렸던 부간다 왕국의 왕인 카바카(Kabaka)가 즐겨 찾던 야외 사냥터이기도 했다.

캄팔라(Kampala)라는 이름 자체가 '임팔라(아프리카산 영양의 일종)의 언덕'이라는 데서 비롯된다. 부간다 언어로 '임팔라의 언덕'인 'Kasozi Ka Impala'가 합쳐지면서 캄팔라가 된 것이다.

시내에는 20층 이상의 하얀 고층빌딩이 여기저기 새로 들어서고 있었다. 우간다가 경제적으로 상당히 안정을 되찾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우간다는 최근 10여 년간 연평균 6% 이상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이는 등 아프리카 국가 중에서는 모범적인 경제발전을 이루고 있다.

버스터미널에서 내린 나는 다른 나라에서는 택시라 부르는 '스페셜-하이어 택시'를 잡아타고 근처 바클리 은행의 자동현금인출기에서 먼저 우간다 화폐로 돈을 찾았다. 동남부 아프리카는 대부분 영국의 식민지여서 영국계 은행인 바클리 은행이 곳곳에 진출해 있었다.

그 다음, 값은 싸지만 깔끔한 배낭여행객 숙소인 피앙세 호텔로 갔다. 그러나 2층에 있는 이 숙소는 도로 옆에 있고, 주변에 시장과 버스터미널 등이 있어 밤새도록 자동차 소리로 시끄러운 것이 단점이었다.

서민의 애환을 싣고 달리는 아프리카 닭장차

▲ 우간다 시내의 모습
ⓒ 로렌스 스미스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근처 '뉴 택시 파크'에 가서 내일 마운틴고릴라를 보기 위해 키소로(Kisoro)행 버스 편을 알아봤다. 키로소는 남서부 끝인 르완다와 콩고민주공화국(옛 자이르) 국경 근처의 작은 도시다.

아프리카 버스터미널답게 사람과 버스가 뒤범벅이 되어 도깨비 시장 같은 모습은 똑같지만, 에티오피아처럼 호객꾼은 의외로 적어 다행이었다.

우간다에서 '택시 파크'는 일반적인 택시 터미널이 아니라 케냐의 마타투 등과 같은 일반 대중교통버스 터미널을 말하는 것이다.

'닭장차(Chicken Bus)'라고도 불리는 대중교통수단인 아프리카 버스는 나라마다 부르는 이름이 각각 달랐다.

케냐에서는 '마타투'라고 부르지만, 탄자니아에서는 '달라 달라', 우간다에서는 택시라고 불렀다. 르완다와 말라위·짐바브웨·잠비아·보츠와나·남아공·나미비아에서는 '미니버스', 모잠비크에서는 '차파', 그리고 마다가스카르에서는 '택시-브루스'라고 불렀다. 우간다에서는 당연히 버스터미널을 '택시 파크'라고 부르고, 우리가 말하는 택시는 '스페셜-하이어 택시'라고 불렀다.

아프리카 버스는 이처럼 나라마다 부르는 이름은 다르지만 가난한 서민들의 발이자 애환을 함께 나누는 친구라는 점에서는 똑같았다. 사람과 짐, 동물이 함께 뒤범벅이 되면서 마치 시장통을 옮겨놓은 듯한 버스 안의 작은 공간은 가난한 서민들의 발이 되고 그들의 애환을 싣고 꿈과 희망으로 가는 공동체였다.

에어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차 안에서 몸과 몸이 하나로 찰싹 달라붙은 아프리카 현지인과 나는 서로의 땀이 섞이면서 흠뻑 사우나를 하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 누구의 땀 냄새인지 모를 정도로 서로에게 동화되어 갔다.

여행 동안 줄곧 이용한 아프리카 닭장차 안에서 나는 아프리카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프리카인들의 불편함을 참는 인내심과 돈을 꼬깃꼬깃 주머니에 간수하는 여인네 모습, 외국인에 대한 호기심, 젖먹이 아기를 감싸 안고 젖을 먹이는 어머니의 모성애, 얼굴에 나타난 행복감과 생활에 찌든 피곤함, 물건을 사고파는 상술 등을 보았다. 아프리카 사람들의 생활모습이 닭장차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캄팔라 버스터미널 입구 등에는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타고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젊은이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들이 타고 있는 것은 바로 '보다보다'라는 영업용 교통수단이다.

짧은 거리이거나 차량이 다니기 어려운 곳에는 자전거 보다보다와 오토바이 보다보다가 대체 교통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보다보다라는 이름은 원래 자전거와 오토바이로 차량이 없는 '보더와 보더(국경과 국경)' 사이를 태워다 주던 데서 그 이름이 유래된 것이다.

불안정한 사회일 줄 알았는데, 완전 딴판

▲ 캄팔라 시 외곽의 모습
ⓒ 로렌스 스미스
숙소 근처 '미스터 테이스티'라는 이름의 패스트푸드 점에서 치킨과 햄버거로 점심을 때운 뒤 시내 구경에 나섰다.

