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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썰렁한 가을,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밥 한 그릇 드세요
ⓒ 이종찬
흔한 재료로 누구나 집에서 쉽게 해먹을 수 있는 국밥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따뜻한 국물이 있는 국밥 한 그릇이 그리운 계절이다. 해마다 이맘때, 그러니까 찌는 듯한 무더위가 물러나고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바람이 슬슬 불기 시작하는 가을부터 이듬해 이른 봄까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음식이 바로 국밥이다.

국밥은 감기 기운이 있어 몸이 으슬으슬해질 때나 까닭 없이 마음까지 쓸쓸해지면서 울적할 때 자주 떠오르는 음식이다. 게다가 소주 한 잔 곁들여 입김으로 후후 불어가며 뜨거운 국밥 한 그릇 먹고 나면 이마와 목덜미에 땀방울이 송송송 맺히면서 어느새 몸과 마음이 날아갈 듯이 가뿐하고 기분까지 좋아진다.

국밥은 그 종류가 너무나 많다. 간밤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일어난 날 아침에 쓰린 속을 풀기 위해 먹는 콩나물해장국에서부터 소머리국밥, 쇠고기국밥, 선지국밥, 돼지국밥, 순대국밥, 곱창국밥, 내장국밥, 우거지국밥, 김치국밥 등 그 수를 일일이 헤아리기조차 힘이 든다. 여기에 여러 가지 해장국물과 밥이 따로 나오는 따로국밥까지 합치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중 값싸고 흔한 재료로 집에서 쉬이 해먹을 수 있는 국밥이 김치콩나물국밥이다. 특히 김치콩나물국밥은 끼니 때 먹던 밥이 애매하게 조금 남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 누구나 손쉽게 해먹을 수 있다. 가까운 가게에 가서 싱싱한 콩나물 조금만 사면 나머지 재료는 대부분 집에 있으므로 더 살 필요조차도 없다는 그 말이다.

▲ 냄비에 물을 가득 붓고 국물멸치와 무, 다시마, 매운고추, 파뿌리, 양파를 넣고 한 시간 정도 중간불에서 포옥 우려낸다
ⓒ 이종찬

▲ 맛국물 속에 든 건더기를 모두 건져낸 뒤 식힌다
ⓒ 이종찬
장이 서는 가을날, 이상하게 배가 더 고팠다

1970년대 중반, 그때 중ㆍ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던 나는 '쇠를 삼켜도 소화시켜낼 나이'라고 마을 어르신들이 말할 정도로 한창 성장기를 겪고 있었다. 특히 으슬으슬한 바람이 이마와 목덜미를 스치는 추석이 가까워오는 이맘때가 되면 배가 자주 고팠다.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들판 위를 떠도는 뭉게구름이 하얀 쌀밥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때(지금도 그러하지만), 4자와 9자가 붙은 날이면 내가 학교를 오가는 길목에는 어김없이 마디미장(상남장)이 섰다. 음식전, 쌀전, 옷전, 과자전, 과일전, 채소전, 화초전, 소전, 땔감전, 그릇전, 한약재전, 잡물전 등. 말 그대로 없는 것 빼고 다 있었던 그 마디미장이 서는 가을날에는 이상하게 배가 더 고팠다.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금세 터져버릴 정도로 교과서가 잔뜩 든 무거운 가방을 들고 쌀전과 과일전, 과자전을 지나 음식전을 지날 때면 나도 모르게 침이 꼴깍꼴깍 넘어갔다.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쇠고기국밥이나 돼지국밥을 후루룩후루룩 소리를 내어가며 먹고 있는 모습을 바라볼 때면 어지럼증까지 일었다.

하지만 내 고향 동산마을(지금의 경남 창원시 상남동)사람들 대부분은 고기가 듬성듬성 들어있는 그런 국밥은 자주 먹지 못했다. 어쩌다 집에서 국밥을 끓일 때에도 육고기 한 점 들어있지 않은 김치국밥이나 우거지국밥이었다. 마디미장에서 팔던 그런 쇠고기국밥이나 돼지국밥은 우리 마을에 잔치가 벌어지거나 초상이 나야 겨우 한 그릇 먹을 수 있었다.

▲ 콩나물을 흐르는 물에 씻는다
ⓒ 이종찬

▲ 냄비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면 콩나물을 재빨리 건져내 찬물에 담근다
ⓒ 이종찬
사람의 입맛은 추억을 먹으며 달라진다

사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어머니께서 끓여주던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그 김치국밥이나 김치콩나물국밥, 우거지국밥의 맛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저 배가 너무 고팠기 때문에 어서 배를 채우기 위해 두어 그릇 후딱 먹어치웠다. 근데, 어른이 되고 보니, 오히려 그때 어머니께서 끓여주던 그 김치콩나물국밥이 간절했다.

어른이 되고 난 뒤, 십대 때 그렇게 먹고 싶었던 그 쇠고기국밥이나 돼지국밥을 전문점에 가서 먹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는 쇠고기국밥이나 돼지국밥을 먹을 때마다 김치콩나물국밥이 더 먹고 싶으니. 사람의 간사한 입맛은 어릴 때 다르고, 십대 때 다르고, 어른이 되어서 또 달라지나 보다.

"아빠! 요즈음에는 왜 그 맛난 국밥을 안 끓여?"
"그동안 날이 하도 더워서 그랬지. 하지만 이제부터는 찬바람도 슬슬 나고 하니까 틈틈이 국밥을 끓여먹어야지. 근데, 왜? 날씨가 쌀랑하니까 갑자기 그 국밥이 생각 나?"

