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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es24
군대는 일반 사회와는 다른 곳이다. 일반 사회야 열려있는 곳이라면 그곳은 상대적으로 닫힌 곳이다. 또한 상하 명령이 주를 이루는 곳이다. 윗사람이 시키는 일이 타당치 않거나 모순되는 것 같더라도 아랫사람은 복종해야만 한다.

대부분의 군 조직은 남성 위주로 편성돼 있다. 또 군대라는 조직은 남성 위주로 움직여왔다. 그런 군대에 만일 여성이 끼어 있다면? 당연히 활동과 적응이 쉽지 않다.

피우진씨가 쓴〈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삼인·2006)는 그런 배경 속에서 탄생한 책이다. 군대라는 남성 중심의 조직 속에서 한 여성이 얼마나 힘겨운 몸부림을 쳐 왔는지, 그리고 그 조직을 헤쳐왔는지 잘 나타나있다. 그야말로 도전과 투쟁으로 얼룩진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후배들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다. 선배들이 어떻게 모진 세월을 견디어 가면서 오늘을 만들었는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떻게 투쟁하며 살고 있는지 온전하게 보여 주고 싶다. 성공한 여성만이 답은 아니다. 어떠한 굴욕이나 장벽에도 굴하지 않고 하루하루 성실하게 자기 길을 걸어가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 들어가는 글에서

피우진은 1979년 8월에 소위로 임관하여 여군훈련소 중대장을 시작으로 군에 몸담기 시작했다. 이후 특전사 중대장과 202항공대대 헬기조종사 등을 거치면서 중령까지 계급을 달고 17년 동안 하늘을 누볐다. 하늘을 나는 동안은 그야말로 자유였지만 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 땅에서는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괴로웠던 것은 항공장교 신체검사장에서의 일이었다. 일반 장교와는 달리 항공장교 신체검사에는 심전도 검사가 포함돼 있었는데, 그 검사를 받으려면 모두 상의를 벗어야만 했다.

그녀를 비롯해 2명의 여군 조종사들이 남자 병사들에게 검사를 받았던 것이다. 문제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사병들이 남자 조종사들과 낄낄거리며 야릇한 표정을 지으며 여군 조종사들을 바라봤던 것이다. 그때의 심한 모욕감 때문인지, 그 이후 그녀는 가슴을 붕대로 칭칭 동여맸다.

"나는 힘든 훈련을 받을 때면 붕대로 가슴을 칭칭 동여매곤 했다. 훈련받는데 불편하기도 했고, 괜히 남자들의 시선을 끌고 싶지도 않았다. 여군 중에는 간혹 머리를 아예 빡빡 미는 사람이 있는데 나와 비슷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군대가 요구하는 남성적 임무를 위해 스스로 여성다움을 제거하는 것이다."

▲ 피우진 중령
ⓒ 도서출판 삼인 제공
또한 4성 장군인 군사령관과의 악연도 잊을 없는 일이다. 그녀가 1군사령부 여군대장으로 갔을 때 그 사령관을 만났다. 그는 처음엔 무척이나 친절하고 부드러웠지만 어느 날 관광호텔 나이트클럽에서 자신을 호출하는가 하면, 자신이 통솔하고 있는 부사관들을 보내라는 신호를 보냈다. 물론 그녀는 모든 부름에 응답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징계위원회까지 회부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었다.

"일부 지휘관은 우리 여군들에게 '능력'보다는 군이라는 남성 문화에 부드러운 역할을 해 주는 '치마'로서의 여성을 원한다. 여군의 능력보다는 여성의 능력을 원하는 경우가 사실은 더 많았다. 스스로 치마폭과 눈물과 초콜릿에만 감싸여 있기를 원하는 여군은 별로 없다."

어디 그 뿐인가. 2002년엔 왼쪽 가슴에 유방암 선고를 받고 아예 오른쪽 가슴까지 도려내 버렸다. 다른 쪽으로 전이가 되지 않는다는 의사의 말에도 아랑곳없이 그 일을 결행했던 것은 남성 위주의 군 문화를 뛰어넘으려는 이유였다.

그 이후 그녀는 깨끗하게 치료를 받았고 훈련에도 아무런 장애도 겪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것이 빌미가 되어 정년을 3년 10개월 남겨 둔 시점에서 그녀는 전역처분을 받아야만 했다. 일방적인 통보였다.

그러나 그녀는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까닭에 전역심사위원회에 회부돼 있는 상태이고, 군 인사법 개정을 위한 움직임들도 일고 있다. 이를테면 전역에 해당되는 장애등급을 받았다 할지라도 군복무에 지장이 없고 본인이 희망한다면 계속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완화 규정이 그것이다. 그야말로 남성 중심의 군 조직을 바꿔 보고픈 처절한 몸부림이다.

그녀가 그토록 끈질기게 매달리는 것은 단순히 보상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남성위주의 군 문화를 조금이라도 개선시켜 보고픈 열망이다.

그 일로 인해 접대부와 같이 술 시중하게 되는 여군들이 사라지고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수만 있다면, 남성적인 임무를 위해 여성다움을 제거하는 여군들이 사라지고 여성스러움의 미를 계속 간직하게만 된다면, 남자 조종사들처럼 여군조종사들의 조종등급이 제대로 올라갈 수만 있다면, 간호장교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여군장교들도 결혼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된다면, 그녀는 더한 일들도 감당해 낼 것이다

그러므로 이 땅의 군 수뇌부들은 여군들의 처우개선에 정말로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나라 여군들의 적은 북쪽 어디엔가 있는 게 아니라, 남성 위주의 군 조직에 있다는 것을 이 책은 이야기하고 있다.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 - 개정판

피우진 지음, 삼인(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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