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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자전거 관련 시민단체, 동호회와 함께 [연속기획] '자전거는 자전車다-자동차와의 아름다운 공존을 위하여'를 10주에 걸쳐 진행합니다. 세번째 주에는 유럽, 중국, 일본, 호주 등 세계 자전거 문화를 비교해 봅니다. 네번째 나라는 '히딩크의 나라'(?) 호주입니다. 천국과 지옥이 공존하는, 한 마디로 표현하기 힘든 나라군요. <편집자주>
▲ 도심 공원의 자전거 전용도로
ⓒ 호주 관광청
호주에는 현대문명을 거부하고 옛것을 고집스럽게 간직하는 사람들이 예상외로 많다. 네 바퀴 달린 자동차가 제공하는 편리함보다 두 바퀴가 달린 자전거를 타고 힘들게 페달 밟는 걸 더 즐겁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한다.

"호주의 자연이 아무리 아름답다고 한들 쌩쌩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그 경치를 얼마만큼이나 음미할 수 있겠는가? 호주의 환경이 아무리 쾌적하다고 한들 유리창에 갇힌 몸들이 그 청정한 공기를 얼마만큼이나 들이쉴 수 있겠는가?"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호주 대도시는 자전거 지옥

호주언론들이 전하는 뉴스에 따르면, 호주의 대도시에서 자전거를 타는 일은 테러위험지역을 다니는 것만큼이나 위험하다고 한다. 물론 일부 도심지역을 말하는 것이겠지만 다음과 같은 기사를 읽어보면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닌 듯싶다.

▲ 호주 도시의 도로 풍경
ⓒ 호주 관광청
▲ <데일리텔레그래프> 2006년 2월 22일

도로 한쪽을 차지하고 달리는 단체 자전거 주자들이 거추장스럽다고 자동차로 위협을 가한 한 운전자가 부주의 운전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됐다. 경찰에 따르면 50세의 남자운전자가 주유를 마치고 도로로 진압하다가 자전거 주자들과 부딪칠 뻔하면서 시비가 벌어졌다.

그 후 운전자는 자전거 주자들을 3Km 정도 추적하면서 위협을 가하는 만행을 저질렀는데, 이날 위협을 당한 자전거 주자 중에는 '프랑스 일주경기'에 참가한 프로선수와 비번을 맞은 경찰관 한 명도 포함돼 있었다.

이날 위협을 당한 자전거 주자의 증언에 의하면, "실제로 차량에 들이받히는 일이 심심찮게 발생하며, 도로를 번잡하게 만든다면서 갖은 욕설을 퍼붓는 운전자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면서 "맞서서 항의를 하는 것도 지쳤다. 모른 척 페달을 밟는 게 상책"이라고 말했다.

한편 세인트조지 클럽의 필 베이츠 회장은 시드니의 사이클링 인프라 부족과 일부 운전자들의 태도를 탓하면서 "시드니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 호주 최악의 장소 중 하나이다. 아주 무섭다. 외국에서 방문하는 자전거주자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고 전했다.


▲ 호텔 내부에 설치된 자전거 도로
ⓒ 호주 관광청
▲ 호주통신(AAP) 2005년 11월 28일

빅토리아 주 고속도로 도로변을 이용해서 열린 한 자전거경주대회에서 여성 자전거 주자가 돌풍에 휩싸여 사망하는 기상천외한 사고가 발생했다. 그녀는 갑자기 불어 닥친 돌풍에 밀려서 반대편 도로 쪽에서 달려오던 차량과 정면 출동하여 현장에서 사망했다.

그 자전거경주대회는 21년 동안 계속되어온 유서 깊은 대회인데, 이번 사고로 첫 희생자를 내는 오점을 기록했다. 사건과 관련하여 대회관계자는 "특히 어린이와 여성 참가자들이 많은 대회여서 돌풍을 대비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 <시드니 모닝 헤럴드> 2004년 8월 12일

시드니가 주도인 뉴사우스웨일즈(NSW)에서 헬멧을 착용하지 않거나 도로법을 어긴 자전거 주자들에 대한 주 정부의 과도한 단속이 논란이 되고 있다.

호주 자전거 협회 NSW지부의 닐 톤킨 의장은 "NSW주 정부가 현재 자전거로 건강을 도모하는 시민들에게 벌금까지 부과하면서 교통안전을 과도하게 강요하는 것은 자전거가 시민들에게 가져다 줄 수 있는 국민건강 증진효과를 무시한 처사"라고 비난했다.

톤킨 의장은 "최근 2년간 NSW주 정부가 이렇게 헬멧 미착용을 이유로 자전거 주자들에게 거두어들인 벌금이 1백만 달러에 달했으나 이 수입이 과연 자전거 도로를 확보하거나 시민들이 헬멧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쓰였는지는 의문"이라고 항의했다.

