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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비와 전사>표지
ⓒ 휴머니스트
'연구공간 수유+너머'라는 단체가 있다. 종로구 혜화동에 사무실이 있고 여기에서는 인문학을 중심으로 사회과학 분야까지 연구, 번역, 강연 등의 작업을 하고 있으며 일종의 코뮌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이 집단에는 이진경, 고병권, 고미숙 등 인문사회과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번 정도 이름을 들어보았을 쟁쟁한 연구자들이 소속되어 있다.

<나비와 전사>는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고미숙이 심혈을 기울여 쓴 책이다. 책 제목에서 나비는 조선후기의 저명한 실학자 연암 박지원을 상징하고, 전사는 프랑스의 후기구조주의 철학자 미셸 푸코를 상징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비와 전사>가 조선 실학과 프랑스 후기 구조주의의 연구서나 비교분석서는 아니다.

<나비와 전사>는 조선말, 한일합방기를 배경으로 한반도에 근대가 동터오는 현장을 인문학적 시선으로 조망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시기적으로 조금 앞선 정조조의 연암에 관한 기록과 그의 사상이 이용되었고, 흔히 푸코로 대표되는 프랑스 철학적 방법론 및 사유체계가 응용되었다. 고미숙의 분석에서는 푸코의 대표적 방법론인 고고학, 소위 지식의 고고학이 사용되기도 하였다.

<나비와 전사>는 첫 장에서 근대의 동터옴의 모티브로 '기차', 특히 이광수의 '기차'를 시작으로 글을 시작해 간다. 그리고, 대한제국, 한일합방기의 주요 언론매체인 대한매일신보, 독립신문 등을 텍스트로 사용하여 자신의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나비와 전사>의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된 장들은 속도, 몸, 시간, 근대, 허준, 앎, 변강쇠와 옹녀, 소월과 만해, 병리학, 다산과 연암 등을 테마로 정말 재미있는 글을 보여주고 있다. <나비와 전사>도 마찬가지이지만 고미숙의 글들은 유익하고 재미있고 유쾌하기까지한 독서의 경험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인문학 서적이지만 마치 소설책을 읽는 것 같은 몰입과 줄어드는 페이지에 대한 아쉬움을 느끼게 하는 독서경험을 선사한다.

개인적으로는 책 전체가 다 좋았다. 첫 장이 조금 지루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다 좋았고, 어디 한군데 몰입과 독서의 즐거움을 떨어뜨리는 부분이 없었다. 독서한지 조금 지났지만 기억이 많이 나는 것은 3장의 변강쇠가와 이광수의 소설을 텍스트로 한 성적 판타지와 연애에 관한 내용이다.

우리에게 조선사회는 엄격한 유교적 윤리가 지배하고 성적으로 완강한 사회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고미숙은 변강쇠가를 비롯한 민간의 텍스트를 인용하며 유교적 성적 엄격주의가 지배한 곳은 양반네의 규방과 침소이며 서민들은 성적으로나 생활상으로나 비교적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조선의 서민사회는 흔히 역사학에서 비교되는 서양 중세의 그것과는 또 달랐다. 중세의 기독교처럼 조선에는 유학이라는 지배이데올로기가 있었지만 그 이데올로기가 민중들의 구체적 삶에 다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은 서양의 중세와는 또 다른 양상이다.

한반도에서 성이 본격적인 통제를 받게되는 것은 오히려 훨씬 뒤,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그리고 시기적으로 겹치지만 조선이 민족국가라는 근대의 길로 들어서면서 부터이다. 그 원인이 조선의 식민지화 탓인지, 근대화의 탓인지는 불분명하지만 대한제국, 한일합방의 시기에 들어서면서 오히려 조선 민중의 성의식은 왜곡된다.

이후 일제 후에서 연애의 담론이 담론의 범위를 넘어서서 조선인의 의식구조에 어떻게 자리잡고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가 하는 인문학적 분석들도 이광수의 텍스트를 인용하여 설득력있게 기술되고 있다.

<나비와 전사>를 아직 읽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서 일부분에 대한 감상만을 적어보았다. 그러나, <나비와 전사>의 다른 부분들도 정말 잘 써내려갔고, 인문학 책답지 않게 고리타분하지도 않고 흥미롭다. 관심있는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덧붙이는 글 | <나비와 전사>(근대와 18세기, 그리고 탈근대의 우발적 마주침)    
고미숙 | 휴머니스트 | 2006.04.17


나비와 전사 - 근대와 18세기, 그리고 탈근대의 우발적 마주침

고미숙 지음, 휴머니스트(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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