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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육 교육 분야 단원들이 태권도 시범을 보이고 있다.
ⓒ 이미선

2007년 2월 10일 우즈베키스탄(이하 우즈벡) 또이떼빠 지역에 위치한 48학교 학생들과 한국국제협력단(이하 KOICA) 봉사단원들의 만남이 있었다. 이번 만남은 ‘즐거운 나눔의 청소년 문화축제’라는 주제로 우즈벡에 파견된 봉사단원들 중 초, 중, 고등학교 통합과정(이하 쉬꼴라)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함께 뜻을 모아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 행사를 주최한 것은 작년 5월에 우즈벡에 온 단원들이었다. 이들은 각자 임지에 파견된 후 자신들의 전문 분야를 학생들에게 가르치며 활동을 하였다. 그러면서 현지 학생들이 받는 문화적 혜택과 창의력을 길러줄 수 있는 교육 시설이 풍부하지 못하다는 점에 착안하여 모임을 만들었던 것이다.

미술 교육 분야는 사생 대회, 체육 교육 분야는 태권도, 항공(협력요원 파견) 분야는 물로켓 시범, 컴퓨터 교육 분야는 빔 프로젝트, 한국어 교육 분야는 공동체 활동과 김밥 만들기를 통하여 볼거리 먹거리가 풍성한 축제를 준비하였다.

▲ 그림 그리기를 하고 있는 학생들. 가까이 다가가도 모를 만큼 진지하게 그림을 그리고 있다.
ⓒ 이미선

행사가 열린 지난 10일은 흐리고 무척 쌀쌀한 날씨였다. 몇 달 전부터 기획하고 행사 준비를 한 노력이 날씨 때문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했지만 학교장의 전폭적인 지원과 학생들의 관심은 그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주었다. 강당 건물 곳곳에 풍선을 매달았고, 행사가 열리는 장소인 학교 체육관은 플랜 카드와 태권도와 김밥에 관한 여러 가지 설명들을 대자보 형식으로 써 붙였다.

생김새가 다르고 자신들의 말과는 다른 언어를 쓰는사람들이 학교에 와서 분주하게 준비하는 것을 학생들이 호기심 많은 눈으로 쳐다보았다. 열두시가 되자 사물놀이 팀의 길놀이가 시작되었다. 학교 곳곳을 돌며 쇠, 북, 장구, 징을 치며 행사의 시작을 알렸고 그들 뒤를 따라 들어온 학생들로 강당이 가득 찼다.

혹시나 학생들이 행사 참여에 주저하지는 않을까, 처음 보는 이 행사가 그저 우리들만의 행사로 끝나지는 않을까 생각 했던 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이 학교에 파견된 김주형 봉사단원(미술 교육 분야)이 담당하여 가르치는 학생들이 특히 사생대회에 많은 열의를 보였다.

처음에는 동그라미도 제대로 그리지 못해 선생님께 달려와 동그라미를 그려달라고 부탁하던 학생들이 스스로 자동차와 집, 구름과 해를 그려 넣고 있었다. 선생님이 칠판에 그려준 대로만 따라하던 아이들이 점차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를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그려 넣고 있었다.

잘 그린 그림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잘 그린 그림이라는 것을 배운 학생들이었다. 그들의 표정은 각자의 생각만큼이나 다양했고 또한 진지했다. 학생들을 바라보는 선생님들의 얼굴에 조금씩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난방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조금 쌀쌀했던 실내온도가 그들의 열기로 조금씩 달아올랐다.

▲ 처음에는 동그라미도 제대로 그려넣지 못하던 아이가 어느새 자신의 생각을 그림 속에 그려넣고 있다.
ⓒ 이미선

학생들이 그림 그리기에 열중하고 있는 사이 체육관 뒤편에서는 김밥 만들기 준비가 한창이었다. 학생들에게 한국 음식을 직접 만들어 볼 기회를 주기 위해서 여러 봉사단원들의 손길이 매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림 그리기가 끝난 후에 윤은미, 김영희, 여윤경(한국어 교육 분야) 단원이 마련한 '공동체 활동' 순서가 이어졌다.

한국 동요에 맞춰 학생들에게 율동을 가르치는 순서였다. 처음 듣는 동요가 생소할 만도 한데 학생들은 너나없이 율동을 따라하며 즐거워했다. 뒤에 서 있던 학부모들도 함께 참여하면서 분위기가 점점 더 무르익었다.