한편 호주 도로안전협회측이 지난 3년간 자전거 도로를 위해 3천5백만 달러의 예산이 지출되었다고 밝혔으나 현재 호주 국민들의 자전거 이용률은 네덜란드의 28분의 1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자전거를 사랑하는 많은 시민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 자전거 질주 후에 마시는 한 잔의 커피...
ⓒ 호주 관광청
목숨 내걸고 자전거 타야 하는 호주
그러나 최근 자전거 출퇴근 증가


이렇듯 호주의 자전거도로 사정이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최근 자전거 출퇴근이 부쩍 늘고 있다. 북한 미사일 발사로 시작된 휘발유가격 상승이 최근의 중동사태로 폭등의 기미를 보이자 호주의 '알뜰파 직장인들'이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 하는 것.

7월 16일자 호주통신(AAP) 보도에 의하면, 호주의 휘발유 값이 리터당 1.70 호주달러(약 1,300원)을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자전거로 출퇴근, 등하교를 하는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시드니 하버브릿지의 평일 오전 자전거 주행대수도 시간당 175대로 지난 10년 사이 5배나 증가했고 피어몬트브릿지는 시간당 185대로 6배 급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드니 자전거상 '치키몽키'의 아담 호간 씨는 "지난 6개월 사이에 매출이 20-25%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자전거 인구가 늘면서 메릭빌 카운슬을 비롯한 일부 카운슬이 자전거 운전자의 안전을 배려한 도로교통에 나서고 있다.

매일 아침 7시경 메릭빌에서 동료 3명과 함께 자전거로 시티에 출퇴근하는 미건 웹씨 일행. 그들은 7시 30분경 뉴타운에서 다른 '자전거 출퇴근 족'과 합류해 30명이 그룹으로 시내로 진입하는데 합류인원이 계속 늘고 있다.

▲ 자전거 여행 중에 갖는 강변캠프
ⓒ 호주 관광청
호주의 시골과 오지는 자전거 천국

시드니와 멜버른 등을 방문하지 않은 사람들이 흔히 오해하는 것 중 하나가 호주의 도시들이 아주 한적할 것이라 짐작하는 것이다. 도로가 널찍하고 자동차 통행이 많지 않아, 사람들이 자유롭게 걸어 다니고 자전거를 타고 여유롭게 다닐 것으로 생각하는 것.

천만의 말씀이다. 약 200년 전 마차가 다니던 시절에 만든 도로를 교통량 증가에 맞춰서 고치고 넓혀서 사용하는 호주 대도시의 도로는 예상보다 훨씬 좁고 복잡하다. 출퇴근 시간 도심거리엔 서울 못지않은 교통 혼잡이 발생하고, 그로 인한 시간 경제적 손실이 크다.

어디 그뿐인가. 호주 대륙이 한반도의 35배에 이를 정도로 광대하고 인구도 2천만 명 남짓에 불과해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낮은 국가지만 도시 거주사정은 영 딴판이다. 시드니와 멜버른에 각각 4백만 명 넘는 인구가 살 정도로 도시집중현상이 큰 것. 호주인구의 약 95%가 인구 2만 명 이상 도시에서 살고 있다.

▲ 섬마을에도 자전거는 달리고
ⓒ 호주 관광청
그러나 호주 대도시의 도심을 조금만 비껴나면 사정은 완전히 달라진다. 광활하게 펼쳐진 대자연 속에 아름답고 한가로운 도로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한반도의 35배나 되는 대륙에 약 1백만 명 남짓한 사람들(호주 전체인구의 5%. 나머지 95%는 도시에 거주함)이 흩어져 살고 있으니 더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사정이 그렇다보니 호주 시골지역이나 내륙 오지로 들어가면 시속 100Km/H 이상으로 달리는 것이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야말로 쌩쌩 달리는 것이다. 차창 밖 경치들도 정신없이 뒤쪽으로 달려가고.

그런 식의 여행으로는 호주 대자연의 속내를 전혀 알 수가 없다. 어떤 식물과 동물이 있는지 알 수 없다. 끝없이 이어지는 지평선과 몇 시간 동안 달려도 그냥 직선으로 누워있는 도로에 지쳐버릴 뿐이다.

그렇다고 그 먼 곳을 자전거를 타고 여행할 수도 없는 노릇. 그래서 호주 사람들이 생각해낸 것이 자전거를 자동차 뒤꽁무니에 매달고 다니다가 필요한 구간에서만 자전거 여행을 즐기는 방식이다.

자전거에 올라타서 페달을 밟는 순간부터 '지구에 남아있는 마지막 파라다이스'인 호주 대자연의 문이 열린다. 결국 자동차로 이동하는 것은 파라다이스로 가기 위한 준비작업인 것이다. 그 파라다이스의 실상을 호주관광협회의 알렉스 맥그리거 씨가 기자에게 사진으로 전송해 주었다.

