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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국 사회는 종교-복장 논란으로 일대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이달 초, 영국 노동당의 중진 의원이자 하원 원내대표인 잭 스트로 의원은 영국 내 무슬림 여성들의 '니캅' 복장에 대해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해 보자고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영국 내 무슬림들은 대부분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니캅은 머리 일부만을 감싼 히잡과는 다르게 눈 부분을 제외하고 얼굴 전체를 베일로 덮는 무슬림 여성의 복장 형태다.

한편 최근에는 영국항공이 십자가 목걸이를 드러내고 근무하던 여직원을 무급 휴직 조치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 소식을 들은 영국 내 기독교인들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분노했다.

"아즈미 선생, 수업 시간만큼은 니캅을 하지 마시죠"

▲ 20일자 <더 타임즈> 기사. 아즈미는 눈만 빼고 얼굴을 완전히 가린 '니캅'을 쓰고 학생들을 가르쳐 왔다.
ⓒ <더 타임즈> 인터넷판
니캅 문제는 젊은 무슬림 보조 여교사의 에피소드가 언론에 의해 집중 조명되면서 계속 확대되었다.

지난 9월, 잉글랜드 요크셔 지방 헤드필드 성공회 중학교에서 근무하는 여교사 아이사 아즈미(24)는 학교 측으로부터 "영어 수업시간만큼은 니캅을 벗으라"는 권고를 받았다.

학교 측의 판단에 따르면, 얼굴 전체를 가린 교사의 베일 때문에 학생들과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수업시간 외에 니캅을 착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문제삼지 않겠다고 밝혔다.

아즈미는 학교 측의 권고를 거부했으며, 지방 법정에 학교 측을 '차별'로 제소했다. 베일이 얼굴 전체를 가리고 있다 해도 의사소통에 별 장애가 되지 않으며, 학생들도 베일이 수업에 문제가 된다는 불평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을 아즈미는 강조했다.

학교 측은 학생들 모두가 동등하고 적절하게 수업받을 수 있는 기회가 우선이라고 주장하면서 권고를 철회하지 않았으며, 아즈미는 정상적으로 수업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어 지난 10월 15일, 그간 스트로 의원의 발언을 계속 공개적으로 지지해 온 지방정부국장 필 울라스는 "아즈미가 학교를 그만두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당시는 판결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아즈미의 변호사는 울라스에게 발언 철회를 요청했다.

최근 아즈미는 수업시간에는 니캅을 벗겠지만, 다른 남성 동료들 앞에서는 벗지 않겠다고 한 발 물러선 상태다.

그리고 19일, 지방 법정은 "아즈미 건은 차별이 아니라"고 판결해서 학교측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동시에 "지방 정부는 아즈미에게 정신적 피해 보상으로 1100파운드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아즈미측은 판결에 불복하고 법정에서의 투쟁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블레어 수상 "스트로 말이 맞다"

스트로 의원의 발언 이후, 노동당 내 일부 행정 관료들은 스트로 의원보다 더 강하게 니캅의 문제점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와 반대로 스트로의 문제 제기가 전혀 불필요하다는 노동당 의원들도 상당수 있었다.

토니 블레어 수상도 18일 월례기자회견에서 공개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언론에 밝혔다. 블레어는 "니캅 착용은 '스스로를 사회에서 분리시키겠다'는 표식이며, 바로 이것 때문에 공동체 내의 다른 사람들이 불편해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니캅을 착용하고 말고에 대해 누구에게도 강요하고 싶지 않다, 이것은 내 의견일 뿐이며 아즈미 문제에 대해서는 지방 법정의 결정을 존중하겠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라크전 개전 당시 외무장관이었던 잭 스트로 의원을 옹호하는 블레어의 이 말은 언론의 집중 주목을 받았다.

또한 얼마 전 자신의 진퇴 문제로 당내에서 크게 홍역을 치른 데다가, 베일 문제로 당내 의견이 다시 엇갈리고 있는 중에 어느 한편을 지지해야 하는 상황이라 더욱 큰 관심을 끌었다.

▲ 에웨이다의 무급 휴직을 보도한 15일자 BBC 기사. 에웨이다가 자신의 목걸이를 내 보이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 BBC 인터넷판
베일이 문제라면, 십자가 목걸이는?

무슬림 여성의 니캅에 대한 논란이 영국 전역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지난 14일 영국항공은 십자가 목걸이를 밖으로 드러내고 근무하던 나디아 에웨이다(55)라는 여성을 무급휴직 조치했다. 7년간 영국항공에 근무한 에웨이다는 공항에서 주로 체크-인 업무를 담당해 왔다.

영국 항공 측은 십자가가 문제가 아니라 목걸이를 밖으로 내보이며 근무하는 게 회사 내규에 어긋나며, 지난 몇 년간 수차례 에웨이다에게 주의를 주었으나 시정되지 않아 휴직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목걸이 같은 보석류의 액세서리는 유니폼 안에 착용하는 것이 영국항공의 내규다.

에웨이다는 자신의 깊은 신앙심으로 십자가 목걸이를 착용한 것이 무슨 문제가 되느냐고 항변하고 있다. 휴직 기간 동안 임금을 받지 못하게 된 에웨이다는 '종교 차별'이라 반발하면서, 영국항공을 법원에 제소할 뜻을 내비쳤다.

영국의 기독교인들 상당수도 이 십자가 목걸이를 단순히 액세서리로만 치부해서는 안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들은 이 목걸이는 신앙심을 드러내기 위한 징표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아일랜드 장관 피터 헤인은 "영국항공사 사람들의 머리가 좀 이상하다"고 비난했다.

물론 에웨이다의 휴직조치를 정당하다고 보는 기독교인들도 있다.

종교 자체가 망상?

▲ 영국의 유명 진화생물학자이자 무신론자인 리차드 도킨스의 최근 저서 <신이라는 망상>.
종교-복장 문제 논란이 계속되는 중에, 올해 9월에 발간된 리차드 도킨스의 <신이라는 망상(The God Delusion)>이란 저서가 방송에 소개되기도 했다.

영국의 대표적인 무신론 생물학자인 도킨스 교수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진화생물학을 담당하며 일반인들을 위한 과학책들을 쓰기로 유명하다. 그는 이미 <이기적인 유전자>란 책으로 국내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과학자다.

이 책에서 도킨스는 '종교는 장차 극복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미국 기독교근본주의에 상당히 비판적인 도킨스는 방송 인터뷰에서 "이라크를 공격하는 것이 신의 뜻이라 믿는 정치지도자는 정말 위험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복장 문제로 드러난 영국의 종교 논란은 현재 이처럼 문화-인종-정치-과학까지 줄줄이 연결되는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편, 야당인 보수당의 데이빗 캐머런 당수는 "전국적으로 통일된 무슬림 복장 정책이 가능한가? 정치인들이 왜 이렇게 이 문제에 집중하는지 모르겠다"며 현 상황을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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