숙소 부근에는 버스 터미널과 오위노 시장 등이 붙어 있어 복잡한데 바로 앞에는 커다란 힌두교 사원이 세워져 있어 특이했다. 아프리카 여행 중 처음 보는 힌두교 사원이다. 우간다에 살고 있는 인도인들을 위한 것이다. 이슬람 사원도 보였다.

우간다는 영국의 영향으로 가톨릭과 기독교가 우세하고 이슬람교도도 적지 않은데, 캄팔라 시내에는 가톨릭 성당과 개신 교회, 이슬람 사원, 힌두 사원 등 여러 종교 시설들이 있어 종교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은행마다 총을 든 경비병들이 철통같이 방어를 서고 있었는데, 키가 작은 경비병은 우리를 보자 "안녕하세요"라고 친절하게 먼저 인사를 건넨다. 우간다 국민들은 아프리카 어느 나라보다 친절하고 외국 여행객에 대해 거부감을 갖지 않는 것 같았다. 얼굴 표정들도 훨씬 더 밝아 보였다.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상인들도 왠지 부지런하고 억척같다고 할까 의욕에 넘쳤다. 아프리카 일부 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인 할 일 없이 빈둥빈둥 노는 게으른 사람들을 캄팔라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아프리카 여행 중 예상과 실제 모습이 가장 달랐던 곳은 바로 우간다와 르완다였다. 우간다는 엽기적인 대통령과 오랜 내전, 르완다는 대학살로 치안이 불안하고 사회 분위기도 매우 어두울 것으로 생각했으나 완전히 딴판이었다.

아프리카 어느 지역보다도 도로가 잘 닦여있고, 치안도 상대적으로 안전했으며, 사람들도 친절하고 표정도 밝았다. 두 나라 모두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에서 완전히 벗어나 새로운 출발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의 얼굴 표정이 밝고 사회적으로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여행객에게도 즐거운 일이다.

시내 곳곳에는 우리나라의 타이어 회사인 '금호타이어'와 '한국타이어'의 광고간판들도 눈에 띄었다.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보았던 우리나라의 타이어 회사들이 우간다에까지 진출했나 보다.

과일도 온통 파란 바나나로 넘쳐났다. 에티오피아의 하라르가 망고의 천국이었다면, 우간다 캄팔라는 바나나 천국이었다.

캄팔라 시내에는 우간다뿐 아니라 동아프리카에서 가장 유명한 마케레레 대학도 있다. 지난 1922년 문을 연 동아프리카 최초의 대학인 마케레레 대학은 아프리카 독립운동의 상징인 줄리어스 니에레레 탄자니아 초대 대통령과 음와이 키바키 현 케냐 대통령 등을 배출하는 등 교육의 산실이다.

엔테베 구출작전의 신화가 남아있는 우간다 국제공항 청사

▲ 우편물을 건네주고 잠시 쉬어간 마사카 지역의 우체국 건물
ⓒ 김성호
시내 도로 표지판에는 엔테베 국제공항으로 가는 팻말도 있었다. 우간다 국제공항이 있는 엔테베는 캄팔라에서 남쪽으로 35㎞ 떨어진 빅토리아 호숫가에 있다. 우간다의 작은 국제공항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지난 1976년 팔레스타인 과격파들에 의해 납치된 비행기 승객들을 구해낸 이스라엘의 전격적인 '엔테베 구출작전' 때문이다.

지난 1976년 6월 승객 및 승무원 269명을 태우고 프랑스 파리에서 출발해 이스라엘 텔아비브로 날아가던 프랑스 항공사의 민간여객기가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공중 납치되어 우간다의 엔테베 공항에 착륙했다.

이스라엘은 납치범들과 협상을 하면서 전격적인 기습 구출작전을 펼쳤다. 케냐의 도움으로 나이로비에서 중간 기착한 이스라엘 특공대는 수송기와 비행기를 타고 엔테베 공항으로 날아가 납치범들을 사살하고 승객들을 무사히 구출한다. 이스라엘 특공대장으로 작전 중 유일하게 숨진 군인은 조나단 네타냐후 중령인데, 이스라엘 총리를 역임한 강경우파 정치인 베냐민 네타냐후 전 리쿠드당 총수가 그의 친동생이다.

이스라엘 특공대의 성공요인으로는 치밀한 정보수집과 작전의 전격성, 예상치 못한 기발한 착상, 특공대원들의 용맹성 등을 꼽을 수 있다. 당시 협상의 조정자를 자임한 이디 아민으로 위장하기 위해 그가 타고다니는 똑같은 기종의 벤츠 승용차를 이스라엘에서 수송기에 싣고 와 납치범들에게 접근한 뒤 사살한 발상이 놀라울 뿐이다.

그러나 구출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납치범에게는 결정적 '실수'였지만 이스라엘 특공대에게는 절호의 조건이 만들어져 있었다는 사실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납치범들이 승객들을 비행기 안에서 내리게 한 뒤 옛 공항청사로 옮겨 놓았다는 점이다.

