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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구에서 바라본 카렌 블릭센 박물관.
ⓒ 김성호

위험한 나이로비를 바로 떠나려 했으나 에티오피아 하라르처럼 떠날 때는 여행객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마운틴고릴라(산악고릴라)를 보기 위해 다음날 저녁 우간다로 가는 버스를 타려 했으나, 주말이라 표가 모두 팔려 나갔다.

내가 나이로비에 도착한 날이 마침 금요일. 다음날 토요일과 일요일 주말의 버스표가 완전 매진되어 결국 월요일 저녁 버스표를 예매해야 했다. 싫으나 좋으나 나이로비에 사흘을 더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나이로비에서 하룻밤을 지낸 뒤 다음날 우리는 일본여행객과 같이 쓰던 6호실에서 한국의 젊은 의사가 쓰던 3호실로 방을 옮겼다. 재미교포 여학생이 저녁에 떠나기 때문에 3호실에 빈 방이 나는 데다 6호실을 같이 쓰던 일본여행객들이 새벽 2시가 되어도 자지 않고, 마리화나를 피우면서 우리의 잠을 설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루를 아프리카 예술을 감상할 수 있는 갤러리와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원작자 박물관을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우리'란 나와 6호실을 같이 썼던 남자 대학생 그리고 3호실의 젊은 의사와 재미교포 여학생, 뉴질랜드 여행객 등 모두 5명. 5명이 모이니 아무리 위험한 나이로비 시내라 하더라도 무서울 것이 없었다.

우리가 제일 먼저 간 곳은 와타투(Watatu)라는 이름의 갤러리였다. 애초 나는 유명한 야생동물 보호가이자 화가인 조이 애덤슨이 그린 각 부족 초상화와 현대 그림,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나멘시스와 보이세이 등 투르카나 호수에서 발견된 초기 인류화석 등이 전시된 케냐 국립박물관을 구경하고 싶었으나 공사 중이어서 볼 수가 없었다. 숙소의 직원은 "현재 일시 폐관된 국립박물관은 2007년 7월께 다시 문을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숙소에서 나와 라테마 거리를 따라가다 옛날 빅토리아 거리였으나 케냐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인 톰 음보야의 이름으로 바뀐 거리를 가로질러 스탠더드 거리에 다다르자 와타투 갤러리가 나왔다. 와타투(Watatu)란 스와힐리어로 '세 사람'을 뜻하는데, 1968년 세 명의 예술가들이 이 갤러리를 처음 시작한 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 나미비아 빈드후크에 있는 국립미술관의 그림들.
ⓒ 김성호

2층에 있는 와타투 갤러리에는 다양한 아프리카 현대 그림과 조각,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그림에는 가격 표시가 되어 있었다. 현장에서 직접 팔기도 하는 것이다. 원색의 밝은 색들을 주로 사용한 데다 동물들을 소재로 하고 있어 한눈에 아프리카 그림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 관심을 끈 작품은 덩치가 큰 코끼리가 키가 큰 기린의 입에 닿기 위해 두 앞발을 들고 코를 쭉 내밀자 기린이 코끼리 코를 핥아주는 그림이었다. 초원의 가장 큰 동물들인 기린과 코끼리 사이의 우정을 그리면서도 마치 기린이 엄마처럼 코끼리의 코를 핥는 모습을 '엄마애기 놀이'하듯 코믹하게 그린 것이 한 편의 동화 같았다.

또 다른 작품으로 기린이 땅에 발랑 뒤집어 누워 자신의 코를 코끼리처럼 거꾸로 꺾어서 땅을 쳐다보는 그림도 있었다. 아마도 키가 크고 목이 길어 땅에 닿을 수 없는 기린이 코를 땅에 닿고 싶어 하는 희망을 그린 것처럼 보였다. 인간도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더 바라듯 동물의 욕망을 통해 정작 인간의 꿈과 희망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동물과 사람의 관계를 추상화해 그린 작품들도 보였고, 인간과 동물의 공존의 철학을 표현한 그림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농부가 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그 옆에서 기린이 한가로이 노닐고 있는 그림도 있고, 코끼리가 농사일로 피곤에 지친 사람을 코로 밀고 가는 그림도 보였다.

