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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겨레와 친숙한 곤충 사마귀

사마귀는 조선 순조 때의 한글학자이자 <언문지>의 저자인 유희가 곤충, 나무, 풀 등 여러가지 사물들을 한글로 설명한 책인 <물명고>에 '연가싀'라는 이름으로 등장할 만큼 우리 겨레와 친숙한 곤충이다.

사마귀는 사마귀과에 속하는 곤충이다. 통상적으로 버마재비라고 부르기도 한다. 범의 아재비. 아재비란 아저씨의 낮춤말이다. 나는 어렸을 적 버마재비를 굉장히 무서워했다. 범 즉 호랑이의 아저씨 뻘이니 어찌 무섭지 않을 수 있겠는가.

손이나 발 등에 작은 혹처럼 돋아나는 바이러스성 피부질환 역시 사마귀라 부른다. 어렸을 적, 비 오는 날이면 심심풀이 삼아 초가지붕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짚시랑물을 손바닥으로 받고 있다가 할아버지의 호통 소리를 들어야 했던 적이 있다. 그렇게 하면 손등에 사마귀가 난다는 속설 때문이다.

곤충인 사마귀가 손등에 난 사마귀를 먹어치운다는 속설을 믿은 탓인지 손등에 난 사마귀에 살아있는 사마귀를 대고 먹어치우기를 기다리는 아이들도 없지 않았다.

사마귀의 생태

사마귀의 머리는 역삼각형이며 입에는 날카로운 이가 있다. 턱이 큰 반면에 목은 가늘어서, 머리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데 눈은 겹눈으로 삼각형 머리의 양 모서리에 붙어있다.

몸은 부위에 따라 녹색이나 엷은 녹색, 짙은 갈색 등으로 색깔이 다르다. 몸 색깔이 보호색이라서 풀잎과 구별하기가 어려운 점을 이용해서 풀잎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덮치는 수법을 잘 쓴다.

먹잇감을 발견하면 낫처럼 생긴 앞발로 먹이를 다리에 걸어 정확하게 낚아챈다. 살아 움직이는 것이라면 무엇이나 잡아먹으려고 달려드는 육식성 곤충이다. 그래서 '수풀속의 무법자'라는 별칭을 덤으로 얻었다.

▲ 호박잎에 앉아 있는 사마귀. 앞다리를 들며 공격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습이 중국영화에 나왔던 당랑권법을 연상케 한다. 통상적으로 버마재비라고 부른다.
ⓒ 안병기
사마귀 암컷은 짝짓기를 위해 특이한 냄새로 수컷을 유혹한다. 그러면 수컷은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암컷의 등에 올라탄 뒤 껴안고 짝짓기를 시도한다. 암컷은 수컷보다 몸집이 크고 힘이 세다.

짝짓기를 끝낸 수컷은 재빨리 도망가야 살 수 있다. 기운이 빠졌다고 꾸물거리고 있거나 비틀대면 암컷은 지체없이 수컷을 앞다리로 옴짝달싹 못하게 옭아맨 다음 잡아먹고 만다.

절간 마당 풀 섶에서
버마재비 한 쌍이
무아경의 내川를 건너고 있구나
소리와 빛이 잠시 멎었다
풀리며 만길 적막이 걷히자
각시가 신랑의 머리통을 아작.
어느 하늘 끝에서 소리없이 천둥 터지는구나
신랑은 참선중
각시 입안에서 가슴 배 팔다리 바수어지는
저를 바라보고 있구나

새끼발가락 끝에서 바르르 떨던
나머지 생(生) 한 터럭마저
허공으로 사라지고
붉은 입술 각시 유유히 자리를 뜨고
대적광전에서 염불소리 흘러와
참선하던 자리에 고여
한낮이 깊구나
막무가내로 깊어가는구나

-김정희 '어떤 사랑' 전문-


김정희의 시 '어떤 사랑'은 사마귀의 생태에 착안해서 쓴 시다. 내가 보기에 이 시의 제목은 <어떤 사랑>이 아니라 '못된 사랑'이라야 옳다.

숫사마귀를 다 먹어치운 '붉은 입술 각시'는 느릿느릿 자리를 뜬다. 혹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 나오는 이동건처럼 "이 안에 너 있다"고 능청을 떨며 사라지는지도 모를 일이다.

수컷을 먹어 치운 암컷은 이후, 나뭇가지나 풀줄기에다 알을 낳는다. 그리고 알 상태로 겨울을 난다. 사마귀는 번데기 과정을 건너뛰어 불완전탈바꿈을 하는 곤충이다. 절기상 망종 즈음에 이르면 바로 알에서 애벌레가 된다. '애비 없는 호로자식"이 되는 게 모든 사마귀들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교미가 끝나자
방금까지 사랑을 나누던
수컷을 아삭아삭 씹어 먹는
암버마재비를 본 적이 있다

개개비 둥지에 알을 낳고 사라져버리는
뻐꾸기의 나라에선 모르리라
섹스를 사랑이라 번역하는 나라에선 모르리라
한 해에도 몇 백 명의 아이를
해외에 입양시키는 나라에선 모르리라

자손만대 이어갈 뱃속의
수많은 새끼들을 위하여
남편의 송장까지를 씹어먹어야 하는
아내의 별난 입덧을 위하여
기꺼이 먹혀주는 버마재비의 사랑
그 유물론적 사랑을

-복효근 시 '버마재비 사랑' 전문-


치명적 팜므 파탈인 암 버마재비

복효근의 시 '버마재비 사랑'이 보여주는 풍경은 김정희의 시 '어떤 사랑'의 세계보다 더욱 구체적이다. 김정희의 시에서는 '참선'이니 '대적광전'이니 '염불 소리'니 하는 불교적 용어로 버마재비의 잔인한 생태가 은폐돼 있지만 복효근의 시에서는 '수컷을 아삭아삭 씹어 먹는' 등 암버마재비의 행위가 훨씬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다.

조금 아는 체 하자면 암버마재비는 남성을 유혹해 죽음이나 고통 등 극한의 상황으로 치닫게 만드는 '숙명의 여인'을 뜻하는 팜므 파탈이다. 프랑스어로 팜므는 '여성'을, 파탈은 '숙명적인' '운명적인' 그런 뜻이다.

남성을 죽음이나 고통 등 치명적 상황으로 몰고 가는 악녀나 요부.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런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될 숙명을 타고난 암컷. 이런 버마재비의 사랑은 필름 누아르(Film Noir) 계열의 영화를 연상시키도 한다.

만일 지금 내게 닥친 사랑이 버마재비식 사랑이라면 난 어떤 선택을 할까. 끝까지 사랑을 버리지 못한 채 아름다운 파멸을 기다려야 할까. 기대할 것을 기대하시라. '섹스를 사랑이라 번역하는 나라'에 사는 나 아닌가. 한 해에도 몇 백 명의 아이를 해외에 입양시키는 '뻐꾸기의 나라'에 살고 있는 내가 아닌가.

으짜겠능가.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라고 하지 않던개벼. 싸게 싸게 피하고 볼 일이제. 아먼. 그래사 쓰고말고.

덧붙이는 글 | 권용숙 기자의 <무당벌레를 잡아 먹는 사마귀> 기사를 보시면 사마귀의 생태가 흥미진진하게 묘사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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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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