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전주국제영화제 인디비전과 국제경쟁부분에 초청된 츠보카와 다쿠시 감독의 <아리아>는 다소 서정적인 영화의 제목과 줄거리 덕분인지 다른 작품들에 비해 많은 관람객들이 찾았다.

작년 <아름다운 천연>으로 전주국제영화제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준 그였다. 이번 <아리아> 상영관에서는 <아름다운 천연>을 기억하는 팬들이 꽤 많았다. 작년에 이어 두번째로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은 츠보카와 다쿠시 감독을 2일 오전 만나보았다.

과거와 현재, 죽음과 삶 이어주는 바다의 이미지가 좋다

▲ 츠보카와 다쿠시 감독
ⓒ 안소민 - 작품을 찍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구상은 언제 한 것인가?
"이 작품 전에 찍고 있던 영화를 하고 있을 때부터였다. 구체적으로 시나리오를 쓰게 된 것은 작년 전주국제영화제를 다녀오고 나서부터이다."

- 이 작품에 보면 '바다'의 이미지가 많이 등장한다. 주인공 오타의 아내가 죽으면 바닷가에 뿌려달라는 것도 그렇고 인형사 스승 쿠조가 부른 노래에도 바다가 등장한다. 무엇보다 피아노를 찾으러 가는 기나긴 여정이 줄곧 바다와 함께 한다. 작품에서 바다의 의미는 무엇일까.
"예전부터 시나리오를 쓰다 보면 '바다', '모래사장'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쓰곤 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쓰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쪽 이미지로 가곤 했다. 바다는 모든 것의 경계를 의미하는 것 같다. 즉 이쪽과 저쪽, 과거와 현재, 삶과 죽음 등 양쪽 모두를 포함하면서도 그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은 바다의 본질이 주는 이미지 때문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바다를 무척 좋아한다. 4살까지 친척집에서 자랐는데 그 집 주위에 바다가 있어서 모래사장에서 놀았던 기억이 난다. 사춘기 시절에도 학교 수업을 빼먹고 바다 주위를 많이 어슬렁거리며 방황하기도 했다."

- 이 작품은 보는 사람에 따라 주제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나이든 관객들에게는 지난날에 대한 향수가 될 수도 있고 또는 죽은 아내에 대한 사랑 혹은 음악에 관심이 많은 관객 입장에서 보면 피아노에 대한 오마쥬가 될 수도 있다. 감독이 생각하는 주제는 어떤 것인가?
"그 모든 것이 다 될 수 있다. 이 영화의 제목인 '아리아'(Aria)라는 뜻은 이탈리아어로 노래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더 살펴보면 '공기'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공기처럼 우리 눈에는 안 보이지만 확실히 존재하는 것들 예를 들면 기억이라든지, 추억, 그리움 또는 잃어버린 무엇인가를 떠올리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은 관객의 몫이다."

- 작품에 꽤 많은 악기가 등장한다. 우선 주인공 오타의 직업인 피아노 조율사답게 피아노부터 시작해서 재즈밴드, 샤미센(일본 전통 현악기 중 하나), 칼연주, 일본전통음악밴드까지 다양하다. 음악을 많이 쓰는 이유라도 있는가?
"나 자신이 음악가이기도 하다. 난 영화에서 대사를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 대사로 그냥 내뱉고 나면 그 이상의 의미는 표현할 수 없다는 점이 늘 아쉬웠다. 대신 음악이나 노래를 많이 사용한다. 그것은 언어가 전달하지 못하는 그 이상의 내용을 많이 함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 작품에서는 '당신이 그리워 바다에 왔더니~'로 시작하는 노래를 영화의 전반부에서는 인형사 쿠조가 부르고 후반부에서는 피아노 찾으러 가는 여정중에 만난 어느 할머니가 부르는 것을 볼 수 있다. 같은 노래지만 부르는 사람과 배경, 분위기에 따라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점이 참 흥미롭다. 박자, 곡조, 리듬 이 모든 것이 부르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그런 점에서 음악과 노래는 훌륭한 매력적인 요소다."

'딸'의 존재가 애매하다? 그걸 해석하는 건 관객의 몫

- 이 작품을 본 사람이라면 피아노 찾는 여정에 합류하게 된 '카코'라는 묘령의 젊은 여인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될 것이다. 정말 딸이 맞나?
"그것은 비밀이다.(웃음) 일부러 그 딸의 존재를 애매하게 하려고 했다. 관객들이 그렇게 느꼈다면 내 의도는 성공한 셈이다."

- 일부러 그렇게 의도한 이유는 무엇인가? 좀 뻔한 이야기지만 관객들은 상처(喪妻)한 오타와 젊은 여인 카코 사이에서 어떤 로맨스를 기대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애매한 색깔로 그려졌다.
"로맨스는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정말 너무나 뻔한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인형사의 인형과 빼닮았다는 점과도 관련해서 죽은 아내의 환상이라는 식의 정의도 내리고 싶지 않았다. 여기서 카코는 여러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과거' 정도라고 말할수 있다. '카코'는 일본말로 과거란 뜻도 포함하고 있다. 물론 한자는 다르지만."

