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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자르(시장)에서 리표시까를 파는 우즈벡 여인
ⓒ 이미선
다시 길을 나섰다. 운동화 끈을 좀 더 단단하게 조여매고, 헛기침 몇 번으로 온 몸의 긴장을 풀었다. 그것으로 오늘도 걸을 준비는 마친 셈이었다. 집 앞 골목길을 벗어나 도로 위로 나서자 트람바이(선로 위를 달리는 전차), 택시, 버스가 차례대로 내 앞으로 지나갔다.

무심히 그것들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오늘도 나는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대신 걷기를 택했다. 열심히 걸어 다니다가 지치면 버스에 올라타거나 택시를 세우면 되니까. 또 걸어야 좀머씨니까.

어디선가 고소한 냄새가 풍겨왔다. 걷기에 집중해 있을 때는 몰랐는데, 냄새를 맡자마자 뱃구레가 요동을 쳤다. 무슨 냄새지? 계속 걷고 있는 두 발과는 달리 눈동자는 양옆으로 민첩하게 움직였고 코는 연신 벌름거렸다.

리표시까였다. 우즈벡 어로는 '논'이라 부르고, 러시아어로는 '리표시까'라고 불리 우는 둥근 빵. 우즈베키스탄을 비롯한 중앙 아시아인들이 끼니때마다 먹는 빵이었다. 리표시까를 가득 실은 밀차가 내 옆을 지나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아꺄!(우즈벡어로 아저씨라는 뜻)”를 외치고 말았다. 150숨을 주고 리표시까 하나를 샀다. 금방 화덕에서 꺼내온 탓인지 뜨끈뜨끈 했다.

한입 베어 물자 그 순간만큼은 진수성찬 부럽지 않을 만큼 행복했다. 리표시까를 뜯어먹으면서 계속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타쉬켄트 시내로 접어들었다. 거리에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리표시까를 실은 밀차가 더욱 많이 보였다. 리표시까를 먹거나 손에 들고 가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다. 시계를 보니 끼니때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 밀차 위의 리표시까를 정리하고 있는 우즈벡 청년
ⓒ 이미선
중앙아시아 사람들이 흘레브(빵)라는 말로 지칭하기도 하는 둥글넓적한 이 빵은 오래 전부터 이곳 사람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식량이었다. 휴대하기 간편하고 어디에서나 먹을 수 있어서 주로 유목 생활을 하던 이들에게는 더없이 간편한 식사가 되었던 것이다. 방부제를 전혀 넣지 않는데도 몇 년을 그냥 놔두어도 썩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간혹 특이한 문양의 리표시까를 집안의 장식물로도 활용한다고.

밀가루 반죽을 둥글게 빚은 다음 중앙에 떡살(지역에 따라, 민족에 따라 무늬도 다양하다. 실제로 리표시까를 보면 가운데에 있는 무늬가 동일한 것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로 무늬를 찍은 다음 깨를 뿌려 탄드라(화덕)에 수분 간 구워내면 동글납작하고 고소한 리표시까가 만들어 진다. 가격은 100숨에서 많게는 700숨까지 다양하다. 무늬와 크기에 따라 가격을 결정한다.

리표시까의 가운데를 먹는 사람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도 있다. 사실 그 부분이 가장 딱딱해서 먹기가 조금 어렵다. 어린 아이들이 그 부분만 남겨놓고 먹는 것을 종종 보았다. 그래서 그런 말이 생겨난 것인지는 몰라도 우즈벡 가정에 초대를 받아 가면 주인이 리표시까를 뜯어서 손님에게 대접할 때 미혼인 여성에게 그런 말들을 해주곤 한다.

나도 현지인 가정에 몇 번 초대를 받아 간 적이 있었는데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말을 하자 집주인들이 리표시까를 권하며 그런 우스갯소리를 한 적이 있었다. “결혼해서 아들 낳고 싶으면 가운데를 많이 먹어둬!”

▲ 사마르칸트의 리표시까. 화려한 문양으로 유명하다.
ⓒ 이미선
정신없이 먹으며 걷다보니 어느새 리표시까 하나를 다 먹어치웠다. 갓 나온 리표시까를 먹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꽤나 흡족했다.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했지만 조금 더 걸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리표시까를 가득 실은 밀차 두 대가 바자르(시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저녁도 리표시까로 해결해야지!

▲ 리표시까 파는 우즈벡 아저씨. 리표시까를 먹으며 마시는 차이 한 잔의 맛 또한 일품이다
ⓒ 이미선

덧붙이는 글 | 이미선 기자(좀머씨)는 현재 우즈베키스탄 세계언어대학에서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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