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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방, '곰소녀의 모험'.
ⓒ 박태신
혜화동 뒤쪽에 자리잡은 낙산을 오릅니다. 산이라고 하지만 중턱까지 많은 집들이 자리잡고 있는 언덕입니다. 낙타의 등과 같다고 하여 '낙타산', '낙산'이라 불리게 되었답니다.

방송통신대학교에서 출발하여 쇳대박물관 앞에서 좌회전한 다음, '르 샤(불어로 '고양이'라는 뜻)'라고 하는 흰색 벽의 카페를 끼고 돌아 올라갔습니다. 오늘은 이곳 낙산 곳곳에 자리잡은 미술품들을 보려고 합니다.

@BRI@'공공미술 프로젝트'라고 들어보셨나요. 소외지역 주민들과 미술을 공유하려는 계획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문화관광부에서 주최하여 몇 군데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공공미술을 통해 사회 양극화 해소에 기여하는 한편 공공미술의 새로운 모델을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고 했습니다.

'낙산 프로젝트'도 그 중의 하나로, '섞다, 잇다, 함께 어울리다'라는 주제로 낙산 지역 정확히는 동숭동과 이화동 곳곳의 삶의 현장에 미술작품을 설치하는 작업을 몇 개월 동안 진행한 것입니다.

참 많은 미술가들이 참여했습니다. 이곳에서만도 50여명의 미술가들과 8개의 학교 학생들이 저마다의 솜씨를 장소에 걸맞게 뽐냈습니다. 주제가 있으니 거기에 맞춘 것도 물론이지만 작품이 아로새겨질 장소, 구체적으로 돌담, 계단, 벽, 산책로 등과 어울리게 구상을 했습니다. 그렇게 미술을 주민들에게 선사했습니다.

동숭동 초입에 들어섭니다. '곰소녀의 모험'이라는 예쁜 공방 하나가 제 눈길을 끌어 한눈을 팝니다. 조금 올라가 첫번째로 미술작품 '파출소 프로젝트'를 보았습니다. 동숭동 파출소가 작품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그저 바라보면 평범한 파출소에 불과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술 작품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 '파출소 프로젝트'. 이제 경찰관 아저씨들 보면 독수리 대신 천연기념물 참수리를 떠올리도록 하자.
ⓒ 박태신
경찰 심벌을 아시지요. 독수리와 무궁화가 새겨진 마크 말입니다. 그러나 이 심벌의 새가 원래 흰머리 독수리였다가 참수리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재작년 10월 경찰차가 푸른색 위주에서 흰색 바탕으로 외관을 바꾸기 시작한 것을 아시지요? 그 때 경찰 심벌도 미국 이미지가 풍기는 흰머리독수리에서 우리나라 천연기념물인 참수리로 형상화된 것입니다.

자세히 그 심벌을 살펴보면 참수리의 몸체와 날개, 양팔저울, 태극 모양이 새겨진 무궁화 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파출소 간판 위에 이 문양들이 해체된 채 나란히 전시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아마도 대민 봉사를 하는 경찰관 아저씨들의 것일 눈과 귀의 형상도 간판 양 옆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옆쪽 벽면에도 참수리가 창 위에 앉아 있고 푸른 색 날개들이 날아다닙니다. '관계'의 형상화에 천착하고 있는 화가 한젬마님의 작품입니다.

▲ '1970년대 낙산 풍경'. 낙산이 지금 풍경을 살리면서 조금씩 좋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박태신
1970년대 낙산 풍경을 그린 벽화를 봅니다. 담 너머 장독대의 항아리도 보입니다. 담은 금이 가 있고, 빗물 구멍도 뚫려 있지만 그 위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을 그려 놓았습니다.

