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괴물> 영문 포스터
ⓒ 청어람
영화 <괴물>은 정말 무섭다. 우리가 맥주를 홀짝이며 넋 놓고 앉았거나, 데이트를 하며 무심코 지나치던 한강에서 쏘가리와 개구리를 합쳐놓은 듯한 덩치큰 괴물이 나타나서? 천만에다.

이 괴물, 실은 하나도 안 무섭다. 입은 구강 돌출로도 모자라 식인 식물처럼 사방으로 갈라진다. 그 입을 쩍 벌려 사람들을 삼키고, 꼬리로 휘어감는다. 신기하다. 그래도 무섭지 않다. 무섭기커녕 웃기다. 친근하다. 국산 괴물이라서 그런가?

그런데 <괴물>은 무섭다. 정체불명, 어류인지 파충류인지 종류불명, 그러나 식성은 분명한 '괴물' 때문이 아니다. 달리기 잘못해 엎어진 바람에 괴물에게 잡혀간 현서 때문도 아니다. <괴물>의 남자들 때문이다.

괴물은 안 무섭지만, <괴물>은 무섭다

영화는 초반부터 확실하게 암시한다. 이 돌연변이 생물체를 탄생시킨 건 미군이 한강에 무단 방출한 포름알데히드가 아닐까?

괴물은 그렇게 탄생했으나, 그게 괴물의 식성까지 결정한 건 아니었다. 사람 고기에 입맛들인 괴물의 식성은 어떻게 탄생했나? 괴물은 어쩌다 사람을 잡아먹게 됐나?

2006년 10월. 넥타이를 풀어헤친 양복 바람의 한 남자가 한강 다리 위에 올라서 있다. 멍하니 강물을 내려다보던 남자는 자신이 뛰어들려는 강물에 뭐가 있는 걸 어렴풋이 발견하지만, 남자는 자신을 말리러 뛰어오는 이들에게 한 마디 말만 남기고 한강으로 뛰어든다.

"끝까지 둔해빠진 새끼들, 잘 살아라."

남자는 왜 죽었을까? 안 봐도 비디오다. 옷차림이나 분위기로 보건대 남자는 오랜 실직자거나 방금 실직했다. 또는 '바다이야기' 같은 도박장에서 전 재산을 날렸거나? 어쨌든 살 맛을 잃어버린 40대 남자는 죽기로 작정하고 한강에 뛰어든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 괴물이 있었다. 그러니 괴물이 뭐했겠나? 괴물은 남자를 잡아먹었을 게 틀림없다. 영화가 암시하는 게 그거다. 그렇게 해서 괴물은 진짜 괴물이 됐다. 사람 잡아먹는 괴물이 됐다.

강두 가족부터 괴물까지, '엄마 없는 하늘 아래'

▲ 강두네 부자에겐 공통점이 있다. 강두는 엄마가 없고, 현서도 엄마가 없다. 강두네 가족에겐 엄마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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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두(송강호)네 식구를 보자. 강두네 삼남매는 강두의 딸 현서(고아성)와 같이 산다. 아버지 박희봉(변희봉)이 운영하는 매점에 빌붙어 산다.

그런데 이들 강두네 부자에겐 공통점이 있다. 강두는 엄마가 없고, 현서도 엄마가 없다. 강두네 가족에겐 엄마가 없다.

병원에서 탈출한 가족이 매점에 들렀을 때 아버지가 남일과 남주에게 풀어놓는 넋두리는 중요한 정보를 알려준다.

"니들이 보기엔 강두 애가 좀 한심 빠따냐? 강두 애가 가뜩이나 엄마도 없이 크는 놈이, 내가 정신 못 차릴 때…."

그리고 아버지는 강두가 동네 밭에서 야채를 뜯어먹고 자랐다고 말한다. 이 말이 드러내는 건 확실하다. 강두는 엄마없이 자랐다. 그냥 엄마없이 자랐나? 미루어 짐작컨대, 강두의 엄마는 집을 나갔다. 그런데 어디 강두 엄마뿐인가? 괴물이 현서를 잡아간 뒤 박희봉은 한탄한다.

"애만 똑 싸질러놓고 도망친 게 13년이지. 한 마디로 사고쳐서 낳은 애를 사고 쳐서 잃은 거여."

똑같은 일이 강두에게도 일어났다. 강두의 아내 역시 가족을 버리고 도망갔다. 이들뿐이 아니다. 영화 <괴물>의 남자들에겐 아내가 없다. 엄마도 없다. '아버지'만 있다.

한강 하수구를 통해 한강을 건너 매점에 들리는 어린 형제도 엄마는 없다. 또 오달수가 목소리 연기한 걸로 보더라도 '남자'로 추정되는 괴물도 엄마가 없다. 아, 있다. 포름알데히드가 그를 만들었으니, 실은 화학물질인 포름알데히드가 괴물의 엄마다.

