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미 60년이 지났지만 친일 청산은 대한민국의 미완의 과제다. 한국은 여전히 과거의 문제에 매달려 있다. 그래서 미래를 향한 한국의 발걸음은 그만큼 더딜 수밖에 없다. 왜 한국에서 친일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단순히 민족정기가 확립되지 못해서? 친일파 박정희가 오랫동안 권력을 잡아서? 정치인들이 무능해서? 조·중·동이 훼방을 놓아서? 국민들이 먹고 사는 데에만 신경을 쓰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친일청산을 방해하는 견고한 경제적 메커니즘이 있다는 점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김성수는 주목해서 살펴보았다. 김성수의 경우에도 그렇겠지만, 단순히 일본이 좋아서 친일을 선택한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아무 이유 없이 자기 민족을 배신할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일제, 친지주적 정책으로 친일파 양성

▲ 김성수
ⓒ <경성방직오십년>
앞의 기사들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김성수가 친일파로 전환한 데에는 주요한 경제적 측면이 있었다. 19세기 중반만 해도 가난한 선비 가문에 불과했던 이 집안이 불과 몇 십 년 만에 한국의 대표적 부자로 떠오른 데에는 일본제국주의와 경제적 관계 형성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김성수의 할아버지인 김요협이 장인으로부터 증여받은 땅은 '약간의 전답'에 불과했다. 이 '약간의 전답'이 1909년에 1200석(石)의 토지로 불어난 것은 개항 이후 전북지역의 쌀이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수출되면서부터다.

그리고 일제 강점 이후 일본이 친(親)지주적 정책을 펴는 상황 속에서 김성수 쪽의 토지는 1909~1924년 기간에 약 8.5배 증가하였고, 김연수(김성수의 법적 사촌 겸 친동생)쪽의 토지는 90배가량 증가했다. 또한 1920년대의 경제공황 속에서도 김성수 집안은 조선인 자본가로서는 특이하게 성공적인 공업 경영가로 성장했다. 그 과정에서 김성수와 사이토 마코토 총독의 13차례 회동, 경성방직에 대한 일제 당국의 자금 지원이 있었다는 점은 제4편에서 이미 살펴보았다.

그뿐 아니라, 일제가 지주계급을 비호하는 상황 속에서, 김성수 집안은 소작인·마름을 수시로 교체하였을 뿐만 아니라, 1920년대의 농업공황 하에서는 소작료 인상 및 지세 전가 등을 통해 소작농들에게 고통을 전가하였다. 이처럼 그들은 일제의 비호 하에 농업·공업 양쪽에서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위의 논의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김성수 집안은 일본제국주의에게 기본적으로 '신세'를 진 가문이다. 개항 이후 일본자본주의가 밀려오지 않았더라면, 또 일본이 조선을 강점하고 지주와 연대하지 않았더라면, 또한 일제 당국이 좌초 위기에 처한 경성방직에 자금을 제공하지 않았더라면, 이 집안은 그 같은 엄청난 부를 축적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친일 여부를 떠나 김성수는 일본에게 충분히 감사할 만한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이 점은 김성수 뿐만 아니라 다른 친일파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 측면이다. 친일파와 그 후손들이 필사적으로 친일청산에 저항하는 것은 자신들의 재산과 신변을 지키기 위한 측면이 강하다.

과연 광복 된지 60년을 지났지만 여전히 친일 청산이 부진한 이유는 무엇일까?

패망한 것처럼 보이던 일본을 미국이 살려주고 또 동북아에서 미국-일본-한국 3각 동맹이 수립되면서, 한국의 친일청산은 여러가지로 벽에 부딪혔다. 그로 인해 친일파들의 경제적 기초는 고스란히 그 후손들에게 상속될 수 있었다. 물론 그 후 후손들의 노력에 의해 재산이 늘어난 측면도 있겠지만, 친일파 후손들의 재산은 기본적으로 일본제국주의와의 관계 속에서 그 '몸통'이 형성된 것임을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이처럼 친일파 후손들이 그 조상의 경제적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받고 있는 상황 속에서, 친일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원초적으로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전투력은 총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돈'에서 나온다. 친일파 후손들이 경제력을 바탕으로 사회적·정치적 권력을 장악하고 또 지식인들을 통해 친일 이데올로기를 유포하는 상황 속에서, 친일청산은 멀고도 지난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친일파 재산 환수, 어떻게 해야 할까

친일청산을 방해하는 쪽의 경제력이 친일을 청산하려는 쪽의 경제력을 훨씬 더 능가하는 상황에서, 양자의 대결은 처음부터 결과가 정해진 게임일 수도 있다.이런 이유로 친일파의 재산 환수는 쉽지 않은 문제다.

또 한편으로 친일파의 재산 환수에 법적인 문제 등 여러가지 법리적인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다. 한편으로 그런 재산에 대해서는 끊임없는 윤리적·사회적 비판을 가함으로써 이 문제에 대한 여론을 높일 수 있고, 그 속에서 여러가지 해법들이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글들에서 김성수 집안의 재산 문제를 다룬 것도 그 때문이다 .

여러가지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지만 친일청산은 쉽지 않은 일이다. 친일의 기초 위에 만들어진 경제적 기반과 기득권의 힘이 여전히 막강하기 때문이다. 친일파 및 그 후손들의 재산환수가 쉽지 않은 일임에도 끝까지 추진돼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