빌라나 아파트의 벽면보다는 개인주택의 벽면, 그것도 동일하지 않고 지형에 맞게 제멋을 살려 들어선 개인주택의 벽면은 화가의 눈으로 보면 쉽게 캔버스로 탐이 날 것 같습니다. 그것도 세월의 흔적이 녹아들어가 있어 금이 가고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여러 모양의 창들이 만들어져 있는 달동네의 집 벽면이라면 더욱 그럴 것입니다.

▲ 순천 '사랑과 야망' 드라마 세트장. 1960년대 서울 달동네 풍경.
ⓒ 박태신
순천에 가면 <사랑과 야망> 드라마 세트장에서 이보다 10여년 전의 달동네 모습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갖가지 모양의 집들 사이로 난 미로 같은 골목이 달동네의 대명사입니다. 골목은 없어지고 대로가 많아져서 '빠름'과 일방통행이 대세가 돼버린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낙산 골목의 미술품들은 이렇게 가는 사람 발길을 잠시 붙잡습니다.

그런데 저처럼 이곳의 풍경을 열심히 사진에 담는 신사가 있었습니다. 부지런히 찍습니다. 모른 체 합니다. 아마도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댔을 것 같은데, 요즘 흔히 보는 디지털 카메라를 보면 괜히 위축이 됩니다. 필름 값이나 실수를 괘념치 않고 마음껏 찍어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카메라는 매번 필름을 갈아끼워야 하는 필름 카메라이거든요.

이제까지 오마이뉴스에 올린 사진들은 몇 장의 자동카메라 사진을 빼고 전부 제 필름 카메라(캐논 EOS 5)로 찍은 것들입니다. 오래 전에는 피씨방에 가서 스캔을 떴지만 지금은 집에서 스캐너로 일일이 사진을 잡습니다.

필름 카메라 마니아는 아니지만 6-7년 전부터 사용한 카메라를 그저 계속 사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얼마 전 신문 기사에서 우군을 만났습니다. 이문재 시인이 산문집을 냈는데 이 책에 필름 카메라의 맛(!)을 묘사한 내용을 쓴 것을 알았습니다.

분명 맛이 있습니다. 필름으로 인화해서 가질 수 있다는 점, 소형 디지털 카메라와 달리 무게감이 있고, 찍을 때마다 찰깍 하고 소리가 나서 찍는 맛이 있다는 점, 인화했을 때의 사진이 선명하다는 점 등입니다.

컴퓨터 작업이 많아지고, 또한 그 실용성을 맛보게 된다면 저도 곧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디지털 카메라가 붐이 되면서 그 많던 필름 카메라가 그렇게 금방 쏙 들어가버려 너나 할 것 없이 디지털 카메라만을 들고 다닌다는 점입니다.

어쩌면 저는 변화에 둔감하고 싶어서(?) 그런지 모릅니다. 작년 초까지 사용한 플립형 핸드폰은 7년을 썼습니다. 놀림도 많이 받았지요. 그 핸드폰도 제 동료 중에 가장 늦게 만들었습니다.

▲ '입방체들'. 그림은 때로 이렇게 여백을 한껏 주는 것에서도 멋을 발견할 수 있다. 소소한 그림자가 있고 제각각의 창이 있고, 모서리가 있는 집. 멋진 캔버스.
ⓒ 박태신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변화의 뒤축에 있는 동네에 오면 정감이라고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지형에 맞게, 집 주인의 성향에 따라 다른 모습을 지닐 수 있는 그런 다양함이 좋습니다. 이곳 낙산 주민들도 이곳이 재개발되기를 바라고 있다는데 솔직히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조금씩 변하기, 나아지기. 그랬으면 합니다.

덧붙이는 글 | 다음 기사에 '낙산--이화동'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공공 미술 프로젝트' 홈페이지 www.artincit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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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번역가이자, 산문 쓰기를 즐기는 자칭 낭만주의자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여행, 책 소개, 전시 평 등의 글을 썼습니다. 『보따니스트』 등 다섯 권의 번역서가 있고, 다음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https://brunch.co.kr/@brunocl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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