조각 작품 중에는 얼굴이 길쭉하고 입을 앞으로 내민 모습을 나무에 조각한 아프리카 특유의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국립박물관만은 못하겠지만, 갤러리 와타투의 그림들은 그런대로 아프리카 미술과 예술을 살짝 맛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 현장을 찾아가다

▲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 포스터.
ⓒ 유니버설 스튜디오
우리는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뒤 영국제 구형 7인승 택시를 타고 카렌 블릭센 박물관으로 향했다. 카렌 블릭센 박물관은 바로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의 원작자가 살았던 곳이다. 시내에서 서남쪽 교외로 30여분 걸려 오후 3시쯤 도착했다. 은공 거리를 달리다 카렌 거리로 빠져 막다른 곳이 바로 박물관이다.

나이로비 국립공원 옆에 있는 카렌 블릭센 박물관 주위는 부자들이 주로 사는 전원도시 같은 분위기였다. 나무와 숲이 우거지고 조용한 곳으로 차가 들어서자 시원한 느낌이 들 정도로 복잡한 시내와는 다른 야외 공원 같은 장소가 나타났다. 카렌 블릭센 박물관이다. 전형적인 식민지 시대의 백인 정착민의 농장 저택이다.

덴마크 출신인 카렌 블릭센(Karen Blixen, 1885~1962)은 케냐에서 커피농장을 경영하다 실패한 뒤 귀국한 뒤 자전적 소설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 아프리카를 떠나며)>를 영어로 1937년 출판했다. 아이작 디네센(Isak Dinesen)이라는 필명으로 출판한 이 소설은 유럽과 미국 등에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사촌오빠와 결혼한 뒤 아프리카로 왔으나 그와 헤어진 덴마크 귀족 출신의 그녀는 다시 영국 출신의 사냥꾼을 만나 사랑했으나 그마저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하자 쓸쓸한 추억만 남긴 채 아프리카를 떠났다. 소설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바로 자신의 이런 실제 아프리카 얘기를 그린 것이다.

어쩌면 평범한 낭만적 사랑 이야기에 불과한 소설이지만, 그녀의 세련되고 지적인 문장에다 당시 유럽에 불고 있었던 아프리카에 대한 향수로 인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현재 카렌 블릭센 박물관은 케냐의 나이로비와 그녀의 고향인 덴마크 룽스테드(Rungsted) 등 두 곳에 있다. 나이로비 박물관은 그녀가 1917년부터 1931년까지 살던 저택과 농장을 박물관으로 바꾼 것이다.

그녀가 우리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물론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 때문이다. 그녀의 같은 이름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1985년 미국의 시드니 폴락이 감독하고, 메릴 스트립과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연으로 출연해 흥행에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실제 영화가 촬영된 곳은 이 박물관이 아니라 카렌 블릭센이 처음 케나에 와서 초기 1914년부터 1917년까지 커피를 재배했던 음바가티(Mbagathi) 농장 저택이다. 음바가티는 나이로비 시내에서 남쪽으로 20km 떨어진 교외에 있다.

▲ 정면에서 찍은 카렌 블릭센 박물관 모습.
ⓒ 장철규 <아프리카클럽 바오밥>

플라밍고 떼가 춤추는 가운데 사랑의 다리를 완성하는 장면이 떠오르고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본 사람이라면,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2악장 음악이 배경에 깔리면서 붉은 석양과 하얀 구름이 하늘에 걸려 있고, 푸른 대초원에 펼쳐지는 커피 농장과 평화로이 풀을 뜯고 있는 야생의 동물들을 보면서 누구나 꿈꾸게 된다. 목가적인 사랑이 나풀거리는 아프리카 생활을….

카렌 블릭센 박물관에 도착하니 주인공 카렌(메릴 스트립)이 기차를 타고 초원을 가르며 아프리카로 들어가는 영화의 첫 장면이 재생화면처럼 선명하게 떠올랐다. 영국이 놓은 케냐의 인도양 항구 몸바사에서 나이로비로 가는 철도의 기차를 타고 가는 모습이다. 카렌이 연인 데니스(로버트 레드포드)를 처음 만난 것도 이 열차를 타고 가면서이다.