▲ 김밥이 뭐지? 하며 다가왔던 아이들이 어느새 김밥에 푹 빠져들어 만들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 이미선

드디어 김밥 만들기 시간. 공동체 활동을 통해 각 조별로 나누어진 학생들이 조별 팻말이 놓인 곳으로 모여 들었다. 한국 음식이 어떤 것인지, 또 맛은 어떤지 무척 궁금해 하는 학생들이 많아서 김밥 만들기를 담당했던 봉사단원들의 말과 손길이 매우 빨라지고 있었다.

김에 밥을 깔며 웃어보기도 하고, 단무지 하나를 손에 들고 이게 무엇이냐며 단원들에게 질문을 하고, 몰래 하나 먹어보려고 손을 뻗기도 하고, 서로 먼저 해보겠다며 경쟁하기도 했지만 표정은 한결같이 밝았다. 자신들이 만든 김밥을 먹어보면서 맛있다고 박수를 치기도 하고, 김밥 하나를 바지 주머니에 넣으려다가 친구들에게 들키는 바람에 얼굴이 빨개진 학생도 눈에 띄었다.

학생들이 김밥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사이, 체육 교육 분야의 봉사단원들이 뒤에서 태권도 시범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배부르게 김밥을 먹고 잠시 딴청을 부리던 학생들이 흰 도복에 검은 띠를 두른 그들의 모습에 하나 둘 씩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태권도를 아는 학생도 더러 있었지만 대부분 처음 보는 그들의 모습이 생소한 듯 탄성을 질렀다. 절도 있는 동작으로 송판 격파와 기왓장 격파가 이어졌고, 유사시를 대비한 호신술 시범도 보여주었다.

▲ 처음에는 곧잘 장난을 치던 학생들의 모습이 사뭇 진지해졌다. 애써 준비한 축제 프로그램들이 이들의 마음 속에 어떻게 자리잡을까.
ⓒ 이미선

학생들이 태권도 시범에 푹 빠져있을 때, 뒤에서는 그림 그리기에 대한 심사가 이어지고 있었다. 학생들에게 스티커를 세 장씩 나눠주고 잘 그린 그림 밑에 스티커를 붙이는 방식으로 평가를 하였다. 혹시나 한 학년에서 수상자가 나오지 않을까 우려하였지만 결과는 뜻밖에도 저학년에서 고학년까지 모두 한 명씩 골고루 나와 주었다.

마무리 행사로 운동장에서 물로켓 시범이 있었다. 항공 분야로 파견 된 봉사단원이 며칠에 걸쳐 만든 물로켓 발사기가 운동장에 놓였고, 혹시나 모를 사고에 대비해 학생들에게 주의를 준 뒤 하늘 높이 물로켓을 발사했다. 운동장에 모인 학생들의 탄성과 높이 솟아올랐다가 떨어진 물로켓을 서로 줍겠다며 학생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통에 운동장의 열기 또한 바짝 달아올랐다.

사물놀이 팀의 마무리 공연으로 문화 축제가 끝이 났다. 학생들은 매우 아쉽고 우리 학교에 또 와달라며 봉사 단원들 주변을 맴돌았다. 학교 선생님들이 어서 돌아가라고 재촉했지만 아이들은 머뭇거리며 쉽게 떠나려 하지 않았다. 풍선을 가지고 와서 선물이라며 내밀기도 하고 언제 또 올거냐는 질문을 하기도 했다. 축제가 끝났지만 아이들의 마음은 아직 끝이 난 게 아닌 모양이었다.

▲ 축제를 주관한 봉사단원들.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 즐거움과 동시에 창의력을 길러줄 수 있을까 고심했다. 학생들의 눈높이를 맞춰주려는 이들의 노력이 빛나는 시간이었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임을 이들은 잘 알고 있었다.
ⓒ 이미선

누군가의 도움 없이 봉사 단원들만의 힘으로 마련했던 이 축제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이 모임을 주관하고 이 행사를 기획했던 단원들의 얼굴에 뿌듯함과 진한 아쉬움들이 교차하고 있었다.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눈을 맞추자는 것이 이 행사의 취지였던 만큼 이것이 끝이 아니라 앞으로 만들어 갈 축제의 시작이라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태권도 시범을 보여주었던 단원에게 송판에 사인을 받으러 몰려다니던 학생들이 악수를 청했다. 손을 잡고 뒤돌아서던 학생이 웃으며 말했다. “라흐맛!(고마워요)”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던 단원의 얼굴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미선 기자는 한국국제협력단 단원으로써 현재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쉬켄트에 위치한 세계언어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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