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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준일, <진실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 인물과사상사
2년 전인 2004년 12월, 대한민국 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끔찍한 집단 성폭행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의 폭력조직 남학생들이 연약한 여중생에게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것.

하지만 사건의 양상은 정의라는 이름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상당수 언론은 집단 성폭행에 대해 흥미 위주로 보도했고 경찰은 피해자 보호에 소홀했다. 국민의 관심은 아이러니하게 피해자가 누구인지에 쏠려있었다. 결국 피해자는 또 한 번 가슴에 상처를 입고 말았다.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보도, 인권은 없었다.'

그 우스꽝스런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도한 기사를 하나 보았다. 광주 CBS 박준일 기자의 기사였다. 언론보도의 허위와 피해자 보호의 소홀함을 지적한 그 기사는 피해자를 놓고 마녀사냥을 벌이던 우리 사회의 야만에 경종을 울리게 했다.

기자는 불의한 세상과 결탁하지 않는다

@BRI@그런 박 기자의 기자관을 책으로 만날 수 있었다. 취재현장의 치열했던 삶을 재현해놓은 <진실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였다.

현재 그는 광주 CBS 라디오 방송의 기자다. 하지만 밀양 여중생 성폭행관련 기사, 교육부총리 호화 양주만찬 사건 등 굵직굵직한 특종을 써 낸 기자로 이름이 높았다.

명성에 걸맞게 그는 수차례 특종기자상과 보도상을 탔다. 하지만 필자가 그에게 깊은 감명을 받은 것은 그가 기자로서 유능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재능을 뛰어넘어, 세상의 불의를 거리낌없이 보도할 용기를 지닌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기자이기에 감명 받았다.

제보자가 기자에게 제보를 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도움을 청하는 일이다. 약자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불의에 맞서 달라는 말이다. 물론 기자 개인에게는 그런 힘이 없다. 다만 자연 발생적인 그 힘에 제보자의 요구를 전할 수 있을 뿐이다. 그 힘은 아마 언론의 힘, 여론의 힘, 진실의 힘으로 정의할 수 있으리라. (61쪽)

책을 통해 그의 한결같은 기자관을 만날 수 있었다. 어떠한 압력과 청탁에도 흔들림 없이 취재하고 기사를 써내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그는 당시 광주의 민주당에서 있던 지방선거 공천비리 의혹을 취재했다. 그런데 취재 도중, 안면이 있는 인사가 그를 설득하고 나섰다. 기사를 내보내지 말아달라고. 하지만 그는 단번에 그것을 거절하고 기사를 내보낸다.

한 명의 인간으로서 겪었을 고뇌가 안 봐도 눈에 선하다. '혼자만 기자냐'는 온갖 비난과 괄시를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한결같은 신념을 위해 유혹을 물리쳤고, 당당히 자신의 의지를 지켜나간다.

요즘 사회에 회자되는 진골, 성골은 나와 거리가 멀다. 가문도 학벌도 내세울 것이 못되고 돈도 없다. 어쩌면 아웃사이더에 머물러 있었기에 기자로서 더욱 자유로웠는지도 모른다. (180쪽)

기자라는 직업이 정치인이 되는 발판이 되기도 하고 다른 목적의 수단이 되기도 하는 세태지만, 묵묵히 자신의 기자관을 지키며 감시견으로서 사회를 지켜나가는 박준일의 모습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렇기에 꿋꿋이 자신의 길을 지켜나가는 참기자 박준일의 말은 어느 누구의 달변보다 필자의 귀에 와 닿았다. 대학생 기자라는 이름으로 한발 한발 내딛는 필자는 그의 열정과 신념을 배우고자 한다.

<진실을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는 언론인을 꿈꾸는 사람에게, 기자라면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는 기자관을 심어줄 것이라 믿는다. 아무리 불의와 위선이 판치는 사회라지만, 사회를 제대로 바라보는 기자가 잘못된 사회를 바꿀 고쳐나갈 수 있다는 한결같은 신념을 느낄 수 있었다.

진실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 박준일 기자의 취재수첩을 통해 본 보도전쟁과 위선의 사회

박준일 지음, 인물과사상사(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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