내 머릿속에 강하게 남아 있는 또 다른 장면은 데니스가 연인인 카렌을 쌍발 경비행기에 태우고 아프리카 하늘을 나는 모습이다. 두 사람을 태운 경비행기가 나쿠루 호수 위를 나르자 그 밑으로 수만 마리의 플라밍고(홍학) 떼가 붉은 구름처럼 무리지어 춤추며 날아간다. 마치 두 사람의 사랑을 축하라도 하는 듯.

플라밍고 떼가 춤추는 가운데 비행기 운전석 앞좌석에 앉아 있던 카렌이 자신의 오른손을 뒤로 내밀고 뒷좌석에 앉아 있던 데니스가 왼손을 뻗어 카렌의 손을 잡아준다. 서로 한 손을 내밀어 두 손을 잡음으로써 사랑의 징검다리를 완성하는 장면이다. 아름다운 영화를 보면서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 카렌 블릭센 박물관 앞 작은 정원에 심어져 있는 커피나무.
ⓒ 한두희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스쳐지나간 아프리카의 아픈 역사들

그러나 이 영화장면에는 개인적인 사랑뿐 아니라 당시 식민지 사회상을 보여주는 아프리카의 아픈 역사도 나온다. 두 연인 간의 사랑과 야생의 동물에 눈길을 빼앗기다보니 딱딱한 역사 이야기는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여기를 막아서 저수지를 만들 거야."
"이 물은 몸바사로 가는 겁니다."
"나중에 가도 돼."
"이 물은 몸바사의 것입니다."


카렌이 자신의 농장 근처에 흐르는 냇물을 막아 커피농장의 저수지로 쓰려고 하자 하인인 파란 아든이 하는 말이다. 몸바사는 인도양 연안의 케냐 항구도시이다. 아프리카의 물은 식민지 백인 정착민들의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이곳에서 살아온 아프리카인의 공동재산이라는 뜻이다.

"당신은 참 많은 것을 가졌네요."
"나는 내가 소유한 모든 것을 돈을 주고 산 것뿐이에요."
"우리는 이 땅에 있는 것을 소유할 자격이 없어요. 우리는 여기의 주인이 아니라 그저 스쳐지나갈 뿐이죠."
"내 키쿠유들이 읽을 줄 알면 좋겠어요."
"난 그들이 작은 영국인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어느 누구에게도 구속되기를 싫어하는 자유로운 영혼인 데니스가 연인인 카렌에게 하는 말이다. 아프리카에 큰 농장을 소유한 카렌이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친 후 선교 사업을 하겠다"고 하자 데니스가 식민지 교육이라며 냉소적으로 반박한다.

카렌이 아프리카를 떠나며 원주민들에게 농사지을 땅을 사주려고 하자 영국 총독부 관리는 "원주민들의 몫은 없다, 영국 왕실의 땅이다"라고 잘라 말한다. 쾌적한 기후에 매료된 영국은 당시 케냐 중앙부의 비옥한 토지 450만 에이커를 아예 백인전용 토지(화이트 하일랜드)로 지정해 아프리카인의 소유를 금지했기 때문이다.

단편적인 영화 속의 대화를 통해서도 당시 오랜 주인인 아프리카인들이 종으로 밀려나고, 외지인인 백인들이 주인행세를 하던 식민지시대의 비뚤어진 사회상을 알 수 있다. 카렌 블릭센이 살던 20세기 초에는 이미 케냐의 주인이었던 키쿠유족이나 마사이족 등 원주민은 농사지을 땅조차 모두 유럽 백인들에게 빼앗긴 상태였다.

일부는 총칼에 의해 강제로, 또 일부는 속임수에 의해 헐값에 대초원은 백인들에게 넘어갔고, 아프리카인들은 그들 농장의 노동자로 전락했다. 땅의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순식간에 주인과 종이 바뀐 것이다. 당시는 백인들이 대규모 농토를 소유하고 소와 양 등 목축업과 커피와 차 등 환금작물을 재배하는 농장 경영의 열풍이 불던 제국주의 시대였다.