만약 승객들을 비행기 안에 그대로 인질로 잡고 있었다면 특공대원의 접근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더구나 승객들이 인질로 잡혀있던 엔테베 공항은 우간다와 사이가 좋았던 이스라엘 건설회사가 만들었던 것이다. 자세한 공항 설계도를 입수한 이스라엘 특공대는 구출작전 이전에 현장 상황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꿰뚫고 있었다.

치욕을 당한 이디 아민은 이미 단절한 이스라엘과 영국에 이어 이스라엘 특공대를 지원했다는 이유로 케냐와 외교 관계를 끊어 버렸다. 쿠데타 초기 이디 아민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영국과 이스라엘, 케냐 등 3총사와 결국 원수가 되어 등을 돌렸다.

저녁을 먹고 저녁 8시쯤 숙소 근처에 바람을 쐬러 나왔을 때 총을 든 경찰관 4명이 짝을 이뤄 여행객 숙소와 시장 부근을 순찰하고 있었다. 경찰들은 우리를 보자 "우간다는 안전하다"며 자신들의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자신들이 순찰을 돌기 때문에 치안을 걱정하지 말라며 자랑하는 것이다. 실제로 캄팔라는 케냐의 나이로비보다 훨씬 안전하다.

▲ 우편물과 승객을 같이 태우는 우간다 우체국 버스
ⓒ 김성호
우체국 버스를 타고 가는 여행

캄팔라에서 하룻밤을 묵은 나와 뉴질랜드 여행객 로렌스는 다음날 아침 마운틴고릴라를 찾아 키소로로 가는 긴 행군에 나섰다. 우간다에는 침팬지와 마운틴고릴라, 원숭이 등 야생 영장류를 볼 수 있는 곳이 많다. 키소로는 내가 마운틴고릴라를 보러 가는 남서쪽의 작은 마을 도시.

캄팔라 북쪽으로는 지난 1953년 미국의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아프리카 사파리 여행 중 비행기 사고로 중상을 입었고, 야생 침팬지를 구경할 수 있는 머치슨 폭포 국립공원 등이 있다.

캄팔라를 떠나 키소로로 가는 길도 '녹색의 나라' 우간다의 아름다운 경치에 푹 빠져들게 만들었다. 키소로로 가는 동안 마주치는 빅토리아 호숫가와 나부가보 호수, 카체라 호수, 음부로 호수 주변의 새들과 무성한 나무들, 푸른 들판은 녹색의 매력으로 나를 이끌었다. 에티오피아의 황량한 사막화와 케냐 나이로비의 숨 막히는 도시의 공포에 짓눌린 여행객의 마음은 우간다의 푸른 숲을 달리면서 뻥 뚫리는 느낌이다. "우간다는 정말 푸르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오전 6시에 일어나 아침도 먹지 못하고 시내 중심가 언덕길에 있는 중앙우체국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이른 아침에 배낭을 메고 웬 우체국? 아프리카에서 편지 부칠 일은 없을 텐데. 물론 편지를 부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버스를 타러 가는 길이다.

숙소 주인에게 물어보니 복잡한 일반 대중버스보다 편리한 우체국 버스가 있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우편을 배달하는 차량이 뒤쪽의 짐칸에는 우편물을 싣고, 앞쪽의 좌석에는 일반 승객을 태우는 대중교통 버스 역할을 한다는 것. 한 마디로 우체국 버스이다.

우체국에 도착하니 이른 아침인데도 우간다인 3명이 먼저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전 7시 30분이 되자 버스표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우체국에서 우표가 아니라 버스표를 사보기도 처음이다.

오전 8시 정각이 되자 우체국 버스가 출발했다. 차량 정면의 위쪽에는 'Post Bus(우체국 버스)'라고, 아래쪽에는 'Posta Uganda(우간다 우체국)'이라는 영어 표시가 되어 있는 미니버스 차량이었다.

캄팔라에서 출발하자마자 시 외곽에 나타난 음팡가 숲 보호구역. 음팡가 숲 속을 달리자 상쾌한 공기와 푸릇푸릇한 나무냄새들이 콧속으로 들어오고, 나비들이 날아다닌다. 마치 버스를 타고 삼림욕을 하는 기분이다.

차 뒤칸에는 편지와 소포 등 우편물을 싣고, 앞자리에는 승객을 태운 우체국 버스를 타고 가니 나 자신도 우편물 배달에 나선 것 같은 느낌이다. 승객도 정원만 태우고 입석은 하나도 없어 다른 아프리카 닭장차와 달리 편안했다.

50여 분을 달려 우체국 버스가 처음으로 도착한 곳은 음피기(Mpigi) 우체국. 운전사는 편지와 소포 등이 가득 담긴 우편물 행랑(주머니) 2개를 미리 나와 대기하고 있던 우체국 직원에게 전달한 뒤 바로 차를 몰았다.

태그:#아프리카, #우간다, #엔테베, #적도, #캄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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