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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봉 변호사가 15일 한나라당 경선준비위원회에 제출한 문건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96년 국회의원 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법원 판결문과 언론 기사였음이 밝혀졌다.

경선준비위는 "대법원 판결로 유죄가 인정된 내용으로, 새로울 게 없으므로 검증 절차를 종료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96년 사건은 여느 선거법 사건과 달리 내부 제보자의 폭로와 잠적, 반전과 재반전을 거듭하며 정치권을 뜨겁게 달군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당시 이 전 시장이 혐의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며 대법원까지 재판을 끌고 간 사실도 세인들의 입에 다시 회자되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당시 언론보도를 근거로 이 전 시장이 의원직을 사퇴해야 했던 상황을 재구성해 보았다. 다양한 호칭이 혼재될 수 있는 사건이기 때문에 이 전 시장에 대한 직함은 편의상 생략했다. <편집자주>
▲ 2002년 7월 2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서울시장 취임식에서 당시 이명박 당선자가 선서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1996년 4·11 총선 당시 '대한민국 정치1번지' 서울 종로에서는 이명박 후보가 당선됐다. 14대 국회에 여당의 비례대표 의원으로 들어온 그는 이로써 'CEO출신 정치신인'이라는 딱지를 떼게 됐다.

그러나 그해 5월11일 각 후보들의 선거비용 액수가 공개되면서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여야 4당 후보중 신고 재산액(2억6000만원)이 가장 적었고 최하위 득표를 기록한 김을동 자민련 후보가 4명중 가장 많은 선거비용(9255만원)을 신고했기 때문이다. 2위는 노무현 민주당 후보(7271만원)였고, 이명박 신한국당 후보(7149만원)와 이종찬 국민회의 후보(6819만원)가 각각 그 뒤를 이었다.

"이명박, 국회의원 선거에 약 7억원 썼다" 김유찬의 폭로

▲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 대한 도덕성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정인봉 변호사가 15일 오후 국회에서 한나라당 경선준비기구인 '국민승리위원회'에서 요구서가 와 관련 자료를 제출했다며 보여주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당시 이명박은 262억원 가량의 재산을 가진 재력가였고, 그가 후보 중 가장 공세적인 선거운동을 전개했다는 평이 많았다. 그런데도 그가 3∼4위 후보보다 적은 비용을 신고하자 뒷말이 나오게 된 것이다. 특히 노무현 후보는 이명박의 신고액에 대해 "한 마디로 코미디"라며 "더 이상 할말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선거비용 축소' 신고 의혹이 수그러들지 않자 <경향신문>이 종로 출마자들의 선거비용 실사에 나섰다. <경향>은 그해 5월15일자 기사에서 "이명박 당선자의 경우 유급 선거운동원 63명에 대해 일당 2만원씩 모두 1800여 만원을 썼다고 제시했다. 나머지 후보들은 일당 3만원씩 각각 3000만원 안팎을 선거사무원에게 지불했다고 밝혀 대조를 이뤘다"고 보도했다. 이명박이 밝힌 일당 2만원은 법정 경비 3만원보다 1만원이나 밑도는 액수였는데, 지역 주민사이에서도 '믿기 어렵다'는 반응이 많았다.

넉 달 후 이러한 의혹은 사실로 드러났다. 총선 당시 이명박의 선거기획을 담당했던 김유찬이 9월10일 국민회의 당사에서 "이명박이 총선 당시 전화홍보 및 각종 행사비용 등으로 6억8000만원을 썼고, 이중 3800만원 가량의 영수증을 가지고 있다"고 폭로한 것이다.

검찰수사 결과, 당시 국회의원 6급 비서관이었던 김유찬은 이명박이 국회의원 재선에 성공하자 5급 비서관으로 승진시켜 줄 것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이종찬 국민회의 부총재에게 이명박의 선거법 위반 사실을 제보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명박은 사건 초기부터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고려대 후배로서 이명박의 '자문역'을 자임했던 홍준표 의원도 "후보 또는 회계책임자 등이 금품전달을 지시한 사실이 밝혀지지 않는 한 당선무효까지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종로구의 법정선거비용이 9500만원이었기 때문에 김유찬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이명박은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잃을 게 분명했다. 한편으로, 공소시효 만료일(96년 10월10일)만 넘기면 이명박이 의원직을 유지하는 것도 어렵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명박측, 해외 도피 시켜주고 "폭로내용 사실 아니다" 문서 받아

▲ '이명박 선거법 위반'을 둘러싼 정치권 공방을 보도한 <조선일보> 1996년 9월 18일자 기사. 사진은 이명박 신한국당 의원이 여의도당사 기자회견에서 김유찬으로부터 받았다는 자필 편지를 공개하는 모습. ⓒ 조선일보 PDF
때마침 김유찬이 14일 저녁 서울의 한 호텔에서 이명박 의원실의 이광철 비서관 등을 만나 "해외로 나가고 싶다"는 의사를 타진했다. 이광철은 이명박에게 "차 트렁크에 있는 의원님 돈에서 1500만원과 비행기 삯을 주겠다"고 동의를 구한 뒤 이를 실행에 옮겼다. 이광철은 다음날 김포공항 주차장에서 김유찬에게 "폭로내용은 사실이 아니다"는 내용의 자필서신을 작성하라고 요구했다.

김유찬이 15일 오후 가족들과 함께 홍콩으로 출국하자 이명박으로서는 기사회생의 전기를 맞게 됐다.