실제로 지난 1895년 케냐를 보호령으로 삼은 영국은 1904년에는 백인국가 건설을 목표로 1905년까지 대단위의 토지를 점령하고 백인 정착민들을 끌어들였다. 백인들에게 빼앗긴 영토를 되찾자는 운동이 바로 1952년 '마우 마우(Mau Mau)' 전쟁으로 알려진 '케냐토지자유군(Kenya Land Freedom Army)'의 투쟁. 데단 키마티를 지도자로 하는 토지자유군의 백인 농장과 총독부 건물에 대한 공격은 케냐 독립운동의 시초가 되었다.

토지자유군의 주력부대는 백인들에게 땅을 빼앗긴 키쿠유 부족들이었다. 키쿠유족은 목축을 주로 하는 마사이족과 달리 농업을 주로 하는 농경부족이었기 때문에 땅은 곧 생명인 셈이었다.

원주민들 사이에 내려오는 케냐의 전설에 따르면 옛날에 신이 세 명의 아들을 불러놓고 창과 활, 괭이 중 하나를 선택하게 했다. 장남은 괭이를 선택해 농경민인 키쿠유족이 되었고, 차남은 창을 골라 유목민인 마사이족이 되었고, 막내는 활을 가져 수렵민인 캄바족이 되었다고 한다.

케냐의 독립투쟁은 바로 빼앗긴 농토를 되찾자는 운동이었다. 호주 멜버른 대학의 역사학 교수인 데이비드 데이는 <정복의 법칙>이란 책에서 "땅을 경작하는 것은 침략자가 땅을 차지하고 사는 수단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며 "침략을 정당화하는 수단이었을 뿐만 아니라, 정복한 땅을 자기 소유로 하며 기존의 원주민을 쫓아내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수단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남의 땅에서 경작하는 것은 정복자들의 영구적인 이주를 정당화하기 위한 전형적인 논리라는 것이다. 케냐를 남아공과 함께 아예 백인국가로 건설하려던 당시 서구 제국주의의 야욕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일제가 1910년 조선을 강제합병한 뒤 한반도에서 처음으로 시작한 것도 사실은 땅 빼앗기였다. 토지조사사업이란 미명 아래 전통적으로 사적 소유 관념이 없어 관청에 신고하지 않은 수많은 토지를 총독부 소유로 빼앗아가거나 일본인 이주민들에게 넘겨주었던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유럽 백인들은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영국의 백인들이 원주민인 인디언들을 내쫓고 캐나다와 미국을 건설해 백인국가로 만들었고,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는 원주민인 태즈메니아 부족을 아예 절멸시킨 뒤 백인국가를,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백인들은 남아메리카에서 원주민을 몰아낸 뒤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의 사실상 백인국가를 만들었다.

옛날 호주가 백인 이외의 황인종과 흑인 등 유색인종에 대해 이민을 제한하는 백호주의(白濠主義) 정책을 펼친 것은 호주 백인들의 정복과 이주 역사를 알면 한편의 코미디이다. 원주민을 말살시킨 다음 외부인인 자신들이 주인행세를 하면서 백인 이외에는 이주를 받지 않겠다는 것이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오렌지처럼 껍질을 벗기고 쥐어짰다는 프랑스 소설가 앙드레 지드의 분노

▲ 에티오피아 악숨의 에자나 공원에 흐드러지게 핀 부겐빌레아.
ⓒ 김성호

"우린에게 마사이족이 있어요. 그들은 투사들이죠."

역시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케냐에 있던 백인들이 하는 말이다. 원주민들을 자신들의 전쟁에 투입하자는 말이다. 전쟁이 끝난 뒤 백인들의 사교클럽인 'The Mount Kenya Social Club(마운트 케냐 사교클럽)'이란 간판이 걸린 나이로비 거리에는 아프리카 병사들과 인도병사들이 영국 국기를 든 백인병사 행렬을 뒤따라 개선행진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프리카인들이 거리에 나와 이들을 환영한다.

