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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24일), 전남 영광 불갑사. 주차장에는 차량의 물결로 넘쳐났다. 불갑사는 지금 꽃무릇으로 온통 붉은 빛이다. 가을 단풍이 들기 전 경이로운 꽃동산을 보려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다.

반갑도다! 모시잎송편

▲ 모시잎송편이다. 예전 추석 때 맛본 그 맛이었다.
ⓒ 전갑남
주차장에 차 세우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간신히 빈틈을 헤집고 주차했다. 이맘때, 불갑사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고 한다. 일주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아내가 팔을 잡아끈다.

"여보, 저기 좀 봐."
"특산품 파는 데?"
"아냐! 저 아주머니들 송편 빚잖아요?"
"그러네. 혹시 모시잎 넣은 송편 빚는 거 아닐까?"
"맞을 거예요."
"이야! 구경도 하고 좀 사가자."


아내가 가리키는 곳에 '모악리부녀회'라는 차일이 쳐져 있다. 모악리는 불갑사가 있는 마을이다. 아주머니 대여섯 분이 평상에 앉아 송편을 빚고 있다. 부녀회에서 왔으니 한 마을에 사는 분들 같았다.

나이가 지긋한 아주머니들이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일하는 모습이 정답다.

▲ 불갑사 주차장에서 송편을 빚고 있는 모악리부녀회 아주머니들.
ⓒ 전갑남
"아따메 솥에 안치기가 바쁘다 바뻐! 솥을 두 개 걸 것을 잘못했시야. 줄 선 사람들한테 미안시럽따. 빨리 쪄달라고 성화를 부리니! 집어놓고 금세 쪄지는 것도 아니고 어쩐다냐."

송편을 안친 솥 주위에 여러 사람이 모여 있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아직 솥이 열리려면 한참 기다려야 할 성싶다. 아주머니들의 손놀림이 능숙하다. 손 따로 입 따로다. 참 보기 좋은 모습이다.

우리도 차일 안으로 들어갔다. 흰 고무신을 신고 일을 진두지휘하는 아주머니께 여쭤보았다.

▲ 모시잎이 들어간 반죽을 보름달 모양으로 편 뒤, 여기에 소를 넣는다.
ⓒ 전갑남
▲ 반달 모양의 송편이 쟁반에 하나하나 채워진다.
ⓒ 전갑남
"아주머니, 이거 모시잎송편 맞죠?"
"그라지요. 어떻게 담방에 알아부네요!"
"우리 고향이 함평이거든요."
"그랴요. 거기서도 추석 때 해먹어봤을 텡게!"
"송편 소는 동부콩이죠?"
"소는 딴 거 필요 없어. 모시잎송편에는 동부콩이 딱이지."


솥뚜껑을 열기가 바쁘게 사가는 통에 쪄놓은 게 하나도 없다며 맛을 보여줄 수 없어 아쉬워한다. 지금 막 안쳐놨으니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어서 불갑산 꽃무릇이나 실컷 구경하고 오란다.

모시잎송편의 추억

추석 명절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추석의 대표적인 별식은 단연 송편이다. 예전 가난한 시절 햅쌀로 빚어 먹던 송편은 정말 꿀맛이었다. 송편 안의 소가 달아서가 아니라, 송편을 먹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이었다.

송편을 빚어 오곡백과가 무르익어 넉넉한 마음으로 조상님께 차례를 지냈다. 자연에 감사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송편은 반죽한 멥쌀가루에 소를 넣고 빚어 솔잎을 깔고 쪄낸다. 떡을 찔 때, 솔잎을 깔고 쪄서 송편이란 이름이 붙었다. 떡맛 뿐 아니라 솔향의 후각적 맛과 솔잎에 눌린 표면의 시각적인 멋도 함께 즐겼다.

솔잎에는 살균물질인 피톤치드가 많이 함유돼 있다. 이는 유해성분의 섭취를 막아주고 위장병, 고혈압, 중풍, 신경통, 천식 등에 좋다. 송편에도 과학이 담긴 셈이다.

▲ 모시잎송편에는 동부콩이 소로 들어간다.
ⓒ 전갑남
송편에는 팥, 콩, 깨와 밤·대추 같은 과일이 소로 들어가 영양도 만점이다. 멥쌀을 주로 사용하지만, 감자녹말로 익반죽하기도 한다. 쑥을 주로 사용해 짙은 녹색을 내기도 하고 치자 물을 들이거나 당근, 포도 같은 즙을 내어 갖가지 색을 낸다.

예전 우리 고향에서는 모시잎을 삶아 색깔을 내서 송편을 빚었다. 어머니는 밭모퉁이에 모시를 심었다. 모시로 옷을 만들려는 것보다는 추석에 송편을 빚어먹기 위해서다. 집집마다 모시를 심진 않았는데, 우리는 넉넉히 심어 여러 집과 나눠먹었다.

식구 많은 우리 집은 온 식구가 둘러앉아 정담을 나누며 송편을 빚었다. 어머니는 누나들한테 송편을 예쁘게 빚어야 예쁜 아기를 낳는다며 은근히 솜씨자랑을 시켰다.

미리 맛본 송편... 역시 모시잎송편이 최고야!

꽃무릇의 붉은빛에 정신이 팔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어느새 오후 1시를 넘어섰다.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며 회가 동한다. 이곳저곳 사진을 찍고 있는데 아내가 송편 먹으러 가잔다. 아내도 시장기를 느낀 듯 발걸음이 빠르다.

▲ 송편을 솥에서 찌고 있다.
ⓒ 전갑남
"아주머니, 우리 송편 먹으러 왔는데요."
"어메 어짠다냐? 꺼내기가 무섭네! 요것밖에 없는디."


다행히 두개가 남았다며 건네준다. 아내와 나는 하나씩 나눠먹었다. 한입 베어 물었는데 정말 쫄깃쫄깃하다. 예전에 먹어본 맛이 새록새록 생각난다. 동부콩이 씹히는 맛이 달짝지근하고 부드럽다. 아내가 큼직한 송편을 보고 질문을 던진다.

"아주머니, 송편은 왜 그리 크게 빚어요?"
"큼직해야 쓰지, 쪼깐허면 감질나서 쓰간디!"


부산하게 송편을 빚은 아주머니들 모두 웃음보를 터뜨린다. 한 아주머니가 말씀을 이으신다.

"도회지 사람들이야 할 일 없응께 한 입에 쏙 들어가불도록 맹글지만, 일 바쁜 시골이야 어디 그럴 틈이나 있간디. 후딱 맹글라면 주먹만허게 해야제. 오사게 커도 이쁘기는 허죠? 모시잎이 들어가 요로코롬 커도 쉽게 굳지 않아서 좋은 거여."

모시잎이 들어가면 빨리 굳지 않아 좋다고 자랑까지 곁들인다. 쫄깃쫄깃, 달짝지근, 거기다 한 이틀 그냥 둬도 말랑말랑한 것이 모시잎송편의 또 다른 덕목이라는 것이다.

큼지막해서인지 송편 하나로도 속이 든든하다. 추석을 앞두고 미리 먹어서 그런지 그 맛이 정말 맛있다. 잃어버린 고향의 맛을 되찾은 느낌이다.

▲ 한 입 베어 문 송편. 쫄깃쫄깃한 맛이 그만이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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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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