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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인천지역 의사들과 간호조무사협회 회원들은 정부의 의료법 개정안에 반발해 6일 오후 경기도 과천시 정부종합청사앞에서 '의료법 개악저지 궐기대회'를 열었다. 집회 도중 경과보고를 위해 연단에 나온 좌훈정 서울시의사회 홍보이사는 "목숨을 걸고 투쟁하자"고 외치며 수술용 칼로 할복한 뒤 구급차에 실려 후송됐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지난 6일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소속 회원 의사 수천 명이 과천정부청사 앞에 모여 의료법 개정안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였다.

자해소동까지 일어날 정도로 이들이 절박하게 문제 삼았던 것은 의료법 개정안에 '투약' 표기의 제외, '간호진단' 용어 사용, '표준진료지침' 제정, '유사의료행위' 근거 마련 등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의협의 절박함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의협의 주장이 권위의식에 근거한 타직역과의 밥그릇 싸움으로 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의료법 개정안에는 의협이 문제삼는 것보다 중요한 다음과 같은 조항들이 있다. 특히 개원의들에게는 존폐 문제와도 연결되는 수준이다.

▲병원급 이상의 의료기관 내에 의원급 의료기관 개설 허용 ▲비전속 진료의 허용 ▲병원간 인수합병 허용 ▲병원경영지원회사 설립을 포함한 의료기관의 부대사업 확대 ▲의료기관의 환자 유인, 알선 행위 허용과 비급여비용에 대한 할인이나 면제 허용 ▲의료광고에 대한 규제 완화.

[병원 내 의원 허용] 추가비용없이 대형병원 이용 가능

@BRI@이들 조항을 꼼꼼히 살펴보면 대형병원에 유리한 내용들이 눈에 띈다. 특히 병원급 이상의 의료기관 내에 의원급 의료기관 개설 허용은 외래환자 중심으로 운영하는 의원들에게 심각하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조항이다.

우리나라 의료 이용의 대표적인 특성 가운데 하나는 큰 병원, 종합병원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이를 어느 정도 규제하여 의원급은 외래환자 중심으로, 병원급은 입원환자 중심으로 운영하도록 하기 위해 정부가 의료기관별 종별가산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상황이다. 같은 의료행위를 받아도 무작정 큰 병원을 찾는 것을 줄이기 위해 치료비에 병원급은 20%, 종합병원급은 30%의 가산율을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개정안에 따라 병원급 이상의 의료기관에 의원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하게 되면, 국민들은 추가비용 없이 대형병원 내에 있는 의원을 이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종별가산의 의미가 사라지고 큰 병원으로의 쏠림 현상도 불가피해진다.

매년 3%정도의 의원수 증가로 의원들 간의 생존 경쟁도 치열한 상황에서 법이 개정되면 병원내 의원과 경쟁해야 하는 의원급이 과연 그만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지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프리랜서 진료 허용] 유명의사 활용하고 나머지는 비정규직으로

비전속(프리랜서) 진료를 허용하는 것도 의원급 의료기관을 위기로 몰아넣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비전속 의사 제도는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이나 프랜차이즈 병원 등에서 인건비, 운영비 절감과 수익극대화를 위해 선호하는 제도이다. 대형병원들은 유명의사가 있을 경우 마케팅에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비정규직 의사들을 최대한 고용해 운영비를 절감할 수 있게 된다.

결과적으로 개별 의원들은 인력이나 운영 면에서도 큰 병원들과 힘에 부치는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비급여 규제완화] '의료상품' 싸게 파는 경쟁의 시작

비급여 영역의 유인·알선·할인·면제의 허용도 의료기관간의 심각한 경쟁을 불러일으키기는 마찬가지이다. 또한 이같은 내용은 의료를 말 그대로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인권적 측면'이 아닌 상품으로 규정하고 의료기관간 마케팅 경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의료인으로써의 마지막 자긍심마저 무너뜨리는 일일 텐데도 불구하고, 정작 의사들은 이를 방관한 채 다른 조항들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 서울과 인천지역 의사와 간호조무사협회 회원들은 정부의 의료법 개정안에 반발해 6일 오후 경기도 과천시 정부종합청사앞에서 '의료법 개악저지 궐기대회'를 열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의료광고 허용] 광고비 낼 수 있는 의료기관이 살아남는다

의료광고의 대폭허용도 의원급 의료기관의 생존을 위협하기엔 충분한 것이다.

일괄규제 방식(Positive List system)에서 선별적 규제 방식(Negative List system)으로 바뀌면서 대부분의 의료광고가 허용되었다. 개정안 또한 이를 수용하고 있어 의료광고의 역할이 커진 것이다.

그간의 규제가 일시에 풀리면서 소규모 의료기관에게 의료광고는 곧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광고비로 많은 돈을 쓸 수 있는 의료기관이 살아남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결국 소규모의 의원급 의료기관들도 이제 많은 광고비를 지출하지 않으면 생존이 위태롭게 된 것이다.

[부대사업 확대] 의료+위락+호텔 패키지도 가능

의료기관의 부대사업 확대도 의원급 의료기관의 생존과 관련된 조항이다.

요즘 의료기관을 개원할 때는 고급인테리어와 편리한 시설, 즉 호텔식 서비스의 제공은 기본이 되었다. 그러나 병원내 의원개설 허용과 부대사업 확대는 더 이상 의원간 호텔식 서비스 경쟁의 의미를 없애버린다.

병원과 병원내 의원에서 접근성 높은 다양한 시설들을 직접 운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의료와 다양한 위락시설, 호텔 등 얼마든지 패키지 상품까지 운영할 수 있게 되면서 의료기관간 경쟁에서 큰 병원들의 경쟁력이 월등하게 강해진 것이다.

왜 국민건강을 위해서는 안 싸우나

이처럼 의료산업화 관련 조항들로 인해 자본의 영향력이 강화되고 각종 규제가 풀리면서 큰 병원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의원급 의료기관들은 경쟁력 상실은 물론 비정규직화 문제까지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개원의들이 과천에 나가 국민들이 공감하기 어려운 명분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자신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오진의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공공의료가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우리 나라에서 의원급 의료기관들의 붕괴는 국민의료에 심각한 영향을 의미하는 것이다. 동네에 의원이 없어 울며 겨자먹기로 멀리 있는 큰 병원을 찾아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명분싸움에 국민건강 내세워 오히려 국민들의 비난을 받기보다 실제 자신들의 존립과 관련되고 국민건강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내용에 대한 좀더 정확한 진단과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덧붙이는 글 | 김동영 기자는 경실련 사회정책국에서 사회복지분야와 보건의료분야의 업무를 맡고 있는 활동가입니다.


태그:#의료법, #조무사, #논쟁,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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