수많은 아프리카인들이 1,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 토지와 자치권을 준다는 식민지배 국가의 말을 믿고 자신들과 상관없는 전쟁터에서 희생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 돌아온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영국과 독일은 똑같아. 왜 국경이 생겼는지 알아? 영국 영토에는 산이 두 개 있는데, 독일 쪽은 없어. 그래서 킬리만자로를 독일 쪽에 준 것이야. 남의 땅에서 이게 무슨 짓이야."

영국 출신인 사냥꾼 데니스가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참전하자는 동료 백인에게 투덜거리며 하는 대화이다. 킬리만자로를 케냐 땅에서 탄자니아로 멋대로 넘겨준 것을 예로 들며 똑같은 제국주의인 영국과 독일의 싸움에 끼어들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정말 남의 땅에서 유럽 제국주의는 멋대로 아프리카의 땅을 나누고 아프리카 전통과 문화를 '야만'으로 규정짓고 유럽식 '문명'으로 바꾸려 했다. 프랑스의 식민지 정책을 비판하는 <콩고여행>이란 책을 쓴 앙드레 지드는 "오렌지처럼 껍질을 벗기고 쥐어짰다"고 서구제국주의의 아프리카 점령을 신랄히 비판했다.

카렌 블릭센이 농장 겸 저택으로 사용했던 박물관도 애초 키쿠유족들이 옥수수와 감자, 바나나, 콩 등을 심어 주식용 작물을 재배하던 곳이다. 그러나 백인들이 땅을 차지하면서 유럽에 수출해 돈을 벌려는 목적으로 커피와 차, 망고 등 환금작물을 재배하게 되었다. 아라비카 커피로서 강한 맛과 품질이 좋기로 유명한 케냐 커피도 백인 정착민들의 환금작물로 본격적 재배가 시작되었다.

영화 세트를 옮겨 놓은 것 같은 카렌 블릭센 박물관

카렌 블릭센 박물관 입구에는 20m 이상의 커다란 자카란다와 유칼립투스 나무들이 그늘을 길게 떨어뜨리며 여행객들을 맞고 있었다. 붉은 벽돌 지붕의 방갈로 스타일의 커다란 저택인 박물관 매표소 입구에는 커피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옛날 이곳이 커피 농장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처럼.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한 뒤 박물관 안으로 들어서면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 나오는 카렌 역의 메릴 스트립의 영화 장면 사진 등이 반긴다. 영화의 감동적인 장면들을 여행객들에게 되살리려는 의도인 것 같았다.

첫 번째 방은 사무실이고 오른쪽에는 손님방, 그리고 복도를 따라 들어가면 벽난로와 함께 가장 큰 방인 식당이 나온다. 당시 주전자와 스푼, 양념통 등 식기류와 부엌 도구, 가구, 책들이 놓여 있었다.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왼쪽에 카렌의 침실과 오른쪽에는 첫 남편인 브로르, 즉 블릭센 남작과 연인이었던 영국 사냥꾼 데니스 핀치 해튼의 침실이 마주보고 있다. 옛날 전화기와 타자기, 모자 등도 그대로 놓여 있었다. 모자를 쓰거나 머리 수건을 한 채 한껏 멋을 부리고 찍은 카렌의 사진들도 많이 전시해 놓았다. 당시 카렌이 살던 모습을 그대로를 보여주려는 듯하다.

영화 속에서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신기해하는 소리 나는 시계인 뻐꾸기시계와 카렌이 연인 데니스를 빨간불과 파란불의 색깔에 따라 방안으로 들이고 싶은 감정을 나타내던 호롱등, 카렌이 사냥개로 데리고 다니던 포인터와 찍은 사진, 덴마크 동전에 새겨진 모자를 쓰고 있는 카렌의 얼굴 사진 등도 보존해 놓고 있었다. 마치 영화 세트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박물관을 나오면 앞뜰에는 옛날 마차와 커피 농장에서 쓰던 농기구, 커피 가공 기계 등을 녹이 슨 채로 그대로 놓아 예전의 생활상을 보여주려 했다. 왼쪽 정원은 넓은 잔디밭으로 깔려 있었는데, 야외 결혼식장이나 파티 또는 각종 행사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듯했다. 내가 갔을 때도 야외 결혼식장으로 사용하려는지 잔디밭 위에 하얀 천으로 덮인 식탁과 의자에 음료수와 음식이 놓여 있었고, 결혼식 임시 주례단이 만들어져 있었다.