이명박은 17일 여의도당사 기자실에서 회견을 열어 김유찬의 서신을 공개했다. 서신에는 "정치자금법·선거법을 잘 몰라 발표 내용 중 잘못된 점도 상당부분 있었다, "국민회의의 의도에 따르기 위해 과거의 기억을 어렴풋이 되살려 문서를 작성, 부정확한 내용도 있었다", "자원봉사자 대다수가 순수한 의미의 자원봉사자였다"는 등 그 동안의 진술을 번복하는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이명박은 "편지내용으로 미뤄 볼 때, 김유찬이 국민회의의 회유와 공작에 넘어가 사실과 다른 폭로를 하게 된 것이다. 국민회의는 한 젊은이를 더 이상 정치공세에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일갈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검찰이 이명박의 참모 이광철·강상용을 범인도피 혐의로 구속하면서 사태가 반전했다. 이명박은 외부와의 연락을 끊은 뒤 잠적했고, 그의 말만 믿고 '국민회의 공작설'을 제기했던 신한국당까지 입장이 난처해진 것이다. 이 와중에도 이명박은 강삼재 사무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김유찬의 출국문제에 직접 개입한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강 총장은 23일 "한때나마 야당의 음모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하고 의혹을 제기했던 부분은 잘못됐다. 당이 오판해 국민들에게 혼선을 가져오고 불신을 가중시켰다는 점에서 국민에게 사과한다"고 말했다.

"수감자가 탈옥하면 교도관이 먼저 증언해야 한다"며 국민회의를 몰아세웠던 김철 대변인도 "그 동안의 발언과 대응에 대해 국민회의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여당 초유의 사과 논평에 고무된 정동영 국민회의 대변인이 "여당은 야당을 경쟁세력·대안세력으로 받아들이고 여야가 상호간 예의를 갖추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는 환영 논평으로 화답했다.

<동아> "이명박 사건, 저질 코미디"

▲ 대법원의 유죄 확정 판결 3년 뒤, 이명박은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2002년 7월 2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과 부인 김윤옥씨가 활짝 웃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당시에도 야당지였던 <동아일보>는 24일자 사설에서 "이명박 사건은 한마디로 저질 코미디를 보는 느낌을 준다. 이제는 직접 당사자인 이 의원이 법적 책임과는 별개로 도의적 책임을 지는 것이 옳다"고 썼다.

같은 날 <경향>의 사설은 한층 신랄하다.

"두 얼굴의 주인공으로 떠오른 이 의원은 사건 전모를 국민들 앞에 솔직히 털어놓고 모든 도덕적·법적·정치적 책임을 지는 게 최소한의 도리다. 비서진을 시켜 김씨를 매수·도피시켜 놓고도 국민회의측의 매수·도피방조 가능성을 떠들어댔다면 이는 국민 기만행위로 법적 처벌은 다음이고 도덕적으로 이미 국회의원의 자격을 상실한 것이나 다름없다."

자신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걷잡을 수 없이 타올랐지만, 이명박은 끝까지 '결백'을 주장했다.

그는 2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해 "가까운 직원 두 사람이 구속된 것은 충정의 심정에서 뜻밖의 일을 했기 때문인 것 같다"며 "나를 믿어도 된다. 종교인으로서 약속할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해 사실과 다른 것이 나오면 전적으로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황은 이명박에게 불리하게만 돌아갔다. 홍콩을 거쳐 캐나다로 도피한 김유찬이 10월 6일 오후 전격 귀국해 검찰 수사에 응한 것이다.

이명박도 다음날 오후 검찰에 소환돼 20시간 가량 조사를 받았지만, 시종일관 혐의를 부인해 검찰 수사관들도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전직 검사는 최근 기자와 만나 "이명박은 일체의 혐의를 부인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자백했다. 범인도피 사실은 공소장에도 기재됐다"고 회고했다.

96년 10월 9일 이명박은 형법상 범인도피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그는 97년 9월11일 1심에서 법정선거비용 초과지출 및 범인은닉 혐의에 대해 유죄 선고를 받았는데, 이듬해 2월 21일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 출마를 선언하며 의원직을 사퇴했다.

이명박은 98년 4월28일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에서도 선거법 위반 혐의로 벌금 400만원, 김유찬의 해외도피 혐의로 벌금 300만원을 각각 선고받았다. 이명박은 "서울고법의 항소심 선고는 법적 판결이라기보다는 정치적 판결로 도저히 승복할 수 없다"며 서울시장 경선 출마를 포기했다.

묻혀버린 대법원 판결... 이명박의 항변

ⓒ 오마이뉴스 이종호
대법원은 99년 4월9일 이명박의 상고를 기각, 원심을 확정했다. 그러나 이명박은 이때 이미 의원 신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언론은 대법원 판결을 비중 있게 보도하지 않았다.

96년의 일은 이명박에게 일생일대의 사건으로 기억될 만하다. 그는 요즘도 범인 도피 등에 대해 "진심 어린 반성을 하지 않았다"는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2002년 6월5일자 <경향>에 따르면, 이명박은 96년 사건에 대해 "깊이 뉘우치고 있다"고 하면서도 "경쟁자였던 이종찬씨의 압력에 비서관이 넘어갔다"고 항변했다. 그는 당시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는데, '김대중정권 심판론'이 득세하는 분위기에서 그의 이러한 답변 태도는 큰 쟁점이 되지 못했다.

그로부터 다시 5년이 지난 시점에서 정인봉 변호사가 96년 사건을 다시 거론하며 "(이명박의) 반성은 있어도 반박은 있을 수 없다. 경준위가 이명박의 입장을 물어봐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럼에도 경준위와 이명박 모두 이 사건을 다시 거론하는 것을 꺼리는 눈치다.

정 변호사가 내놓은 'X파일'에 대해 "새로운 내용이 없다"는 비판이 많다. 그러나 과거 잘못을 대충 얼버무리는 이명박의 태도 역시 새로울 게 없다는 인상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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