"아빠! 기왕 말 나온 김에 오늘 점심 때 국밥 좀 끓여주면 안 돼?"
"왜 안 돼? 참! 엊그제 외할머니께서 끓여주신 쇠고기국밥을 먹었잖아? 근데 또 웬 국밥 타령?"
"아빠! 나는 쇠고기국밥보다 아빠가 끓여주는 그 국밥이 훨씬 더 맛있어. 사실, 엊그제 쇠고기국밥을 먹으면서도 그 국밥 생각이 많이 났어."


지난 일요일 12시. '오늘 점심은 또 뭘로 때우지?' 혼잣말을 지껄이다가 문득 어릴 때 먹던 음식에 얽힌 추억에 마악 젖어들고 있을 때였다. 하필, 그때 늦잠을 자고 일어난 큰딸 푸름이(16)와 작은딸 빛나(14)가 내게 다가와 "배가 고파 죽겠다, 어서 국밥 좀 끓여줘"라며, 온갖 수다와 아양을 떨기 시작했다.

▲ 그래야 콩나물을 씹을 때 아삭아삭 씹히는 맛을 즐길 수 있다
ⓒ 이종찬

▲ 콩나물까지 삶아낸 멸치맛국물
ⓒ 이종찬
"앗! 아빠가 진짜로 국밥을 끓이려 하는가보다"

어쩔 수 없었다. 아니, 사실 나도 오랜만에 어릴 때 어머니께서 끓여주던 그 얼큰하면서도 시원했던 김치콩나물국밥을 떠올리며, 오늘 점심은 그 국밥을 한번 만들어볼까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게다가 언제 보아도 귀엽고 예쁜 두 딸의 부탁을 어찌 들어주지 못하겠는가. 두 딸의 나이 또한 그때 내 나이처럼 밥 먹고 돌아서면 또 배가 고픈 십대가 아닌가.

"푸름아! 얼른 요 앞 가게에 가서 콩나물 500원 어치만 사 와!"
"앗! 아빠가 오늘 점심 때 진짜로 국밥을 끓이려 하는가보다. 아싸~ 아빠! 내가 갔다 올게."
"내가 콩나물 살 돈을 먼저 받았거든. 아빠! 심부름값으로 아이스크림 하나 사 먹을게."
"알았어. 그러면 빛나 아이스크림도 같이 사 와."


김치콩나물국밥을 끓이는 방법은 쉽다. 먼저 냄비에 물을 가득 붓고 국물멸치와 무, 다시마, 매운고추, 파뿌리, 양파를 넣고 한 시간 정도 중간불에서 포옥 우려낸다. 이어 맛국물 속에 든 건더기를 모두 건져낸 뒤 식힌다. 맛국물이 식을 동안 콩나물을 뿌리째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어놓고, 묵은지(묵은 김치), 양파, 매운고추, 대파, 마늘 등을 손질한다.

멸치맛국물이 적당히 식으면 씻은 콩나물을 넣고 센불에서 한소끔 끓인다. 냄비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면 콩나물을 재빨리 건져내 찬물에 담근다. 그래야 콩나물을 씹을 때 아삭아삭 씹히는 맛을 즐길 수 있다. 그 다음, 콩나물을 건져낸 맛국물에 묵은지와 버섯, 양파, 매운고추를 넣고 한소끔 끓이다가 찬밥과 송송 썬 대파, 찧은 마늘을 넣고 다시 한소끔 끓인다.

▲ 김치콩나물국밥은 묵은지가 맛있어야 제맛이 난다
ⓒ 이종찬

▲ 양파, 매운고추, 대파, 마늘 등을 손질한다
ⓒ 이종찬
"아빠, 어때? '시인이 직접 만드는 국밥전문점'"

냄비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면 불을 끄고, 그릇에 미리 물기를 뺀 삶은 콩나물을 적당히 깔고 그 위에 잘 끓은 밥과 건더기, 국물을 끼얹는다. 마지막으로 새우젓갈로 간만 맞추면 끝. 이때 입맛에 따라 달걀을 하나 풀어 넣어도 맛이 좋고, 고춧가루를 약간 뿌리면 보다 더 담백한 맛을 즐길 수 있다.

맛내기 하나 더. 뚝배기에 삶은 콩나물과 묵은지, 버섯을 깔고, 그 위에 찬밥과 양파, 매운고추, 대파, 마늘을 올린다. 이어 맛국물을 뚝배기에 적당히 붓고 한소끔 끓이다가 달걀을 얹어 새우젓갈, 고춧가루와 함께 차려내도 된다. 술을 많이 마신 뒤 더 시원한 맛을 즐기려면 맛국물을 낼 때 마른새우를 조금 넣은 것도 조리의 지혜.

"국밥을 하도 오랜만에 끓여서 옛날 그 맛이 날런 지 잘 모르겠다? 국물맛이 어때?"
"바로 이 맛이야. ♬~국물이 정말 끝내줘요~♬~ 아빠, 이거 더 있지?"
"걱정하지 마. 너희들이 좋아할 줄 알고 일부러 많이 끓였어."
"우리 이걸로 장사해도 되겠다. 음~ 간판은 '시인이 직접 만드는 국밥전문점'. 아빠, 어때?"
"???"


▲ 그릇에 미리 물기를 뺀 삶은 콩나물을 적당히 깔고 그 위에 잘 끓은 밥과 건더기, 국물을 끼얹는다
ⓒ 이종찬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골아이', '시민의신문', '유포터', '씨앤비'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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