드라마 <황금사과>의 부겐빌레아 꽃이 여행객을 반기는데

▲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카렌 블릭센 박물관의 포인세티아.
ⓒ 김성호

결혼식장으로 사용되고 있던 정원은 카렌이 살던 당시에는 커피나무가 심어졌던 곳이다. 커피나무 대신 희귀한 열대나무와 열정적인 아프리카의 꽃들이 여행객을 반기고 있었다. 작은 선인장부터 10m 이상 높게 자란 칸델라브라(Candelabra)가 제일 먼저 눈에 띈다.

칸델라브라는 머리 위에 많은 선인장을 우산살처럼 펼친 채 우뚝 솟아 있다. 땅에서 올라온 줄기가 자라다 촛대처럼 여러 갈래로 갈라지면서 가지들은 마치 선인장 같은 모양을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 칸델라브라(학명은 유포르비아 칸델라브룸). 탄자니아 세렝게티 초원 등 여행 중 아프리카 사바나 지역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식물이다.

정원 한쪽에 수줍은 듯 강렬하게 나를 끄는 붉은 빛의 두 그루 꽃나무가 있었다. 부겐빌레아와 포인세티아. 꽃봉오리를 싸서 보호하는 자주 빛의 작은 잎인 꽃싸기잎이 마치 꽃처럼 아름다운 부겐빌레아를 보니 정말 연인을 기다리듯이 강렬하면서도 애절해 보이기도 하다. 진짜 꽃은 꽃싸기잎 안에 있는 흰색의 작은 부분이다.

아프리카 여행을 떠나오기 직전 내가 푹 빠졌던 방송드라마 <황금사과>의 주제곡에 나오는 그 부겐빌레아가 아프리카에서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이탈리아 칸초네 <카사비앙카(하얀 집이란 뜻)>를 패티김이 '언덕위의 하얀 집'으로 번안해 불렀던 노래를 젊은 가수가 가사를 바꿔 '꿈꾸는 카사비앙카'라는 제목으로 다시 부른 노래이다. '꿈꾸는 카사비앙카, 바다와 맞닿은 그곳에 붉은 빛에 부겐빌레아, 그대를 기다리네'라는 주제곡은 드라마 내용과 잘 맞아 떨어졌다.

지난 1960년대 엄혹했던 군사독재정권 시절 부당한 권력이 엉뚱하게도 시골농부의 죽음을 불러오는 시대적 상황 묘사와 자유가 억압된 사회가 보통사람들의 삶과 사랑마저도 파괴하는 이야기가 오랫동안 나를 텔레비전 브라운관 앞에 잡아놓았다. 공상과학 만화나 허구의 소설이 아니라 바로 우리시대의 삶이었으니까. 흥미진진했던 아역시절의 연기가 갑자기 줄어들면서 성인 연기로 전개되면서 아쉬움을 남긴 드라마였지만….

부겐빌레아가 나를 처음 맞이했던 것은 사실 에티오피아 악숨의 에자나 공원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역사 유적지 탐방에 몰두하다보니 크게 눈길을 주지 못했다. 카렌 블릭센 박물관에서 보니 본래의 꽃말인 '정열'로 나에게 다가왔다.

▲ 짐바브웨 마스빙고의 그레이트 짐바브웨 입구에 있는 산호나무.
ⓒ 김성호

부겐빌레아보다 더 화려하게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나무는 포인세티아 꽃이다. 포인세티아는 마치 자신이 카렌 블릭센 박물관의 마스코트처럼 활짝 웃고 있었다. 붉은 색의 포인세티아 꽃이 부채처럼 활짝 편 듯도 하고, 공작이 아름다운 깃털을 반월형으로 펼친 듯도 하다. 되돌아보니 리틀엔젤스 어린이 무용단이 예쁜 한복을 입고 화려한 부채춤을 추는 모습이 꽃으로 환생한 것 같기도 하다. 어디를 봐도 아름답지 않은 부분이 없다.

