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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무이 아부이 산소 들렀다 간께 마음이 편하쟈? 사람이 헐 도리를 허고 살아야 하는디 요로케 댕겨가니까 좋다."

아내와 나는 지난 일요일(24일) 고향 성묘길을 다녀가다가 큰 누님네를 들렀다. 큰 누님은 길을 나서는 우리 손을 붙잡고 못내 아쉬워했다. 아내한테 방학하면 며칠 묵었다 가라며, 집에서 거둔 흑미며, 찹쌀, 참깨 등을 바리바리 싸주셨다. 피붙이가 이래서 좋은가 보다.

"광주로 나가믄 돌아간께 영광으로 해서 서해안 타부러라."

누님은 동네 모퉁이까지 나와 차가 멀어질 때까지 손을 흔드셨다. 누님네 집에서 영광까지는 가까운 거리이다. 우리는 영광을 지나 서해안고속도로로 가는 길을 잡았다. 길을 잘 아는 내가 운전을 하였다.

나는 아내보다 운전이 서툴다. 우물 안 개구리라고, 아는 길만 운전한다. 도회지 복잡한 길이나 고속도로를 달릴 때는 아내 몫이다. 내가 자란 고향 땅이고, 한적한 시골 길인지라 내가 해도 될 성 싶었다.

불갑사 꽃무릇 구경하자!

얼마가지 않아 영광 땅에 접어들었다. 불갑사를 안내하는 이정표가 보이고 현수막 하나가 눈에 띈다. 불갑사쪽으로 좌측 깜빡이를 켜고 아내에게 물었다.

▲ 붉은 꽃동산을 이룬 불갑산 꽃무릇 군락지. 가을 단풍 예행연습이라도 하는 것 같다.
ⓒ 전갑남
"불갑사 꽃무릇 구경하고 갈까?"
"꽃무릇요? 그게 뭔데요."
"저기 현수막을 보라구. 나도 사진으로만 봤어."
"꽃무릇축제를 한 모양이네요."

현수막은 9월 15일, 16일 양일간에 불갑사에서 '꽃무릇축제'가 있었던 것을 알려준다. 축제가 끝난 뒤라 꽃이 다 진 것은 아닐까? 꽃이 아니라도 유서 깊은 절 구경이라도 할까 하고 차를 몰았다.

불갑면엔 불갑산이 있고, 불갑산엔 불갑사가

불갑사가 있는 불갑산은 내가 자란 고향 마을에서 바라다 보이는 산이다. 초등학교 때, 소풍을 갔던 곳이기도 하다. 아침 일찍 출발하면 근 한나절을 걸어서 정상에 도착하였다. 어머니가 정성들여 싸준 꿀맛 같은 도시락을 까먹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 때만해도 바다구경을 못하고 자랐다. 다른 것은 다 생각나지 않지만 불갑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서해바다의 푸른 물결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불갑사는 해발 516m의 불갑산(佛甲山) 기슭에 자리 잡은 아담한 절이다. 그렇지만 백제 땅에 불교가 전래될 때, 제일 먼저 지은 불법도량이라 하여 불갑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한 때는 70여동의 건물과 31암자, 1000여명이 수행 정진할 정도로 대가람의 불지종가였다.

안타깝게도 조선 선조 30년 정유재란 때 왜군에 의해 가람이 모두 소실되었다. 그 후 수년이 지난 뒤 30여 동의 건물을 복원하여 가람을 회복하였다.

▲ 불갑사 대웅전(보물 830호)
ⓒ 전갑남

▲ 불갑사 4천왕상(지방유형문화재 제159호)
ⓒ 전갑남
불갑사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팔작지붕 다포계 건물로 매우 화려한 양식을 갖추고 있다. 특히, 대웅전 문살에서 삼분합 소슬 빗살문을 섬세하게 조각한 조상들의 뛰어난 예술성을 엿볼 수 있다. 조각 솜씨는 유명한 부안 내소사의 문살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빼어나다.

일주문과 대웅전 사이에 있는 사천왕상의 모습이 여느 사찰과는 달리 친근한 느낌이 든다. 불갑사 사천왕상은 국내에서 제일 큰 상이며, 균형미가 뛰어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 조상들의 섬세하고 화려한 조각 솜씨를 보는 것 같다.

불갑산은 꽃무릇으로 불타다

불갑사 들머리 길가에 빨간 꽃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 속에서만 본 꽃무릇이 분명하다.

"저게 꽃무릇이야."
"꽃이 아주 붉네요."