- 인형사 아내의 피아노를 찾는 여정에 느닷없이 합류한 이 카코라는 여인에게 오타는 계속 적개심 가까운 미움을 갖고 있다. 작품의 후반부에 이르러 바닷가에서 둘은 화해를 하게 된다.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
"오타는 아내가 죽은 후 세상으로부터 마음을 닫고 살아온 인물이다. 피아노를 찾는 여정도 본인 스스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떠맡게 된 일이다. 이 과정에서 카코를 만나게 되고 계속 그녀의 존재를 무시하다가 나중에 그녀와 화해를 하게 된다. 그것은 곧 지난 날, 아내를 잊지 못하고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 살아왔던 시간에 대한 화해를 의미한다. 닫혔던 마음의 빗장을 열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 작품 중 아내의 피아노가 등장하는 장면과 마지막 장면, 오타가 호숫가에서 피아노를 칠 때 나오던 그 선율은 무엇인가?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중 하나다. 평소 바흐를 무척 좋아한다. 벨라 바르톡 역시 좋아하는 음악가 중 하나다."

- 이번이 전주국제영화제 두 번째 방문인 것으로 안다. 두 번째로 찾는 전주국제영화제의 느낌이 어떤지 궁금하다.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전주의 콩나물국밥은 정말 맛있다.(엄지손가락을 쳐들면서) 맵지 않고 정말 맛있다. 전주 국제영화제 이야기를 해달랬는데 음식이야기로 새고 말았다.

전주국제영화제는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 유명한 감독의 작품부터 '어? 이런 나라도 있구나' 싶은 나라까지 아주 다양한 색깔의 작품을 소개하고 상영한다는 점이 참 좋다. 영화작업 때문에 세계 여러 곳의 국제영화제를 많이 다녀보았지만 이곳은 고향에 온 듯한 편안함을 준다. 그리고 젊은 자원봉사자들의 친절하고 밝은 분위기 역시 이 곳을 또 찾고 싶게 만드는 이유중의 하나인 것 같다.

한폭의 그림같은 바다풍경이 인상적인 작품 <아리아>는 어떤 영화?

ⓒJIFF 피아노 조율사인 오타는, 죽으면 자신의 재를 사진 속의 바다에 뿌려달라는 유언으로 세상을 떠난 부인에 대한 기억을 잊지 못하며 살고 있다. 그렇게 고독하게 살던 그는 세들어 사는 고미술품점 주인인 고지마와 함께 간 공연에서 인형사인 쿠조를 알게 된다.

쿠조는 '아리아'라는 인형을 가지고 인형극을 하는 인형사이다. 그 역시 죽은 아내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지병을 앓던 쿠조는 오타를 보고 자신의 죽은 아내가 갖고 있던 피아노를 찾아달라고 부탁하게 된다. 그리고 그 피아노 뚜껑에는 꽃이 그려있다고 덧붙인다.

그리고 쿠조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고 오타는 쿠조의 제자였던 센쥬의 간곡한 부탁으로 피아노를 찾는 일에 동참하게 된다. 그때 죽은 쿠조의 딸이라는 '카코'라는 젊은 여인이 나타나 피아노 찾는 일에 함께 하고 싶다고 부탁을 한다. 그러나 오타는 이 여인의 존재가 거슬리기만 한다. 우여곡절 끝에 세 사람은 피아노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나게 된다.

피아노를 찾는 여정을 그린 작품의 중반부는 로드 무비적 형식을 띠고 있다. 길가에서 우연히 만난 어느 노파의 존재와 끝없이 펼쳐지는 바닷가의 이미지, 어느 낯선 곳에서 만난 한무리의 악단 등은 작품의 분위기를 더욱 신비스럽게 만든다. 특히 작품의 마지막 장면, 꽃무늬가 그려진 피아노를 찾은 오타가 호숫가에서 피아노를 치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그 신비함과 아련함은 배가 된다.

무엇보다 화면을 가득 채운 바닷가의 풍경과 파도소리, 모래사장 등의 풍경이 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시각적, 청각적으로 대단히 훌륭한 구실을 한다. '추억, 기억, 지나가버린 세월, 지금은 잊혀졌지만 한때는 존재했던 것들'… 그런 것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이 영화를 만든 츠보카와 다쿠시 감독은 1972년 일본 훗카이도에서 태어났다. 1993년 무성영화 <12월의 세발 자전거>를 제작했고 자유 극장에서 배우와 뮤지션으로 일한 뒤 1996년부터 <아름다운 천연>을 제작했다. 같은 해 '쿠모노스 4중주단'을 결성해 일본 전역을 돌며 자신의 무성영화와 함께 음악과 네레이션을 선보였다. <아름다운 천연>으로 2006년 전주국제영화제를 방문한 바 있다. / 안소민 2007-05-04 12:17ⓒ 2007 OhmyNews

츠보카와 다쿠시 아리아 전주국제영화제 아름다운 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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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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