부겐빌레아처럼 실제 꽃은 노란색으로 안에 들어가 숨어 있는데, 오히려 작은 꽃을 둘러싼 꽃싸기잎이 짙붉은 색이어서 꽃같이 예쁘다. 꽃보다 꽃을 에워싸고 있는 꽃싸기잎이 더 아름다운 꽃나무인 부겐빌레아와 포인세티아는 불타는 아프리카의 기질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부겐빌레아와 포인세티아는 나이로비 공원과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꽃이다. 오랜 배낭여행으로 지쳐 있을 때 짐바브웨 수도 하라레와 나미비아 수도 빈트후크에서 또다시 만난 부겐빌레아와 포인세티아는 친구처럼 다정하게 나를 맞이해 주었다.

박물관 바로 뒤에 30m 크기로 에티오피아 악숨의 오벨리스크처럼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 있는 나무는 아라우카리아 소나무이다. 노포크 아일랜드 파인(Norfolk Island Pine)이라고도 불리는 원뿔형 소나무는 이름 그대로 아래는 넓고 둥근 모양의 가지와 잎이 위로 올라갈수록 좁고 둥근 크리스마스트리 모양으로 자란다.

카렌 블릭센 박물관에는 부겐빌레아와 포인세티아 뿐 아니라 유칼립투스, 선인장, 칸델라브라, 아라우카리아 소나무, 자카란다, 대나무, 야자수와 측백나무의 일종인 원주형 사이프러스 나무, 잎이 용의 혀같이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용설란의 일종인 사이잘(Sisal) 등도 있다.

사이잘은 잎에서 섬유를 뽑아 선박용 로프 등 단단한 줄과 직물을 만드는 용도로 사용되어 케냐와 탄자니아에서 식민지 시대에 집단 재배된 환금작물이다. 카렌 블릭센 박물관은 이처럼 각종 열대성 나무와 꽃들이 정원수로 심어져 있는 작은 식물원이다.

내가 만난 아프리카 꽃과 나무들

▲ 남아공 케이프타운의 볼더스 비치 펭귄서식지에 핀 핀쿠션 프로테아.
ⓒ 김성호

이처럼 아프리카에는 동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열대지방에서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꽃과 나무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에티오피아에는 야생 커피나무와 차트나무, 케냐와 짐바브웨의 부겐빌레아와 포인세티아, 우간다의 바나나와 망고, 콩고에는 고무나무와 대나무, 마운틴고릴라가 가장 좋아하는 아칸투스 등이 있다.

탄자니아의 아카시아와 소시지 나무, 사이잘, 히비스커스, 킬리만자로의 세네시오와 헬리크리숨, 잔지바르의 야자수와 허브나무, 바닐라 향 등 각종 정향나무, 말라위의 공작새나무(Royal Poinciana, 불타는 나무) 등도 여행객의 마음을 즐겁게 한다.

짐바브웨의 자카란다와 산호나무(Coral Tree, 에리트리나, 무티티), 보츠와나의 우산나무(African Corkwood Tree 또는 Umbrella Tree)와 오카방고 델타의 하얀 연꽃, 남아공의 병솔나무(Bottle Brush Tree)와 야생 알로에, 핀쿠션 프로테아(Pincushion Protea)도 아름다움에서 뒤지지 않는다.

나미비아 사막의 낙타가시나무와 사막얼음식물 그리고 마다가스카르의 바오밥 나무와 파키포디움, 노토파구수(미르틀 너도밤나무), 맹그로브나무, 여행자의 나무(Traveller's Tree,부채파초), 야생 선인장 등은 정말 마다가스카르 섬이 희귀 동식물의 보고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아프리카에서만 볼 수 있는 이런 희귀한 꽃과 나무들은 여행객에게 주는 또 다른 선물이다. 유칼립투스와 칸델라브라, 아카시아 나무는 아프리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나무들이다. 킬리만자로와 타자라 열차를 타고 가면서 보았던 이름 모를 야생의 꽃들도 여행을 기쁘게 만든다.