무기력, 무능, 무양심... 남자들은 괴로워

▲ 아버지 매점에서 빌붙어사는 강두는 손님 오징어 다리나 뜯어먹는 인물이며, 현서 빼곤 희망도 없고 야망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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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 강두 가족의 남자들은 어떤가? 먼저 여자들을 보자. 셋째딸 남주(배두나)는 한다하는 양궁 선수이고, 현서는 제법 똑똑하다. 이들은 꿈이 있고 직업이 있고 미래도 있다.

하지만 남자들은 다르다. 남자들은 무기력하다. 강두를 보자. 아버지 매점에서 빌붙어사는 강두는 손님 오징어 다리나 뜯어먹는 인물이며, 현서 빼곤 희망도 없고 야망도 없다.

그러니 종일 졸다가 눈을 뜰 때라곤 딸내미 현서가 부를 때뿐이다. 아버지가 귀를 잡아당겨도 꿈쩍 않고 매점 가판에 엎드려 자던 강두는 어디선가 "아빠" 하고 부르는 한 마디엔 벌떡 일어난다.

둘째 남일(박해일)도 무능하고 할 일 없긴 만만찮다. 대학은 나왔으나 남일은 백수다. 청년실업자다. 그렇다고 도서관엘 가는 게 아니라 낮술 푸느라 바쁘다.

"아이. 조국의 민주화에 몸 바쳤더니 씹탱이들이 취직도 안 시켜주고 말야."

아무것도 하지 않는 투덜이 남일에게 미래는 없고 한탄만 있다. 야망도 없고 희망도 없다. 잘 하는 건 대학 운동권 때 갈고 닦은 '도바리(도망)' 실력과 화염병 제조 및 투척 기술뿐이다.

강두네 가족만 이런 게 아니다. 병원 의사도 별 다르지 않다. 피곤한 얼굴의 그는 매사가 시큰둥 마지못해 산다는 표정이며, 번듯한 이동통신사 직원인 남일의 선배도 알고 보면 빛좋은 개살구다. 연봉이 6천, 7천이냐는 질문에 "빚이 6천, 7천이다, 임마"라던 그는 남일을 돈 몇푼에 팔아먹을 정도로 돈도 양심도 궁하다.

한강에서 검문하는 공무원은 "나 구청 조과장인데 몰라요? 어제 박 사장하고 얘기 다 된 건데"라며 검문이 아니라 뒷돈을 요구하고, 괴물에 맞서 사람을 구했던 미군은 의료진 실수인 듯한 '수술 중 쇼크'로 죽는다. 한강 하수구를 건넌 어린 형제는 벌써부터 희망이 없는 거리 인생이고, 경찰로부터 도망친 남일이 만난 이는 노숙자다.

남자는 약하지만 아버지는 강하다

▲ <괴물>은 희망없고, 힘겨운 이 땅 '아버지' 혹은 '남자'들에 대한 세밀한 스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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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무기력한 남자들도 아버지일 땐 다르다. 남자는 약하지만 아버지는 강하다. '아버지' 강두는 망설임 없이 하수구로 뛰어들고, 쇠꼬챙이 하나 들고 괴물에게 덤빈다. 마취주사를 맞고도 강두가 잠들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그가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아들 강두를 위해 아버지(변희봉)는 식인 괴물을 막아서고, 딸을 위해 아버지(송강호)는 마취제 주사에도 정신을 놓지 않는다. 평상시 어딘가 모자라던 강두는 자식이 사라지자 눈빛이 달라지고, 사람을 꿀꺽꿀꺽 삼키는 괴물이 있는 곳으로 겁도 없이 들어선다.

이래저래 <괴물>의 진짜 주인공은? 50억 들여 캐스팅한 괴물이 아니다. 어쩌면 영화 <괴물>의 진짜 제목은 '아버지'다. 아니, '남자'다.

<괴물>은 희망없고, 힘겨운 이 땅 '아버지' 혹은 '남자'들에 대한 세밀한 스케치다. 대한민국 중년 남자, 그 꿈없고 찌질한 온갖 인간 군상들의 오만가지 스케치다.

영화 속 남자들은 하나같이 고달프고, 하나같이 비겁하다. 살아있으나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남자들 일색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인지라 그럭저럭 사는 남자들. 이 영화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 유리병에 넣어져 포름알데히드로 썩지 않게 담가진 남자들의 전시장이다. 꿈을 잃고 '현실'이란 괴물에 먹혀버린 남자들의 휴먼 다큐다.

그래서 <괴물>은 무섭다. <괴물>이야말로 서늘한 공포 영화다.
2006-08-24 09:41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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