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53회 깐느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하나 그리고 둘>

ⓒ 아톰 필름
허우샤오시엔과 함께 대만의 뉴웨이브를 이끌었던 에드워드 양 감독은 자신의 다섯번째 영화인 <하나 그리고 둘>을 들고 제53회(2000년) 칸 영화제에 도착한다. <마작> 이후 4년 만에 돌아온 그는 <하나 그리고 둘>에서 대만 중산층 가족을 통해 삶의 여러 국면들을 한데 펼쳐보인다.

영화는 NJ의 처남인 아제의 결혼식장에서 시작한다. 아제는 여자친구가 임신하는 바람에 쫓기듯 식을 올리는 중이다. 그러나 식장엔 그의 또 다른 여자친구가 찾아옴으로써 아수라장이 된다. 한편 NJ는 결혼식장에서 첫 사랑인 셰리와 30년 만에 재회한다. 그리고 셰리가 아직도 자신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게 된 NJ는 혼란스러워한다.

할머니는 손녀 팅팅이 버리지 않은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 그만 쓰러져 의식 불명이 된다. 가족들은 할머니 침대맡에 앉아 매일 매일 각자의 이야기를 한다. 독백도 방백도 아닌 그것은 마치 고해성사처럼 경건하지만, 날이 갈수록 할 말은 줄어들고 가족들도 조금씩 지쳐간다.

그 무렵 NJ의 회사는 경영난을 타계하기 위해 새로운 사업 파트너를 찾는다. 그 일로 일본에 출장 간 NJ는 셰리와 다시 마주친다. 한편 팅팅은 이웃집 친구인 리리의 남자친구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막내인 양양만이 천하태평으로 온갖 말썽을 일으킨다.

<하나 그리고 둘>에는 두 대의 카메라가 존재한다.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대만 중산층 가정의 일상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프레임 밖의 카메라와, 양양이 프레임을 넘나들며 연기나 모기, 사람들의 뒷모습만을 찍어대는 작은 사진기가 그것이다.

결혼식으로 시작해 장례식으로 끝나는 NJ 가족 삶의 한 토막을 통해, 그리고 어른의 눈으로 보기엔 온통 쓰잘데기 없는 것들뿐인 양양의 사진을 통해, 우리는 무심코 흘려보낸 삶의 많은 의미들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 왜 뒷모습만 찍니?
- 사람들이 직접 자기 뒷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잖아요

우리는 눈으로 본 것을 신뢰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그 대상(인물/사물)이 보여주고자 했던 것만을 본 것은 아닐까. 이를테면 미리 머리를 매만지고 바라보는 거울처럼. 그런 점에서 <하나 그리고 둘>의 NJ가 일본 사업가인 오타가 혼자 있는 모습을 훔쳐보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NJ는 오타가 혼자서 비둘기와 놀고 있는 모습을 훔쳐보며, 어딘지 모르게 천진하고 순수한 모습의 그를 점차 신뢰하게 된다. 감독은 관객도 마치 누군가의 삶을 몰래 들여다보는 마음으로 이 영화를 보길 원한다는 듯이, 카메라는 종종 유리창 너머나 사무실 밖에 위치한다.

▲ NJ역을 맡은 오념진은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로도 유명하다

ⓒ 아톰 필름
NJ를 연기한 배우는 오념진이다. 그는 배우뿐 아니라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을 겸하고 있는데, 감독 데뷔작인 <아버지>(94)는 토리노영화제 그랑프리와 테살로니키영화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또 추억의 영화인 <로빙화>와 허우샤오시엔의 걸작 <비정성시>의 각본을 쓰기도 한 다재다능한 배우다.

순수한 NJ에 비해 그의 직장 동료들은 다소 속물적으로 그려진다. 정직하게 사업을 하는 오타의 회사보다는, 남의 아이디어를 훔쳐와 사업을 하는 기업과 손을 잡는다. 그 과정에서 NJ는 심리적 갈등을 겪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NJ가 반드시 윤리적인 인간으로만 그려지는 것은 아니다.

유부남인 NJ는 첫사랑 셰리와 재회한 후 방황한다. 출장차 떠난 일본에서의 그의 행동은 분명 가장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잠시동안의 일탈에서 돌아온 NJ는 체념 섞인 어조로 이렇게 말한다. '뒤로 돌아가서 삶에 다시 부딪쳐 보려고 했지만 똑같을 뿐이었어.'

NJ는 과거 첫사랑으로부터 도망쳤고, 그 도피의 결과가 지금의 가족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잔인한 것일까. 첫사랑에 실패한 팅팅이 “할머니 왜 이렇게 세상은 생각하는 대로 살아지지가 않는 거죠. 이제 눈을 감고 세상을 볼 거예요”라고 말할때, 이 말은 곧 NJ의 체념 섞인 독백과 겹쳐진다.

아버지의 실패를 딸이 반복하며, 혹은 아버지와 팅팅의 남자친구, 팅팅과 셰리가 겹쳐지는 이 단순 복잡한 구도 속에서 시간의 축은 길게 이어진다. 그리고 그 시간의 축이 놓여지는 곳은 현대 대만의 도시적인 풍경이다. 그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NJ의 아내가 갑자기 흐느끼며 '갈 곳이 없다'고 말하는 장면은 그래서 더욱 가슴을 친다.

<하나 그리고 둘>은 다층적인 플롯으로 우리가 무심코 스쳐간 순간의 희로애락들을 복잡 미묘하게 펼쳐보인다. 그 어떤 수사나 장식도 없이, 에드워드 양의 말대로 '삶의 단순한 한 조각 부스러기'를 통해 삶 그 자체를 보여준다.

제53회 칸 영화제


ⓒ칸 영화제 포스터
제53회 칸 영화제는 2000년 5월 10일부터 21일까지 11일간 열렸다. 개막작은 롤랑 조페의 <바텔>이, 폐막작은 데니 아르캉의 <스타덤>이 선정되었다.

임권택 감독이 <춘향뎐>으로 경쟁부문에 진출하면서 우리에게도 큰 관심의 대상이었던 53회 칸 영화제에는 그 외에도 왕가위의 <화양연화>, 라스폰 트리에의 <어둠 속의 댄서>, 켄 로치의 <빵과 장미>, 지앙 웬의 <귀신이 온다> 등 쟁쟁한 작품들이 경쟁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이중 황금종려상은 <어둠 속의 댄서>, 감독상은 <하나 그리고 둘>의 에드워드 양, 남우주연상은 <화양연화>의 양조위, 여우주연상은 <어둠 속의 댄서>의 비욕에게 돌아갔다.



2007-05-15 17:02ⓒ 2007 OhmyNews




하나 그리고 둘 에드워드 양 칸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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