▲ 10월 초순까지는 꽃동산을 이룰 것 같은 꽃무릇 군락지
ⓒ 전갑남
도로 옆 화단에 일부러 가꾼 것 같은 꽃무릇이 많은 양은 아니지만 꽃동산을 이루고 있다. 일주문에 들어서자 꽃무릇이 지천으로 피었다. 온통 붉은 빛이다. 어떤 사람이 "낮은 산에 불이 난 것 같다!"는 표현을 하며 탄성을 지른다.

눈에 잘 보이는 데만 꽃이 피어있는 것이 아니라 산 위로 올라가도 꽃무릇이 널려있다. 얼마 안 있으면 산에 단풍이 들 텐데 불갑산은 붉은빛의 예행연습이라도 하는 듯싶다.

▲ 붉은 꽃에 취한 사람들의 표정도 화사하다.
ⓒ 전갑남
사람들의 얼굴도 화사한 꽃에 취한 듯 붉다. 그냥 지나치지 않고, 꽃밭에 들어가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멋진 포즈를 취한 모습들이 참 아름답다. 꽃과 어울린 사람들은 이미 꽃이나 다름없다.

불갑산은 고창 선운사, 함평 용천사와 함께 우리나라 최대 꽃무릇 군락지로 알려졌다. 자생하던 꽃무릇의 아름다움이 알려지면서 일부러 심어 지금은 거대한 군락지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불갑사 꽃무릇은 일주문부터 부도밭, 불갑사에서 구수재까지 이르는 산기슭 등을 중심으로 3만여 평에 걸쳐 군락을 이뤄 장관을 이루고 있다.

등산객 차림의 나이 지긋한 아저씨 두 분이 느릿느릿한 발걸음으로 내려온다. 산행을 마치고 하산하는 복장차림이다. 주위에 여기 저기 꺾어진 꽃을 보고 말씀을 나눈다.

"뭘라고 꽃만 보제, 꺾어불까! 성질도 이상들 허당께!"
"꽃을 꺾고, 밟아버린 사람들 심뽀 좀 들여다보면 쓰겠어!"
"꽃이 망가져도 뿌리는 안 죽은께 다행이제."
"근디 이 놈들은 무슨 수가 틀려서 잎하고 꽃이 따로 놀까?"
"서로 그리워 안달을 헌다고 해 상사화라고 허잖여."
"이사람,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네! 꽃무릇의 허는 짓은 상사화와 비슷혀도 딴 것이여!"

투박한 전라도 사투리를 들으니 가까운 이웃 같은 느낌이 든다. 같이 따라가며 관심을 갖자 꽃무릇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저씨의 설명으로 꽃무릇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

▲ 꽃을 찾은 나비가 한가롭다.
ⓒ 전갑남
석산(石蒜)이라고도 하는 꽃무릇은 일본에서 들어왔다. 석산이라는 이름은 '돌 틈에서 나오는 마늘모양의 뿌리'라는 뜻이다. 꽃무릇은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하는 화엽불상견(花葉不相見)의 습성이 상사화(相思花)와 똑같아 사람들은 상사화와 꽃무릇을 혼동하고 있다. 그런데 상사화와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둘 다 백합목 수선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인 점은 같으나 여러 가지 차이가 있다. 상사화는 주로 연분홍, 노랑이나 꽃무릇은 붉은 진홍색이다. 꽃 피는 시기도 상사화는 여름 칠월칠석을 전후해 피지만, 꽃무릇은 초가을인 백로와 추분 사이에 꽃을 피워낸다.

▲ 꽃술이 꽃잎을 호위하는 것 같은 꽃무릇
ⓒ 전갑남
꽃무릇을 자세히 살펴보니 꽃술이 꽃잎보다 훨씬 길다. 거의 두 배 정도가 되는 것 같다. 꽃을 빙 둘러 싼 채 빨간색을 보호하는 꽃술에서 꽃잎을 호위하는 수호천사의 모습이 연상되어 살포시 미소를 머금게 한다.

꽃이 지고 난 뒤 열매를 맺지 못하고 떨어지는 꽃무릇. 꽃이 지고나면 짙은 잎이 나오고는 이듬해 봄 시들어버린다. 꽃과 잎이 숨바꼭질하는 조화는 무엇일까? 추운 겨울을 버티고 따스한 봄기운에 잎이 슬그머니 사라지는 이유는 뭘까?

아내가 엉뚱한 질문을 던진다.

"나는 잎일까? 꽃일까? 우린 꽃무릇처럼 숨바꼭질하고 살면 안 되겠죠?"

덧붙이는 글 | 불갑사 가는 길

* 자가용 이용
서해안고속도로 영광나들목→23번국도→영광읍(함평방면)→불갑삼거리(좌회전)→불갑사. 

* 대중교통 이용
서울→영광(매일 40분 간격) 운행 
광주→영광(매일 20~30분 간격) 운행 
영광→불갑사(매일 9회 운행) 20분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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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