사진들을 보는 순간, 기자는 15년 전 호주 내륙을 혼자 여행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비록 자동차 여행이었지만, 그 중간에 자전거를 조금씩 끼워 넣는다고 상상하면 영락없는 '파라다이스 행' 여정이었다. 그때 기자가 자전거 여행에 대해서 지금처럼 알았더라면…. 다음과 같은 스토리다.

▲ 해변 자전거 도로
ⓒ 호주 관광청
15년 전, 나의 호주 내륙 여행기

기자는 1991년말부터 1년 동안 호주 동아일보에 '호주 작가들의 고향'을 연재했다. 호주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20명을 선정해 그들이 태어나고 성장한 곳부터 문학 활동을 하다가 죽어서 묻힌 곳까지 현장을 일일이 답사하면서 문학기행을 썼다.

대부분 호주 작가들과 동행했지만, 일정이 많이 소요되는 오지(outback)로 취재를 갈 때는 부득이 혼자 가야 했다. 사륜구동 자동차를 타고 한나절을 달려도 집 한 채 보이지 않는 텅 빈 세상 속으로 혼자 길을 떠났다.

1992년 여름, 기자는 평생의 대부분을 오지로 떠돌며 호주 문학의 신기원을 이룩했던 헨리 로슨의 일생을 정리하면서, 그의 자취가 남아 있는 브로큰 힐 지역을 여행했다. 다음은 그 당시의 기록을 인용한 것이다.

붉은 땅 끝으로 열려서 붉은 땅 끝으로 닫혀버리는 하루하루가 일주일 가까이 이어졌다. 사륜구동 자동차가 아니면 애당초 접근조차 할 수 없는 거친 대륙에 나 혼자 있었다.

문득 누군가 부르는 듯하여 뒤돌아보았으나 아무도 없었다. 메마른 풀포기들이 바짝 엎드려 난데없는 이방인을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을 뿐.

호주 내륙의 풀포기들은 아예 하늘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땅이 건조하면 자연도 함께 건조해지는 것일까. 까칠까칠한 풀잎 사이로 푸른 혀를 가진 도마뱀들이 바람보다 빨리 사라져버리는 태곳적 적막강산에서 문득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동화(同化)하지 않으면 무슨 일인가를 당하고 말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나 혼자만 문명의 옷가지를 걸치고 있다는 민망함 때문이었을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훌훌 옷을 벗어던지기 시작했다.

사위(四圍)의 끝닿은 데를 가는 붓으로 그어놓은 듯한 아스라한 선 하나가 이어져 있을 뿐, 바람마저 잦아들어버린 호주 내륙의 사막지대, 천지간에는 벌거벗은 남자 하나뿐이었다.

▲ 자전거를 타고 포도농장에 갔더란다.
ⓒ 호주 관광청
이 세상의 모든 빛들이 모여서 이글거리는 땅, 그 가운데에 쭈그리고 앉아서 나는 꿈을 꾸고 있었다. 절반쯤 미쳐버렸던 헨리 로슨도 1882년 어느 날, 벌거숭이인 채로 이곳에 앉아 있었으리라. 그를 만나고 싶다.

소금에 절인 고기 몇 조각에 미지근한 물 한 통으로 사막의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기다리던 헨리 로슨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버크 쪽으로 소 떼를 몰고 가던 사람들이 "당신 죽고 싶어 환장했느냐?"는 목동다운 인사말과 함께 따뜻한 실론티를 끓여주었다.

수백 마리의 소 떼들은 선 채로 잠이 들었고, 우리는 쏟아지는 별빛 아래에 작은 모닥불을 피웠다. 서로가 지칠 대로 지쳐버린 몸이었다. 목동들은 투박한 모습이었지만 금방 친근해질 수 있는 '순둥이'들이었다.

뜨뜻미지근한 흑맥주가 몇 순배 돌았다. 역한 냄새가 나는 진한 맥주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난생 처음 듣는 오지의 전설 같은 얘기들에 홀려버렸던 것일까. 내가 새벽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들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이런 식의 오지여행은 아주 위험하다. 얼마 전엔 영국인 커플이 비슷한 형태의 여행을 하다가 희생되기도 했다. 노상강도를 만나거나 길을 잃어서 물이라도 떨어지면 끝장이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지금은 수많은 오지여행 패키지가 준비되어 있어 아주 안전하게 호주의 태곳적 적막강산을 체험할 수 있다. 특히 네댓 명이 함께하는 사륜구동 자동차 오지여행은 더 없이 좋은 추억 만들기가 될 수 있다.

자동차 뒤꽁무니에 자전거 몇 대를 매달고 다니다가, 동그라미 두 개에 의지하여 호주대륙에 숨어있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세계를 꼭 껴안을 수 있다면, 문명의 세계에서 입고 간 옷가지들을 훌훌 벗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가슴이 먹먹해질 것이다. 부끄럼도 없을 것이다. 사람도 자전거도 대자연의 일부가 되어, 지상세계와 천상세계의 경계에 그려진 것 같은 아득한 지평선을 맘껏 달려볼 수 있을 것이다. 거기가 '자전거 천국'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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