그러나 꽃의 이름을 알고 나면 야생에 피어 있는 아프리카의 꽃들은 스쳐 지나가는 유희가 아니라 여행객 마음 속에 하나의 의미로 다가온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며 시인 김춘수가 <꽃>에서 읊조렸던 것처럼.

아프리카 열대지방의 야생 식물에 대한 책이나 인터넷으로 기본적인 열대 꽃들의 이름과 꽃말들을 알고 여행을 떠나면 더욱 즐겁다. 나는 현지에서 모르는 꽃이 보이면 안내자나 현지인들에게 꽃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물어보고, 여행노트에 꼼꼼히 기록을 하면서 여행을 즐겼다.

영화가 세계적 관광명소로 만든 카렌 블릭센 박물관

▲ 마다가스카르 앙다시브-망타디아 국립공원에 있는 부채 모양의 <여행자의 나무>.
ⓒ 김성호
카렌 블릭센 박물관 그 자체에서 어떤 역사적인 의미나 커다란 감흥을 받지 못했다면 바로 작은 식물원으로 여기고 열대 나무와 꽃을 감상하면서 위안을 삼을 수도 있다. 내가 그런 경우이다. 카렌 박물관보다는 정원에 있는 커피나무와 부겐빌레아, 포인세티아에 나는 더 심취했다.

물론 박물관이라고 해서 꼭 외형적 규모가 커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카렌 블릭센 박물관은 규모도 작고, 전시되어 있는 물품도 그렇고, 역사적인 의미를 고려할 때 뭔가 충족되지 않는 아쉬움이 남았다.

더욱이 입장료가 800실링(10달러, 1달러=80실링)은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렌 블릭센 '기념관'이라고 하면 더 어울릴 것이라는 생각이 언뜻 떠올랐다. 역사적 유적지나 전통을 중시하는 내 개인적 여행취향에 따른 것이겠지만….

그러나 백인 여행객들은 박물관 하나하나에 커다란 관심을 기울였다. 줄을 잇는 관람객의 다수도 유럽인이나 미국인이다. 어떻든 카렌 블릭센의 소설은 아프리카에 대한 유럽인들의 향수를 불러 일으켰고,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이곳을 관광명소로 만들어 놓았다.

케냐의 관광산업에 크게 기여하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나이로비는 위험한 도시여서 대부분 배낭여행객이 그대로 통과하는 여정이지만, 카렌 블릭센 박물관은 꼭 봐야할 장소로 꼽히고 있다.

주변 역시 온통 '카렌'이란 이름의 종합 관광지로 변모해 있었다. 카렌 블릭센 박물관 뿐 아니라 들어오는 도로는 카렌 거리였고, 주변지역의 이름도 카렌 지역이고, 카렌 대학도 있고, 카렌 블릭센 마라톤 대회도 있다.

그녀의 연인이었던 데니스 핀치 해튼의 실제 무덤이 있는 은공 언덕(Ngong Hills) 지역도 서구 여행객들을 끌어 들이고 있었다. 박물관 뒤 정원에서 바라보면 멀리 보이는 언덕이 바로 데니스의 무덤이 있는 은공 언덕이다. 한편의 소설과 영화가 관광산업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지를 카렌 블릭센 박물관에 끊이지 않고 들어서는 여행객들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숙소로 돌아오면서 우리는 대형 쇼핑몰에 들러 카메라 충전지 등을 구입했다. 내가 나이로비에 도착하던 첫날 공항에서 굿네이버스 케냐 지부장의 차에 함께 타고 왔다가 택시를 갈아탔던 야야센터라는 곳이었다. 이제야 야야센터와 내가 묵고 있는 숙소의 지리적 방향감각을 알 것만 같다.

태그:#아프리카, #케냐, #나이로비, #카렌 블릭센 박물관, #아웃 오브 아프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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